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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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공지영의 열두 번째 장편소설 『해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최상단에 올랐다. 불매 운동, 평점 테러 등의 좋지 않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발간 이틀 만에 초판 6만 부가 매진되었다. 최근 모 정치인 스캔들 관련 발언이나 SNS 활동 등이 이슈가 되어 여러 매체에 작가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어 왔다. 더욱이 이번 소설의 소재 때문에 '아군에 칼을 겨눴다'며 정치적, 이념적 공격을 받기도 했다. 작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에 그 어떤 편견과 선입견도 거부한 채 작가 공지영이 『높고 푸른 사다리』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신작 장편소설 『해리』에 깊이 침잠한다.

   『해리』는 인터넷신문 기자 '한이나'가 여러 경험을 통해 의문의 사건들을 알게 되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악이 실제는 집단의 악을 구성하거나 대표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근원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 신부의 법적, 도덕적 일탈 하나조차 처리하지 못한 채 조직의 권위와 이미지를 덮기 위해 거짓으로 일관하는 가톨릭 교구의 추악한 단면을 꼬집었다. 장애인 복지를 위해 피땀을 흘리며 헌신하는 듯하지만 실상 온갖 비리와 부패로 점철되어 있는 사회활동가와 정치인들의 추한 모습도 담았다. 겉으로는 선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내밀한 곳에서는 여러 형태의 악으로 가득 차 있는 종교와 시민(복지) 단체를 고발함으로써 주변의 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더욱 진지하고 냉정하게 조명해야 한다는 점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 소설은 10년 전 출간된 장편소설 『도가니』와 연결되어 있다. 『도가니』의 배경이 된 안개의 도시 ‘무진’이 또다시 소설의 시공간이 됐다. 『도가니』의 주인공 '서유진'도 재등장하여 중요한 조연의 역할을 담당한다. 『도가니』의 주요인물 장 경사가 단역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온갖 불편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점도 비슷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 격언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작가는 선의를 위협하는 악의 카르텔이 얼마나 간사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우리들 가까이에서 안개처럼 스며들어 있는지를 소설로 형상화한다.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작정한 듯 소설 속 악의 양대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이해리'와 '백진우'의 악행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악녀 이해리는 선함을 가장하고 끊임없이 가면을 바꿔 쓰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카멜레온과 같은 인물이다. 가톨릭 신부 백진우는 진보와 신앙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해리를 배후조종하며 악행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야만인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개인의 엽기적인 악행의 퍼포먼스와 이를 구조적으로 보완하고 피드백하는 공동체적 악의 카르텔의 모습에 구토가 나올 정도다. 중요한 포인트는 그 악행들이 선의 이름으로 내밀하게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최전선에서 정의와 진리를 부르짖어온 가톨릭, 인권단체, 기자를 지독한 악행의 실재로 묘사했다. 물론 이러한 작가적 허구(설정)가 완전히 백지에서 펼쳐진 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소설은 실화를 기초로 했다. 예컨대 천주교계의 비리와 성폭행 사건, 인권 유린 논란이 불거졌던 대구 희망원 사건, 불법 시술과 아동 학대 혐의가 제기됐던 전주 목사 봉침 사건 등의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통속적으로 선과 진보, 정의와 민주주의의 편에 서있다고 수렴되어온 세력을 구조적 악행이 날 것으로 야만화된 모델로 치환했을까. 그것은 바로 악의 '성질'에 있다.

   과거 진보를 표방한 자들의 반대에 있던 세력의 악행이란 대개 단순하고 가시화된 것들이라고 작가는 규정(전제)한다. 악의 형태와 물리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악이 존재하는 화학적 구조에 관한 것이다. 즉 저들의 악이 쉽고 명확한 그 무엇이라면 이들의 악은 어렵고 복잡하게 엉켜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편'이라는 이념적, 공동체적, 암묵적 카르텔에 함몰되어 그것을 포착하고 인정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역설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작가의 이러한 의도를 특정 세력에 대한 비판 내지는 고발로 수렴하지 않는다. 보다 넓은 천착에서 가능성의 차원으로 이해한다. 나 자신, 내 주위,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적 문제 제기가 소설의 소재가 된 가톨릭과 장애인 단체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곤란하다. 선과 정의를 외치는 모든 개인과 공동체에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인류사의 무수한 악행들은 그 사례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불행한 역사는 용기 없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사상과 이념, 종교와 이해관계를 떠나 잘못은 오직 잘못으로만 풀이되어야 한다. 어쩌면 작가 공지영은 선악(善惡)을 인식함에 있어 현상이 본질을 전복하고 각색이 내용을 압도하는 불편한 현실과 그것을 굳이 끄집어내기 싫어하는 일부 사람들의 구조적 위선에 대해 경각을 던지려 했을지 모른다. 난 이 소설을 그렇게 이해한다.

