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카이에 소바주 1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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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뒤늦게 나카자와 신이치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것이 04년도 였으니.. 벌써 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고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다지 관심을 갖던 사람도 아니었다.

좋은 수업을 해주던 교수님이 있었는데, 평소에 그다지 칭찬에 인색하던 분이었는데,

신이치 교수가 쓴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 대해서 꽤 괜찮은 책이라는 말에 뭔가 제목도 독특해서 그의 책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그게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의 3권이라는 것과 5권짜리 시리즈로 국내에 번역되었다는 것을 추가로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인 경우 내용이 연결이 되지 않더라도 되도록(말이 되도록이지 그렇지 않은 경우 거의 없다) 순서대로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성격이기 때문에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다.

가격도 저렴했는데...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을...

 

그렇게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내다가,

오랜만에 들린 헌책방에서 시리즈 1권을 구하게 되었다. (^^)/ 

감격!!!!

 

어떤 멍청한 인간인지 이렇게 괜찮을 책을 팔았는지는 모르겠지만(물론 책에 대한 취향이 각자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멍청한건 멍청한거다. 순전히 주관적인 입장이지만... ^^;;;), 책을 발견한 다음에 곧장 집어들어서 꼬오옥~ 감싸안았다.

근데... 살까 말까 고민한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는 살껄 그랬다. 어쩐지 가격과 부피로 포기했는데... 아쉽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을 수 있겠지. 어차피 갖고 있어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이제 학생들보다 더욱 수월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건... 다음 기회에 얘기하기로 하고.

 

그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는 강의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라 되도록 쉽고 서적으로서는 건조한 문체가 아닌 이야기 해주듯이 만들어진 꽤 좋은 책이었다.

내용면에서도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던 신화에 대해서 강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최근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내용이라 레비스트로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간접적으로라도 그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내용은 신화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와 그것이 그렇게 내용이 구성되는 것은 단순한 상상만이 아니라 현실과 중요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내용을 시작하고 몇몇 신화들을 검토하고 분석하면서 그것이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세상과 삶에 대한 예리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중반부는 많은 사람들이 호평하는 '신데렐라' 신화를 분석하며 신데렐라가 급하게 도망치며 떨어뜨린 잃어버린 신발 한짝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검토하며 신데렐라 신화가 오이디푸스와 어떤 유사함이 있는지 설명해준다.

그리고 마무리에 가서 신화와 현실과의 관계와 우리가 신화를 통해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특히나 마무리에 가서 저자의 삶과 현실에 대한 시각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잊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은 시리즈 2권을 읽고 있는데(이것도 선물로 준것을 살짝 빌려서 혹은 뺏어서 읽기 시작했다) 2권도 1권의 연장선상에서 내용이 다뤄지니 그다지 어렵게 읽혀지지는 않는다.

 

레비스트로스의 시각과 신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좋은 책일 것 같다.

그리고... 신화를 분석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꼭 도움이 될 것 같고.

 

2권까지는 이렇게 되었는데... 정작 3권은 어떻게 읽어야하나...

그냥 살까?

 

 

참고 : 3권은 라깡과 맑스 그리고 마르셸 모스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어야지 수월하게 읽힌다고 한다. 나는 못 읽었으니... 그렇다고 하더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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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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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들이 다 좋다고 떠들고 치켜세우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것을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침을 튀기며 칭찬을 하는 '상실의 시대'도 이게 뭐가 재미나고 감동적이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니 시대에 뒤쳐진 사림이거나 감수성이나 감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한참 차이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점점 더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던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남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뭐가 그리도 마음에 들어서 인기가 있을지 궁금하게 된다.

 

어쨌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력은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일본 내에서와 아시아권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국내 작가들의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하루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보다 더 커질 것 같다. 하루키에 대한 나의 개인적 평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어차피 대세는 대세니까.

아마도 자본주의가 지속되고 근대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도시라는 공간이 계속적으로 확장되어진다면 하루키의 영향력도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더욱 커질 것이다. 하루키의 작품은 도시라는 공간을 빼놓고는 얘기할 것이 없으니까.

 

개인적으로는 하루키를 읽을 바에는 차라리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는 것이 더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하루키와 알트먼 감독 덕분에 카버를 알게 되었고 유일하게 하루키에게 고마운건 카버를 알게 해주고 캐츠비를 알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하루키의 고독이나 방황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나 느끼는 감수성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삶의 고독과 건조함을 느끼려면 차라리 카버의 단편들이 더 고독과 건조함은 제대로 느끼게 만들어 주리라 생각한다.

