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ustry and Empire: The Birth of the Industrial Revolution (Paperback, Rev and Updated)
Hobsbawm, E. J. / New Pr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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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의 ‘산업과 제국’은 그의 다른 저서들에 비해서 조금은 작은-한정된 규모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혁명 - 자본 - 제국 - 극단의 시대’와 같은 저서들에서는 거의 전세계적인 규모로 시대의 흐름에 따른 구조와 변동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했다면, ‘산업과 제국’은 영국이라는 단일 국가(물론,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조금은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의 발전과 몰락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가볍게 느껴질 수 있을 법한 기분도 들기도 하겠지만 역시나 에릭 홉스봄의 무척이나 상세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한 정교한 논의의 진행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읽는데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그의 다른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짜임새 있게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영국의 역사에 대한 흐름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영국에 대한 사전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으로서 읽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되는 기분도 들었다.

홉스봄은 1750년대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의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입장을 토대로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그는 1750년대의 영국의 정치-경제-사회적인 분위기에 대해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 시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고, 그런 분위기와 환경과 배경 속에서 어째서 영국이 ‘최초의’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어째서 하필이면 영국이었고, 어째서 하필이면 그 시대에 일어났는지를) 지금까지의 여러 논의들을 종합하면서 거기에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이런 방식의 홉스봄의 정리와 주장은 홉스봄의 다른 저서들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산업혁명과 (그로 인한)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인해 지금의 자본주의 환경이 형성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당시의 영국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홉스봄의 논의의 특징은 우선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환경에 대해서 종합적-전체적으로 파악-이해하려고 하고 있으며,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영국에서 최초의)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상세한 논의 후 산업혁명을 통한 급격한 변화-발전과 함께 그 과정 속에서 어떤 다양한 경제적인 변화 이외의 변화들이 함께 이뤄졌는지를 논의하고 있으며, 그런 과정 속에서 그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생활상 및 사회-인간-계급관계와 생각-관념-습속 등의 수많은-다양한 변화들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직접적으로 변화가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발생될 수밖에 없었던 농업에 대해서 검토를 하며 이전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사회구조를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고, 1840년대 이후로 구분하는 2차 산업화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가며 ‘철도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교통의 발달’로 인해서 과거와 어떻게 근본적인 갈라짐을 보여주고 있는지 추가하여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로 인한 노동계급-급진주의-좌파들의 등장(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적 입장의 등장)과 함께 그와 정반대인 제국주의-보수주의로의 진행(사회구조를 공고화 시키려는 입장)을 다루면서 그 당시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영국의 위치와 위상이 어떠한지를 함께 다루며 어떻게 영국이 그 당시에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는지를 인접 국가들과 비교하며 재검토하고 있다.

이런 영국(만)의 급성장과 누구도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성공에 대한 논의 후 영국의 몰락에 대해서 논의를 진행시키면서 홉스봄은 몰락의 여러 원인들 중 가장 특징적으로 생각되는 원인을 너무나 가파른 성공과 최초의 성공으로 인해서 그 이후의 성공의 진행과 이어짐 그리고 유지에는 오히려 (그 급격한 성공이) 단점이 되어버렸다는 점과 그 과도한 성공으로 이해서 오히려 앞으로의 성공을 등한시하게 되었다고 진단내리고 있다.

대공황과 1차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보다 몰락과 성장의 둔화는 확연하게 되어가고, 이로 인해서 계급들 사이의 그리고 사회-경제-정치적인 갈등들은 좀 더 깊어져만 가게 되었다고 주장한 후 1960년대의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영국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의 성장과 몰락을 다룬 내용이기는 하지만 온갖 다양한 자료들과 통계들을 통해서 그동안의 논의들을 정리하며 자신의 논의와 입장을 정리하고 있고, 단순히 자료들을 토대로 한 내용 정리가 아닌 그런 분석에서만 머물지 않고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던 다양한 계급과 계층들의 여러 이해관계로 인한 발전과정에서의 삶의 모습까지 논의하며 단순히 경제-정치-사회적인 변화만이 아닌 하나의 구조와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모습까지 종합적인 방식으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인상적이고 상세한 논의였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영국에 대해서 그리고 산업혁명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몇몇 부분에서는 생각보다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었다.

홉스봄의 접근방식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무척 생소한 느낌은 들지 않았겠지만, 그의 접근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논의를 따라가다 길을 잃는 기분이 들 정도로 다양한 내용들을 검토하고 있다.

힘든 독서이기는 했지만 최초의 산업혁명이 이뤄진 그리고 자본주의가 완성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국가였던 영국의 변화와 발전 과정은 분명 어렵다고 해도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 내용일 것이며, 인접한 그리고 관련된 수많은 국가들이 어떻게 영국을 따르게 되었고 넘어서게 되었는지도 알아가야 할 것 같다.

