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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잡이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19
이청준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작가 이청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의 작가적 위치와 작품세계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이청준을 전혀 모른다는 말에 무척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몇 있어서 어째서 그런 반응을 보이느냐고 묻기는 했는데, 교과서에도 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는 말에 교과서는 펼쳐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대답만 해줬을 뿐이었다.
어쨌든 전혀 모른다는 말에 무척 한심하다는 반응이 많아서 꽤 알려진 작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물론, 내가 얼빵한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차원이기도 했겠지만),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실제로도 그런 것 같기에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그의 단편 혹은 중편을 모은 모음집 ‘매잡이’는 (그의 작품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의 여러 작품들 중 어떤 수준의 그리고 어떤 주제 속에서 묶여졌는지도 모르고 시기적으로도 어떤 차이 혹은 일관성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한국전쟁-6.25 전쟁 이후와 (아마도) 박정희 시대 이전을 주된 시대적 배경으로 해서 이야기가 짜여 있고 그 시기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지식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고뇌하는 개인들의 모습들을 통해서 각각의 개인들이 시대-사회와 어떤 갈등을 겪고 있고, 그 갈등으로 인해서 어떤 좌절을 그리고 패배를 겪는지를 이야기 속에서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각 단편들마다 편차가 있어서 이런 평가가 적절하지 않을 작품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런 관점 속에서 작품들을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문의 벽’과 같은 작품에서는 시대정신에 대한 논의와 함께 창작자와 편집자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논의하면서 작품 속의 박준이라는 소설가가 어떤 과정 속에서 미쳐가게 되었고 그 미쳐감이 시대와 어떤 갈등과 오해 속에서 이뤄지는지를 냉소적이고 우울한 시선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절박함 속에서 시대를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시대-사회와의 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해소-화해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 좌절하듯이 받아들이고 있고, 시대-사회와 불화하고 있는 예민함으로 가득한 개인들이 어떻게 점점 황폐해져 가는지를 지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음 작품인 ‘뺑소니 사고’ 또한 신문기자가 어떻게 진실을 접근하고 있고, 그 진실을 토해내는 것에 대해서 어떤 내면적 / 외부적 갈등을 겪는지를 그리고 그 진실을 토해내려고 하는 순간 어떤 방식으로 그 진실이 삼켜지고 침묵을 강요받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야기 줄거리로서는 구성면에서 무척 긴장감으로 가득할 것 같지만 작가는 그런 긴장감과 재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엄격함과 진지함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떤 대의를 위해서 진실을 가둬두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집중하고 있다.
‘개백정’과 같은 작품은 한 시대의 풍경을 짧은 스냅 사진처럼 짧은 이야기 속에서 살펴보기도 하고, 어떤 은유를 담고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며, ‘병신과 머저리’와 같은 작품은 결국 자기 세계로 침잠하게 되는 시대와 불화하는 혹은 적극적으로 외부로 나서지 못하는 개인들의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입장-시각-관점은 ‘가면의 꿈’에서 절망적인 결말로 치닫고 있는데,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고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이가 결국은 어떤 식으로도 세상과 어울리는 방식을 찾아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을 통해서 질식할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쓰디쓴 고통을 부족함 없이 들려주고 있다.
어쩐지 작가의 글은 어떤 이야기 구성 속에서 그 이야기의 이끌어감에 집중하면서 재미나 흥미를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을 쏟기 보다는 이야기 구성을 가다듬고 정교하게 만들거나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기 보다는 이야기 속에다 그 자신의 생각을 그리고 시대정신과 시대-사회에 대한 갈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구성이 촘촘히 짜여 있기 보다는 약간은 헐거움을 보이면서도 그 흩뿌려짐 속에서 그 자신만의 생각과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고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찾기 힘든 방식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고,
아마도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까지는 무척 존중받았을 방식의 글쓰기였을 것 같다.