 

어쨌던 쓰잘데기 없는 소리는 이정도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그의 데뷔 25주년이라는 간판을 내세운 작품인 '어둠의 저편'은 홍보물이나 평론가의 평가가 조이스의 '율리시스'네 추천의 글에서 보여주는 니체나 프로이트 등으로 해석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내용은... 그냥 웃자고 하는 내용이니 무시해도 좋을 것 같다.

 

제목만 보면 콘라드의 '어둠의 핵심'이 생각하는데... 하루키가 콘라드일리도 없고(그럴 능력도 안되고), 나름 책 제목하나는 잘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작품은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고,

차가운 도시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어느날을 배경으로 하룻밤에 벌어지는 내용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토스토예프스키나 조이스를 인용하는 평론가의 글을 완전 무시하고 아무생각없이 작품을 읽으면 단지 마리와 에리 다카하시와 회사원이라는 네명의 주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리를 제외하고는 부차적인 인물들이다.

하루키는 나름대로 유기적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그는 그다지 그런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일인칭 주인공을 내세웠던 '상실의 시대'가 더 좋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둠의 저편'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다'라는 생각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 생각인지 소설을 쓸 생각인지 애매하게 된다.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 더 많을 수 있겠지만... 평론가 정성일의 말대로 요즘 소설가들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번역가와 평론가는 그의 이런 글이 작가의 전지적 시점이라는 권위를 버리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낸 획기적인 글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웃자고 하는 얘기치고는 너무 진지해서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예전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주된 감수성이 도시에서의 고독이라는 주제라는 것을 놓고 보자면 하루키의 작품은 이전과 별다르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그는 고독하고 내성적인 주인공들이 주된 등장인물이고,

여전하게 그의 음악적 취향을 전면에 내세운다(이게 무슨 권위를 버렸다는 것인지...),

그리고... 상투적이고 제대로 결론나지 않는 결론을 낸다.

좋게 말하면 열린 결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벌리기만 벌리지 정리하지는 못하는 전형적인 용두사미를 보여주는 작가로 분류될 수 있다. 물론, 이런 판단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작품의 시작은 나름 멋들어지게 시작한다.

도시에 대한 하루키의 시각은 냉정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통찰력이 있다.

그리고... 이후의 진행은 평범하다.

 

마리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인간군상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는 별다르게 목적을 이뤄내지 못하는 것 같다. 만나는 인물들은 다양하고 각자의 사연이 있기는 하지만 카오루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얘기해주지 못한다. 다만 마리가 그들의 수많은 사연들을 알아서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책을 읽는 독자들이 알아서 마리처럼 심정적으로 이해하라고 말해준다. 미안하데... 이건 '인간극장'이 아니다.

 

중국인 소녀의 경우도 그녀의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서글프게 말해주고 있지만 잠시 등장하고 사라지는 캐릭터로 주어질 뿐이다. 고오기의 경우도 그녀의 삶과 처지가 그녀가 말하는 대사와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궤적을 말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직 여성으로 살아가다가 한순간에 혼란스런 삶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하였는데 이후에 마리에게 삶에 대해서 말해주며 다양한 예를 들다가 '칸트'를 말하는 부분은 조금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칸트'라는 단어를 한번 쓴 것 같고 되게 따지고 든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는 25년이나 글을 썼던 사람이고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이다. 그런데 나처럼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도 고졸의 사무직 여성의 삶을 생각하면(학력을 비하하거나 그런걸 읽을 수 있기나 하겠어? 식으로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칸트를 말하기 보다는 보다 다른 방식으로 대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부분은 '어둠의 저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드는 아쉬움이고 이런 나의 생각이 하루키도 갖고 있었다면 보다 신경써서 다듬어야 했을 것이다. 그녀의 삶과 그녀의 말이 충돌이 되고 있기 때문에 고오기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무너지게 된다.