읽고서 기억나는 부분은 무척 적었지만,

분명 언젠가는 홉스봄의 논의들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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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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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기독교와 관련된 책들을 가끔씩은 읽어보지만 일부러 그런 책들을 찾기 보다는 선물을 받게 되어서 혹은 그냥 넘겨받게 되어서 읽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기 때문에(가족과 주변 사람들 중 기독교도들이 무척 많다) 읽게 되는 책들의 내용의 좋고 나쁨의 차이가 무척 큰 것 같다.

 

어떤 책들은 그럭 저럭 읽는 재미라도 있지만 / 어거지로 읽어내게 만들기라도 하지만,

어떤 책들은 읽어내는 것 자체가 귀찮게 느껴질 정도로 엉망진창인 경우도 많다.

 

그렇게 본다면 최근 큰 화제를 모았다고 하는 윌리엄 폴 영의 (장편소설을 가장한 종교적 믿음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담고 있는) ‘오두막’은 그 내용에 대한 동의와는 상관없이 충분히 읽게 만들게는 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오두막’은 기본적인 모양새는 소설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그리고 수많은 종교적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담고 있을 뿐인 종교 서적이지만 기존의 종교 서적들과는 다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척 흥미롭게 생각되게 만든다.

 

우선 (범죄) 소설적 구성을 갖도록 해서 읽는 이들이 좀 더 이야기로서 이해되도록 만들고 쉽게 접근하고 설득될 수 있도록 (흥미를 갖을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극단적인 상황(딸의 죽음)에 빠지도록 만들어 그가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한 회의와 물음들에 보다 공감하고 그가 설득되어가는 것에 함께 설득이 될 수 있도록 (다시 말해서 강한 설득력을 갖도록) 내용을 꾸미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유명 목사나 종교인, 권위자를 통해서 신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 직접적으로 신과 만남으로써 (그들을 통해서가 아닌 신이 직접 일반 사람들과 대화하고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고 설득한다) 과거에 비해서 더욱 더 복잡해지게 되었을 뿐인 세상에서 어떻게 신을 이해해야 하고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과거의 절대자의 모습과는 달리 친근하고 ‘우리들과 별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의도하고 있고, 권위적이고 복종을 요구하는 모습이 아닌 유연함을 갖고 있고, 자신에게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되돌아와야 하는지를 이야기 해주고 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예전과는 달리 직접 자신에게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구걸하는 모습처럼 냉소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동안과는 달리 조금 더 밀접하고 가깝게 느껴지게 만들고 있고, 신과 나 사이의 중간에 있는 종교적 권위자 혹은 중간자를 배제하며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도록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오해로(만) 가득한 기독교 근본주의와 독선과 광기 그리고 선동에 물든 최근의 흐름에 대한 일종의 거부감에 대한 반응이기도 할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대중적인 / 현대적인 방식의 종교개혁과도 같은 의미로서 ‘오두막’을 이해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일종의 소박함으로 채워진 믿음과 신앙), 그렇게 거창하게 이해하기 보다는 반복되는 종교적 물음과 대답의 21세기 적인 방식 혹은 유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의미로든 거대함과 선동 그리고 독선으로 가득한 최근의 흐름과는 거리감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 인상적이고 의미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관심을 갖게는 만든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으로 가득한 작품일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제는 별의별 방법을 다 써먹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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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읽기 - 문자 그대로의 라캉 바리에테 6
브루스 핑크 지음, 김서영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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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핑크의 저작 중 가장 최근에 번역된 ‘에크리 읽기 - 문자 그대로의 라캉’은 제목처럼 라캉의 악명 높은(악명이기 보다는 그냥 읽어봤자 이해되지 않고, 이해가 될 수 없기로 유명한... 이라고 말하게 될 뿐 ‘에크리 - 선집’을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지 실제로 읽은 사람이 있기는 한지는 확인되지 않는...) ‘에크리 - 선집’에 대한 번역 과정에 대한 후기와 독후감과도 같은 내용(만)을 담고 있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좀 더 포괄적으로 라캉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물론, 제목만 봐서는 브루스 핑크가 영문으로 ‘에크리 - 선집’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에크리 - 선집’을 읽(고 읽)을 이들에게 전해주는 일종의 입문서와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되겠지만(그런 의미도 있기는 하다), 그동안의 브루스 핑크의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에크리 - 선집’을 읽어낼 수 있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기 보다는 라캉의 정신분석과 관련된 전반적인 논의 혹은 그의 이론적인 (의도적인) 모호함을 보다 명확히 하거나 라캉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해명-옹호하는 논의들로 이뤄진 (오랜만에 발표하는 브루스 핑크의) 라캉에 관한 ‘이론적인 논의들’로 엮어져 있다.

