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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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장호에서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그림자도 잃어 버렸다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날아오른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일곱 때의 독서
                                                    
나희덕

 
빛남의 무게만으로
 
하늘의 구멍을 막고 있던 별들, 그날밤
 
하늘의 누수는 시작되었다 하늘은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었던가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하늘은 울컥울컥 쏟아져서
 
우리의 잠자리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들었다

 
깊은 우물 속에서 전갈의 붉은 심장이
 
깜박깜박 울던 초여름밤 우리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바닷가 어느 집터에서, 지붕도 바닥도 없이
 
블록 장이 바람을 막아주던 차가운 모래
 
위에서 킬킬거리며, 담요를 밀고 당기며 잠이 들었다

 모래와 하늘, 그토록 확실한 바닥과 천장이
 우리의 잠을 에워싸다니, 나는 하늘이 달아날까봐
 몇 번이나 선잠이 깨어 그 거대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날밤 파도와 함께 밤하늘을
 다 읽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그 한 페이지를 어느 책갈피에 끼워넣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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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태도 소작쟁의
박순동 지음 / 이슈투데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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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휴가철이 되면 어디서 남다르게 보낼까들 생각한다. 자연휴양림, 국외여행, 남해여행, 동해의 썬크림, 바다낚시, 백두대간 등 가족과 함께, 현대인에게 ‘휴식’은 식품이다. 안전한 식품으로 모두가 건강했으면 한다. 이 글은 1969년 신동아에 <박동순>에 의해 발표되었다. 배경은 1920-1930년대 암태도에서 일어난 반봉건적 반일적 순수 민중운동이었던 암태도소작쟁의 실화를 소재로한 논픽션이다.

 1923년 신문도면에 <소작료조정쟁의사건>이 있었다. 주요인물으로 <서태석>은 작은 자작농이며 소작농이다. 3.1운동 가담으로 징역살이를 했으며 암태도소작쟁의를 일으킨다. <박복영>은 <서태석>과 함께 소작쟁이를 주도한 인물이다. <문재철>은 암태도 악덕 지주였으나 민족적 각성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대주고 육영사업을 한 인물이다. 1981년 작가 <송기숙>의 <암태도>에서 <면장출신 서태석과 암태 지주인 김재철의 한 판 승부>로까지 묘사한다.

 전남 무안군 암태도 소작인과 당시 3만석 지주 <문재철> 사이의 쟁의 사건으로 다른 어느 사건보도보다 지면이 많이 차지(1923년9월~1924년9월) 했으며 치열했다. 작은 섬 암태가 인근 도시에 가장 앞서, 그것도 홀로, 당시에 벼수확의 7할을 공납하던 소작료를 4할로 끌어내렸던 사건이다.

 <소작료조정약정서>내용은 1. 지주 문재철은 소작인회 간의 소작료는 4할로 약정하고, 지주는 소작인회에 금 2천원을 기부한다. 2. 대정 12년도(1923년) 미납소작료는 향후 3년간에 무이자로 분할 상환한다. 3. 구금중인 쌍방 인사에 대하여 9월 1일 공판정에서 쌍방이 고소를 취하한다. 4. 도괴된 비석은 소작인회의 부담으로 복구함. 서태석 3년 징역, 서창석, 박필선, 김연태, 손학진 각 1년 징역이 언도되고, 나머지는 보석으로 풀여난다. 다음 해 가을에 부근의 임자도, 도초도, 자은도, 매화도에서 일제히 소작쟁의 사건이 일어나서 경찰대와 소작인간에 치열한 충돌이 일어난다.

 <암태소작쟁의사건>이 종결된 후로 <박복영>은 1926년에 암태남녀학원 설립하여 현재 <암태중앙국민학교>의 전신을 이루었다. 같은 해에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다 1927년에 이웃 섬인 자은도 소작쟁의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사실이 탄로나 광주형무소에서 1년 징역을 치룬다. 그해 조직된 신간회에 관여하면서, 다시 솜장수로 가장하여 상해임시정부를 위한 정치자금을 조달한다. 지주 <문재철>도 독립자금을 <박복영>에게 건낸다. 서로 같은 길을 가게된다.