 

이전 장면에서 조그마한 바에서 카오루와의 대화는 순전히 본인의 전형적인 음악 취향과 분위기 취향을 반영하는 장면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LP와 CD 재즈와 영미의 팝 / 록음악에 대한 본인의 취향은 전혀 변할 것 같지도 않고 그의 글의 주된 소재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 배경이 일본이라고 해도 음악은 항상 60~70년대 미국 영국의 팝 / 록음악 위주로 만들어지고 캐릭터들을 그런 음악들을 말한다. 그는 일본인이고 일본에서 대부분의 삶을 살았지만 일본의 특이성 덕분에(2차대전 패전과 함께 미국 주둔과 함께 유입된 미국 문화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와 같은 세대의 작가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쳤고 주된 정서를 만들어준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설정이 국제적인 명성을 갖게 만들어주기도 했던 것 같다.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음악과 재즈를 도시의 고독함과 연결하는 것은 도시라는 공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이니까. 전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을 모두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비슷하니까...

 

여기서 회사원의 존재는 무엇일까?

도시의 고독함과 건조함에 대해서 말해주지만... 나름 성공적이기도 하면서도 작품에서 뭘하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리의 언니인 에리에 가서는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인가? 거의 진공상태의 존재로 다뤄지게 된다. 카프카마냥 다른 공간에 이동했다가 다시 이쪽 공간으로 온다는 것은 뭘 말하자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 적힌 평론가의 글이 나름 설명을 해주고 있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워낙 하루키에 관심이 없으니 이렇게 혹평하는 것이겠지만.

 

하루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군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작품활동을 더욱 정진해 나가겠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글은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그러기에는 그의 글은 너무 표면적이다. 마치 브라운관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듯이 말이다.

 

그의 캐릭터들은 항상 그렇듯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민이나 표현을 말로써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들이 표현하려는 것은 말로써가 아니라 다른 장치들을 통해서 표현한다. 60~70년대의 음악들이나 러브호텔이나 사무실이라는 공간, 밤에서 새벽으로 향하는 차가운 공기 등등등 그들은 여전히 표현하기 힘들다가 그냥 지쳐버린다. 그리고... 아마도 하루키는 앞으로도 제대로 표현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는 이미 자신의 스타일을 너무 완성해버려서 그러한 글쓰기를 벗어나 글을 쓰려는 것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도시의 고독이나 회색빛 건조함에 대해서 그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하겠지만 그걸 알려고 그의 책을 읽으려 한다면 시간낭비일 것 같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그건 읽지 않아도 느낄 일이 수도 없이 생길테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하루키는 최악의 작가인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리고... 선물을 한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역시나 하루키는 좋지 않은 선물인 것 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몇일동안 읽지 않고 딸랑 이틀에 걸쳐서 읽었으니 시간낭비는 적었다는 것이다.

 

아무런 결론도 없고,

아무런 교훈도 없다.

그냥 단순히 고독하다는 것이고,

누군가 이해해 줄 사람을 찾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도시라는 공간을 떠날 생각도,

아니면 그 공간을 전복시키려는 생각도 없다.

지극히 우울하고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를 바랄뿐이다.

 

이런 감정은 젊은 시절 SMITHS 와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감정이면 그럴때도 있어야지 젊음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지만... 중년의 아저씨가 아직도 그때처럼 제대로 설명도 못하면서 질질짜면 밥맛으로 보인다.

 

데뷔 50주년이면 조금 나아지려나 모르겠다.

 

 

참고 : 지극히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이 쓴 글이다. 하루키 팬이라면 하나 하나 거론하며 반론할 수 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정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는 식으로 넓은 마음으로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한동안 소설책만 잔뜩 읽었는데... 이제 뭘 읽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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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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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현의 노래'를 읽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소설책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이번에도 소설을 읽게 된 것 같다.

 

김훈이라면 최근에 발매된 '남한산성'도 있지만, 이건 아직은 헌책방에서 구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몇년 뒤라면 구해서 읽을 것 같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은 '칼의 노래'를 읽었기 때문에 두번째로 접하게 되는 것인기는 한데,

책을 읽다보니 문장과 글에서 전형적인 김훈의 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현 재 문학계에서 당대 최고의 글쟁이라는 칭호가 따라다니는 김훈은 그런 수식어가 무색하게 문학가와 글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반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것으로 밥벌어 먹기는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큰 의미는 두지 않는 것 같은... 다른 문학계에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파격적인 발언들을 하고 있고(원래는 저널리스트였으니 이력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크게 다를 것이다), 평소에도 약간은 저런 말을?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글도 흥미롭지만 그의 평소 생각과 행동도 흥미로운 사람이다(과연 4천만원짜리 자전거는 구입했을까? ^^;;; 한번 타보고 싶은데...).

