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직업의 역사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8
이승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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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겉표지에서부터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잇고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근대화 초기(일제 강점기 시절을 혹은 그 전후로 해서 근대화 초기 시기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적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에 생겨났고 사라졌던 그리고 그것이 지금 현재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변형이 되어서 지금 현재에도 찾아볼 수도 있을 법한 직업들의 역사를 다루면서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풍경 그리고 단순히 직업의 등장과 쇠퇴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담겨지고 찾아볼 수 있는 여러 내용-의미들을 잘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

 

간간히 저자가 사라진 직업의 역사라는 관점과 주제 속에서 다뤄내지 못하고 때로는 주제와 관점에서 벗어나거나 내용을 풀어내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고 엉켜지는 부분도 간간히 느껴지기는 하지만 찾기 어려운 자료들을 꼼꼼히 정리해내고 있고, 그 자료들을 토대로 때로는 사회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여러 철학적 역사학적 정치적 사회적 논의들로 잘 풀어내고도 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무척 다양한 관점들을 그리고 하나의 직업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들과 시사점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저자는 근대화 초기의 여러 직업들 중에서 그 자신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여러 직업들(전화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군,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을 선택하게 된 사유를 알려주며 자신의 논의를 풀어나가고 있고, 전화의 등장과 그 등장으로 인해서 변하게 되는 사회적-공간적 변화(확장과 축소)를 지적하고 있으며, 근대화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인 여성들이 어떻게 사회로 진출하게 되는지를(그리고 어떻게 좌절을 겪게 되는지를) 지속적으로 다른 직업들에 관한 논의 속에서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단순히 직업의 등장과 쇠퇴만이 아닌 그 등장과 쇠퇴 속에서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사회적인 변화와 그 변화에서 지적하고 예리하게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논의를 진행하고 정리를 하고 있어서 좀 더 폭넓게 (근대 초기라는) 시대와 사회를 그리고 직업의 나타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도록-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변사의 경우도 위와 같은 논의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대한 여러 논의와 함께 영화의 기술적 발전과 조선 후기와 강점기 시절의 영화가 일반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력과 관심 속에 있었는지를 알려주기도 해서(일종의 배경지식 혹은 주변지식들을 알려줌으로써) 좀 더 다양한 관점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으며 어떻게 그 변화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좀 더 쉬운 이해가 가능하기도 했다.

 

기생에 대한 논의와 유모, 여차장에 대한 논의에서도 여성의 입장에 대한 논의와 함께 그들이 사회적인 약자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제대로 된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어떻게 그들이 고난-좌절-슬픔을 겪고 힘겨움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주의 관점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직업에 대한 논의들을 어떻게 여성주의의 관점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될 수 있기도 하고, 전기수의 논의와 같이 단순히 책을 읽어주는 직업의 등장과 쇠퇴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닌 문자에 대한 관심의 높아짐과 그 높아진 관심 속에서 책을 어떻게 접하게 되고 어떤 방식으로 문자 보급이 확산되었는지를 그리고 대중들이 즐기는 책들이 어떤 내용들이었는지를 확인해가며 그 시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인력거꾼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는 비천한 삶을 살아가던 빈민들의 삶과 그들이 어떻게 삶을 꾸려나려고 했고 좌절을 겪었는지를 다루면서 계속해서 내몰려지기만 하는 하층민의 삶을 슬픈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하고 있고, 물장수와 약장수의 내용을 통해서 씁쓸한 웃음을 전하면서 그들의 삶과 직업 그리고 그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록 만들어 어떤 변화들이 있었으며 그 변화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반복해서 반추하고 있다.

 

저자의 논의들은 대부분 프랑스 탈근대 혹은 1968혁명 이후의 철학자들로 알려진 이들의 논의들에 많이 의지를 하면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들과 논의들을 약간이나마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저자의 논의들을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기도 할 것 같고, 그 논의들을 확장시켜 볼 수 있기도 할 것 같으며, 논의의 활용 방식을 통해서 어떤 논의들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논의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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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잡이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9
이청준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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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청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의 작가적 위치와 작품세계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이청준을 전혀 모른다는 말에 무척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몇 있어서 어째서 그런 반응을 보이느냐고 묻기는 했는데, 교과서에도 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는 말에 교과서는 펼쳐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대답만 해줬을 뿐이었다.