   소설에서 간간이 포착되는 작가의 실험적 장치가 인상적이다. 최근의 SNS 시대를 십분 반영하여 페이스북 디자인을 그림 형태로 표현했다. 악의 두 모델 이해리와 백진우의 SNS 발언을 페이스북의 시각적 외관 그대로 소설에 구현한 것이다. 두 인물의 위선에 찬 거짓말을 주로 페이스북 형태로 차용한 것은 SNS의 악의적 기능, 즉 가짜뉴스와 거짓정보의 재생산 기능과 확산 능력을 비웃고자 하는 작가적 경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주요 연도와 사건, 실명이 그대로 등장하는 것 또한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세월호', '이명박근혜', '최순실', '대통령 탄핵' 등의 단어가 수시로 등장하는데 이는 소설은 허구로 쓰여진 이야기지만 강렬하게 현실과 일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작가의 의도된 동시대적 의지로 풀이된다. 즉 소설 『해리』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의 이야기'인 것이다.

   반면 한 편의 소설로서의 한계와 아쉬움을 지적한다. 과연 2권짜리로 늘어져 쓰일 만큼의 서사였는지 의문이다. 소설의 얼개는 단순하다. 주인공 이나가 해리와 진우의 악행을 추적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기본 뼈대다.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현재적 위기를 이나의 과거 상처에 겹치기 위해 회상 신이 자주 등장하지만 소설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일차원적 시간의 흐름에 크게 이탈하지 않는다. 소설의 분량은 반드시 무게와 넓이를 증명해내야 한다. 작품이 지닌 사유의 무게와 서사의 질량을 받쳐내지 못하는 분량은 독자를 힘들고 짜증나게 하기 때문이다. 앞부분은 흥미진진하지만 뒤로 갈수록 서사가 늘어지는 느낌이다. 특히 주인공 이나가 소설의 끝 무렵에 다다라서 갑자기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고 회복의 동기를 찾는 장면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작가가 긴 분량을 감당하지 못한 채 급하게 이야기를 마치며 독자에게 답을 요구하는 듯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작품 바깥의 얘기를 해보자. 최근 공지영 작가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녹록지 않은 것 같다. 대개 이념적으로 진보의 가치를 공유하는, 즉 같은 편이라 여겼던 사람들에 의한 비판인 듯싶다. 반면 보수적 스탠스에 있는 몇몇 지식인들은 공지영이 드디어 혼돈에서 벗어났다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이렇게 우스운 광경이 벌어진 데에는 공지영 자신의 책임이 크다. 나만의 개인적 신념인지는 모르겠으되, 나는 작가가 작품 바깥에서 본질과 무관한 언행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을 경계한다.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이 문학의 해석(수용)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소설가로서 공지영이 보여준 여러 발언과 행동, SNS상의 흔적 등은 낯뜨겁기 그지 없는 것들이었다. 작가로서의 정제와 절제가 아쉽다. 아끼기에 하는 말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작품 평과 함께 작가를 향한 애정이 뒤섞여 산만한 글이 되었다. 소설 『해리』는 문제작이다. 각 파편들은 실화를 기초로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실화라 단정할 수 없는 모호한 긴장감을 전제하고 있는 소설이다. 중요한 건 메시지다. 어둡고 무거운 소재를 고매하거나 심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차분하게 독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은 순전히 작가 공지영의 역량이다. 나 자신, 내 주위, 우리 주변에 구조적으로 악의 가능성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 것만으로도 소설 『해리』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 종교, 정치, 이념과 무관하게 누구나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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