 

그 런 의미에서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행동하려고 까부는 사람들에게는 김훈은 꽤나 골치덩어리일 것이다. 이문열 정도면 우습게 밟아줄 수 있고, 이문열 본인도 생각하는 것이나 실처하는 것이나 좀(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많이) 허접하기 때문에 한마디만 해도 개때처럼 달려들지만, 김훈이 말하면 아예 못들은 척 하거나 '난 쟤 싫더라'라며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번 개기려고 해봐도 제대로 상대하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그를 보고 정면으로 맞대응을 하는 사람은 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식으로 조선일보 쪽이고 한나라 쪽이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조금 껄끄러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애매하기는 하지만 어쨌던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발언과 생각을 갖고 있어 보이기 때문에 항상 본인은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논쟁의 중심에서 빠져나가기 힘든 사람이다. 당장 '남하산성'만 봐도 그것을 문학적으로 평가하려는 사람은 거의 전무한 것 같으니까. 대부분 정치적으로 그의 글들을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해도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벗어나기는 힘드니까. 그건 삶을 살아간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고, 다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의 노래'는 김훈의 초기작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칼의 노래'의 성공 덕분에 많은 관심속에서 출판된 작품이다.

그 성공을 이어갈 수 있기도 한 좋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칼의 노래'가 더 좋았다.

 

시대적 배경은 가야가 무너지기 직전의 배경으로 죽어가는 왕과 궁중악사 우륵과 제자 니문, 대장장이 야로와 그의 아들 야적, 우륵의 여자인 비화와 니문의 여자가 되는 아라, 그리고 신라의 이사부까지 주된 등장인물은 꽤 많다.

전 작인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서 이순신의 말과 김훈 본인의 생각을 절묘하게 융합시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실존했던 인물들을 통해서 김훈의 생각과 당시의 사회와 김훈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재를 교묘하게 엮어내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우면서도 생각이상으로 까다롭게 느껴졌다.

심심하면 헐겁네 어쩌네 하면서 투정부리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헐겁기는 커녕 팽팽하다 못해서 건드리면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칼의 노래'와의 차이점은 등장인물들이 대폭으로 늘었다.

' 칼...'은 이순신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모든 것이 이순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현...'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삶에 대한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에 약간은 복잡하게 느껴진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인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초반의 중심은 죽어가는 왕과 우륵과 야로를 통해서 이야기가 구성된다면,

후반의 중심은 이사부와 우륵과 야로로 구성되어있다.

 

제 목 때문인지 우륵이 이야기의 중심인물처럼 다뤄진다고 생각하며 읽게 되기는 하지만, 우륵과 야로의 대비를 통해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이사부가 중간에 끼게 되면서 이야기는 보다 종잡을 수 없게 이어나가게 된다. 이것 저것 어떻게 내용을 만들지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말끔하게 정리를 하지 못한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김훈 본인은 '현...'에 대해서 만족하는지 아니면 불만이 뭐였을지 궁금하다.

 

초반이 죽어가는 왕과 죽어가는 국가의 모습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남을지와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면, 후반은 보다 복잡하게 나아간다.

 

'칼...'이 전체적으로 어떻게(어디서) 죽을지에 대한 작품이었다면,

'현...'은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고민이 주된 내용이었다.

대 장장이 야로, 우륵, 이사부는 죽고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이순신의 경우 끝없이 어디서 자신이 죽을지 고민하고 있는 존재였다면 반대로 '현...'는 어떻게 살아남을지와 현재라는 지옥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고민하는 존재들이다.

두작품 모두 시대의 공기에 짓눌려 있는 인물들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다른 것 같다.

 

이사부의 경우가 이순신의 모습과 약간씩은 겹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모든 인물들은 고된 삶과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끝없이 힘겨워하고 고민한다.

그 러한 고민은 본인들의 육체적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 이사부나 다른 인물들은 끝없이 육체적으로도 힘겨워 하고 있다. 하지만 결코 삶을 포기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다른 허무주의적 작품과의 차이점일 거이다. 고통스럽지만 죽으려 하지는 않느다.

하지만 작품의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 죽던지 죽기는 죽는다.

그리고 그들은 무언가를 남겨놓고 죽는다.

 

야로는 자신이 만들어낸 무기.

우륵은 금.