 

어쨌든 전혀 모른다는 말에 무척 한심하다는 반응이 많아서 꽤 알려진 작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물론, 내가 얼빵한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이기도 했겠지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도 그런 것 같기에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그의 단편 혹은 중편을 모은 모음집 매잡이(그의 작품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의 여러 작품들 중 어떤 수준의 그리고 어떤 주제 속에서 묶여졌는지도 모르고 시기적으로도 어떤 차이 혹은 일관성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전쟁-6.25 전쟁 이후와 (아마도) 박정희 시대 이전을 주된 시대적 배경으로 해서 이야기가 짜여 있고 그 시기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지식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고뇌하는 개인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각각의 개인들이 시대-사회와 어떤 갈등을 겪고 있고, 그 갈등으로 인해서 어떤 좌절을 그리고 패배를 겪는지를 이야기 속에서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각 단편들마다 편차가 있어서 이런 평가가 적절하지 않을 작품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런 관점 속에서 작품들을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문의 벽과 같은 작품에서는 시대정신에 대한 논의와 함께 창작자와 편집자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논의하면서 작품 속의 박준이라는 소설가가 어떤 과정 속에서 미쳐가게 되었고 그 미쳐감이 시대와 어떤 갈등과 오해 속에서 이뤄지는지를 냉소적이고 우울한 시선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절박함 속에서 시대를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시대-사회와의 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해소-화해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 좌절하듯이 받아들이고 있고, 시대-사회와 불화하고 있는 예민함으로 가득한 개인들이 어떻게 점점 황폐해져 가는지를 지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음 작품인 뺑소니 사고또한 신문기자가 어떻게 진실을 접근하고 있고, 그 진실을 토해내는 것에 대해서 어떤 내면적 / 외부적 갈등을 겪는지를 그리고 그 진실을 토해내려고 하는 순간 어떤 방식으로 그 진실이 삼켜지고 침묵을 강요받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야기 줄거리로서는 구성면에서 무척 긴장감으로 가득할 것 같지만 작가는 그런 긴장감과 재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엄격함과 진지함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떤 대의를 위해서 진실을 가둬두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집중하고 있다.

 

개백정과 같은 작품은 한 시대의 풍경을 짧은 스냅 사진처럼 짧은 이야기 속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어떤 은유를 담고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며, ‘병신과 머저리와 같은 작품은 결국 자기 세계로 침잠하게 되는 시대와 불화하는 혹은 적극적으로 외부로 나서지 못하는 개인들의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입장-시각-관점은 가면의 꿈에서 절망적인 결말로 치닫고 있는데,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고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이가 결국은 어떤 식으로도 세상과 어울리는 방식을 찾아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을 통해서 질식할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쓰디쓴 고통을 부족함 없이 들려주고 있다.

 

어쩐지 작가의 글은 어떤 이야기 구성 속에서 그 이야기의 이끌어감에 집중하면서 재미나 흥미를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이야기 구성을 가다듬고 정교하게 만들거나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이야기 속에다 그 자신의 생각을 그리고 시대정신과 시대-사회에 대한 갈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구성이 촘촘히 짜여 있기 보다는 약간은 헐거움을 보이면서도 그 흩뿌려짐 속에서 그 자신만의 생각과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고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찾기 힘든 방식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고,

아마도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까지는 무척 존중받았을 방식의 글쓰기였을 것 같다.

재미만을 쫓고 있고 어떤 관점과 이해, 입장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을 갖지 않는 최근의 작품들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는 판단을 떠나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통해서 그 시대-사회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방식이 아예 논의가 될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안타깝다는 말을 먼저 꺼내야만 할 것 같다.

 

맨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잔인한 농담과 같은 퇴원과 잠시라도 위안을 찾기 위해서 어딘가로 향하려고 하는 꽃동네의 합창이 뒤따르고 있고, ‘눈길을 통해서 가슴 아픔과 국가의 강압적인 근대화정책 그리고 부모자식 사이의 관계를 경제적인 이해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하는 (자본주의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반대로 과거를 어떤 낭만적-서정적인 분위기로서 기억하려고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작가는 그 낭만-서정에 함몰되기 보다는 결국은 냉정하게 과거를 바라보며 차디찬 끝을 맺고 있다.

 

마지막 끝자락에 수록된 매잡이는 앞서 말했던 사회와 갈등을 겪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이미 사망한 것으로 이야기 속에서 처리되고 있는) 민태준의 예언적 글쓰기와 하나의 논리적 완성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기도 있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와의 갈등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이청준 개인의 주된 관심 두 가지가 하나로 뒤섞이고 있는 작품이다.

