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다이라 아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나를 사로잡는 순간에 기억, 잊히지지 않는 이미지 등 어떤 물건이나 풍경 그리고 사람을 보면 생각나게 하는 무엇,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 무엇을 이끌어내는 말이나 소리 그리고 냄새 등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내 마음속에 떠나지 않는 이미지는 “커피를 타 주던 남자 점원(직원)”에 대한 생각이다. 그들은 손님(동료)인 나에게 커피를 내 놓고 자신의 일에 열중한다. 사장(상사)과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눈다. 먼저 영화를 보고서 원작 소설을 읽게 되었다. 원작을 읽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유키”(주인공)와 “도모로”(유키의 옛 애인)가 헤어지던 서로의 뒷모습, “도모로”가 “유키”에게 꾼 돈을 갑기 위해 그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던 모습에서 “도모르”의 인간관계 때문이었다.


  커피를 내 놓던 남자 점원(동료), 작품 속에서 쓸쓸한 이별, “도모로”와 지인들과 우정은 나의 연민을 자극했다. 내 연민에는 그들(점원,동료)이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램이 들어있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남게 된 두 사람(유키,도모르)의 하루는 책 제목처럼 멋지다고 하기에 무리다. 서로가 소유가 아닌 열정이 아닌 옛 사랑인 “도모로”와 하루 동안의 재회를 보여 주고 있다.


  “안네의 일기”가 전쟁 통에 10대 소녀의 “은신처” 생활 이야기였다면, “멋진 하루”는 사십 이 삼년이 지나 살아가는 현대 젊은이의 도시적인 행태를 보여 준 소설이다. 이 책에 작가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첫 애인에게 차이고, 회사에선 잘리고, 그래도 마냥 씩씩한, 귀여운 사람들! 여기저기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싱글벙글하는 한심한 남자, 그에게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그와 함께 돈을 빌리러 다니는 여자 (멋진하루).


  고등학교 때의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고 계속 그 주변을 맴도는 여자(애드리브 나이트), 헤어진 부인이 운영하는 술집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 가게에 들락거리는 남자(온리 유). 임신 때문에 헤어진 불륜의 상대가 실은 양다리였음을 알고 분개하는 중년의 남자(맛있는 물이 숨겨진 곳), 불쌍한 처지의 여자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바람피는남자(해바라기마트의 가구야 공주).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남자들)은 어딘가 어긋나 있는 듯 한심하기 짝이 없고, 그들과 얽혀 갖은 고생을 겪어야 하는 주인공들(여자들)이 처한 암담한 상황은 기가 찰 정도다. 하지만 불쌍하지도 밉살스럽지도 않다. 그들이 벌이는 한바탕 희극을 보고 있으면, 귀엽고 씩씩한 모습에 자꾸만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리고 어느덧, 편안한 행복감을 느낀다. 가까운 미술관에서 느끼는 충만감과 같다.


  “멋진하루”에서 주인공(유키,채권자)은 고백한다. “나는 실컷 웃었다. 돈을 빌리러 다니면서도 느낀 피로도, 도모로(채무자)와 헤어진 쓸쓸함도, 무너진 결혼의 꿈도, 기댈 곳 없는 서른의 불안도 그 웃음으로 모조리 날아가 버리는 듯했다.”


  유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평범한 지루함을 기쁘게 이끄는도모로 있다. 도모로 열린 소통의식은 지인들에게도 통한다. 지인들 역시도모로 집착하지 않고 바람처럼 물처럼 흐르는 삶의 방식을 좋아한다. 0905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네의 일기 (보급판 문고본) -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교육지원회 선정 아침독서 10분 운동 필독서
안네 프랑크 지음, 최미영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훈훈한 3월에 나는 큰 건물들이 즐비한 사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유명한 빵집 안을 우둑허니 들여다 보거나 행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봤다. 그렇게 “안네의 일기”를 만났다. 서점에서 간단히 요약된 “권투입문서”를 찾았지만 마음에 든 책을 찾지 못했다. 40분 이상을 그렇게 뒤지다가 서점 주인에게 미안하여 싸고 작은 책을 손에 넣었다.


