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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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은 모두 다른데 텍스트적 관점에서 크게 두 개로 나누면, 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있고 산문―소설도 산문의 한 형태이지만 여기서는 수필(에세이) 정도의 소개념으로 산문을 칭함―을 잘 쓰는 작가가 있다. 시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제외하자. 산문가는 거의 소설을 쓰지 않지만 소설가는 가끔 산문을 쓴다. 그중 소설과 산문 모두 잘 쓰는 부류가 있다. 하루키나 김훈과 같은 작가는 소설과 산문 모두 훌륭하다. 하지만 정작 소설보다 산문을 더 잘 쓰는 작가도 있다. 김연수를 꼽을 수 있겠다. 반면 소설가일 수밖에 없는 작가도 있다. 오직 소설가일 때 빛나는 작가 말이다. 그 대표적 예가 바로 소설가 공지영이다.

 

그렇다. 공지영은 천상 소설가다. 나는 그녀의 모든 소설에 감동했고 그녀의 모든 산문에 무감했다. 소설은 훌륭했고 산문은 별로였다. 그녀의 소설은 한결같이 읽기 쉽고 대중적이다. 쓸데없이 무겁지 않고 거들먹거리지 않는 솔직함으로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어두운 곳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약자들의 처절한 삶과 힘(권력) 있는 자들의 고약한 위선에 대해 추적하고 고발했다. 문학에 대해 '꼭 말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한 소설가 조정래의 말이 진실이라면 공지영은 문학의 역할을 가장 충실히 증명해가고 있는 작가이다. 그래서 나는 공지영을 좋아한다.

 

공지영이 여러 정치적, 사회적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평생 먹을 욕을 최근 몇 년 동안 다 먹고 있는 느낌이다. 조국 사태 후 그녀가 쏟아낸 진영 논리식 목소리가 시발점이 된 것 같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투표 잘합시다'라는 글을 게시하여 한 시민단체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그녀의 삶을 저리도 요란하게 만들었을까 우려하지만 작가는 우선 작품으로 평가해야 한다 생각하기에 그녀에 대한 복잡한 마음은 어렵지 않게 추스를 수 있었다.

 

예술의 모든 장르가 그러하듯이 고통과 허무를 통해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걸까. 공지영의 신작 소설 『먼 바다』는 정말이지 끝내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우리의 영원한 주제인 '첫사랑'을 그린다. 발군의 감성적 묘사와 유려한 문체는 이 소설을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와는 다르게 읽히게 하는 동력이다. 소설은 현재의 미국과 40년 전의 한국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두 주인공의 기억을 소환하고 조합한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과거의 진실이 들추어지며 긴장감이 누적되는 흐름은 땀이 날 정도다. 결국 두 인물의 희미하고 불분명한 기억은 소설적 절정을 통과하며 명징해진다. 결국 소설의 끝에 도달했을 때 긴장은 종결되고 독자는 농밀한 감동을 선사받는다.

 

미국에서 의자 사업을 하는 '그' 요셉과 안식년으로 미국 여행을 온 독어독문학과 교수 '그녀' 미호는 첫사랑의 기억을 추적해가는 두 주인공이다. 작가는 3인칭 시점으로 둘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적으로 추적한다. 40년 동안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을 연결해 준 매개는 '페이스북'이라는 21세기 자본주의의 아이콘이다. 40년 전 박정희와 전두환을 비판하고, 광장에 나가 민주주의를 외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경멸했던 '그'가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의자 사업가가 되어 있는 아이러니한 괴리를 작가는 유심히 포착한다. 다만 포착할 뿐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것과 애써 싸우지 않는다. 하나의 소설적 배경으로 지긋이 물러나 있을 뿐이다. 이제 작가도 운동권 담론에 매몰된 과거 순진한 시절의 공지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은 시종 두 인물의 기억을 추적한다. 둘의 기억은 조각나 있다. '그'는 '그녀'가 가장 궁금해했던 것을 잃어버렸고, '그녀'는 '그'가 가장 강렬해했던 것을 잃어버렸다. 둘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잃어버린 기억의 시간이었다. 이는 소설의 제목과 웅숭깊게 연결된다. 소설은 바다로 시작해서 바다로 끝난다. 소설의 앞과 뒤를 모두 차지하고 있는 '먼 바다'는 두 인물이 함께 공유한 공간적 배경이자 잃어버렸기 때문에 완전할 수 없었던 추억을 회복한 초월적 상징이다. 그렇기에 바다는 멀어야 했다. '먼 바다'여야만 했다. 그들이 다시 만나 진실을 확인한 40년이라는 긴 시간이 그러한 것처럼, 멀고 길어야 했다.