재미만을 쫓고 있고 어떤 관점과 이해, 입장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을 갖지 않는 최근의 작품들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는 판단을 떠나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통해서 그 시대-사회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방식이 아예 논의가 될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안타깝다는 말을 먼저 꺼내야만 할 것 같다.
맨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잔인한 농담과 같은 ‘퇴원’과 잠시라도 위안을 찾기 위해서 어딘가로 향하려고 하는 ‘꽃동네의 합창’이 뒤따르고 있고, ‘눈길’을 통해서 가슴 아픔과 국가의 강압적인 근대화정책 그리고 부모자식 사이의 관계를 경제적인 이해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하는 (자본주의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반대로 과거를 어떤 낭만적-서정적인 분위기로서 기억하려고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작가는 그 낭만-서정에 함몰되기 보다는 결국은 냉정하게 과거를 바라보며 차디찬 끝을 맺고 있다.
마지막 끝자락에 수록된 ‘매잡이’는 앞서 말했던 사회와 갈등을 겪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이미 사망한 것으로 이야기 속에서 처리되고 있는) 민태준의 예언적 글쓰기와 하나의 논리적 완성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기도 있기도 하기 때문에 사회와의 갈등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이청준 개인의 주된 관심 두 가지가 하나로 뒤섞이고 있는 작품이다.
매잡이의 모습-이야기에서는 과거에 대한 목가적인 분위기와 낭만적인 관점을 가져오고 있고, 사냥을 하는 장면에서는 긴장감의 고조와 매잡이의 땀방울과 입김과 같은 숨가쁨들이 무척 강렬하게 전달되고 있으며, 매잡이에 대한 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의 사실성도 인상적인 느낌이라 하나의 작품 속에 여러 성향들이 혼재된 느낌을 갖게 된다.
어쨌든, 모음집 ‘매잡이’를 통해서 알게 된 이청준의 주된 주제들은 시대-사회와 갈등을 겪는 이들에 대한 내용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 속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시대-사회와 갈등을 겪는지를, 어떤 방식으로 좌절하고 패배하고 슬퍼하는지를 담아내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작가의 이야기 구성 때문에 작가의 시각이 일종의 숙명론적 패배주의, 예정된 패배, 허무주의 등으로 비춰질 수 있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시대-사회와 갈등을 겪는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는지를, 등장인물들이 갈등-불화로 인해서 시대-사회의 요구에 맞추거나 화해를 도모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 갈등을 그대로 남겨두며 시대-사회와 어떻게 서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지를 거대한 사회가 어떻게 한명의 개인을 집어삼키게 되는지를 반복하며 검토하고 있고 좌절과 패배의 과정을 반복하며 어떤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가능성의 모색이 가능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는 결말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지만 그것이 패배주의로서 이해되진 않고, 또다른 모색으로서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자신이 틀렸을지라도 틀렸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 보이고,
세상이 그릇됨을 보이고 있다는 확신 속에서 완고함을 보여준다는 점 때문에,
작가의 시각은 무척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세상과의 다툼과 갈등에 무척 지쳐있어 보이는 느낌이 들게 되는 글들이었고,
그 지친 시각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일정하게는 패배를 예상-받아들이면서도 그 좌절과 패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피하고 도망치기 보다는) 벗어나지 않고 이겨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느껴지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척 괴로운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 괴로운 과정을 어떤 식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탐구하는 것 같은 작가의 시각과 함께 글(쓰기)에 대한 여러 논의들과 관심들이 함께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읽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지만 그 쉽지 않은 과정으로 인해서 작가가 찾으려고 하는 시대-사회와의 갈등의 순간들을 좀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 것 같다.
어쩌다보니 이런 작품도 읽게 되었다.
참고 : 작가가 지식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의 모습들에 대해서 깊은 탐구를 보여준다는 것이 반대로 일반 대중-시민들에 대해서는 아예 그들의 갈등은 없을 것이라는 단정이 일정하게 녹여져 있다고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런 식으로 작가가 생각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비판적인 이해나 질문들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일반 대중들이 무척 수동적인 존재들로서 이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