  “안네”는 우리네 중학생이다. 나는 중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하다. 보조가방을 흔들고 땅바닥을 보거나 우유를 마시며 걷는 그 모습은 순수해 보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안네”는 독일에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자 유재인 탄압을 피해 가족을 따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옮긴다. 1941년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자 1942년 “은신처”로 피신한다.


  1944년 8월 게슈타포에 의해 은신처가 발각되어 유대인 수용소에서 1945년 3월초 16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1947년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안네의 일기를 “어린 소녀의 일기”로 출판한다. 이 책은 청소년을 둔 부모들이 읽어 볼만하다. 물론 우리의 자녀들이 읽고서 자신의 감정과 특수 상황을 극복해가는 유대인 소녀의 의식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전쟁 중에 10대 소녀에게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싹튼 가를 보여주는 대목은 나의 중학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인간의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피여 난다. 둘째 딸인 “안네”가 처음 일기 날짜는 1942년 6월 14일 생일 때부터였다. 선물로 책을 많이 받았다고 씌워져 있었다. 우리네 아이들은 생일 때 얼마나 책을 선물로 받는지 생각했다. 힐데브란트의 <요지경>, 요제프 코헨의 <네덜란드의 신화와 전설>, 데이지가 쓴 <산의 휴일> 그리고 <그리스·로마 신화> 등을 생일 선물로 받은 “안네”는 “은신처”에 피신해 있으면서도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안네”가 일기를 쓰게 된 목적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쓰고 싶어. 가슴속에 있는 것을 몽땅 털어놓고 싶어.” 누가 열세 살 여학생의 고백에 흥미를 가질 사람이 누가 있겠어? 하지만 그런 일은 문제가 안 돼. “종이는 인간보다 끈질기다”라는 말이 있어. 조금 우울했던 어느 날, 밖으로 나깔까 집 안에 있을까 결정하는 것조차 귀찮아서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면 이 말이 생각나.


  “안네”에게 일기를 쓰게 된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에게 진실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그들과는 단지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주고받을 따름으로 다른 사람을 믿을 마음이 없는 것에 아쉬워하고 있다. 일기를 쓰기로 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일기장을 “키티”라 부르게 된다. “안네”가 “키티”에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대목은 귀엽고 순수한 모습이다.


  안네의 “은신처”에서 국가 상황과는 다르게 개인의사랑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도 잠시 국가의 권력이나 전체적인 힘에 의해 연기처럼 사라짐으로 어처구니없는 아니면 처참한 죽음을, 또는 개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안네”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과 그리고 소녀 마음의 조림 그리고 불안과 설렘은 지금에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느 시대나 어떤 상황에서도 남녀간에 사랑의 시작과 끝은 흐르는 강물 같아 정지하거나 머물지 않는다. 항상 내·외적 요인에 의해 변화하게 된다.


  “페터”는 “안네”와 함께 은신처에 숨어 살던 “판단”씨 일가의 외아들이었다. “안네”보다 두 살 많은 소년으로 처음에 “안네”는 “페터”를 보고, 게으르고 멍청하며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썼다. “페터”는 “은신처”에서 하루하루를 의미 없게 보내며, 늘 잠만 잔다고 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페터”에 대한 “안네”의 태도는 달라진다. 사춘기가 되어 성에 눈을 뜬 “안네”와 “페터”사이는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1944.1.5일에 “안네”는 두 가지를 고백한다. 하나는 자신의 엄마가 친구처럼 보다는 존경스러운 엄마이기를 원하며, 다른 하나는 자신이 사춘기 증후를 보이고 있다고 썼다. 월경을 세 번 했지만 무엇인가 달콤한 비밀을 간직한 느낌이며 마음속으로 이 비밀을 즐길 때를 기다린다는 마음을 고백했다. “안네”의 소녀 친구와 가슴을 서로 만져보면서 우정을 나누자는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나는 비너스와 같은 여체를 볼 때면 마음이 황홀해져, 진정한 여자 친구가 있으면.”


  1944.1.6일의 일기장에 쓴다.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을 생각한다. 그 상대로 “은신처” 함께 사는 “페터”가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페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커져 가면서 “페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증을 찾을 때에야 비로소 “페터”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마음을 일기에 드러낸다.