 이후 지주 <문재철>은 목포에 <문태고등학교>를 세웠고 <천후빈>도 목포에 <동광고등학교>를 세웠다. <서태석>은 2003년에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우선 <박순동>의 <암태도 소작쟁이> 논픽션에서는 소작료 7~8할을 4할로 낮추는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송기숙>의 소설(픽션) <암태도>에서는 8할에서 4할로 낮추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박순동> 논픽션에서는 <박복영>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송기숙> 소설에서는 <서태석>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차이가 있다.
 

 <박순동>은 소설가 <조정래>의 외삼촌이다. 이번 기회에 논픽션과 픽션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었다. 특히 같은 소재에 대한 논픽션의 사실적 표현과 픽션화된 표현에서 소설가의 단어는 버릴것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즉 소설적인 표현은 여러 사실을 압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라도지역에서 근대부터 발생한 하층민의 투쟁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갑오농민전쟁>, <암태도 소작쟁이>, <하의도 토지반환투쟁>, <광주민주화운동>이다. '08.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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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위한 추억
레네 아빌레스 파빌라 지음, 권미선 옮김 / 아침나라(둥지)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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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사랑과 질투, 추억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로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작가 <레네 아빌레스 파빌라>의 소설로 라틴 문학의 특유의 리얼리즘과 환타지로 직조된 매혹적인 소설이다. 소설은 <오뎃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엔리케>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오뎃트>는 영원히 젊음을 간직하고 싶어 항상 25세미만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만 생활하는 여왕같은 여성이었다.

 <엔리케>는 <오뎃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실바나>와 결혼을 하고, 셋의 관계는 너무나 끈끈하다. 하지만 <오뎃트>의 집에서 밤마다 파티를 벌였던 친구들은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주름살이 생기는 것처럼 서서히 타락해간다. <엔리케>는 <실바나>의 전 남편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상상으로 괴로워하며 불같은 질투로 아내인 <실바나>를 괴롭힌다.

 영원히 살것만 같았던 <오뎃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진 <엔리케>는 당시의 친구들을 하나하나 만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는 이혼한 <실바나>를 만나 <오뎃트>가 어떻게 죽게 되었지를 알게 된다. 소설은 현실과 상상의 공간을 넘나든다. 라틴문학 특유의 환상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멕시코 현실에 뿌리박은 사랑 이야기다.

  이 소설의 흐름은 개인의 <질투>로 인한 진실한 사랑을 놓처버린 회한을 담고 있지만 그 <질투>의 근저에는 멕시코의 역사적인 사회적인 현실이 깔여 있다. 이 소설의 작가는 곡선적 표현과 멕시코의 현실문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깊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아니면 예비 작가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08.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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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山이 낫다
남난희 지음 / 학고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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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곳에 가면 마음이 열린다>를 완독 후 진도 약산에 갔다. 이순신장군의 공적에 대해 들었다. 집으로 와 누구도 범접 못 할 빙벽의 <촐라체>을 만났다. 산사나이들이 빙벽에서 살아나 평심을 되찾을 즘에 <전국카톨릭공무원피정>에 참석했다. 참가자들의 얼굴은 단정하고 산뜻했지만 곧 지루했다. 미사중에도 분심이 생겼다. 분심속에 사람이 있었다.

  승용차 엔진오일을 교환했다. 손을 씻고 누웠을 때 <낮은 산이 낫다>(책)가 눈에 들어 왔다. <촐라체> 다음으로 읽기에 좋았다. 교통사고로 강남 도곡동 화상전문병원에 입원한 친구에게 병문안 가는중에 버스안에서 읽었다. 산밖에서 안정을 찾았던 저자에게 집 지리산 화개골은 베이스캠프다. 집은 목적이 아니다.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 다시 떠나는 곳이다. 집은 목적이 아니다. 공지영의 <즐거운 우리집> 270~271쪽, <공지영>은 가족구성원간의 얘기지만, <남난희>의 가족은 자연과 소통하며 사는 얘기로 시골생활과 같다.

