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소여의 모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3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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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은 시대(시간)의 압력을 이겨낸 작품이다. 그렇기에 고전은 위대하다. 하지만 고전이 모두 재미있는 건 아니다. 재미와 감동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른 것이다. 재미가 없어도 감동적인 작품이 있고 재미가 있는 만큼 감동적인 작품도 있다. 특히 정말 재미있는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읽기 속도를 높은 선상으로 끌어올리며 마지막 장을 확인시키게 한다. 종국에 남는 농밀한 감동은 덤이다.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은 재미있는 고전 소설로서 가장 먼저 회자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1876년 출간된 이래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괴물과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작가의 유려하고 맛깔나는 글 솜씨와 매력적인 주인공 '톰 소여'의 활약(?)은 책장을 엄청난 스피드로 넘기게 하는 힘이다.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19세기 중반 미국 미시시피 강 기슭에 자리한 어느 시골 마을로 시공간을 이동한다. 하지만 독자의 시간대가 19세기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그때 그 시절의 향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주인공 톰 소여의 모습에서 과거의 자기 자신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 냄새가 주인공의 유년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워낙 유명해서 다루지 않겠다. 단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제목 그대로 '엉뚱하고 모험심이 많은 톰 소여가 이런저런 사건사고에 휘말리며 겪어나가는 모험 이야기' 정도로 축약할 수 있겠다. 톰 소여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내 주관적인 평가로 톰 소여는 세계 소설사에서 베스트 20 안에 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의 유년시절 일부만을 그린다. 오히려 그들이 성인이 된 모습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톰 소여가 더 완벽한 인물로 독자에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기에 작가 자신도 소설의 「맺는말」에서 "이 연대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이것은 전적으로 한 '사내아이'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서 마쳐야 한다.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면 '어른'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라는 말을 남겼다. 타인을 압도하는 자유와 생명력, 나름의 정의감까지 갖춘 톰 소여는 그 시절 남자아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오롯한 형태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는 점에서 압도적이다.


톰 소여의 매력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소설의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꼽히는 '나무 울타리에 페인트칠을 하는 부분'이다. 소설에서 톰 소여는 엄마 격인 폴리 이모에게 잘못을 저질러 토요일에 집 울타리 회칠을 하는 벌을 받는다. 하지만 꾀가 많은 톰 소여는 동네 친구들과의 거래를 통해 노동을 놀이로 전환시킨다. 작가는 이 장면을 굉장히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하게 그리고 있다. 전혀 밉지 않게 톰 소여의 꾀를 묘사한다. 이러한 삶에 대한 톰 소여의 긍정적 태도는 소설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는데 훗날 여자친구 베키와의 연애와 두 차례의 큰 모험을 통해 삶에 대한 높은 수준의 여유와 긍정의 아우라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톰 소여의 모험』은 동 작가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함께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꼽힌다. 왜 미국인이 이 소설에 열광할까 생각했다.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았다. 주인공 톰 소여가 미국과 미국인을 대표하는 전형성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사(美國史)는 동(東)에서 서(西)로 개척하는 역사였다. 수많은 원주민(인디언)이 희생된 역사였지만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프런티어 정신'의 역사이기도 했다. 소설 곳곳에 드러나는 톰 소여의 모험심과 영웅주의는 보편 미국인의 사상과 역사적 맥락에 근접해 있다. 또한 악인으로 등장하는 인전 조의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용기 있게 법원에서 증언하는 장면은 미국인이 지향하는 도덕주의와 맞닿아 있다. 즉 작가 마크 트웨인은 그 시대를 표상하는 미국인의 전형성을 미국적 시각에서 미국적 글쓰기로 유려하게 녹여낸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톰 소여와 베키 사이에 감정적 긴장감이 흐르는 부분이다. 이는 자신의 장례식(?)에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연출을 통해 일약 스타가 된 톰 소여의 명예심과 여자친구 베키에 대한 소유욕이 부딪히는 장면이다. 톰 소여와 베키는 서로 간 허영심으로 다른 친구와 더 친한 것처럼 일부러 과한 행동을 하며 마음을 숨긴다. 작가의 표현대로 '거드름을 피우면서' 서로 자기 주변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며 모른척한다. 언행이 과해지며 결국 각자 상처를 받는다. 작가는 이 대목을 굉장히 현실감 있게 묘사했는데 이는 마치 과거 아내와 내가 어린 시절에 연애할 때 모습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흡사해 소름이 끼쳤다. 두 인물의 감정적 긴장이 후일 톰 소여가 베키를 대신해 선생님으로부터 매질을 당하는 장면에서 해소된다는 점에서도 내 과거 시절의 연애담과 몹시 유사해 놀랐다. 시대와 문화와 지역을 떠나 이렇게 유년시절에 대한 유치한 감정적 유사성을 떠올리게 한 점은 인상적이다.


번역도 훌륭하다. 영미문학 번역의 권위자 김욱동 교수의 번역은 유려하고 매끄럽다. 흠잡을 데가 없다. 다만 김 교수는 마지막 「작품 해설」에서 이 소설을 지나치게 어둡고 진지한 관점에서 비평했다. 소설이 갖는 특유의 해학과 상징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작품을 지나치게 해부하여 '남성우월주의'와 '페미니즘'에 대한 분석까지 장황하게 설명한다. 작가 마크 트웨인 스스로 여성의 인권 문제와 흑인 해방 문제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목소리를 낸 진보적인 작가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이 쓰인 시대적 상황과 총체적 색깔은 보지 않고 부분적인 장면과 등장인물의 대사 몇 마디로 이런저런 사상을 끌어들여 작품을 해부하는 건 적절치 않다. 굳이 불필요한 작품 해설이다. "거의 대부분의 문학작품 뒤에 부록처럼 달린 '작품 해설'은 없어져야 할 유산이다"라는 기존의 내 소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엉뚱한 감상이지만, 소설을 읽으며 든 생각 중 하나는 톰 소여와 같은 아들이 하나 있으면 어떨까, 한 것이다. 두 딸을 즐겁게 키우고 있는 나에게 굳이 아들은 필요 없지만 가끔 소설에서 멋지게 포효하는 남자아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아들이 당기는 마음을 숨기기란 쉽지 않다. 작금의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의 본래적(생래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 것이라면 나는 오히려 남자만이 갖는 그 꼴통적 생명력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 여자보다 굵고 단단한 뇌량을 갖지 못한 남자는 대개 단순하고 일방적이다.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때 남자 이하가 되지만 장점으로 작용할 때 남자 이상이 된다. 톰 소여가 가진 독특한 창조성과 유별난 생명력에 매료되어 잠시 아들에 대한 내 감상을 보탰다.


서평을 정리하자. 최근 코로나19로 웃음을 잃은 사회가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의 정서까지 메마르게 하고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이럴 때 마크 트웨인의 재미있는 소설 한 권으로 웃음을 회복해보는 건 어떨까. 죽기 전에 꼭 한 번 읽어야 할 고전이다. 강추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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