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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읽기 - 문자 그대로의 라캉 ㅣ 바리에테 6
브루스 핑크 지음, 김서영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7년 8월
평점 :
브루스 핑크의 저작 중 가장 최근에 번역된 ‘에크리 읽기 - 문자 그대로의 라캉’은 제목처럼 라캉의 악명 높은(악명이기 보다는 그냥 읽어봤자 이해되지 않고, 이해가 될 수 없기로 유명한... 이라고 말하게 될 뿐 ‘에크리 - 선집’을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지 실제로 읽은 사람이 있기는 한지는 확인되지 않는...) ‘에크리 - 선집’에 대한 번역 과정에 대한 후기와 독후감과도 같은 내용(만)을 담고 있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좀 더 포괄적으로 라캉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물론, 제목만 봐서는 브루스 핑크가 영문으로 ‘에크리 - 선집’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에크리 - 선집’을 읽(고 읽)을 이들에게 전해주는 일종의 입문서와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되겠지만(그런 의미도 있기는 하다), 그동안의 브루스 핑크의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에크리 - 선집’을 읽어낼 수 있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기 보다는 라캉의 정신분석과 관련된 전반적인 논의 혹은 그의 이론적인 (의도적인) 모호함을 보다 명확히 하거나 라캉에 대한 여러 오해들을 해명-옹호하는 논의들로 이뤄진 (오랜만에 발표하는 브루스 핑크의) 라캉에 관한 ‘이론적인 논의들’로 엮어져 있다.
그동안 라캉의 정신분석에 관한 논의들을 ‘임상’과 ‘임상사례’에 집중했던 브루스 핑크였지만 이번에는 라캉의 ‘이론적인 논의’에 관해서 좀 더 이해가 쉽도록-가능하도록 라캉의 논의들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다시금 검토하고 있고, 단순히 ‘에크리 - 선집’에 수록된 내용들만이 아닌 라캉의 논의들을 전반적-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세미나 20’에 대한 논의도 있고, ‘지적사기’에 대한 반론도 논의된다), 라캉에 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꽤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며, ‘에크리 - 선집’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무척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브루스 핑크 본인도 말하듯이 ‘에크리 - 선집’을 번역하는 과정 속에서 작성된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에크리 - 선집’만이 아닌 라캉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논의들을 검토하고-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라캉을 이해하기 위해 좋은-기초적인 참고가 되리라 생각된다.
브루스 핑크는 (당시로서나 지금으로서나) 정신분석과 관련된 일반적인 입장들과 무척 거리감을 갖고 있는 라캉의 (대다수와는 다른) 정신분석에 관한 기본적인 입장과 견해(‘자아’를 강조하는 대부분의 입장과는 대조적으로 ‘무의식’을 강조하는 입장)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고, 분석 과정 속에서 분석가와 분석주체-분석수행자와의 관계(통상적인 이자관계와는 다른 사자관계)와 함께 라캉과 프로이트의 임상 사례를 통해서 정신분석과 무의식, 그리고 라캉의 논의와 관련되어서 간략한-포괄적인 검토로 내용을 시작하고 있고, 라캉이 지속적으로 비판의 칼날을 겨누었던 자아심리학에 대해서 논의를 재검토하며 어째서 자아심리학이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 있다.
브루스 핑크의 논의는 라캉의 논의 중 가장 핵심적인 논의인 ‘문자’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있고, ‘글과 말 그리고 언어’에 대한 라캉의 논의의 핵심과 함께 라캉의 논의와 (라캉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준) 소쉬르의 논의가 갖고 있는 둘 사이의 ‘언어에 대한’ 깊은 차이점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라캉과 소쉬르의 논의가 갖고 있는 유사성에 대한 논의가 아닌 그들의 확연한 (언어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그러한 논의 후 브루스 핑크는 지속적으로 그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주체’와 관련된 논의를 통해서 알다가도 결국 모르게 되는 라캉의 (그래프로 표현되는) 욕망의 여러 형태와 유형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있(지만 역시나 이해가 쉽게 가능하진 않)다.
‘에크리 읽기’는 라캉의 ‘에크리 - 선집’에 대한 상세한 해설로서 이해되기 보다는 읽기 전 기초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라캉에 관한 기본지식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해가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항상 어렵게 느껴지기만 할 뿐인 라캉의 논의에서의 가장 초보적인 논의들을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이미 다른 이들이 혹은 다른 방식과 다른 논의들을 통해서 설명되었고 논의되었던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계속적으로 반복을 해야 할 정도로 가장 기본적인 논의들일지도 모르고, 오해되고 있는 논의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브루스 핑크는 어떻게 본다면 꽤나 귀찮은 논의(이미 라캉에 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논의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무척 수고스럽고 시간을 소진하게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라캉 전공자들은 이런 논의들을 쉽게 ‘건너뛰는’ 경향이 많다. 즉, 안다고 가정하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물론, 그런 사람들 중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들을 귀찮게 생각하지 않고 성실하고 상세하고 논의해주고 있기 때문에 가장 주목받는-받아야 하고-존중되어야 하는 연구자라고 생각한다.
과연 언제쯤 라캉의 ‘에크리 - 선집’이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에크리 - 선집’을 읽기 전 그리고 라캉에 접근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할 지식과 이해를 ‘에크리 읽기’는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브루스 핑크는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이 라캉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가장 성실한 라캉 전공자-연구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