바다의 기도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댄 윌리엄스 그림, 명혜권 옮김 / 스푼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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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을 맞이해 첫째 딸 다인이에게 몇 권의 책을 선물했다. 그중 할레드 호세이니의 신간 『바다의 기도』는 단연 눈에 띈다. 호세이니가 동화를 냈다고 해서 딸과 함께 읽어보고 싶었다.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을 찾았다. 작가의 인기 때문인지 방문한 서점 대부분에서 대여섯 권 이상을 비치해두고 있었다. 신간 동화(그림책)라는 특징 때문인지 견본 없이 비닐로 둘러놓기도 했다.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의 '오늘의 책' 코너에 당당하게 오른 걸 보면 호세이니의 이름값은 여전하다 싶었다. 출판사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듯했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작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미권 소설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명성만큼 많지는 않다.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 단 세 편의 소설로 단숨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슬프면서 감동적인 서사로 전 세계 5500만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는 영화로 개봉돼 수많은 영화팬들의 가슴을 적시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읽기 쉬운 문장과 복잡하지 않은 서사 구조에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굴곡진 현대사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인간성의 숭고함과 여성성의 위대함을 묵묵한 문체로 그려낸 아름다운 이야기다. 『연을 쫓는 아이』는 한 남자의 성장통이라는 테마를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처절한 현실에 녹여낸 거대한 서사시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1인칭과 3인칭 시점, 편지글, 잡지 인터뷰 등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의 반세기를 훑는 숨 막힌 이야기다. 세 편의 소설은 각기 다른 주인공과 서로 다른 이야기로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적 민낯을 웅대하게 전달한다. 나는 세 편의 소설을 통해 할레드 호세이니에게 완전히 매료되었고 주변 지인에게 끊임없이 추천해왔다.

 

신간 『바다의 기도』는 동화이다. 얇은 두께의 그림책이다. 대략 10분이면 읽을 수 있다. 텍스트를 읽는 것보다 그림을 감상하는 게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정도다. 책 두께는 얇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두껍고 무겁다. 호세이니의 간결한 문장을 댄 윌리엄스의 유려한 그림이 적확하게 수식했다. 2015년 9월 터키 해변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크루디(Aylan Kurdi)'의 실화를 소재로 삼았다. 소설은 아들 마르완을 위한 아버지의 독백과 기도로 이루어졌다. 죽음의 고비에서 아들을 보다 안전한 세상으로 구출하기 위한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가 처연하고 숭고하다. 감사와 기도, 사랑과 희생, 역사와 현실 등을 폭넓게 생각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동화다.

 

난민 문제로 지구촌이 여전히 시끄럽다. 시리아의 꼬마 난민 크루디가 바닷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진이 공개되면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비극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후 국가마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난민의 유입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도와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문제일까,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난민 문제의 디테일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인종적인 문제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문제이며 어른의 문제다. 어른들의 탐욕과 불관용 때문에 죄 없는 아이들만 죽어나가고 있다.

 

내가 이 짧은 그림책을 통해 딸 다인이와 나누고 싶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인간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것, 어른들도 실수를 많이 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에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이것들을 딸아이가 알고 느끼기를 원했다. 이해하고 공감하길 원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자격이란 '감사'와 '겸손'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기를 원했다. 인간은 분명 뛰어난 종족이되 완전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항상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현실적 조건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를 알고 그것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걸 일깨우고 싶었다. 흠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상을 도전해 주고 싶었다. 과연 다인이는 어떻게 읽었을까.

 

완독한 다인이가 감상평을 남겼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아빠 손을 꼭 잡고 있으면 잘 될 거라는 믿음을 얻었어."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지 못한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생각은 어른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는 걸 새삼 인식했다. 그렇다. 자식에게 부모는 신(神)과 같은 존재다. 자식이 커가면서 아빠-엄마의 힘(권력/권위)은 점점 약해지지 마련이지만 아래로 흘러내리는 영향력은 과히 압도적이다. 그렇기에 자식이 나를 믿는다면, 바라본다면, 의지한다면, 사랑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과 책임으로 인생을 살아야 할까, 생각했다. 묵직한 사유가 내 현존을 억누른다. 마음이 거룩해진다. 예배당으로 달려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싶어진다. 책 한 권이 주는 기쁨에 흐뭇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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