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법이다 - 강한 인생을 만드는 도쿄대 최고 명강의
니시나리 가쓰히로 지음, 연승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찾던 중에 손에 잡게 된 이것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법이다(이하 생각법’)’는 꽤 길고 무척 요란스러운 제목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 어렵게 읽을 내용도 아니고 기발한 내용이거나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들려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저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여러 사례들과 방법들을 통해서 쉽게 이해시켜주려고 하고 있다.

 

정체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을 창안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사고체력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사고체력이 어떤 것인지-무엇인지를 그리고 사고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알려주고 있다.

 

생각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고체력은

 

자기구동력

단계사고력

의심력

통찰력

상황판단력

점프력

 

이런 6가지의 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구분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각각이 어떤 내용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특징들과 필요성을 하나씩 알려주고 있다.

 

대단하고 감탄하며 읽어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고체력을 구성하는 각각의 능력-힘들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게 되고 어느 정도 맞는 구석들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저자의 논의들을 잘 따라갈 수 있었는데,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들과 각각의 능력-힘들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들까지 빼먹을 것 없이 자세히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괜찮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사고체력이 점점 더 떨어지고만 있다는 (부족해져만 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인해서 생각법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저자의 언급처럼 점점 더 여러 고민과 고려 끝에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보다는 즉흥적이고 즉각적으로 (좀 더 빠른 속도로) 생각을 정리하고 판단하려는 요즘 시대에 잠시라도 우리들의 선택-이해가 과연 적절한 것인지 그리고 합리적이고 알맞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 좀 더 단단한 생각의 힘을 갖도록 하게 만들려고 하는 제안으로 이해하며 읽어보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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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기억 보르헤스 전집 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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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5602920

 

 

 

 

보르헤스의 마지막 작품 모래의 책셰익스피어의 기억은 전체적으로는 이전 작품이었던 칼잡이들의 이야기브로디의 보고서에 비해서 큰 차이를 찾을 수는 없기 때문에 좀 더 심화시켰다거나 말년에 관심을 보였던 주제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항상 그렇듯이 그의 작품을 읽게 될 때는 길을 잃은 것처럼 무엇을 읽게 되었는지를 다시금 들춰보며 언제나 그의 글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헷갈림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는 말을 우선 해야만 할 것 같다.

 

보르헤스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항상은 아니지만 자주 그랬듯이 작가 자신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고 스스로를 등장시켜 나른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퉁명스럽고 창백한 설명을 통해서 냉정함과 객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글이 뭐가 좋은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지만 때때로 전달되는 애틋한 감수성과 신에 대한 여러 생각들, 종교와 신 그리고 온갖 것들에 대한 뒤틀림과 전복들 새로운 방식의 시각들, 낭만으로 가득한 신화-이야기들을 새롭게 재구성하거나 다시 써내면서도 보르헤스만의 방식으로 별다른 감정과 관심이 없다는 듯이 어떤 식으로도 개입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항상 개입하려고 애쓰면서) 새롭게 써낸 글들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게 되는지를, 때대로 만들고 있는 순도 높은 긴장감과 치밀함은 보르헤스의 글을 항상 다시 읽게 만들고 있다.

 

그 다채로운 분위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게 만든다.

 

그는 항상 자신의 글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이상한 매력으로 가득하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혼란스럽기만 하고 정리가 쉽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읽게 되기도 하고 그의 글을 통해서 압축성과 거리감 그리고 엄격함을 생각해보게 된다.

 

마지막 작품들이라는 점 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리고 몇몇 작품들에서는 여전히 탁월함과 감탄을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그가 완성했던 앞선 작품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구성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번 작품들에 덜 관심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럼에도 빼어난 순간들이 많기 때문에 홀대할 수 없기는 하겠지만 이전과 같은 색다름과 새로움을 찾으려고 한다면 실망스러운 기분도 느끼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보르헤스가 말년에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 관심들을 어떻게 완성시켜냈는지를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면 꽤 흡족한 기분으로 읽게 될 것 같은데, 보르헤스의 연구자들은 어떤 식으로 읽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너무 몰두하고 연구하듯이 읽기 보다는 그가 시력을 잃은 이후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이야기들을 꾸며냈으며 자신의 생각을 완성시켰는지 생각하며 읽어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시력을 잃은 현자가 남긴 생각의 조각들은 여전히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갖게 만든다.

