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두 딸과 TV로 월트디즈니의 명작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2>를 시청했다. 극장에서 이미 본 영화였지만 케이블 TV 더빙판으로 다시 볼 기회여서 즐겁게 시청했다. 2편은 1편과 결이 달라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전작과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었다. 여자아이들이 워낙 좋아한 영화이기에 두 딸은 아빠의 분석을 흥미롭게 경청했다. 내가 평가한 <겨울왕국> 시리즈는 이렇다. 1편이 동생 안나의 영화였다면 2편은 언니 엘사의 영화였다. 내가 느낀 건 그랬다.

 

2편을 보면서 '엘사가 이제 진정한 주인공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사실 <겨울왕국 2>는 엘사의 독무대라 할 정도로 엘사 중심의 영화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머리를 풀어헤치며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른 1편의 엘사보다 종횡무진 자신의 진본을 찾아 나선 2편의 엘사가 나에게는 더욱 인상적이고 매력적이었다. 그래서인지 2편을 시청하면서 내가 유독 엘사에 대한 매력을 자주 표현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둘째 딸이 "내 영어 이름이 엘사(Elsa)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했다. 아빠가 영화를 보면서 특정 인물을 한없이 칭찬하니 둘째 딸은 자신의 영어 이름에 아쉬움을 가지며 본인의 솔직한 감정을 말한 것이리라.

 

사실 그랬다. 몇 년 전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영어 이름을 작명해달라고 했을 때 아내와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첫째 딸의 영어 이름은 '벨(Belle)'이다. 당시 실사로 재개봉한 영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에서 엠마 왓슨이 맡은 여주인공 벨의 매력이 우리 가족 모두를 적잖이 경도시켰기 때문이다. 문제는 둘째 딸의 영어 작명이었다. 둘째는 엘사로 지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워낙 흔한 이름이기도 했고 1편에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우리 부부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여주인공 '안나(Anna)'를 선택했다. 그래서 둘째 딸의 영어 이름은 안나가 됐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안나는 인류 문학사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인물로 꼽힌다. 나는 톨스토이의 불멸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가 보여준 진심에 대한 자유와 극한의 생명력을 긍정하며 둘째 딸의 영어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문제는 둘째 딸의 이해(理解)에 있었다. 둘째는 자신의 영어 이름 안나를 톨스토이의 안나가 아닌 월트디즈니의 안나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겨울왕국 2>를 보며 엘사를 거듭 상찬한 아빠의 모습에서 무언가 마뜩잖음과 결핍을 느낀 것이다. 솔직히 둘째 딸이 "내 영어 이름이 엘사(Elsa)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곧바로 아무 답변도 주지 못했다. 피상적으로 <겨울왕국> 시리즈의 주인공은 분명히 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반전이 일어났다. 잠자코 있던 첫째 딸이 엘사보다 안나가 더 대단한 존재라는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더 놀랍다. "안나는 초능력(마법) 없이도 왕이 되었기 때문에 엘사보다 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결코 생각지 못한 한방이었다. 첫째 딸의 해석과 웅변에 나는 잠시 소름이 돋았다.

 

그렇다. 항시 비범함은 범상함을 전복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신비로움을 쫓는다. 기적은 현실과 괴리되지만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영원불변한 욕망이다. 많은 사람들이 엘사에 환호한 것은 그녀의 인간 됨보다 인간 되지 않은 초월성을 선망한 것이리라. 엘사의 강력한 마법과 초능력, 그리고 범상하지 않은 판타지적 카리스마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몽롱하고 화려한 미모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궁극일 것이다. 하지만 엘사에 가려진 안나의 매력을 우리는 너무 소홀히 감상해왔다. 첫째 딸의 말대로 특별한 능력 없이 오직 인간적인 근거만으로 왕이 된 안나의 매력에 대해 우리는 너무 간과해왔다. 반추해보면 인간적 관점에서 고도의 정신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항상 일관되게 현실을 긍정한 캐릭터는 안나였다. 나는 입장을 바꾸었다. <겨울왕국> 시리즈의 진정한(내재적) 주인공은 언니 엘사가 아닌 동생 안나였다는 것으로.

 

안나는 궁극적으로 <겨울왕국>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1편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전환을 이루는 부분은 안나가 엘사의 장갑을 벗기면서 엘사의 정체가 탄로 나고 그 충격으로 엘사가 산으로 도망치는 장면부터다. 그 유명한 엘사의 '머리 풀어 헤친 <렛 잇 고>'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때 엘사를 찾기 위한 안나의 여정이 시작되고 두 캐릭터의 내면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성 안에서만 지내며 외부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엘사와는 달리 안나는 적극적으로 부딪히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밝고 건강한 정신으로 언제나 당당함을 유지한 안나의 내면은 자아에 구속된 듯 보이는 엘사의 소극성과 대비되며 영화의 중후반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종국적으로 안나는 진정한 사랑만이 안나와 아렌델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낸다.

 

2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목숨을 걸고 정령들을 깨워 마법 하나 없이 댐을 부수어 얼어버린 엘사를 녹여낸 것도 안나였다. 열정적인 사랑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모두를 구원하고 상황을 정리하는 건 언제나 안나였다. 그 어떤 마법과 초능력도 없이 말이다. 드레스 변신 장면과 메인 테마곡이 모두 엘사에게 돌아가서 비주얼적으로 대중적 매력에 엘사보다 못하다는 평을 받지만 인간 정신의 고결한 승리와 가치라는 면에서 안나는 항시 엘사를 압도했다. 그렇기에 결국 2편 말미에서 진정한 아렌델의 왕으로 등극하는 게 아니겠는가. 안나의 왕 등극 장면은 월트디즈니의 연출력이 만들어낸 위대한 극작술의 극치였다. 결국 중요한 건 현실성이다. 산타클로스는 신비롭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크린(영화)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우리네 삶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엘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안나는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안나의 진정한 매력인 것이다.

 

둘째 딸의 오해, 즉 톨스토이의 안나와 월트디즈니의 안나가 괴리한 지점에서 이렇게 깊은 사유를 뽑아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는 전적으로 두 딸의 공이다. 가끔 아이들의 언어 가운데 신(神)의 터치를 엿볼 때가 있다. 특히 첫째 딸의 워딩에 가끔 전율을 느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 됨의 숭고함에 압도된다. 어른스럽다는 건 성숙하다는 의미지만 동시에 그만큼 때가 묻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관찰과 해석을 통해 현상에 가려진 본질을 천착할 수 있다. 태도는 어른처럼 성숙한 외연을 갖되 생각은 아이들처럼 단순하고 순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어름 됨은 완성된다고 믿는다. <겨울왕국>의 진정한 주인공 안나에 대한 아이들의 관찰을 통해 그것을 깨닫는다. 둘째 딸의 영어 이름 '안나(Anna)'가 더없이 빛나는 순간이다. 가슴 벅찬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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