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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평점 :
속았다. 여러 책 속의 명문장을 끄집어내 통찰력 있는 해설을 덧붙인 에세이일 것으로 기대했다. 외연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었지만 정작 사유의 깊이와 문장력은 지나치게 평범하고 밋밋하다. 고만고만하고 말랑말랑한 얘기들로 가득 차 있다. 최소한의 인문학적 무게를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오히려 자기계발서의 오류와 한계로 지적받는 ' 저자만의 기준', '무의미한 합리주의', '뜬구름 잡는 달콤한 소리' 등이 책 곳곳을 메우고 있다.
저자는 '책 읽어주는 남자'로 불린다고 한다. 여러 채널을 통해 책 속의 좋은 글귀를 소개하며 매주 150만 명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달한다고 한다. 그의 이력을 모른 채 "인문 고전, 철학, 역사는 물론,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려 뽑은 130여 편의 ‘인생의 문장들’을 작가 개인의 진솔한 경험담과 함께 전한다"라는 모 인터넷서점의 홍보문구에 혹해 구입했다. 개인적으로 위로는 전혀 받지 못했고 몇몇 책 속 명문장을 소개받는 선에서 내 독서는 갈음되었다.
책의 구성은 심플하다. 고전 속의 여러 문장들을 독자에게 소개하며 그것에 대한 저자의 사유를 풀어놓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일관적인 구조로 쓰여 있다. 평가하자면 인용과 해석 둘 다에 문제가 있다. 고전 속 여러 문장을 인용했다고는 하지만 그리 와닿지 않는 평범한 문장들이 많아 호감스럽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녹여내는 저자의 해설에 깊이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울림이 없었다. 더욱이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라는 제목은 왜 갖다 붙였는지 책 내용과 괴리적이다. 이런 말랑말랑한 책에 '인문학'이라는 수식어구를 붙인다는 게 조악하고 어색하다.
언제부턴가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표지 전면에 배치한 자기계발서들이 범람하고 있다. 읽어보면 분명 자기계발서인데 책의 띠지와 출판사의 광고 카피는 '인문 에세이'라며 독자를 호도시킨다. 괴테나 프루스트의 글 몇 줄을 인용한다고 해서 인문서적이 되는 건 아니다. 저자(작가)만의 인문학적 콘텍스트가 그 재료들을 견인하고 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즉 저자의 문장 자체에서 깊이 있는 인문학적 사유와 울림 있는 전달력이 빛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구나 일기장에 쓸 수 있는 말랑말랑한 수준 이상을 담아내지 못한다.
내가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저자의 위상을 책 한 권으로 재단하는 게 아닐까 저어된다. 하지만 이 글은 서평이며 솔직하고 냉정하게 책에 대한 평가만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텍스트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힐링서적 중에서 이 책은 최하위급에 속한다. 위로에도 수준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이한 말과 글로 타자(독자)를 위로할 수 있다는 용기가 가상하고 그런 위로에 따뜻함을 느끼는 독자의 수준도 안타깝다. 책이란 모름지기 차가움과 따뜻함을 혼용해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멘토와 힐링을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 권의 책이 인간에게 본질적 위로를 줄 수 있을지에 답하기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양서들을 통해 위로받았고 힘을 얻었다. 그 책들은 대개 '진짜'였고 탁월했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으며 깨달은 건 이 세상에는 굳이 시간을 내서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독서는 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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