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 애니메이션과 인문학, 삶을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하다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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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사회 : http://blog.naver.com/ghost0221/60214506482


 

 

서평에 대한 요청을 받아서 읽게 된 ‘분노사회’와 함께 받게 된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 애니메이션과 인문학, 삶을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하다’는 동일한 저자의 글이기 때문인지 조금은 비슷한 방식의 논의와 결론들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분노사회’에 비해서는 좀 더 가볍게-쉽게 읽어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서 오히려 ‘분노사회’를 읽기 전에 읽는다면 보다 ‘분노사회’에서 저자가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볍거나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이 별 것 아닌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특별히 주목할 내용은 없고 그저 애니메이션에 대한 단순한 감상평에 불과하다는 뜻은 아닌데, ‘분노사회’가 되도록 정교한 분석과 틀을 만든 다음 논의를 이끌기 위해서 고심한 흔적을 많이 느낄 수 있다면, ‘애니메이션...’은 그런 고민 보다는 어떻게 저자가 다루려고 하는 논의들과 애니메이션들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더 느껴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선은 읽기 쉽도록 만들려는 느낌이 컸는데, ‘분노사회’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에 대해서 그리고 그 분노를 느끼는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왜곡된 구조와 여러 문제점들을 상세하게 파악하려고 애썼고(혹은 그 기본적인 틀을 만들려는 생각이 강했고) 그런 논의 후 일종의 대안으로써 올바른 삶의 태도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을 하려고 했다면, ‘애니메이션...’은 근대와 현대에 관한 저자 나름대로의 구분과 근대와 현대로 나눌 수 있는 여러 조건들, 인식구조, 관념과 생각, 삶에서의 우선순위, 삶의 태도, 타자와 외부에 관한 이해 등을 살펴보고 있고, ‘분노사회’와 마찬가지로 마무리 단계에서는 올바른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와 주어진 조건과 강요받는 삶의 방식과 태도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입장과 태도 그리고 선택과 실천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분노사회’에 비해서는 좀 더 (저자의 말마따나) 뜬구름 잡는 논의들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서 현대사회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있고, 이해하려고 의도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세상과 갈등을 겪고 화해를 하려고 하며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를 고민하려는 논의들로 생각한다면 좀 더 근본적인 입장에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적절한 위치와 거리감을 혹은 입장과 태도를 찾으려는 기초 단계처럼 생각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특이한 점은 그런 논의를 위해서(혹은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꺼내는 소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들이라는 것인데, 한때는 일본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 때문에 자주 다뤄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마치 유행처럼 그런 논의들이 부쩍 줄어들었고 이전처럼 소수만이 애니메이션을 조금은 진지한 방식으로 바라보려고 하고 있을 뿐이라 저자의 시도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되도록 다양한 사람들이 혹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지 않는 (인문)학자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학자들)의 모습에 약간의 아쉬움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대중적인 방식의(대중들을 위한) 글쓰기 혹은 노력이 무조건 옹호되거나 환호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만 때때로 너무 근엄함만을 찾으려고 하고 있고, 엄숙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오랜만에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무언가를 논의하는 글을 읽게 되어서 무척 반가움을 느끼게 되었다.

 

저자는 우선 중세 이후의 근대와 현대에 대한 저자 나름대로의 구분을 통해서 각 시대가 어떤 특성을 갖고 있고,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를 설명해준 다음 근대와 현대의 특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두 작품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렌라간

원피스

 

다행히 두 작품 모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작품이기 때문에 저자의 논의도 그리고 작품과 내용을 토대로 설명해주는 몇몇 구분들도 쉽게 이해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두 작품을 접했을 때 전혀 생각하지 않던 이해들도 있었고, 어떤 내용에서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갖게 되기도 하면서 흥미롭게 근대와 현대에 대해서 그리고 그렌라간과 원피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저자는 현대라는 시대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인식의 지평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인식구조나 정서를 파악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일종의 감수성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고 있고, 기본적으로는 불안함-불안감으로 정리할 수 있는 현대인의 정서와 그밖에 여러 다양한 감수성을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현대인들의 내면과 심리 상태에 대한 대안으로 혹은 부정성에서 벗어날 수 있기 위한 제안을 내놓으며 세편의 작품을 추천하고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

충사

진격의 거인

 

아쉽게도 위에 언급된 작품들 모두 줄거리조차 자세히 모르는 작품들이라 저자가 논의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논의가 우애와 자존감 그리고 자신을 좀 더 우선하는 입장을 옹호하고 어떤 귀감을 찾으려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입장들이 이미 ‘분노사회’를 통해서 알게 모르게 느껴졌기 때문에 각 작품들에 대해서 정보가 부족하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저자의 논의에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저자는 현대사회가 요구하고 강요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혹은 조금은 다른 입장으로 향해 스스로의 삶을 관조할 수 있고 스스로의 의지로서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기를 제안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내놓고 있고, 이에 대한 대답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는데,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슬픔을 이겨낸 받아들임으로써 대안을 찾으려 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들

 

위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저자는 현대사회의 적개심과 적대감 분노와 증오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줄일 수 있으며 지금과 다를 수 있음을 혹은 열린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서 일상에 대한 관조와 지겨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과거에 매몰되거나 변화에 대한 거부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향한 과거와의 단절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혹은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인지를, 그리고 그런 세상에 대한 시선을 스스로에게 향했을 때에도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만 하는지를 모색한다고 볼 수 있다.

 

‘분노사회’는 그것을 분노와 밀접하게 연관시켜 고민한 내용이었다면, ‘애니메이션...’은 좀 더 포괄적인 방식으로 외부와 내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꽤 흥미로운 시각이었고, 여러모로 동의할 수 있을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참고 : 저자가 잠시 착각을 했는지 ‘마루 밑 아리에티’나 ‘고양이의 보은’, ‘귀를 기울이면’과 같은 지브리 작품들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으로 언급하고 있고, 혹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는데, 대단한 실수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감독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제작사는 동일하게 지브리일지라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논의가 이끌어져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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