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하수정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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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Olof Palme

1927.01.30 1986.02.28

 

 

 

올로프 팔메

 

팔메에 관해서는 스웨덴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조금씩은 지나치듯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에 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은 부족하기만 했었다.

 

정치적으로 많은 업적이 있는 인물이지만 그의 갑작스럽고 극적인 죽음이 항상 먼저 꺼내지고 있어서인지 여러 가지로 신비스러운 인물처럼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복지에 관해서 더 자주 언급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스웨덴에 대한 논의가 부쩍 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그러다 금새 시들어지고 있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스웨덴이라는 이상적인 국가-사회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는 의문스럽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갔던 이들의 노력과 힘겨움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르면서 그저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를 꿈꾸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지금의 스웨덴이 되도록 앞장섰던 대표적인 인물들 중 한명인 올로프 팔메에 관한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는 어떻게 팔메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그리고 그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서문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고, 한국 사회와는 정말로 전혀 다른 사회인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잠시 설명해주며 팔메라는 인물을 통해서 스웨덴 사회를 들여다보려는 의도를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우선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는 팔메의 극적인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검토를 하고 있고, 사실관계와 음모론 그리고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여러 합리적인 추론들을 통해서 팔메의 갑작스러운 죽음 직전 스웨덴 내부적인 상황들과 외부적-국제적인 상황들을 함께 살펴보며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팔메가 스웨덴 사회에서 그리고 국제적인 차원에서 어떤 인물이고 존재였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죽음에 대한 검토 이후 저자는 팔메의 출생부터 시작해서 남다른 특출함을 보여준 어리시절과 부유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어째서 사회주의-사민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노동자들의 정당이라고 평가되는 사민당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를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팔메의 성장과정과 함께 그가 성장하던 시기에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그리고 스웨덴은 어떤 사회였는지를 두루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팔메가 어떤 고민과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으며, 팔메의 정치적, 개인적 삶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인물들에 관한 설명들도 함께 이어지면서 좀 더 팔메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논의를 잘 진행하고 있다.

 

스웨덴의 정치 환경과 사회의 모습과 문화를 상세히 설명해주며 그런 조건 속에서 팔메가 얼마나 독특한-쉽게 뒤섞여지지 않는 존재였는지를 알려주고, 그와 함께 팔메의 정치적 행보와 특징들, 어떤 목표를 갖고 있었고 그 목표를 위해서 어떤 노력들이 이어졌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스웨덴만의 특징들과 주어진 조건 속에서 무엇을 꿈꾸고 어떤 방식으로 꿈을 현실에 적용했는지를 알아가니 좀 더 팔메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그래서인지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좀 더 안타까워지게 되는 것 같다.

 

스웨덴 사회의 특징들과 여러 문화적 독특함을 자주 알려주고 있어서 올로프 팔메에 대해서만이 아닌 스웨덴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단순히 한명의 정치인을 통해서 그 사회의 모든 것을 알기는 힘들겠지만 워낙 굵직한 업적이 있었던 정치인이라 스웨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빼먹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 팔메에 대해서 무척 상세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올로프 팔메 -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스웨덴 사회로 향해갈 수 있는 훌륭한 초대장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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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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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 https://twitter.com/kohjongsok

 

 

고종석의 저서는 고작 코드 훔치기정도만을 읽었을 뿐이라 그에 대해서 뭐라 아는 척하는 것은 너무 나서는 것이지만 워낙 트위터를 통해서 온갖 논의들을-수다들을 접했기 때문인지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항상 관심을 갖고 있어왔고, 게다가 그처럼 한국어를 우아하게 사용하는 이도 드물다는 말을 자주 접해왔기 때문에(쉽게 수긍할 수 있기 때문인지) 언젠가는 그의 글-책들을 하나씩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다행히 그런 생각은 생각보다 이르게 실행에 옮기게 된 것 같다.

 

우연히 구하게 된 히스토리아는 그가 한국일보에 매일(같이) 실었던 글들을 하나로 모아놓은 책이고, 일부를 추려냈다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글이 갖고 있는 매력의 (진면목까지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확인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신문에 실린 글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실관계와 여러 기본적인 정보들이 간추려진 다음에야 그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견들이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정된 지면에 여러 제약조건들 속에서 그 나름대로의 생각과 관점을 빼어난 글재주로 담아내고 있다... 고 말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런 놀라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곳곳에 담겨져 있기는 하지만 너무 기대감을 갖고 읽어내기 보다는 그가 생각하는 매일 매일에 대한 온갖 사연들 중에서 어떤 것들을 선택하고 추려내었는지를 호기심을 갖고 읽어내게 되는 것이 먼저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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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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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그날 과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관해서 적어놓은 히스토리아는 그날에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단순히 어떤 이의 삶의 시작이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죽음이기도 하며, 사건일 때도 있고, 물건-사물에 관한 내용들도 있으며, 그날 그 자체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게 될 때도 있는 등 여러 방식으로 매일 매일을 바라보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지금 현재-오늘을 생각해보도록 노력하고 있다.