  <촐라체>는 빙벽에 엎드려 극적인 생환으로 새롭게 태어나지만 (책)은 낮아서 높아지는 삶, 가진 것 없어도 풍요로워지는 삶에 글이다. 또한 독보적인 산악인이었던 중년여성이 자연친화적인 삶의 텃밭에서 일군 산밖의 얘기다. 저자는 자연과 이웃, 아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살가운 일상의 모습을 통해, 더 가지려는 욕망 때문에 놓처버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몸을 낮추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관한 소박한 글의 행간에서 맑은 울림을 듣게 된다.

   나에게 저자의 글은 지루하지 않고 물 흐르는 듯했다. 소박한 자연에 대한 진솔한 표현들 때문이지 않나싶었. 자신의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일상에 대한 자랑보다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삶의 소박함과 고난들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강인함이 뚜렷했지만 삶의 고난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끊임없이 낮추며 살아가는 저자의 생활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촐라체>는 빙산속에 갈등하며 극적인 산사람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책)은 산을 친구처럼 바라보며 살아가는 여성산악인의 이야기다. 산성과 알카리성, 육식과 채식, 조깅과 산책 등과 대비된다.

   저자는 30대 중반에 산을 버린다. 더 높은 산을 오르겠다는 열망, 더 높은 산을 정복하겠다는 허허로운 욕망을 버린다. 저산을 오르는 대신 산밖에서 산을 사랑한다. (책)의 줄거리는 <입산> (산) 5쪽에서 13쪽.에 함축되어 있다. 내용은 4부로 되어 있으며, <하산> (산) 245쪽에서 256쪽.으로 맺고 있다. <조화로운 삶> 헬린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가 뉴잉글랜드 지방의 버몬드 산골짝에 살면서 스무 해 동안 경험한 일들을 잔잔한 어조로 풀어쓴  책. 그들이 자연 속에서 서로 돕고 기대며, 자유로운 시간을 향유하며 창조한 이야기들을 통해 조화로운 삶의 길로 안내는 부부와 함께 일군 자연에서의 삶이지만 (책)은 저자와 아들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산악인으로서“언젠가는 백두대간의 북녘을 완주해야 한다”는 숙제를 잊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지금 집 지리산 화개골은 베이스캠프다. 여성 산악인끼리 에베레스트 등반 계획 좌절, 잠적, 결혼, 출산, 지리산으로, 이혼, 강원 정선자연학교 교장, 태풍 루사로 인한 좌절, 지리산 화개골에 정착은 커리우먼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저자의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에서 새로운 나를 꿈꾼다.

 언제 부터인가 나의 삶은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또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다.

 물기가 다 빠진 풀처럼 가벼운 마음이다.
 참 좋다.
 

  -‘입산 고백에서 -  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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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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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촐라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서 17㎞, 남체바자르 북동북 14㎞ 지점에 위치한 6440미터 봉우리(책)는 <호수에 비친 검은 산>이다. 전 세계 젋은 클라이머들이 오르기를 열망하는 꿈의 빙벽이다. (책)의 끝에 <등반 용어> (책) 356363쪽 가 잘 정리되어 있다. 1995년 여름, 나는 한 드라마의 OST(Original Sound Track)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차에서도 내내 들었다.


   <저 산넘어>외 19곡이 수록된 CD앨범은 드라마 <산> 1995년도 MBC 특별기획드라마의 OST였다. 이 곡들은 작곡가 여영훈 1960년생, ’87년 골든 디스크 작곡가상, 이문세 앨범 3·4·5·6·7·9·12·13집 프로듀서 및 작곡가, ’08년2월 대장암으로 사망의 작품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Rock Ballad 스타일 음악이었다.


  이<드라마> 역시 산사나이들의 이야기였다. (책)의 첫판 1쇄가 올 3월에 이여 현재 6쇄를 넘고 있다. 60대의 유명작가가 산악소설을 표방 (책) 10쪽 두 번째 여섯번째줄하고 쓴 한국 최초의 작품이자 인터넷 연재소설로 2008년도 동인문학상 최종후보에도 올랐었다.