 

그동안 라캉의 정신분석에 관한 논의들을 ‘임상’과 ‘임상사례’에 집중했던 브루스 핑크였지만 이번에는 라캉의 ‘이론적인 논의’에 관해서 좀 더 이해가 쉽도록-가능하도록 라캉의 논의들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다시금 검토하고 있고, 단순히 ‘에크리 - 선집’에 수록된 내용들만이 아닌 라캉의 논의들을 전반적-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세미나 20’에 대한 논의도 있고, ‘지적사기’에 대한 반론도 논의된다), 라캉에 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꽤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며, ‘에크리 - 선집’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무척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브루스 핑크 본인도 말하듯이 ‘에크리 - 선집’을 번역하는 과정 속에서 작성된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에크리 - 선집’만이 아닌 라캉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논의들을 검토하고-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라캉을 이해하기 위해 좋은-기초적인 참고가 되리라 생각된다.

 

브루스 핑크는 (당시로서나 지금으로서나) 정신분석과 관련된 일반적인 입장들과 무척 거리감을 갖고 있는 라캉의 (대다수와는 다른) 정신분석에 관한 기본적인 입장과 견해(‘자아’를 강조하는 대부분의 입장과는 대조적으로 ‘무의식’을 강조하는 입장)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고, 분석 과정 속에서 분석가와 분석주체-분석수행자와의 관계(통상적인 이자관계와는 다른 사자관계)와 함께 라캉과 프로이트의 임상 사례를 통해서 정신분석과 무의식, 그리고 라캉의 논의와 관련되어서 간략한-포괄적인 검토로 내용을 시작하고 있고, 라캉이 지속적으로 비판의 칼날을 겨누었던 자아심리학에 대해서 논의를 재검토하며 어째서 자아심리학이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 있다.

 

브루스 핑크의 논의는 라캉의 논의 중 가장 핵심적인 논의인 ‘문자’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고, ‘글과 말 그리고 언어’에 대한 라캉의 논의의 핵심과 함께 라캉의 논의와 (라캉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준) 소쉬르의 논의가 갖고 있는 둘 사이의 ‘언어에 대한’ 깊은 차이점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라캉과 소쉬르의 논의가 갖고 있는 유사성에 대한 논의가 아닌 그들의 확연한 (언어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그러한 논의 후 브루스 핑크는 지속적으로 그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주체’와 관련된 논의를 통해서 알다가도 결국 모르게 되는 라캉의 (그래프로 표현되는) 욕망의 여러 형태와 유형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있(지만 역시나 이해가 쉽게 가능하진 않)다.

 

‘에크리 읽기’는 라캉의 ‘에크리 - 선집’에 대한 상세한 해설로서 이해되기 보다는 읽기 전 기초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라캉에 관한 기본지식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해가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항상 어렵게 느껴지기만 할 뿐인 라캉의 논의에서의 가장 초보적인 논의들을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이미 다른 이들이 혹은 다른 방식과 다른 논의들을 통해서 설명되었고 논의되었던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계속적으로 반복을 해야 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논의들일지도 모르고, 오해되고 있는 논의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브루스 핑크는 어떻게 본다면 꽤나 귀찮은 논의(이미 라캉에 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논의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무척 수고스럽고 시간을 소진하게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라캉 전공자들은 이런 논의들을 쉽게 ‘건너뛰는’ 경향이 많다. 즉, 안다고 가정하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물론, 그런 사람들 중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들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성실하고 상세하고 논의해주고 있기 때문에 가장 주목받는-받아야 하고-존중되어야 하는 연구자라고 생각한다.

 

과연 언제쯤 라캉의 ‘에크리 - 선집’이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에크리 - 선집’을 읽기 전 그리고 라캉에 접근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지식과 이해를 ‘에크리 읽기’는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핑크는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이 라캉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가장 성실한 라캉 전공자-연구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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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론 - 백산신서 52
V.I.레닌 지음, 남상일 옮김 / 백산서당 / 198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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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저작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저작으로 꼽히는 ‘제국주의론 /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단계’는 그의 다른 저작들에 비해서 좀 더 이론적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자본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분석을 보여주고 있는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저작들이 보다 정치적이고 (혁명에 대한) 선동적인 성향이 강하다면 ‘제국주의론’은 그런 선동적인 성향보다는 분석적인 경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느끼게 되기는 하지만 간간히 레닌의 조롱적인 언급들을 통해서 레닌 특유의 시각과 글쓰기 특성이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레닌이 분석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고 시대이기는 하지만 그의 분석이 그저 옛것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그가 다루고 있는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는 무척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은데, 레닌은 자본주의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통해서 과거의 산업 자본주의와는 다른 금융-독점 자본주의로 자본주의 구조 변화를 보이게 되었고, 이런 변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비판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레닌은 그런 변화의 경향과 진행 과정을 검토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가능성들을 예상하고 있고, 산업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통해서 결국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다.