 

매잡이의 모습-이야기에서는 과거에 대한 목가적인 분위기와 낭만적인 관점을 가져오고 있고, 사냥을 하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의 고조와 매잡이의 땀방울과 입김과 같은 숨가쁨들이 무척 강렬하게 전달되고 있으며, 매잡이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의 사실성도 인상적인 느낌이라 하나의 작품 속에 여러 성향들이 혼재된 느낌을 갖게 된다.

 

어쨌든, 모음집 매잡이를 통해서 알게 된 이청준의 주된 주제들은 시대-사회와 갈등을 겪는 이들에 대한 내용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시대-사회와 갈등을 겪는지를, 어떤 방식으로 좌절하고 패배하고 슬퍼하는지를 담아내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작가의 이야기 구성 때문에 작가의 시각이 일종의 숙명론적 패배주의, 예정된 패배, 허무주의 등으로 비춰질 수 있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시대-사회와 갈등을 겪는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는지를, 등장인물들이 갈등-불화로 인해서 시대-사회의 요구에 맞추거나 화해를 도모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 갈등을 그대로 남겨두며 시대-사회와 어떻게 서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지를 거대한 사회가 어떻게 한명의 개인을 집어삼키게 되는지를 반복하며 검토하고 있고 좌절과 패배의 과정을 반복하며 어떤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가능성의 모색이 가능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는 결말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지만 그것이 패배주의로서 이해되진 않고, 또다른 모색으로서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자신이 틀렸을지라도 틀렸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 보이고,

세상이 그릇됨을 보이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완고함을 보여준다는 점 때문에,

작가의 시각은 무척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세상과의 다툼과 갈등에 무척 지쳐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게 되는 글들이었고,

그 지친 시각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일정하게는 패배를 예상-받아들이면서도 그 좌절과 패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피하고 도망치기 보다는) 벗어나지 않고 이겨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느껴지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척 괴로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 괴로운 과정을 어떤 식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탐구하는 것 같은 작가의 시각과 함께 글(쓰기)에 대한 여러 논의들과 관심들이 함께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읽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지만 그 쉽지 않은 과정으로 인해서 작가가 찾으려고 하는 시대-사회와의 갈등의 순간들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 것 같다.

 

어쩌다보니 이런 작품도 읽게 되었다.

 

 

 

참고 : 작가가 지식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의 모습들에 대해서 깊은 탐구를 보여준다는 것이 반대로 일반 대중-시민들에 대해서는 아예 그들의 갈등은 없을 것이라는 단정이 일정하게 녹여져 있다고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런 식으로 작가가 생각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비판적인 이해나 질문들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일반 대중들이 무척 수동적인 존재들로서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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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상식사전 - 비범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반전, 대한민국 1%를 위한 상식사전
롤프 브레드니히 지음, 이동준 옮김, 이관용 그림 / 보누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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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라고는 어디 국 끓여 먹을 것도 없는 무뚝뚝하고 무덤덤한 사람이라 위트 상식사전은 읽는 내내 어떻게 저런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지 그 재치에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물론, 그렇다고 무척 재미난 느낌만 있진 않다.

그리고... 이걸 책으로 읽는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스럽다.

 

위트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 어떤 일반적인 대답에서 벗어나면서도 아주 벗어남을 보이지는 않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재치가 있으면서도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한 무언가를 말한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이분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에 대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답을 내놓는 것이고, 때로는 냉소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은근히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하다. 물론, 노골적일 때도 있고, 그 노골적임을 조금은 숨기려고 하고도 있다.

 

아쉽게도 위트 상식사전은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하고 집요함을 보이기보다는 가장 최신의 농담들과 재치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고, 그것들에 대해서 어떤 시각-평가-분석을 보여주질 않는 이 모음집에 대해서 읽는 동안 흥미를 갖게 되기는 하지만 이걸 모아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파악될 수 없다는 점에 도대체 이런 정리를 보이는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저 복잡하고 정신없는 최근의 일상으로 인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편하게 읽을 책을 찾던 중이었기 때문에 무척 시기적절한 책이기는 했지만 어쩐지 다 읽으니 허전하기만 한 것 같다.

