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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촐라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서남서 17㎞, 남체바자르 북동북 14㎞ 지점에 위치한 6440미터 봉우리(책)는 <호수에 비친 검은 산>이다. 전 세계 젋은 클라이머들이 오르기를 열망하는 꿈의 빙벽이다. (책)의 끝에 <등반 용어> (책) 356∽363쪽 가 잘 정리되어 있다. 1995년 여름, 나는 한 드라마의 OST(Original Sound Track)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차에서도 내내 들었다.
<저 산넘어>외 19곡이 수록된 CD앨범은 드라마 <산> 1995년도 MBC 특별기획드라마의 OST였다. 이 곡들은 작곡가 여영훈 1960년생, ’87년 골든 디스크 작곡가상, 이문세 앨범 3·4·5·6·7·9·12·13집 프로듀서 및 작곡가, ’08년2월 대장암으로 사망의 작품으로 슬프고도 아름다운 Rock Ballad 스타일 음악이었다.
이<드라마> 역시 산사나이들의 이야기였다. (책)의 첫판 1쇄가 올 3월에 이여 현재 6쇄를 넘고 있다. 60대의 유명작가가 산악소설을 표방 (책) 10쪽 두 번째 여섯번째줄하고 쓴 한국 최초의 작품이자 인터넷 연재소설로 2008년도 동인문학상 최종후보에도 올랐었다.
저자는 “사람이 곧 촐라체가 아닌가 (책) 330쪽 마지막단락 아래서 두번째줄” 라고 되묻는다. “그것은 벽이었다. 차갑고 황홀한.” (책) 17쪽 첫줄, 순탄하게 앞으로 가야 할 길에 차갑고 높은 벽이 가로 막고 있다. “그것은, 촐라체 북벽이었다.” (책) 17쪽 맨끝줄, 명박산성은 인위적인 장벽이지만, 빙벽은 아니다.
그는 이마를 짚으면서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 번도 이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검은 전사의 눈빛을 본 적이 없었다. (책) 18쪽 마지막 단락 첫줄 (책)의 서사 구조는 간명하다.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전인미답이자 ‘죽음의 지대’인 촐라체 북벽에서 6박 7일 동안 겪는 지옥 같은 조난과 놀라운 생환 과정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 서사의 기본 얼개다.
동생 <하영교>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찾아오지 않은 형에 대한 원망이 항상 그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등반 내내 형에게 날선 말과 행동을 한다. 아버지와 어린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어머니에 대한 원심과 자신을 살리기 위해 로프를 끊고 죽어간 선배에 대한 마음 빚으로 늘 괴로운 형 <박상민>, “그리워서요” (책) 22쪽 세 번째 단락 첫줄라면서 어린 나이의 아들이 출가해버린 뒤 휑한 가슴을 안고 사는 캠프지기 <정 선생>, 이 세사람이 이야기를 엮어간다. 나는 (책)을 잡고 있을 때마다 <산>의 OST를 들었다. 나도 <상민>과 <영교>의 뒤를 따라 빙벽을 오르고 있었다. 이야기는 산악소설 이전에 존재론적 얘기였다. 형제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는 지루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든, 우주공간에서 든 모든 것은 자신의 문제였다. 이복 형제 사이의 서먹함속에서 나는 세 편의 영화를 생각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이념을 너머 동생 진석(원빈)을 지키려는 형 진태(장동건)와 <가을의 전설>에서 막내 동생 새뮤얼(헤리토마스)을 전장에서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가진 둘째 트리스탄(브래드핏) 그리고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최고의 플라잉 낚시꾼이 되었던 동생 풀(브래드핏)과 교수가 된 형 노먼(크레이크세퍼)의 형제애와는 달랐다. (책)에서 동생<하영교>과 형<박상민>의 형제애는 저자 자신의 양면을 얘기하려는 소설적 장치였다. 더 나가 캠프지기 <정 선생>이 저자 자신이며, 두 형제는 저자의 정신만을 추려 빙벽을 오르게 하였다. (책)에서 형제는 저자의 내·외적인 정신적 분신들이었다.
극한의 탈출과정을 통해 이윽고 두 형제의 가슴은 정화된다. 이 소설의 특징중에 하나는 같은 공간과 시간에 작중 인물들이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상황을 사람별로 분리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다. 한 곡의 OST를 음색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반복해 듣는 것과 같았다. 어둠이 깊어지면 불빛과 불빛이 서로 이어지듯이, 정적이 깊으면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서로 통하게 되고 (책) 26쪽 세번째 단락 첫줄, 길은 끊임없이 다른 길로 이어진다. 빙벽의 연속이다. 불빛과 불빛 사이에 아무런 절망적인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 따뜻한 착각 (책) 51쪽 두번째 단락 셋째줄속에서 빠지려면 서로를 일으켜 세운다. 사지에서 그들은 사회적 관계보다는 서로를 살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관한다.
