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300km - 175일간 미국 PCT를 걷다
양희종 지음 / 푸른향기 / 2016년 4월
평점 :

마유는, 여행스런 여자였어. 류이치로가 불쑥 말했다. 그날 밤, 그가 먼저 마유 얘기를 꺼내기는 처음이었다. 여행스런 이라니 무슨 뜻이죠? 작가가 사용하는 특별한 형용사인가요?" 나는 웃었다. "제대로 설명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류이치로도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과도 동떨어져 있었고 매사에 꽤 냉정했지만, 예측 불가능한 좀 이상한 부분이 있었고 그게 순수했었다는 뜻이야. 그리고 그런 부분이 그녀의 매력이기도 했지....여행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니까....그렇다고 <인생은 여행>이니 여행의 동반자>라느니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같은 일행이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남녀의 구별도 일거리도 점차 없어지고, 피로한 탓인지 묘하게 기분만 고조되잖아?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헤어지기가 싫어서, 필요 이상 명랑해지기도 하고, 무슨 얘기를 해도 재미있고 우스워서, 이렇게 사는 인생이 어쩌면 진짜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즐거워지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들의 존재감이 사방에 잔상처럼 머물러 있어서, 이튿날 아침 혼자 잠에서 깨어나, 아니? 그 사람들은? 하고 멍해 있다가, 아침햇살 속에서 괜스레 서글퍼지곤 하잖아.
그러나 뭐 어른들이란, 그런 건 다 지나가고 말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치부하며 살아가지. 그런데 마유는 달랐어. 단 한 번이라도 그런 걸 느끼면, 책임지고 지속시키지 않으면 안 된 다고 믿는 어리숙함이 있었지. 게다가 이 세상 모든 호의 중 에서 그 느낌이야말로 사랑이라고 생각했었어. 내가 일정한 직장을 갖고 있지 않았고, 마유가 외계란 것에 대해 생 각하는 비중이 컸던 만큼, 그녀는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결혼을 하자느니 둘이서 뭔가 하고 싶다느 니, 하는 장래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녀에 겐 미래가 없었던 거야. 여행만 있었던 거지. 그래서 오히려 두려웠어.....나마저 왠지 그녀의 불로불사 같은 어떤 흐름에 휩쓸리고 말 것 같아서"
- <암리타>(민음사)의 '멜랑콜리아' 29~30쪽 상단 -
이 구절을 읽고 공감이 많이 갔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다음날 휑한 공간을 보면 슬쩍 울적해진다. 어딘가를 함께 여행하면서도 왠 지 이 여행이 영원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에 슬퍼지기도 하고, 여행 이 끝나고 난 뒤 바로 어제가 꿈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훗날 그날을 기억하며 추억에 빠지기도 하지만 다시 그날은 올 수 없단 걸 알기 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해보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속은 약하고 외로운 사람인 것 같다.
- <PCT 4,300km 175일간 미국 PCT를 걷다>(푸른향기) 185쪽 하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