 

자유경쟁에서 독점으로의 변화가 결국 거대한 생산의 사회화라는 사회주의로의 변화의 기초가 되는 토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을 함으로써 레닌은 위와 같은 이행의 근거를 찾고 있기는 한데, 그 당시의 레닌의 전망과는 다른 진행을 보이고 있는 현재를 생각하면서 그의 논의를 생각한다면 좀 더 좋은 독서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레닌은 이런 산업 자본주의에서 금융 자본주의로의 이행과 자유경쟁에서 독점으로의 변화에 대한 탐구와 함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는 이들 중 (레닌의 시각에서는) 변절자들 혹은 기회주의자들로 평가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당시의 자본주의의 현재 상황에 대한 분석과 함께 그 비판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입장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더함으로써 ‘제국주의론’은 레닌만의 ‘공산당 선언’처럼 내용을 채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 되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이, 20세기 초 당시의 자본주의의 변화와 경향을 분석하며 가장 큰 특징을 독점,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으로의 자본의 재편성 및 금융과두제, 자본수출을 통한 제국주의 지배 방식과 세계분할 그리고 그에 대한 앞으로의 전망과 비판적 성찰까지 레닌의 논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하고 있지만 그 분석이 당시만이 아닌 지금 현재에도 일정부분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분석이며 그 분석을 다시금 재검토하고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와 구조에 대해 분석을 할 때 참고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새롭게 쓰일 필요가 있는 그리고 분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논의일 것이며,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한번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할 때 참고해야 할 논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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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라깡 정신분석임상 아난케 정신분석 총서 2
조엘 도르 지음, 홍준기 옮김 / 아난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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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과 정신분석임상 - 구조와 도착증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40572676





 



조엘 도르의 임상 2부작 중 두 번째 저작인 ‘프로이트 · 라깡 정신분석임상’은 전작인 ‘라깡과 정신분석임상 - 구조와 도착증’이 도착증을 중심으로 정신분석 / 정신병리학에서 다루는 분석주체들의 무의식의 구조와 도착증을 중심으로 한 각각의 증상들이 갖고 있는 구조적 특징에 대해서 상세한 검토를 하는 저작이었다면, 이번 저작은 좀 더 정신분석(의 가르침)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재검토 및 임상 사례를 통해 각 증상들의 특징들을 다루고 있다.

 

전작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정신분석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함께 정신분석의 기초부터 다시금 논의를 진행되기 때문에 정신분석에 대해서 생소한 사람들은 두 번째 저작이 좀 더 쉽게 정신분석과 조엘 도르의 논의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고, 후반부에 다뤄지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과 그 사례들을 통한 조엘 도르의 분석과 판단은 정신분석이 마치 미신처럼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오해의 체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도 어떠한 근거 속에서 그런 분석과 판단이 이뤄지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능)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조엘 도르는 자신의 논의를 어렵게-애매하게 논의하거나 지나치게 복잡하게 논의를 진행하지 않도록 만들어 좀 더 명확한 이해를 돕도록 하지만 간략하고 명확하게 논의를 진행 함에도 아쉽게도 그 논의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정신분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명확하지만 (명확한 만큼) 간략하게 논의를 정리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정신분석에 대한 상세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만이 풍부한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만큼 프로이트와 라깡의 논의들을 명료-명확하게 정리하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하는 학자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프로이트와 라깡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자주 그의 논의를 다시금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조엘 도르는 이번 저작을 통해서 정신분석의 가르침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하고 있고, 임상과 전이 그리고 치료 과정에 대해서 논의하며 분석자와 분석주체의 관계 및 기타 정신분석 과정에 대한 다양한 부분들에 대해 조엘 도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데, 정신분석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그런 논의들에 대해서는 무척 신선한 지적들이라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로 그의 논의는 무척 인상적이다.

 

후반부는 정신분석에서 자주 논의되는 대표적인 증상들에 대한 임상 사례들을 다루고 있는데, 각 증상의 특징과 짧은 사례들을 통해서 증상들에 대한 이해와 그 무의식의 구조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내용을 진행하고 있다.

 

좀 더 치밀하고 상세하게 내용을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의 논의가 갖고 있는 명료함과 명확함은 다른 연구자들의 애매함-두루뭉술함과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되어 무척 신선한 느낌을 갖게 된다.

 

조엘 도르의 다른 저작들도 기회가 된다면 찾아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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