이사부는 실질적으로 확장된 영토.

 

그 들은 고통스러운 삶속에서 무언가를 남기고 떠났고, 작품은 혼란스러운 시대와 그러한 혼란스러움과 밀접하게 연결된 인물들을 보여준다. 그것을 김훈은 등장인물들을 괴롭히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피로를 통해서 읽는 이들이 느끼도록 만든다.

 

이런 시대를 통해서 김훈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단순하게 얘기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생각보다 쉽게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어떻게 말을 꺼내고 싶어도 말하려는 나도 확신이 들지 않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희미한 느낌이기 때문에 그냥 꺼내지는 말을 다시 밀어넣겠다.

 

페미니스트에게도 김훈은 공공의 적으로 분류되기 쉬운데,

아마도 그의 글에서 다뤄지는 여성들의 모습과 성적인 표현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글이 약간은 양성애적인 성향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솔직히 웃자고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말하기가 힘들다.

그냥... 읽다가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그것에 대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주제파악을 하고 다른 누군가가 지적하겠지... 라고 생각하련다.

나같은 인간이 다루기에는 너무 까다로우니까.

 

어쨌던 '현...'은 (개인적인 생각에) 완성도가 약간은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분명 김훈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칼...'로만 생각할 수 없도록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딸랑 화제작 하나 내놓고 사라지는 음악인도 많지만 작가도 꽤 있으니까.

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당대의 현실과 고민을 가장 고통스럽게 묘사하는 작가이도 한 것 같다.

'남한산성'은 어떨지 궁금하다.

 

최근에 뜨고 있는 작가들 (박민규네 정이현이네 하는...)과는 다르게 중견작가로서 거의 유일하게 화제의 중심에 있는 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기를 바란다.

밝아지는 샛별도 아름답지만,

사그러들기를 거부하는 별은 감동을 느끼게 해준다.

 

참고 : 김훈의 글을 항상 부분적인 것까지도 세세하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특 정 공간에서 인물들이 있고, 그들이 있는 공간에 대해서 세세하게 묘사를 한다. 그러한 묘사는 장소나 물건에 대한 표현만이 아니라 장소 자체에 대한 감정과 분위기 그리고 느낌도 말하기 때문에 읽다보면 뭘 읽었는지 헷갈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특히나 살짝 졸다가 읽으면...). 그리고 대화가 진행된다. 끝없이 이런 스타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런 것이 김훈의 글쓰기 방식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여름이라는 핑계가 있기는 하지만.... 더럽게 글 안 써진다.

아~~~ 또 글을 망쳤다.

언제쯤 잘 쓰려나~~~ ㅜㅜ

 

닦고, 조이고, 기름치면 잘 할려나? ^^;;;

읽으면서 놓친게 너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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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이책을 구입하는 사람에게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영향을 미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영화를 너무 좋게 봐서 그런가?

ㅎㅎ 책을 사게 되어버렸다.

원래는 아가씨에게 선물은 해줬는데, 생각보다 책도 괜찮았다고 해서 나도 한번 읽어 보았다.

내용은 생각보다 짧고(2시간이 소요되는 버스에서는 한번에 책한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추가로 단편 두개가 더 있어서 나름 재미나게 읽게 되었다.

관심없게 생각했었는데... '파프리카'의 원작을 쓰기도 했단다. 전혀~ 몰랐었어~

 

영화를 너무 재미나게 봐서 책을 보고 냉큼 집어든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떠나라~ 가 아니라 원작은 영화와 조금은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나... 주인공이 다르다.

???

머리속에서 물음표가 잔뜩 생겨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원작은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모로 나오는 미술관 큐레이터의 젊은 시절에 겪은 이야기다.

그것을 제외하면 몇몇 설정을 빼놓고는 영화와 유사하게 내용은 이어진다.

 

달라진 설정들을 일일이 거론하기 보다는 그냥 즐기라고 말하고 싶지만,

단순하게 말해서 영화와는 다르게 덜 발랄하고, 보다 내성적이다.

그리고 타임리프 라는 것이 영화에서는 특정 물건을 통해서 몸에 이식되어 버려졌지만, 책은 약품처럼 다뤄진다.