 

근대 이후에 있었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가끔은 근대 이전 중세와 고대에 관한 내용들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모든 날들이 역사적 순간들로 가득하다고 볼 수 있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루 하루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매일들이 쌓이고 모이면서 혹은 생각지도 않던 과거가 지금 현재와 긴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우리들의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저자 나름대로의 관점과 기준을 갖고 매일 매일에 일어났던 온갖 중요한 순간들을 기록했으니 저자만의 방식으로 역사적 순간들을 나열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동안 관심을 기울였던 인물들에 관한 태어남과 삶의 마감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걸 떠나서, 글쓰기의 모범을 보인다고 말할 정도의 인상적인 수준은 아닐지라도 한정된 분량 속에서 어떻게 글의 완결성을 갖추도록 만들고, 여러 간략한 사전 정보들과 설명 그리고 자신만의 해석을 적절한 조화 속에서 마무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며 읽어나가도 꽤 흡족한 책읽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편애 속에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적절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읽어보면 알 것이다.

어떤 생각 속에서 이런 말을 꺼내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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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쓴 한국현대사
강만길 지음 / 창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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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의 근대사와 현대사에 대한 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뭐라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컸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중 구하게 된 고쳐 쓴 한국현대사는 어렵게 읽지 않을 수 있는 서술이라 좋았고, 일제강점기 시절 이후의 현대사를 장황하지 않게 핵심적인 내용들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무척 좋았었다.

 

저자인 강만길에 대한 명성과 평가는 이미 여러 방식으로 이뤄졌고, 그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입장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하나의 시선으로써 존중할 수 있다는 것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의심스러운 생각을 하며 읽지 않을 수 있어서 편하기도 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전두환 정권까지의 시대에 대해서 서술해주고 있고, 각 장마다 간략하게 알려주고 하려는 내용을 설명한 다음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서설을 읽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서설을 읽은 후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어지는 상세한 논의가 건성으로 다뤄지는 것도 아니고 세부적인 내용에서 좀 더 흥미로운 내용들도 있기에 꽤 재미난 책읽기가 된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가 재미를 느끼며 읽게 되기보다는 울분과 분노 그리고 답답함으로 가득한 역사이기 때문인지 읽는 과정은 그다지 즐거운 경험이진 않았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알기 쉽게 전달하려고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인지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다른 입장들을 갖고 있을지는 몰라도 충분히 합의가 가능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논쟁적인 부분들이 적어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읽게 될 것 같다.

 

워낙 교과서 관련으로 소란스러움을 경험해서인지 이런 책을 접하니 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논쟁들에 한심함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아는 것이 부족해서인지 저자가 다루는 내용들 중 많은 것들이 생소했는데, 어려운 내용들을 쉽게 정리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면 기초적인 지식을 쌓는 책으로도 알맞을 것 같다.

 

이걸 뼈대로해서 좀 더 자신이 관심을 갖게 되는 시대에 관심을 높여가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것을 떠나서도 근현대사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앎을 높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항상 그렇듯...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고 싶을지라도 최소한 알아야할 것들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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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 애니메이션과 인문학, 삶을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하다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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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 http://blog.naver.com/ghost0221/60214506482


 

 