  나는 여기서 자신의 사랑이 상대에게 전달되어 비로소 일체화 되었을 때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고, 결국은 남녀사이가 믿음과 신뢰가 존재할 때야 비로소 서로의 마음을 열게 됨을 확인하였다. “안네”와 “페터”가 “은신처”에서 첫 키스를 나눈 날은 1944. 4. 28(금) 아침 8시30분경이었다. 일기 상에는 약 널 달 만에 이야기 상대에서 첫 키스를 나누는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둘은 거리를 함께 다니지 못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페터 때문이며, 그는 내 전부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만큼 그도 나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 "함께 있어도 “페터”를 보고 싶다. 그를 사랑한다" 라는 등 “페터”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페터 대신 내가 아프고 싶다"고 말한다. “은신처” 가족들은 두 사람이 지나치게 친밀한 관계를 갖지 못하게 막았다. 그런 와중에 안타깝게도 어느 네덜란드인의 밀고로 “은신처”에 숨어 있던 유대인 전원이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판단”씨가 건강이 나빠져 가스실로 끌려갔고, “판단”씨의 부인이 죽었으며, “안네의 어머니”는 수용소에서 독일군이 안네의 언니 “마르고트”에게 음란한 짓을 하려던 것을 막으려다가 좀 밉보이게 되고, 결국 죽었다. 그 뒤 “안네의 언니”와 “안네”는 다른 수용소로 옮겨졌으며, “뒤셀”씨, “페터”, “프랑크” 씨도 다른 수용소로 옮겨진다. 그 곳에서 “뒤셀”씨가 가장 먼저 죽는다. 그 뒤 몇 천 명의  유대인들이 대량으로 학살된다.


  다행히 그 때 “페터”와 “프랑크”씨는 살아남았지만 그 뒤 8명 정도의 유대인을 다시 뽑아 가스 실로 보냈는데 그 8명인가에 “페터”가 속해 있었다. 그리고 4일 뒤, 그 수용소의 유대인들이 모두 풀려난다. “안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페터”가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가스실로 끌려가 죽어버림을 읽는 나를 안타갑게 했다.

 

  “안네”와 “안네의 언니”는 옮겨진 수용소의 시설이 너무나 형편없고 열악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둘 다 “티푸스”에 걸리게 된다. 쇠약해진 “마르고트”는 사망하고 언니의 죽음에 모든 기력을 잃은 “안네”도 따라 죽는다. “안네”는 “티푸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절망과 쇠약으로 죽고, “페터”는 수용소에서 모두가 풀린 4일전에 뽑혀서 죽고 마는 전쟁에 희생된 연인이었다.


  “안네 만년필은 어디에서 뒹굴다 없어졌을까 싶었다. “안네 아홉 할머니가 가죽상자에 넣어 소포로 보내준 것으로 열세 살이 되자은신처 함께 와서 일기와 작문을 쓰는데 만년필을 사용했었다. “안네 꿈은 저널리스트나 작가였다. 090428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베리 2011-08-22 12: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네가 끌려간 강제 수용소에 죽었다는게 정말 불쌍하구,이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감동적이네요.또 그 나치들은 정말 사람 아니구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외롭고,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속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은 자신도 모른다는 사실이다시인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를 읽으면 나를 관통하는 무엇이 그리워 진다. 한정없이 무엇을 끄집어 내고 싶다.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 눈물인 어쩌면
이야기인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냄새 널어놓고 복사꽃 울려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눈물인 어쩌면 이야기인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사람이 오래 사는 방법은 가지다. 째는 자신의 몸속에 병든 장기를 버리고 다른 사람에 그것을 이식받는 . 번째는 자신의 성한 장기를 남에게 이식하는 . 번째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이다. 다른 노력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봐야한다. 자신을 관통하는 무엇을 적어 보고 싶다. 길을 걷는 중에도 밥을 먹는 중에도 마음속으로 글을 본다. 나를 스치는 바람까지도.