  저자는 “사람이 곧 촐라체가 아닌가 (책) 330쪽 마지막단락 아래서 두번째줄” 라고 되묻는다. “그것은 벽이었다. 차갑고 황홀한.” (책) 17쪽 첫줄, 순탄하게 앞으로 가야 할 길에 차갑고 높은 벽이 가로 막고 있다. “그것은, 촐라체 북벽이었다.” (책) 17쪽 맨끝줄, 명박산성은 인위적인 장벽이지만, 빙벽은 아니다. 


  그는 이마를 짚으면서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 번도 이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검은 전사의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 (책) 18쪽 마지막 단락 첫줄 (책)의 서사 구조는 간명하다.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전인미답이자 ‘죽음의 지대’인 촐라체 북벽에서 6박 7일 동안 겪는 지옥 같은 조난과 놀라운 생환 과정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 서사의 기본 얼개다. 


 동생 <하영교>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찾아오지 않은 형에 대한 원망이 항상 그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등반 내내 형에게 날선 말과 행동을 한다. 아버지와 어린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어머니에 대한 원심과 자신을 살리기 위해 로프를 끊고 죽어간 선배에 대한 마음 빚으로 늘 괴로운 형 <박상민>, “그리워서요” (책) 22쪽 세 번째 단락 첫줄라면서 어린 나이의 아들이 출가해버린 뒤 휑한 가슴을 안고 사는 캠프지기 <정 선생>, 이 세사람이 이야기를 엮어간다. 나는 (책)을 잡고 있을 때마다 <산>의 OST를 들었다. 나도 <상민>과 <영교>의 뒤를 따라 빙벽을 오르고 있었다. 이야기는 산악소설 이전에 존재론적 얘기였다. 형제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는 지루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든, 우주공간에서 든 모든 것은 자신의 문제였다. 이복 형제 사이의 서먹함속에서 나는 세 편의 영화를 생각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이념을 너머 동생 진석(원빈)을 지키려는 형 진태(장동건)와 <가을의 전설>에서 막내 동생 새뮤얼(헤리토마스)을 전장에서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가진 둘째 트리스탄(브래드핏) 그리고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최고의 플라잉 낚시꾼이 되었던 동생 풀(브래드핏)과 교수가 된 형 노먼(크레이크세퍼)의 형제애와는 달랐다. (책)에서 동생<하영교>과 형<박상민>의 형제애는 저자 자신의 양면을 얘기하려는 소설적 장치였다. 더 나가 캠프지기 <정 선생>이 저자 자신이며, 두 형제는 저자의 정신만을 추려 빙벽을 오르게 하였다. (책)에서 형제는 저자의 내·외적인 정신적 분신들이었다.


 극한의 탈출과정을 통해 이윽고 두 형제의 가슴은 정화된다. 이 소설의 특징중에 하나는 같은 공간과 시간에 작중 인물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상황을 사람별로 분리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다. 한 곡의 OST를 음색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반복해 듣는 것과 같았다. 어둠이 깊어지면 불빛과 불빛이 서로 이어지듯이, 정적이 깊으면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서로 통하게 되고 (책) 26쪽 세번째 단락 첫줄, 길은 끊임없이 다른 길로 이어진다. 빙벽의 연속이다. 불빛과 불빛 사이에 아무런 절망적인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 따뜻한 착각 (책) 51쪽 두번째 단락 셋째줄속에서 빠지려면 서로를 일으켜 세운다. 사지에서 그들은 사회적 관계보다는 서로를 살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관한다.


 형제는 진퇴양난의 얼름길위에서 함께 있을 뿐 아니라 서로 깊이 ‘통하여’ 말이 필요없는 상태가 된다. <장 선생>은 베이스캠프에 머물며 상황을 주도한다. 동생 <하영교>는 크레바스 속으로 더 들어간다. 그는 절대고독과 죽음의 공포속에서 다른 주검을 만나게 되는데, 놀랍게도 죽은자는 한국사람 이었다. 죽은자가 죽어가면서 피켈에 새겼을 글씨에서 <영교>는 그 사실을 확인한다. 거기엔 ‘H.J. 1996.11.5 SEOUL KOREA, 사랑해 영우, 선우, 마야, 정순희’, 그리고 채 끝맺지 못한 말 ‘미안ㅎ'도····, 죽은이의 배낭에서 외려 식량과 버너와 코펠을 얻어 <상민>과 <영교>는 기사회생 할 원기를 되찾는다.