 

결국 이 소설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의 기억은 절대 우주의 시간을 전복하지 못한다. 만약 인간이 시간의 일차월성과 무관하게 모든 걸 기억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영장으로서의 인간적 생명력은 그 절반이 소멸되었을 것이다. 잊힌 것은 잊힌 대로 의미가 있고 잊힌 것이 다시 복기될 때는 그것대로의 가치가 있다. 두 주인공이 뉴욕 맨해튼의 9·11 메모리얼 파크에서 보게 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버질이라는 사람의 다음 시구절은 이러한 내 사유를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재청한다.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존재한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건 그것이 처음이라는 것과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에 있다. 처음이라는 건 '사실'의 세계이고 기억된다는 건 '이상(理想)'의 영역이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를 처음 사랑했다는 사실은 한 인간으로서 삶의 종국에 이를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이상이다. 그렇기에 첫사랑을 '이루어지지 않은 아쉬운 기억' 정도로 갈음하는 건 적절치 않은 정의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꿈이 있고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 이상이 있기에, 그리고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자아와 현실을 더욱 냉정히 성찰할 수 있기에 말이다. 즉 첫사랑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타자에 대비된 나를 천착하는 아름다운 소환이요, 이후 사랑의 가장 순수한 시금석이 되는 경이로운 추억의 숙성이다. 이러한 첫사랑의 생명력을 아름답게 탐색하게 한 것만으로도 소설 『먼 바다』는 훌륭하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추신'으로 붙인 문장이 자못 이색적이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슬프지만 이 소설은 당연히 허구이다"라는 추신을 남겼다. 소설의 정의가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이라는 점을 주지한다면 소설의 생명은 당연히 '허구(fiction)'에 있다. 작가도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굳이 불필요하게 저런 끝맺음을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 난 잠시 생각했다. 혹 지난 몇 년 간 작가 자신이 진실과 관련하여 지난한 싸움을 했다고 반추하며 스스로 지쳐있어 그런 건 아닐까. 즉 극한의 자존적 외로움이 만들어낸 불필요한 감정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작가에게 조언하겠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독자는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몽매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추가로 작가에게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제언하겠다. 소설로 말하는 작가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가 작품 바깥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할 때마다 문학적 생명력은 소멸된다.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다. 동시에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작가가 광장에 나가는 시대는 종말했다. 87년 체제는 끝났다. 이제 대한민국은 절대로 과거 독재 정권 때로 돌아가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진영 구도가 남았을 뿐이다. 여기에 선악을 대입하고 '옳고 그름'을 외치는 순간 우리 사회의 분노지수는 점증되고 서로 간 신뢰는 결핍된다. 그 선봉에 소설가 공지영의 이름이 없기를 바란다. 부디.

 

서평을 정리하자. 작품 소개보다 작가를 향한 잔소리가 많은 조잡한 글이 됐다. 정말 잘 쓴 훌륭한 소설인데 그만큼 객관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 같아 솔직한 내 심정을 보태느라 글이 장황해졌다. 정리하자면 신작 『먼 바다』는 정말 잘 쓴 소설이다. 그 자리에서 한달음에 완독했을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첫사랑은 내용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 숭고하다는 것을 소설가 공지영은 이 한 권의 소설로 아름답게 들려준다. 최근 읽은 한국소설 중 최고다. 오래간만에 읽은 수작이다. 읽지 않은 사람은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기 바란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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