형제는 진퇴양난의 얼름길위에서 함께 있을 뿐 아니라 서로 깊이 ‘통하여’ 말이 필요없는 상태가 된다. <장 선생>은 베이스캠프에 머물며 상황을 주도한다. 동생 <하영교>는 크레바스 속으로 더 들어간다. 그는 절대고독과 죽음의 공포속에서 다른 주검을 만나게 되는데, 놀랍게도 죽은자는 한국사람 이었다. 죽은자가 죽어가면서 피켈에 새겼을 글씨에서 <영교>는 그 사실을 확인한다. 거기엔 ‘H.J. 1996.11.5 SEOUL KOREA, 사랑해 영우, 선우, 마야, 정순희’, 그리고 채 끝맺지 못한 말 ‘미안ㅎ'도····, 죽은이의 배낭에서 외려 식량과 버너와 코펠을 얻어 <상민>과 <영교>는 기사회생 할 원기를 되찾는다.
H.J<유한진>은 IMF로 등산용품 제작회사를 운영하다가 부도난 후, 홀로 “촐라체”를 등반하다가 죽은 산악인이다. 영우, 선우, 마야, 정순희는 그의 가족이다. <유한진>의 죽음이 무관한 <상민>과 <영교>을 살여내는 지렛대가 되었고, <장 선생>에 의해 구조되었다. 저자는 촐라체에 받치는 마음의 한 편의 시를 노래한다. (책) 309쪽
우물 밑에 그가 있다 천 년을 산.
검은 망토를 뚤러쓰고
오늘도 물레를 돌린다 향기로운 침묵속에서
앞으로 돌리면 어둠이 나오고 뒤로 돌리면 빛이 나온다.
서로 살 섞어 때로는 밝은 어둠 때로는 어두운 광채
그는 웅크리고 행복하게 일하지만
키는 하늘에 닿고 어깨 넓이는 지평선보다 넓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할아버지.
- ‘산이 움직이고 물은 머문다’, 박범신 -
(책)의 <에필로그>에서 나는 평상심을 되찾았다. 지루한 일상을 다시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산을 오르려 하는가, 나는 왜 산에 가려하는가, 사람이 살지 않는 그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다시 채우고 돌아오는가 ! <상민>과 <영교>를 무사히 서울로 돌여 보낸 <장 선생>은 육로를 타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카트만두에서 티베트와의 국경 마을까지 여행한다. (책) 316쪽 두번째 단락 첫줄 그리고 몇 달 동안 여행은 계속된다. 서울로 돌아온 <장 선생>은 동상으로 발가락과 손가락이 잘린 <상민>을 만나게 된다. ‘촐라체’로 등반전에 자신의 아버지를 괴롭혔던 <나팔귀>를 찌른 범죄 때문에 <영교>는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팔귀>의 탄원으로 곧 풀여날 예정이었다. <상민>의 이혼녀 <신혜>는 분당에서 음악학원을 냈고, <상민>은 산악연맹 주선으로 아웃도어 회사에 근무하게 된다.
<장 선생>은 아들 <현우>를 만나러 출가한 절을 찾아 갔지만 스님이 된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다. 요사체 어느 어둑신한 방에서 문틈으로 멀어져가고 있는 아버지 <장 선생>를 보고 있을 아들 <현우>를 생각하면 (책) 330쪽 세번째 단락 세번째줄 마음이 아팠다. <현우>의 어머니와 <박상민>과 <하영교>의 어머니는 이 소설의 근저에 놓인 아픔이었다. 사랑하는 영우, 선우, 마야, 정순희 (책) 192쪽 두번째 단락 를 두고 떠나와 “촐라체”의 빙벽에 절대고독속에서 죽어가야만 했던 H.J<유한진>를 나 자신으로 상상했을 때, 마음이 저렸다. “그럴 수 있었을까!” 싶었다. 부산 지역 후배 산악인들이 냉동시신이 된 H.J<유한진>를 거두려 했지만 유족들이 말였다. 평생 ‘꿈’으로 품고 살던 설산에서 영원히 ‘더 이상 늙지 않는’ 모습으로 남기를 바랬다. <상민>이 가져온 H.J<유한진>의 머리칼을 묻어 묘지를 조성했다. (책) 321쪽 두번째 단락 일골째줄 <영우>와 <선우>는 그의 아버지의 사랑과 고독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눈물짓는 슬픔에 찬 세상을 떠나서
고독한 동굴을 네 아버지로 삼고
정적을 네 낙원으로 만들라
사고를 다스리는 사고가 기운찬 말이고
네 몸이 신들로 가득 찬 너의 사원이니
끊임없는 헌신이 너의 최선의 약이 되게 하라
- 밀라레파 티벳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자로 알려진 밀라레파.
현재까지 티벳 최고의 시인이자 성자. -
사람이 곧 ‘촐라체’가 아닌가. 08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