 H.J<유한진>은 IMF로 등산용품 제작회사를 운영하다가 부도난 후, 홀로 “촐라체”를 등반하다가 죽은 산악인이다. 영우, 선우, 마야, 정순희는 그의 가족이다. <유한진>의 죽음이 무관한 <상민>과 <영교>을 살여내는 지렛대가 되었고, <장 선생>에 의해 구조되었다. 저자는 촐라체에 받치는 마음의 한 편의 시를 노래한다. (책) 309쪽 


우물 밑에 그가 있다 천 년을 산.

검은 망토를 뚤러쓰고

오늘도 물레를 돌린다 향기로운 침묵속에서

앞으로 돌리면 어둠이 나오고 뒤로 돌리면 빛이 나온다.

서로 살 섞어 때로는 밝은 어둠 때로는 어두운 광채

그는 웅크리고 행복하게 일하지만

키는 하늘에 닿고 어깨 넓이는 지평선보다 넓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할아버지.

 -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박범신 -


(책)의 <에필로그>에서 나는 평상심을 되찾았다. 지루한 일상을 다시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산을 오르려 하는가, 나는 왜 산에 가려하는가, 사람이 살지 않는 그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다시 채우고 돌아오는가 ! <상민>과 <영교>를 무사히 서울로 돌여 보낸 <장 선생>은 육로를 타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카트만두에서 티베트와의 국경 마을까지 여행한다. (책) 316쪽 두번째 단락 첫줄 그리고 몇 달 동안 여행은 계속된다. 서울로 돌아온 <장 선생>은 동상으로 발가락과 손가락이 잘린 <상민>을 만나게 된다. ‘촐라체’로 등반전에 자신의 아버지를 괴롭혔던 <나팔귀>를 찌른 범죄 때문에 <영교>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팔귀>의 탄원으로 곧 풀여날 예정이었다. <상민>의 이혼녀 <신혜>는 분당에서 음악학원을 냈고, <상민>은 산악연맹 주선으로 아웃도어 회사에 근무하게 된다.


 <장 선생>은 아들 <현우>를 만나러 출가한 절을 찾아 갔지만 스님이 된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다. 요사체 어느 어둑신한 방에서 문틈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아버지 <장 선생>를 보고 있을 아들 <현우>를 생각하면 (책) 330쪽 세번째 단락 세번째줄 마음이 아팠다. <현우>의 어머니와 <박상민>과 <하영교>의 어머니는 이 소설의 근저에 놓인 아픔이었다. 사랑하는 영우, 선우, 마야, 정순희 (책) 192쪽 두번째 단락 를 두고 떠나와 “촐라체”의 빙벽에 절대고독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H.J<유한진>를 나 자신으로 상상했을 때, 마음이 저렸다. “그럴 수 있었을까!” 싶었다. 부산 지역 후배 산악인들이 냉동시신이 된 H.J<유한진>를 거두려 했지만 유족들이 말였다. 평생 ‘꿈’으로 품고 살던 설산에서 영원히 ‘더 이상 늙지 않는’ 모습으로 남기를 바랬다. <상민>이 가져온 H.J<유한진>의 머리칼을 묻어 묘지를 조성했다. (책) 321쪽 두번째 단락 일골째줄  <영우>와 <선우>는 그의 아버지의 사랑과 고독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눈물짓는 슬픔에 찬 세상을 떠나서

고독한 동굴을 네 아버지로 삼고

정적을 네 낙원으로 만들라

사고를 다스리는 사고가 기운찬 말이고

네 몸이 신들로 가득 찬 너의 사원이니

끊임없는 헌신이 너의 최선의 약이 되게 하라


 - 밀라레파 티벳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자로 알려진 밀라레파. 

현재까지 티벳 최고의 시인이자 성자. -


사람이 촐라체 아닌가. 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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