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평전 - 조선 중기 최고의 경세가이자 위대한 스승
한영우 지음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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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월)에 안철수 전 교수가 입국했다. 그는 미국 체류 중에 레미제라블과 링컨에 대한 영화를 봤다. 최장집 명예 교수의 최근 작 '노동없는 민주주의 인간의 상처들(폴리테니아)'도 읽었다. '안철수의 생각(김영사)'에서 그의 정치적 롤모델로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삼고 있다. 링컨이  '어떻게 여야를 잘 설득하고 어떻게 전략적 사고로 일을 완수해내는가'를 봤다고 했다.

 

  시대마다 의인이 있으며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인 있다. 율곡은 조선 후기의 정치와 사상가였다.그가 남긴 2가지 교훈이 있다. 하나는 자기 시대의  문제를 외면 않고 개선하려는 치열한 정열과 정신이다. 율곡은 온건한 중도적 개혁자였다. 기성 질서를 큰 테두리에서 그대로 지키면서 시의에 맞지 않는 문제를 과감하게 고쳐 민생을 향상시키고 국가를 강하게 만드는 일을 주도했다. 

 

  다른 하나는 사물을 대립과 갈등으로 보지 않고, 통합과 절충을 존중하는 그의 세계관이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강조하면서 신분 차별에 대한 거부감이 나타냈다. 이런 세계관은 링컨의 노예제 폐지와 상통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엇갈려 반대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저지가 걱정되는 선조는 율곡이 주장하는 경장을 부담스러워했다. 


  경장을 이끌 만한 인재들의 결집된 세력이 존재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율곡이 말하는 경장이란 조선 초기에 세워진 왕조의 기틀을 유지 계승하면서 연산군 이후 민생 파탄의 제도를 고치자는 것이었다. 백성의 공납과 군역의 폐단과 공노비의 생활을 압박하는 선상의 문제도 개혁의 대상으로 봤으며 서얼에게 청요직을 주지 않는 것도 나쁜 폐단으로 여겼다.

 

  링컨의 청소년기는 모친의 기독교적 집안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 지적 호기심을 독서로 채워가며 현실에 적응했다. 율곡의 그 시기는 가장 가슴 아픈 상처를 남겼다. 유교적 사회기반속에서 불교적 영향을 받은 시기였다. 16세에 아버지를 따라 평안도에 다녀오느라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가운데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은 율곡은 심한 정신적 허탈감과 갈등에 빠져 19세에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가출하여 1년간 금강산의 승려가 되었다. 


  방황끝에 환속한 율곡은 유학을 공부하면서 과거 시험에 매진했으나 선비 사회에서 왕따를 당했다. 그는 불교의 영성으로 자신의 마음의 때를 씻고, 유교의 이성적 지성으로 현실 세계의 때를 벗기고 이상 사회로 이끌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율곡은 역사의 흐름이 갖는 법칙을 알고 있었다. 삼봉 정도전을 알면 조선 전기를 있고, 율곡을 알면 조선 후기를 있다. 율곡의 3 명저 가운데 하나인 '성학집요' 조선 후기 역대 제왕의 경연 교과서로 정착되고, 그의 군사론은 중흥의 영주인 영조와 정조, 고종의 통치 철학으로 수용되었다. 조선 후기는 율곡이 뿌린 씨앗을 거두는 과정이었다. 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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