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문화권력 3인방 - 백낙청·리영희·조정래 비판
조우석 지음 / 백년동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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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탄핵 이후 한국 보수는 피폐했다. 멸망 수준까지 망가졌다. 과거에는 보수정권이 아무리 헛발질해도 흔들리지 않는 35% 전후의 고정 팬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끄러웠던 '최순실 게이트'는 절대 부동의 35% 팬심을 와해시켰고 한국 정치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문재인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집권 4년 차인데도 여전히 실력(성과)보다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다. 국회도 넉넉히 과반수를 넘겼다. 법원도 기울었다. 언론도 바뀌었다.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보수는 여전히 지리멸렬하다.


나는 이전까지 한국 사회의 이념적 지형이 북한과 분단의 영향으로 우익(右翼, right)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해왔다. 공산주의 자체가 풍기는 썩은 냄새가 역겨울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꾸준히 헛짓거리를 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최소 30%의 국민은 고정된 보수·우익이 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한국 사회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상당히 왼쪽으로 기운 운동장이었다. 한반도 상황에서의 자연스러운 반공 정서만 생각했지 문화와 지식 권력에 스며든 단단한 진보·좌익적 세계관을 낮게 평가한 것이다.


조우석의 『좌파 문화권력 3인방』은 이러한 나의 뒤늦은 인식에 적절한 말미를 제공해 준 책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우뚝 서 있는 문화·지식 권력의 좌경화를 신랄하게 꼬집고 고발한다. 큰 틀에서 지식인 세 명을 대놓고 두들겨까는데 그 논증과 문체가 흥미롭다. 출판사 '창비'의 설립자이자 발행인 백낙청, 진보 계열 인사들이 사상의 은사로 모셔온 리영희, 『태백산맥』의 저자 소설가 조정래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대부분이 그들을 향한 비판과 분노로 가득하다. 탄탄한 증거와 일관된 맥락이 뒷받침하고 있어 책 자체는 어설프거나 조악하지 않다.


저자의 첫 타깃은 백낙청이다. 백낙청이 누구인가. 1966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을 창간해 한국 문단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아닌가. 저자는 그 영향이 절대부정적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창비」와 백낙청은 한국 문단을 구조적으로 좌편향하여 본질적 수준에서 황폐화시킨 주범이다. 그 방식이 상당히 악질적인데 선호하는 작가를 전진 배치해 문학사의 주류로 끌어올리고 선호하지 않은 작가를 뒤로 밀쳐내는 방식이다. 그렇게 띄운 작가가 대표적으로 시인 김수영이다. 저자는 상당히 많은 지면으로 김수영과 그의 작품을 비판한다. 또한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과 시인 고은의 성추행 사건 때 백낙청이 보여준 이중적 태도를 위선적이고 치졸하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고 리영희 교수를 '종북 지식인 1호'로 명명한다. 리영희가 1970년대에 젊은이들에게 끼친 악영향은 전방위적인 것이었다고 질타한다. 사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등이 리영희의 명저로 꼽히는데 세 권을 모두 읽어본 나로서도 이 책들이 왜 좋은 평가를 받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는가. 어설픈 반미와 조악한 반 대한민국 내용으로 일관하는 쓰레기 같은 내용이다. 더욱이 모택동과 현대 중국의 찬양과 숭배는 과히 못 봐줄 수준이다. 훗날 전향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중국에서 북한으로 시선만 바꿨을 뿐이다. 끝까지 비겁한 지식인으로 남은 리영희는 백낙청보다 더 나쁜 숙주다.


소설가 조정래는 저자에 의해 '남로당에 사로잡힌 영혼'으로 규정된다. 한국 근현대사 전체를 포괄한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즉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낱권 기준 1,55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많이 팔린 만큼 대중의 한국 근현대사 통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저자는 조정래의 소설은 '문학의 옷을 걸친 반역 소설'이라고 기각한다. 이를 논증할 만한 소설 속 여러 장면과 상황을 소개하는데 충분히 고개가 주억거린다.


오래전 『태백산맥』을 완독한 내 감상도 저자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태백산맥』이란 작품은 순수 문학적 관점에서 수준 높은 소설로 평가하기 힘들다. 소설은 캐릭터와 우연성을 다루는 장르이다. 『태백산맥』 속 캐릭터는 작가에 짓눌려 작품 속에서 기계처럼 움직인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빨치산을 낭만적 전사로 그린 것에 뭐라 할 생각은 없지만 주인공들의 매력과 생명력은 만화 캐릭터처럼 굳어 있다. 더욱이 역사소설은 사실의 명백한 토막 사이에 작가적 상상력을 붙여야 한다. 그러나 자주 발견되는 역사적 오류는 큰 흠이다. 박경리의 『토지』보다 한참 못하다.


저자는 세 지식인 외에도 그들의 영향을 받은 몇몇 아류의 비판도 놓치지 않는다. 철학자 김용옥(도올), 소설가 한강,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등이다. 개신교·천주교 등의 일부 종교권의 좌익 현상과 현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심각한 좌경화 역사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기술한다. 저자는 이런 것들이 끼친 한국 사회의 해악에 대해 분노에 찬 필치로 서술한다. 반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할 참 지식인을 소개한다. 저자가 추천한 참 지성 2인은 소설가 복거일과 교수 양동안이다. 그들의 저작과 일갈을 인용하며 한국 지식계가 마냥 죽은 건 아니라고 희망을 엿보기도 한다. 부정과 긍정이 분명하기 때문에 읽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비판 대상을 에두르지 않고 직선으로 파고들어 공격한다. 얄짤없다. 시원시원하다. 언론인이며 문화평론가인 저자의 필력은 돋보인다. 사실관계의 정확한 편재 위에서 자기 주관을 덧붙이니 문장에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물론 진영적으로 다분히 오른쪽에 있는 저자의 이념 지도를 모르지 않는다. 평소 저자가 이승만과 박정희를 높게 평가해오고 관련 그룹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력이 저자의 논리를 기각하지는 못한다. 사실은 사실이고 주관은 주관이며 입장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할애하여 거침없고 일관되게 쏟아내는 저자의 좌파 비판은 충분한 힘과 논리가 있다.


언제부턴가 보수·우익이란 게 서글퍼졌다. 보수라 하면 마치 똥 쳐다보듯이 한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나라 대부분이 보수의 세상이 됐다고 떠들썩한데 한국의 보수는 거의 파멸 직전이다. 사실관계도 먹히지 않는 것 같다. 개인과 가족을 강조하면 이기주의자가 되고 능력과 효율을 언급하면 물질만능주의자가 된다.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에 파묻혀 악한 것이 되었다. 사회주의의 폐해를 얘기하면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며 비웃는다. 반미, 페미니즘, 동성애는 세련됨의 아이콘이 됐다. 운동장은 기울어진 게 아니라 뒤집어졌다.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나. 우리의 선배 세대가 쌓아올린 위대한 대한민국은 어디 갔나. 그 원인을 분석하고 공부하는 연장선상에 이 책이 놓여 있다. 저자의 말이 전부 옳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스며든 좌익적 세계관의 뿌리를 천착한다는 차원에서 참고할 만하다. 한 번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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