서평에 대한 요청을 받아서 읽게 된 ‘분노사회’와 함께 받게 된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 애니메이션과 인문학, 삶을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하다’는 동일한 저자의 글이기 때문인지 조금은 비슷한 방식의 논의와 결론들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분노사회’에 비해서는 좀 더 가볍게-쉽게 읽어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서 오히려 ‘분노사회’를 읽기 전에 읽는다면 보다 ‘분노사회’에서 저자가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볍거나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 별 것 아닌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특별히 주목할 내용은 없고 그저 애니메이션에 대한 단순한 감상평에 불과하다는 뜻은 아닌데, ‘분노사회’가 되도록 정교한 분석과 틀을 만든 다음 논의를 이끌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을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애니메이션...’은 그런 고민 보다는 어떻게 저자가 다루려고 하는 논의들과 애니메이션들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더 느껴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선은 읽기 쉽도록 만들려는 느낌이 컸는데, ‘분노사회’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에 대해서 그리고 그 분노를 느끼는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왜곡된 구조와 여러 문제점들을 상세하게 파악하려고 애썼고(혹은 그 기본적인 틀을 만들려는 생각이 강했고) 그런 논의 후 일종의 대안으로써 올바른 삶의 태도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을 하려고 했다면, ‘애니메이션...’은 근대와 현대에 관한 저자 나름대로의 구분과 근대와 현대로 나눌 수 있는 여러 조건들, 인식구조, 관념과 생각, 삶에서의 우선순위, 삶의 태도, 타자와 외부에 관한 이해 등을 살펴보고 있고, ‘분노사회’와 마찬가지로 마무리 단계에서는 올바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와 주어진 조건과 강요받는 삶의 방식과 태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입장과 태도 그리고 선택과 실천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분노사회’에 비해서는 좀 더 (저자의 말마따나) 뜬구름 잡는 논의들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서 현대사회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해하려고 의도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세상과 갈등을 겪고 화해를 하려고 하며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를 고민하려는 논의들로 생각한다면 좀 더 근본적인 입장에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적절한 위치와 거리감을 혹은 입장과 태도를 찾으려는 기초 단계처럼 생각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특이한 점은 그런 논의를 위해서(혹은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꺼내는 소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들이라는 것인데, 한때는 일본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 때문에 자주 다뤄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마치 유행처럼 그런 논의들이 부쩍 줄어들었고 이전처럼 소수만이 애니메이션을 조금은 진지한 방식으로 바라보려고 하고 있을 뿐이라 저자의 시도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되도록 다양한 사람들이 혹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 (인문)학자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학자들)의 모습에 약간의 아쉬움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대중적인 방식의(대중들을 위한) 글쓰기 혹은 노력이 무조건 옹호되거나 환호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때때로 너무 근엄함만을 찾으려고 하고 있고, 엄숙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오랜만에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무언가를 논의하는 글을 읽게 되어서 무척 반가움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는 우선 중세 이후의 근대와 현대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구분을 통해서 각 시대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고,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를 설명해준 다음 근대와 현대의 특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두 작품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렌라간

원피스

 

다행히 두 작품 모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작품이기 때문에 저자의 논의도 그리고 작품과 내용을 토대로 설명해주는 몇몇 구분들도 쉽게 이해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두 작품을 접했을 때 전혀 생각하지 않던 이해들도 있었고, 어떤 내용에서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하면서 흥미롭게 근대와 현대에 대해서 그리고 그렌라간과 원피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저자는 현대라는 시대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인식의 지평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인식구조나 정서를 파악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일종의 감수성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불안함-불안감으로 정리할 수 있는 현대인의 정서와 그밖에 여러 다양한 감수성을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현대인들의 내면과 심리 상태에 대한 대안으로 혹은 부정성에서 벗어날 수 있기 위한 제안을 내놓으며 세편의 작품을 추천하고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

충사

진격의 거인

 

아쉽게도 위에 언급된 작품들 모두 줄거리조차 자세히 모르는 작품들이라 저자가 논의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논의가 우애와 자존감 그리고 자신을 좀 더 우선하는 입장을 옹호하고 어떤 귀감을 찾으려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입장들이 이미 ‘분노사회’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느껴졌기 때문에 각 작품들에 대해서 정보가 부족하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저자의 논의에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저자는 현대사회가 요구하고 강요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혹은 조금은 다른 입장으로 향해 스스로의 삶을 관조할 수 있고 스스로의 의지로서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기를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내놓고 있고, 이에 대한 대답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는데,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슬픔을 이겨낸 받아들임으로써 대안을 찾으려 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들

 

위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저자는 현대사회의 적개심과 적대감 분노와 증오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줄일 수 있으며 지금과 다를 수 있음을 혹은 열린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서 일상에 대한 관조와 지겨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과거에 매몰되거나 변화에 대한 거부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향한 과거와의 단절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혹은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인지를, 그리고 그런 세상에 대한 시선을 스스로에게 향했을 때에도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만 하는지를 모색한다고 볼 수 있다.

 

‘분노사회’는 그것을 분노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고민한 내용이었다면, ‘애니메이션...’은 좀 더 포괄적인 방식으로 외부와 내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꽤 흥미로운 시각이었고, 여러모로 동의할 수 있을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참고 : 저자가 잠시 착각을 했는지 ‘마루 밑 아리에티’나 ‘고양이의 보은’, ‘귀를 기울이면’과 같은 지브리 작품들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으로 언급하고 있고, 혹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는데, 대단한 실수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감독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제작사는 동일하게 지브리일지라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논의가 이끌어져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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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친일파 - 돌베개인문.사회과학신서 62
임종국 지음 / 돌베개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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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www.youtube.com/watch?v=JFpPJYEZSpY


 

 

임종국

 

친일연구, 부일협력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이고 선구적인 연구자이지만 그에 대한 명성은 그리고 그에 대한 언급은 그다지 자주 접하지는 못했었다. 스쳐지나가듯 들었을 뿐이고, 그걸 떠나서 일제강점기 시절에 관한 연구나 내용들을 조금은 건성으로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 여러모로 아는 것보다는 모르거나 알고 있는 척하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었다.

