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생각
김호랑 지음, 김리연 그림 / 바른북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포근한 시집을 만났다. 신간 『눈물의 생각』은 작가 김호랑의 따뜻한 시선과 화가 김리연의 수준 높은 그림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시집이다. 책에 실린 시는 작가가 대학생 때부터 쓴 습작시를 묶은 것이라 한다. 책 곳곳에는 삶과 자연, 인간과 사랑에 대한 작가의 따뜻하고 낭만적인 통찰이 가득하다. 작가는 우리 일상에서 쉽게 포착되는 평범한 소재들로 아름다운 시를 읊어준다. 

 

누군가 시인을 '천상의 영역에서 글을 쓰는 자'로 정의했던가. 그렇다. 시는 언어를 넘어선 세계이며 언어 이상의 우주이다. 세상의 수많은 소설가와 수필가들은 시인이 되지 못한 자신의 범상함을 한탄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엉덩이의 힘으로 글을 쓰고 있다. 문학에 계급은 없지만 시는 모든 글쟁이들의 이상이자 로망이다. 시 쓰지 못하는 사람이 소설 쓰고 소설 쓰지 못하는 사람이 비평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러한 시의 위상을 증명이라 하듯이 작가는 몇 개 되지 않는 단어의 조합으로, 즉 극한의 압축으로 독자의 마음을 노크하며 농밀한 감동을 선사한다.

 

수록 시 중 가장 탁월한 시는 단연 「그리움」이다.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라는 후렴구를 가진 이 시는 '그리움'에 대한 작가의 심원한 통찰을 의도된 산문체로 들려준다. 함께 있어도 알지 못하고, 멀리 떠나와도 모르며, 아무리 그리워도 보이지 않는다,는 작가의 사색은 그리움의 본질을 관통하는 놀라운 천착이다. 이 시를 통해 작가의 과거를 엿본다. 작가 스스로 그리움의 끝장을 겪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에 무언가 '부재(不在)'한 것이 있었던 걸까. 부재는 '비존재(非存在)'와는 달라서 자신 곁에 없이도 그리워할 수 있는 것이기에.

 

표제작 「눈물의 생각」도 인상적이다. '눈물의 생각'은 기묘한 제목이다. 눈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눈물에도 생각이 있을까. 여러 사유가 쌓인다. 시를 곱씹으며 나름으로 풀이했다. 눈물과 눈물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의미라는걸. 눈물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눈물과 눈물 사이의 여백과 시간까지를 담아낼 때 그 눈물은 관찰자로 하여금 수많은 생각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눈물 자체만을 보려 하고 눈물 앞뒤로 존재하는 시공간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에는 인색한 존재일지 모른다. 눈물과 눈물 사이를 탐색할 때 눈물 자체의 순도는 더욱 농밀해진다. 

 

이 시집이 더욱 매력적인 것은 화가 김리연의 수채화들 덕분이다.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거의 대부분 풍경과 자연을 대상으로 했는데 화가 자신이 직접 가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릴 수 없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명징하고 생동하다. 시집 절반의 생명력은 김호랑의 시를 발군의 터치로 수식한 화가 김리연의 내공에 있다. 시와 그림이 시집 안에서 정겹게 조화한다. 시집 『눈물의 생각』은 김호랑의 시가 김리연의 그림을 견인하고 김리연의 그림이 김호랑의 시를 재해석하는 관계로 아름답게 포개져 있다.

 

고백하지만 시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 시가 가진 고밀성과 탁월성을 인정하면서도 텍스트에 관한 개인적 호오 탓으로 시를 멀리하는 편이다. 시의 운명론적 구조, 즉 압축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시는 무겁고 억압적이다. 반면 산문은 가볍고 자유롭다. 소설가 황순원은 "시는 젊었을 때 쓰고, 산문은 나이 들어서 쓰는 것이다. 시는 고뇌를, 산문은 인생을 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의 문학적 감성은 다분히 늙은 것일까. 고뇌 없는 인생을 살기 때문일까. 이 진지한 정체성을 질문하게 한 것만으로도 시집 『눈물의 생각』은 탁월하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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