 

그는 볼 수 없는 눈으로 우리가 바라볼 수 없는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렇게 바라보았던 세상을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로 정리해주고 있다.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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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잡이들의 이야기 보르헤스 전집 4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외 옮김 / 민음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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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4870755

 

 

보르헤스의 후기작에 속하는 (후기작들의 시작이기도 한) ‘칼잡이들의 이야기픽션들알렙에 비해서는 비교적 읽기가 수월해지고 난해함 보다는 간략함과 단순함 속에서 독특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좀 더 명료해졌다는 말을 하게 되는데,

이전의 극단에 가까운 실험에 비해서는 많이 느슨해진 느낌이 들게 되지만 여전히 보르헤스는 보르헤스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냥 쉽게만 읽혀지지 않게 되는 경우가 여전하다.

 

읽어나가며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변함없다.

어려움이 줄어들었지만 생각처럼 쉽진 않다.

 

미로에서 실컷 발걸음을 옮겨보니 처음 시작한 자리로 돌아왔듯이... 결국 보르헤스의 글은 어지러움과 헷갈림 그리고 혼란으로 가득하다.

 

감수성으로 가득하면서도

능청스럽거나 퉁명스러움은 마찬가지이지만

어쩐지 여러 방식으로 그의 글에서 안타까움이나 애처로움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애잔함으로 가득하다.

그 이유는 어떤 것일까?

 

이전의 실험성에 비해서는 신비로움과 감수성을 더 강조하고 있지만 그 변화가 퇴보나 노쇠 혹은 실망스러운 결과물로 생각되기 보다는 보르헤스가 좀 더 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이고, 그 달라진 관심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새로운 글쓰기 때문인지 이전과는 분명 다르다는 기분으로 그의 글-이야기-소설을 읽게 된다.

 

보르헤스는 항상 어떤 경계나 구분을 하나로 겹쳐버린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환상이든 현실이든 꿈과 삶과 죽음까지 모든 것을 하나로 겹쳐내고 포개지게 만들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하나로 뭉쳐지게 되어버린다.

 

그 시도는 과격하고 실험적이라는 말을 하게 되지만... 대충 뭉개버리는 것이 아닌 세심함과 조심스러움 또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생각이었던 것일까? 라는 궁금함으로 가득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보르헤스는 너무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창백한 표정으로 이상야릇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몇 안 되는 이야기 안에서, 짧고 분명하면서도 어쩐지 알다가도 모를 이야기 속에서 보르헤스는 다양한 관심과 이야기 그리고 생각들을 가볍게 꺼내고 있고, 그 가벼움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고민들을 그리고 무거운 기분 속에서 그의 생각들을 경험하는 것 같다.

 

보르헤스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우리들에게 어려움으로 가득한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물론, 보르헤스도 정확한 정답을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우리는 풀어내고 해답을 찾아보려는 노력만 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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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렙 보르헤스 전집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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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4063150

 

 

 

픽션들과 함께 보르헤스의 작품들 중 가장 최고작으로 꼽히는 (다시 말해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알렙픽션들과 항상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 작품이고, 그렇기 때문에 두 작품의 엇비슷함과 차이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의 비슷한 점을 찾기 보다는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에 따라 읽는 방식이 다른 법이니 그런 것에 대해서는 참고나 하면서 읽으면 될 것 같다.

 

어차피 읽는 것은 각자의 방식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걸 잃어가며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픽션들이 좀 더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혹은 하나의 소설-이야기 속에) 구겨 넣고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지켜보도록-경험하도록 만드는, 무언가 알다가도 모를 느낌의 기분으로 가득하도록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면, ‘알렙은 좀 더 구체적이고 어떤 이야기의 틀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완성된 느낌을 갖게 되고 각각의 특징들이 명확하게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겹쳐져 있음으로 헷갈려지게 되지만. 도무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다시 읽어보게 만드는 현기증을 만들어내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픽션들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야박한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알렙을 먼저 경험했다면 이런 평가를 하게 될 수 있을까?