 
습작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묶어 보자.
 -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대해 보자.
 - ‘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을 골라 아주 사랑하는 것처럼 적어보자.
 -
가지 색만을 생각하며 15분간 걸어보자.
 -
오늘 아침 자신의 모습을 적어보자.
 -
진정으로 아끼는 장소를 시각화시켜 보자.
 - ‘
떠남 대해 보자.
 -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최초의 기억을 적어보자.
 -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해 적어보자.
 -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적어보자.
 -
부모님에 대해 묘사해 보자.
 -
수영하기, 하늘에 있는 , 가장 무서웠던 , 초록빛으로 기억된 .
 -
자신이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어떤 동물인가?

 
작가는 펜과 종이 그리고 자신만이 존재하는 낯선 공간(은신처) 찾아다니며 글을 쓴다. 그는 경청( 기울여 듣기), 성찰(깊은 이해심으로 생각), 명상(통찰을 통한 행동) 반복하며 글을 쓴다. 0902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의 역사 창비시선 280
최금진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는 계곡에서 한달 뒤에 발견되었다
 꽁무니에 썩은 알을 잔뜩 매달고 다느는
 가재들이 타이어에 달라붙어 있었다


 너무도 완벽했으므로 턱뼈가 으스러진 해골은
 반쯤 옷고만 있었다


 접근할 수 없는 내막으로 닫혀진 트렁크의
 수상한 냄새 속으로 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움푹 꺼진 여자의 눈알 속에 떨어진 담뱃재는
 너무도 흔해빠진 국산이었다


 함몰된 이마에서 붉게 솟구치다가 말라갔을
 여자의 기억들은 망치처럼 단단하게 굳었다


 흐물거리는 지갑 안에 접혀진 메모 한 장
 ‘나는 당신의 무엇이었을까’
 헤벌어진 해골의 웃음이
 둘러싼 사람들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엇, 무엇이었을까...... 메아리가
 축문처럼 주검 위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 ‘사랑에 대한 짤막한 질문’, 최금진 -     090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김훈”의 글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각오’ 떠올린다. “겐지”는 소설가의 태도를 보여준다면 “김훈”은 문장의 태도를 보여 준다. 이 책은 탐미적 문장으로 개성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저자의 2008년도 에세이다. “김훈”은 그 동안 6권의 에세이를 냈다. 바로 작가의 속내를 들려주는 글들이다.


  “날이 저물어서, 마을과 강가를 어슬렁거리며 사람 사는 구석들을 기웃거릴 때, 쓴 글과 읽은 글이 모두 무효임을 나는 안다. 이 환멸은 슬프지 않고 신바람 난다. 나는 요즘 실물의 구체성과 사실성을 생각하고 있다. 실물만이 삶이고 실물만이 사랑일 것이다. 이 묵은 글을 모아놓고 나는 다시 출발선상으로 돌아가겠다.”


  이 책속은 ‘바다의 기별’, ‘우리가 간다’, ‘말과 사물’로 나누어져 있다. 내용은 대학 등에서 강연한 글 2편과 13편의 산문이다. 특히 오치균의 그림에 대한 글은 “무너져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가족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글이 다수다. 후반부에서는 그 동안 출판된 책들의 “서문”을 발취하여 소개하였다.


  “색과 형태는 사물에 고유한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늘 머뭇거리고 있다. 나의 머뭇거림은 색과 형태를 이 세계의 완강한 사물성으로부터 풀어헤치려는 충동과 다시 세계의 사물성 안으로 주저 앉혀버리려는, 안타까운 예비음모 사이의 망설임이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노는 자의 것이고, 놀이를 음모하지 않고서는 살수가 없다.”


  “오치균”의 화폭을 들여다보면서 저자는 머뭇거림의 동반자를 만난 듯싶었다 고 고백한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깔을 꺼려하는 화백, 오화백의 그림에서 정연한 표색계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김훈”의 언어관은 세대, 정파, 지역으로 갈라져 소통의 부재 상태에 다다른 우리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도 잇닿아 있다. 우리가 의견과 사실을 뒤죽박쥐해서 말하는 현실에서 정연한 표색계를 떠올리기에 어려운 실정이다. 즉 “신념의 언어”보다는 “과학의 언어”로 사유함으로서 진정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할 수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적막은 아주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 자주 아팠다.”, 난중일기의 한 대목을 읽어가는 느낌이다.  0812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