 

그런 설정들을 제외하면,

읽으면서 영화에서는 이모의 얘기와 사진들에서 별다른 감정이 없었지만 원작을 읽게 되니 조금은 새롭게 보여지게 만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설 원작이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니... ㅎㅎ 나는 거꾸로 감상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너무 영화와의 비교를 하면서 말하게 되었는데,

책 내용에 대해서 말을 하면,

작가가 심리학에 대해서 많은 지식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소녀가 '시간을 달리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실험실에서의 라벤더 향과 실신, 그리고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은 마치 여성 히스테리(혹은 신경증) 환자들의 경우와 상당히 비슷하다.

이런 생각은 두번째 작품인 '악몽'에서 소녀가 갖게 되는 경험과 소녀의 동생의 불안을 해소하게 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꿈과 무의식이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게 만드는지 예리하면서도 흥미롭게 써낸 내용을 보면 보다 확신하게 만든다.

세번째 내용은 약간 만화적 버전의 필립 k 딕이 생각나는 작품이었지만...

 

첫번째, 두번째 작품만 놓고 보자면 작가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쪽 분야에서 말하는 신경증과 히스테리의 증상과 매우 유사한 증상이 작품의 주인공에게 일어난다.

물론 작품 속 소녀들의 증상의 원인들이 성욕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말 그래도 외적 증상만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게 깊이 있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 몰라도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는 어느정도 자신만의 개성이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책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름 괜찮은 선물이 될만한 짧고 읽기 편한 책이었다. 여름철 피서를 떠나는 주변사람들에게 가서 읽으라고 선물해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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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 프레드 (양장) - 보잘것없는 일상을 특별한 날들로 만드는 유쾌한 이야기
마크 샌번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친척에게서 선물은 받은 책인데,

얇기도 얇고,

내용도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는 책이기 때문에 하루에 휘리릭~ 읽어나갔다.

 

요즘에는 세상살이가 힘들다 보니 사람들이 가벼우면서도 어느정도 사회생황에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 책들을 많이 읽는 추세인데, 이런 시대적 흐름에 부흥한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적이다.

개인적으로 항상 말하지만, 이런 책들은 출퇴근하면서 읽기에 적합하거나 몇시간동안 비행기나 버스를 통해서 어딘가로 가게 되는 경우에 가는동안 읽고 버릴만한(물론 책이 아깝지 않다면) 책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다지 좋게 평가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읽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에 이런 책들을 읽는 사람들을 모욕할 생각은 없다.

 

책의 주된 중심내용은(이런 책들은 대부분 한가지의 교훈을 알려주기 위해서 수십에서 수백번 같은 내용과 예들을 불러온다) 능동적이로 주어진 일을 받아들이고 항상 긍적적인 생각을 잊지 말라는 누구나가 얘기하며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행동(절대 생각이 아니다)을 열심히 해보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행동에는 대가 없는 행동이어야 하고(저절로 따라온단다), 의식적이지 않게 해야한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인다.

 

작가의 생각이 옳은 소리도 있기는 하고,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말해주기 때문에 그다지 불만도 없다.

그리고 몇몇 작품에서 나오는 유머는 나름 괜찮았고(자기계발 서적에는 꼭 유머가 있어야한다).

 

하지만!

이책에는 이상하게 사람 속을 뒤틀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저렇게 좋게 해석하면 좋은 말로 들리지만,

나처럼 뭔가 빈정거리고 싶은 사람에게는 냉소적인 한마디를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책속에서는 항상 밑에서 있는 사람이 위를 보며 어떻게 해줘야할지 끝없이 생각하고 움직이라는 말로 들리게 된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얼마만큼 관심갖고 노력하느냐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반대로 얼마만큼 너희들에게서 최대한의 노동력을 뽑아낼 것이냐? 와 관련이 된다.

개개인들에게도 이런 성향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앞으로의 직장생활에서 더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보다 큰 공은 경영자(사용자)에게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책은 읽는 이들에게 임금관계를 통해서 제공하는 노동력에서 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자하라고 말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보다 능동적으로 길들인다는 뜻이다.

 

작가는 끝없이 대가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경영자의 입장에서 모든 이들이 프레드처럼 되야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물론 있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이책은 이상할 정도로 순진하고, 사람들을 보다 활력있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도록 길들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은 그정도까지 민감하게 말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읽을수록 초반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참고 : 책표지에 영문제목도 함께 프린트 되어 있는데... 한글제목과는 전혀 엉뚱한 원어 제목인 것 같다. 영어는 쥐뿔도 모르기는 하지만... 저 단어가 '우체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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