 

아마도 이 책에 모아져 있는 재치 있는 내용들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재치 없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이 책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위트 상식사전에 큰 의미부여가 가능할 것 같지는 않고, 좀 더 후한 평가가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내 위트 없음과 이 책의 허접함이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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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인간의 고통 -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아픔 이야기 명화 속 이야기 8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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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75488051

 

 

 

 

저자 문국진은 법의학자로서 여러 그림들을 의학적 지식과 시각으로서 바라보거나 그림에서 보여주는 그림 자체의 겉모양-표면 내부로 들어가 좀 더 다양한 의미들을 끄집어내고 있어서 그림을 통해서 단지 시각적 감상만이 아닌(혹은 감상적인 감상만이 아닌) 인간의 신체-몸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이해를 통한 몸-신체에 대한 섬세한 인식과 사려 깊음을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의 글을 써주고 있다.

 

명화로 보는 인간의 고통은 제목에서 이미 알려주고 있듯이 그림들을 통해서(그림을 예로 들면서... 혹은 시다바리로 삼아) 인간--신체에 대한 여러 지식들과 이해가 가능하도록 해주고 있고, 몇몇 부분에서는 이미 법의학자의... 나체에서 다뤄졌던 내용들도 있기는 하지만 고통이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신체에 대한 또다른 이해들을 얻을 수 있도록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아쉽게도 법의학작의... 나체와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시도와 접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림에 대한 이해와 의학적 지식을 접목시키기 위한 의도가 생각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지기 보다는 좀 더 기계적인 결합으로서 느껴지는데, 몇몇 내용에서는 매끄럽게 두 가지가 결합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시도에서 머물고 있거나 일종의 관련된 일화처럼 다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결합에 대해서 고민은 많았을 것 같지만 결과물로서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진다.

 

이런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시선은 무척 인상적인 시각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고, 그 의학적 접근 속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 특히 여성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섬세함은 본받을 점이 많을 것 같다.

 

인간--신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조금이라도 접해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저자의 저서들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같고, 인간--신체에 대한 육체적-물질적인 접근과 함께 심리적인 관심도 놓치지 않기 때문에 인간--신체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약간이나마 그 관심을 채워줄 수 있는 내용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접한 두 권의 책으로서는 아쉬움이 가득한 맛보기에 머물고 있긴 하지만... 다른 저서들에서는 좀 더 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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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 명화 속 이야기 7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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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서는 항상 관심이 많지만

아는 것 보다는 그저 본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지식이 쌓여지거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진 않고 있어서 높아지는 관심에 비해서는 턱없는 부족함만 더 많이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는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도 하지만 그 그림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알아갈 수 있기도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처럼 법의학자의 시각에서 여러 그림들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법의학자만의 시각에서() 보고 있기 보다는 인간의 신체-육체에 대해서 그림을 통해서 설명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신체적 특징과 몸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점들(특히 여성의 몸)에 대해서 좀 더 흥미를 갖고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통해서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는 시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학적인 차원에서 그림을 논의하기 보다는 의학적인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고, 몇몇 그림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법의학적 시각이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제시들은 상세하고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약간의 맛보기와 같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하지만 법의학자로서 각 그림들을 이해하기 보다는 수준 높은 교양인으로서(혹은 의학자로서) 각각의 작품들을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고, 몸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지만 남성과 여성 중 여성에 좀 더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어서 여성의 몸에 대해서 모르고 있던 것들을 알 수 있는(더 많이 알게 되어서 어따 쓰겠냐만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무엇을 본다는 것과

그것을 봄으로 인해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 바라봄을 그림으로 남기게 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남겨낼 수 있는지를 장황하거나 난해한 설명을 통해서 논의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몸에 대한 의학적인 지식 속에서 여러 이해들이 이뤄지고 있고, 감수성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흔하디흔한 미술평론가들의 길기만 한 작품에 대한 여러 설명들에 비해서도, 역사와 사회학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최근의 시도들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의 접근이 꽤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이들이 쓰는 글을 읽게 될 때면 어떤 경지에 올라선 이들의 글들은 여유와 함께 단순히 하나의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 여러 고민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의 다양함과 앎의 풍요로움이 한없이 부럽게 느껴진다.

난 너무 쫓기는 듯 글이 완성되어지고,

너무 부족하기만 한 지식 속에서 결론이 내려진다.

 

 

 

참고 : 대부분의 내용이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조금은 선정적인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성교육을 위한 자료로서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책을 읽어본 사람으로서는 어른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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