 

한국의 근현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에도 일제강점기 시절이 무척 여러 가지로 중요한 시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간단하게만 이해하려고 했을 뿐이고 좀 더 상세하게 파고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순전히 호기심을 느꼈을 뿐이지 그 관심을 채우려고 하려는 노력의 부족함을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임종국에 대해서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들에는 무관심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기에 부끄럽게만 느껴질 뿐이다.

 

친일파

 

듣기만 해도 조금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게 되는 그리고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친일파라는 존재들이 그리고 부일협력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는 여전히 명확하게 판단되지도 않고 구분되지도 않게 되는 것 같다. 저자가 말하듯 길고 긴 세월동안 일제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알게 모르게 협력과 지배에 어느 정도 협조를 하지 않은 사람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누구나 죄의식을 느낄 수 있고, 반대로 누구나 조금씩이라도 협력을 했다는 점을 말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 조금은 복잡하게 그리고 쉽게 구분될 수 없는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어려움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이들을, 협력을 통해서 개인적인 이득과 권력을 위해서 온갖 악랄한 행동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이들에 대해서는 단죄를 해야만 한다는 주장을 누차 얘기하고 있으며, 저자의 논의를 알기 전에는 무척 단호한 구분을 내세울 것 같아 보였지만 여러 조건들과 상황들을 고려하며 고심 끝에 나름대로의 구분과 판단의 근거를 말해주는 설명을 접하니 얼마나 여러 어려움들이 있는지를, 그리고 저자의 노력이 어떤 식으로도 옹호되거나 갈채를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음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수많은 이름들과 

그들이 보여준 다양한 협력과 협조들

적잖이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조금씩만 알고 있던 내용들을 갑작스럽게 너무 많이 알게 되니 이미 느끼고 있던 답답함과 불편한 기분은 더욱 커져버릴 뿐이었다.

 

읽는 사람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데, 직접 수많은 내용들을 접하고 분류하며 사실관계를 다각도로 따져보았던 저자의 기분은 어땠을까? 속이 타들어간다는 말이 어떤 말일지 조금은 이해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청산과 정리

 

꽤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었던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그런 얘기를 꺼내야 하는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듣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돌이켜보면 그리고 따져서 묻고 이것저것 확인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에 여전히 지금 현재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친일에 관한 문제는 그리고 부일협력에 관한 문제는 무척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들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에 의해서 드넓게 펼쳐진 수많은 논의들을 좀 더 확장시키고 정교화 시키며 검토해야만 할 것 같다.

 

친일, 부일협력과 정반대에 위치했던 독립운동을 어떻게 기억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이어지도록 하고 과거를 가꿔야만 하는지, 그리고 친일과 부일협력이 어떻게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이들에게 혹은 그들의 맨얼굴을 들춰내려는 이들에게 무슨 짓들을 저질렀는지를 알아야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으로써 한국사회를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려는 사람들의 행동은 여전히 독립운동이 되어버리는 것과 그런 이들을 억압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과거의 친일과 부일협력을 하는 이들과 마찬가지의 존재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실록 친일파’는 저자가 여러 방식으로 발표한 글들이 모여져 있기 때문에 조금은 중복된 내용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선 후기 시절의 친일파들의 행적들과 본격적으로 활개를 친 강점기 시절 그리고 잔뜩 움츠리고 있다가 다시금 권력을 휘두른 해방 이후로 구분해서 어떤 식으로 배신과 배반을 했었으며 앞잡이 노릇을 했는지 입소문이나 어정쩡한 정보가 아닌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사실에 입각해서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서문과 함께 여러 방식으로 저자의 열정적인 생각과 주장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곳곳에 담겨져 있으며, 어떤 식으로 일제가 침략을 체계적으로 했었는지, 그리고 침략의 과정 속에서 친일파 부일협력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종종 전혀 모르던 내용들을 접하기도 하고, 얼떨떨한 기분이 들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들도 많았지만 워낙 방대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읽어내는 것도 조금은 버거웠었다.

 

워낙 아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여러 내용들을 접하면서 하나씩 알아가야만 할 것 같다.

 

너무 모르는 것들이 많다.

조금씩이라도 알아가면서 틀린 부분들을 찾아내고 조금이나마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도록 애써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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