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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태도 소작쟁의
박순동 지음 / 이슈투데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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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되면 어디서 남다르게 보낼까들 생각한다. 자연휴양림, 국외여행, 남해여행, 동해의 썬크림, 바다낚시, 백두대간 등 가족과 함께, 현대인에게 ‘휴식’은 식품이다. 안전한 식품으로 모두가 건강했으면 한다. 이 글은 1969년 신동아에 <박동순>에 의해 발표되었다. 배경은 1920-1930년대 암태도에서 일어난 반봉건적 반일적 순수 민중운동이었던 암태도소작쟁의 실화를 소재로한 논픽션이다.
1923년 신문도면에 <소작료조정쟁의사건>이 있었다. 주요인물으로 <서태석>은 작은 자작농이며 소작농이다. 3.1운동 가담으로 징역살이를 했으며 암태도소작쟁의를 일으킨다. <박복영>은 <서태석>과 함께 소작쟁이를 주도한 인물이다. <문재철>은 암태도 악덕 지주였으나 민족적 각성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대주고 육영사업을 한 인물이다. 1981년 작가 <송기숙>의 <암태도>에서 <면장출신 서태석과 암태 지주인 김재철의 한 판 승부>로까지 묘사한다.
전남 무안군 암태도 소작인과 당시 3만석 지주 <문재철> 사이의 쟁의 사건으로 다른 어느 사건보도보다 지면이 많이 차지(1923년9월~1924년9월) 했으며 치열했다. 작은 섬 암태가 인근 도시에 가장 앞서, 그것도 홀로, 당시에 벼수확의 7할을 공납하던 소작료를 4할로 끌어내렸던 사건이다.
<소작료조정약정서>내용은 1. 지주 문재철은 소작인회 간의 소작료는 4할로 약정하고, 지주는 소작인회에 금 2천원을 기부한다. 2. 대정 12년도(1923년) 미납소작료는 향후 3년간에 무이자로 분할 상환한다. 3. 구금중인 쌍방 인사에 대하여 9월 1일 공판정에서 쌍방이 고소를 취하한다. 4. 도괴된 비석은 소작인회의 부담으로 복구함. 서태석 3년 징역, 서창석, 박필선, 김연태, 손학진 각 1년 징역이 언도되고, 나머지는 보석으로 풀여난다. 다음 해 가을에 부근의 임자도, 도초도, 자은도, 매화도에서 일제히 소작쟁의 사건이 일어나서 경찰대와 소작인간에 치열한 충돌이 일어난다.
<암태소작쟁의사건>이 종결된 후로 <박복영>은 1926년에 암태남녀학원 설립하여 현재 <암태중앙국민학교>의 전신을 이루었다. 같은 해에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다 1927년에 이웃 섬인 자은도 소작쟁의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사실이 탄로나 광주형무소에서 1년 징역을 치룬다. 그해 조직된 신간회에 관여하면서, 다시 솜장수로 가장하여 상해임시정부를 위한 정치자금을 조달한다. 지주 <문재철>도 독립자금을 <박복영>에게 건낸다. 서로 같은 길을 가게된다.
이후 지주 <문재철>은 목포에 <문태고등학교>를 세웠고 <천후빈>도 목포에 <동광고등학교>를 세웠다. <서태석>은 2003년에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우선 <박순동>의 <암태도 소작쟁이> 논픽션에서는 소작료 7~8할을 4할로 낮추는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송기숙>의 소설(픽션) <암태도>에서는 8할에서 4할로 낮추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박순동> 논픽션에서는 <박복영>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송기숙> 소설에서는 <서태석>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차이가 있다.
<박순동>은 소설가 <조정래>의 외삼촌이다. 이번 기회에 논픽션과 픽션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었다. 특히 같은 소재에 대한 논픽션의 사실적 표현과 픽션화된 표현에서 소설가의 단어는 버릴것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즉 소설적인 표현은 여러 사실을 압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전라도지역에서 근대부터 발생한 하층민의 투쟁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갑오농민전쟁>, <암태도 소작쟁이>, <하의도 토지반환투쟁>, <광주민주화운동>이다. '08.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