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 세상의 아이들이 투명하게 알려준 것들
오소희 지음, 김효은 그림 / 북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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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힘든 시기다. 가만히 있어도 세상의 중력은 무거운 법인데 작년부터 힘들다는 곡소리가 더 늘어났다. 여기저기서 고단한 삶의 각론이 폭포수처럼 넘쳐흐른다. 고독과 우울은 덤이다. 예기치 못한 국제적 전염병의 창궐로 우리 사회는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상을 겪어내고 있다. 걷는 존재로서의 인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는 위협받고 있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말수를 줄이며 홀로 집에 있는 인간상은 지난 1년 동안 일관되게 지향되고 있다. 사회는 위축되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많은 사람이 정신과를 찾는다.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우리 사회의 행복의 문제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이슈였다. 일각에서는 다른 나라의 행복지수를 거론하며 우리 사회가 불행하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경제적 외형의 확대가 해답이라며 정체된 이 나라의 GDP 성장률을 꼬집었다. 하지만 정작 행복의 최소단위이자 주체인 '개인'의 존재를 천착하는 건 부족했다. 그렇기에 남보다 내가 낫다는 상대적 우월주의를 행복의 개념으로 등치시키는 고약한 착각에 오랫동안 침잠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인 행복 체감도가 하향평준화되면서 삶과 만족에 관한 보다 냉철한 탐구가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오소희는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의 글을 전한다. '아릿하고 순도 높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매혹적인 띠지를 두르고 있는 오소희의 신간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는 세계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화집이다. 작가는 각 나라의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통해 고된 삶에 번민하고 허덕이는 이들을 토닥이고 격려한다. 이 책은 2012년에 출간한 『나는 달랄이야! 너는?』을 일부 수정한 개정판이다. 글의 구성과 디자인이 전체적으로 달라졌다. 출판사가 바뀌었고 책표지를 흰색으로 변경했다. 표제작을 제목으로 한 예전 판과 달리 보다 웅대한 제목을 전면에 배치했다. 적확한 순간을 잘 포착한 김효은의 그림은 여전히 훌륭하다.

총 다섯 편의 동화를 담고 있다. 동화라고는 하나 픽션과 팩션의 경계에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작가가 여행지에서 직접 만난 아이들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그들을 그리워하는 과정에서 작가적 상상력이 보태지면서 쓰였다. 주인공 아이들은 가난과 질병, 전쟁과 약탈에 노출된 아시아-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에 살고 있다. 우리 기준에서는 행복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이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과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채워나간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행복의 조건을 가늠하고 규정짓는 우리 시대의 많은 보편 어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라오스의 아농과 통은 배고픔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세상의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엿본다. 우간다 소녀 바바라는 내전으로 부모를 잃은 슬픔과 보육원장의 지난한 핍박 가운데서도 불평 없이 달님을 친구 삼으며 누군가 돕는 일에 헌신을 다한다. 시리아의 누르와 이라크의 달랄은 전쟁과 종교로 피폐화된 여성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작은 목소리라도 용기 내서 말해야 함을 알려준다. 아마존의 꼬마 뚜미는 자원 약탈로 점차 황폐화되고 있는 고향 숲을 배경으로 진정한 공감과 화합이 무엇인지 아름답게 들려준다. 필리핀에서 만난 타이손과 재인은 거짓 없는 순수한 마음가짐과 서로 다른 것에 대한 포용이 얼마나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섯 편의 동화는 각기 다른 이야기로 서로 다른 메시지를 말하려는 것 같지만 포괄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면 결국 삶과 행복의 문제를 관통한다. 행복은 외부 조건의 문제가 아닌 나 자신의 관점의 문제이며 행복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은 정작 자기 내면에 존재해야 할 '태양처럼 빛나는 힘'에 있다는 걸 일깨운다. 작가는 책 속 우간다 편(바바라 이야기)의 서설에서 "정말로 경이로운 힘은 '사랑'과 '감사'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려준다. 자기 자신을 시작으로 타인과 세계를 사랑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할 때에 비로소 '매일' '스스로' 내는 경이로운 힘이 우리 삶을 채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이 행복을 주제로 한 동화로 갈무리되는 걸 원치 않는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 아이들이 말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그 이전의 것'이라고 후술한다. 행복보다 강한 것. 보다 근본적인 것. 그것은 바로 '삶'이다. 그렇다. 작가의 말이 옳다. 누구나 행복을 정의하고 갈망하지만 정작 그것이 펼쳐지는 트랙과 같은 우리네 일상, 즉 삶의 실재와 엄연성에 관해서는 놓치며 살아간다. 어쩌면 행복이란 찰나와 같은 것일지 모른다. 행복보다 삶이 더 진실하다. 짧고 추악하고 고단한 삶을 그냥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전면에 보이는 것 같다. 능력보다 사람이 보이고 물질보다 정신이 보인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보이고 기쁨보다 슬픔이 보인다. 거짓보다 진실이 보이고 나보다 너가 보인다. 불평보다 감사가 보이고 티끌보다 들보가 보인다. 빠름보다 느림이 보이고 채움보다 여백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독서 무드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독서 속도는 더 느려졌고 독해 태도는 더 겸허해졌다. 책 읽기의 기술적인 부분은 과거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꾹꾹 가슴에 누르며 읽는 태도는 더 함양된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몇몇 대목이 내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두껍지 않은 책을 읽는 데 오래 걸린 이유다. 오소희의 글은 언제나 좋다. 따뜻하고 정갈하되 나를 현실 자존의 직면으로 견인하기 때문이다.

작가 오소희를 만난 지 어언 14년이 되었다. 언젠가 광화문 앞 커피숍에서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을 기억난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고 다윗님의 솔직한 마음대로 살며 사랑하라고. 그렇다. 나의 나 되는 것은 내 모습 진본 그대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데 있다. 이 참된 지혜를 재차 곱씹는 지점에 오소희의 신간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가 놓여 있다. 오랜만에 그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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