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김훈”의 글을 읽으면서 ‘소설가의 각오’ 떠올린다. “겐지”는 소설가의 태도를 보여준다면 “김훈”은 문장의 태도를 보여 준다. 이 책은 탐미적 문장으로 개성적인 사유를 보여주는 저자의 2008년도 에세이다. “김훈”은 그 동안 6권의 에세이를 냈다. 바로 작가의 속내를 들려주는 글들이다.


  “날이 저물어서, 마을과 강가를 어슬렁거리며 사람 사는 구석들을 기웃거릴 때, 쓴 글과 읽은 글이 모두 무효임을 나는 안다. 이 환멸은 슬프지 않고 신바람 난다. 나는 요즘 실물의 구체성과 사실성을 생각하고 있다. 실물만이 삶이고 실물만이 사랑일 것이다. 이 묵은 글을 모아놓고 나는 다시 출발선상으로 돌아가겠다.”


  이 책속은 ‘바다의 기별’, ‘우리가 간다’, ‘말과 사물’로 나누어져 있다. 내용은 대학 등에서 강연한 글 2편과 13편의 산문이다. 특히 오치균의 그림에 대한 글은 “무너져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가족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글이 다수다. 후반부에서는 그 동안 출판된 책들의 “서문”을 발취하여 소개하였다.


  “색과 형태는 사물에 고유한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늘 머뭇거리고 있다. 나의 머뭇거림은 색과 형태를 이 세계의 완강한 사물성으로부터 풀어헤치려는 충동과 다시 세계의 사물성 안으로 주저 앉혀버리려는, 안타까운 예비음모 사이의 망설임이다. 그리고 그 망설임은 노는 자의 것이고, 놀이를 음모하지 않고서는 살수가 없다.”


  “오치균”의 화폭을 들여다보면서 저자는 머뭇거림의 동반자를 만난 듯싶었다 고 고백한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깔을 꺼려하는 화백, 오화백의 그림에서 정연한 표색계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김훈”의 언어관은 세대, 정파, 지역으로 갈라져 소통의 부재 상태에 다다른 우리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도 잇닿아 있다. 우리가 의견과 사실을 뒤죽박쥐해서 말하는 현실에서 정연한 표색계를 떠올리기에 어려운 실정이다. 즉 “신념의 언어”보다는 “과학의 언어”로 사유함으로서 진정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할 수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적막은 아주 견딜 만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 겨우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 자주 아팠다.”, 난중일기의 한 대목을 읽어가는 느낌이다.  08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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