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등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가슴속을 누가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다.
창문 밖 거리엔 산성의 비가 내리고
비에 젖은 바람이 어디론가 불어가고 있다.
형광등 불빛은 하얗게
하얗게 너무 창백하게 저 혼자 빛나고
오늘도 우리는 오늘만큼 낡아버렸구나.


가슴속을 누가 자꾸 걸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을 듯 보이지 않을 듯 보이며 소리없이.
가슴속 벌판을 또는
멀리 뻗은 길을
쓸쓸하게
하염없이
걸어가는
너 누구니?
너 누구니?
누구니, 너?
우리 뭐니?
뭐니, 우리?
도대체.  

 -'너 누구니', 홍영철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 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황홀한 고백', 이해인 님의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영우'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영우'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두 작품이 삼각관계다. 남자 둘에 여자 한 사람으로 전통적인 구성이다. 소설은 TV문학관에서 방영된 뒤로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다.   

  소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현대사를 살아온 인물들의 30년에 걸친 사랑, 죽음에 이르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 사랑의 원형을 찾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절절하다.  

  실존적 외로움은 애인이 있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소설은 나에게 사랑이자, 촐라체 북벽이자, 밥벌이이기도 하다", 다음 세상에서 소설을 쓰지 않겠다.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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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풍수와 함께 하는 잡동사니 청소
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옮김 / 도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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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엇이든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나가는 것이 있다. 입출이 원활치 못하면 막히고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고 말아 문제가 생긴다. 걱정이 많은 것은 지난 시간과 다가 올 시간에 대한 불필요한 우려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사는 곳은 공간에서 비롯된다. 그 공간은 무엇으로 채춰지며 쌓이게 된다. 불필요한 것들을 가두고 정체시키면 진정으로 해야할 기능이 상실된다. 몸과 마음을 비우는 생활 습관을 갖게 됨으로서 새로움이 샘물처럼 솟아 더 살맛나게 된다. 

책은 어떻게 버리면서 새로워지기를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예들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버려라, 그리고 신에게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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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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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가의 각오'의 '겐지'는 일본 현대문학의 '작가정신'이다. 그는 문단과 언론과의 관계를 끊고 오직 원고료 수입으로만 생활하면서 수도승처럼 금욕주의를 육화시켰다.


  제목부터가 다르다. '각오'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마음자세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가로서 자세다. '초심'이라는 말과 '처음처럼'이라는 말도 있다. '초심'이나 '처음으로'라는 말 전에 '각오'가 있다. 


  세상에는 많은 직업과 꿈이 있다. 그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가수칙이나 다짐이 있어 스스로를 점검하고 다독이며 실천하지 않으면 꿈은 사라진다. 


  일본의 한 소설가의 각오를 읽을 수 있다. 그 각오를 어떻게 실천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책이 있다김대중 대통령는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있다. 나에게는 '소설가의 각오' 있다


  작가 본연의 일은 쓰는 것으로 거치레를 탈피해야 한다는 준엄한 일침을 실천하고 있는 일본 최고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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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독의 숙련공
    from 고립된 낙원 2019-05-11 12:09 
들불
유현종 지음 / 행림출판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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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들불"은 '잿속에 남아 꺼지지 않는 부리를 찾아 불을 일궈 보려는' 작가의 야심작이다. 한편의 소설이 주는 메세지는 역사적인 입체감을 더해준다. 우리의 역사에서 동학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농민운동이었다.

 

  인내천를 믿고 반란을  주도한 아버지 때문에 노예로 팔여간 주인공 '여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들불'은 나에게 묘한 울분을 갖게 했다. 핏박 받은 서러운 민중은 언제나 나의 가슴속에 살아 있음을 확인시켜준 역사소설이었다.  

 

  기독교를 앞세운 서양세력과 청.일의 이권다툼, 충청도와 전라도 빈농들의 동학합류, 한때 '여삼'을 계몽시키려던 친구 '곽무출'의 변절 그리고 친일행각, 지식양반층의 각성과 한계 등 동도장군 전봉준과 김계남, 손화중과 같은 민중의 영웅들의 기개와 지혜들을 느낄 수 있다. 

 

  대원군의 유배와 재집권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흐름을 생생하게 전개한 작품이다. 역사 속의 한 영웅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며 승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민중이 봉기하여 외세와 내부의 지식계층에 대한 불합리함을 일깨우며 자존을 지키려는 했던 선조들의 깨인 정신을 느낀다. 자신이 말을 타고 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외의 적들을 물리치는 긴박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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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家 일흔일곱의 풍경
한영희 지음 / 열화당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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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형 인물들이 한 곳에 모아 둔 사진책이다. 잘 먹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서도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어디를 향해 가고있나 자문하고 싶을 때 이 사진집을 본다. 작가들은 나의 정신을 맑게 깨여주는 인물들이다. 


  작가의 얼굴은 시적 이콘이다. 뭘랄까, 영원성을 노려보는 것 같은 그들의 형형한 눈빛이 한순간에 잘 정지되어 있다. 작가들의 옷차림에서도 나는 묘한 명료함을 느낀다. 싱크대앞에 서 있는 공지영님의 모습이 가끔 생각난다. 그 사진을 보고서부터 나는 싱크대앞에서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식탁에 앉지 않고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라고 보다는 어떤 것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현실감을 갖게 한다. 어떤 사진은 글덤미에 덮쳐저 헤어나지 못한 남자의 모습을 말해주는 듯하다.


  작가의 얼굴들은 그들의 내면을 반사하고 있음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작가 자신의 안에 무엇인가와 혈투를 치르고 있는 표정들이다. 쓰지 않고서는 죽을 것같은 문학의 천형을 받은 모습. 작가의 얼굴은 치열함과 고고함뿐만 아니라 위선과 가치 속기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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