 

앞선 이야기가 과연 무슨 이야기였는지, 어떻게 진행되어서 지금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는지 항상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기발한 재주가 있는...) 보르헤스이지만 알렙은 좀 더 명확하게 미로에서 헤매는 느낌을 만들기 보다는 이번에는 어떻게 뒤엉켜내고 뒤틀어버릴 것인가? 라는 기대와 궁금증을 만들어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픽션들에 비해서 좀 더 읽기가 수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오직 보르헤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묘한 세계를 마음껏 펼쳐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엠마 순스와 같이 냉정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러면서도 어쩐지 퉁명스럽고 어떤 방식으로도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엄격하게 입장에서 전달하려고만 하는... 하지만 계속해서 이야기에 끼어들기도 하는... 좀처럼 어떤 글쓰기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보르헤스만의 독특한 글쓰기로 완벽하다는 말을 하게 만들고 경탄하게 되며 계속해서 다시 읽어보게 되는 소설-이야기도 있지만 자주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신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하나로 겹쳐내기도 하는 등 여러 관심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설-이야기로 완성시켜놓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엠마 순스아베하깐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 ‘기다림’, ‘문턱의 남자와 같은 작품들이 좋았기는 하지만 보르헤스는 개인적으로 그런 작품들에 대해서 (‘엠마 순스를 제외한다면) 투덜거리듯이 냉소적으로 별달리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라는 듯이 알려주고 있어서 어쩐지 알렙이 그로써는 전체적으로는 불만스럽게 느껴진 작품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해서 비교를-비교만 하게 되는데, ‘픽션들이 어쩐 형체를 만들어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냈듯이 알렙의 작품들을 의도했지만 결국 그런 작품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알렙알렙나름대로 보르헤스의 작품들 중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작품이고 여러 방식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이겠지만 픽션들을 생각한다면 무언가 완성된 작품이기 보다는 좀 더 다듬어내고 고민하면서 완성하려고 했던 느낌도 갖게 된다.

 

하지만 과연 픽션들처럼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힘겹기만 한 작품으로 완성했다면 어떤 기분으로 읽게 되었을까? 지금과 같은 느낌과는 분명 달랐을 것 같다.

 

알렙은 어떤 식으로든 결국 보르헤스가 만들어낸 (그의 작품) 세계로 다가가기 위해서 가장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작품처럼 되어버리는 것 같다. ‘픽션들로 향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과 같은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알렙이 그렇게 어딘가로 향하기 위한 발판과도 같은(과정에 불과한) 작품일지는 의문이다. 분명 알렙알렙에서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진귀한 순간들을 무수히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지 좀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신비함을 적게 느끼게 될 뿐이다.

 

모호함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게 불만스럽게 느껴져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좀 더 풍요로워지고 풍부해진 느낌도 든다.

 

픽션들이 이론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발표하고 싶은 생각을 이야기-소설로 만들어내고 완성시켰기 때문에 그 충격과 놀라움이 여전하다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보르헤스의 생각에 대해서 논의를 하게 된다면(말하게 될 때 가장 앞서서 말하게 되는 작품이라면), ‘알렙은 그걸 좀 더 유연하고 느슨하게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고 덜 실험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그것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꼭 그런 식으로 읽어야하고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교하게 되기는 하지만 꼭 비교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는 두 작품이 머물고 있는 눈길은 무척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음을 더욱 절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항상 보르헤스의 글을 읽을 때 느끼는 의문을 여기에서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과연 보르헤스의 방식이 옳은 것인가? 글쓰기에 옳고 그름은 없겠지만 보르헤스의 방식에 너무 많은 관심을 (여전히) 보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해서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을 많이 갖게 된다.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게 되어버려 쓰기와 읽기의 가장 기본적인 이해를 잊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에 대해서 별의별 학문적 논의만 가득하게 되고, 글을 읽는 재미에 대해서도 온갖 별의별 해석을 내놓게 되면서 도대체 쓰게 될 때나 읽을 때나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고 써야만 할지를 고민하게 될 정도로 이론과 검토를 위한 쓰기와 읽기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보르헤스의 글이 혹은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읽고 쓰는 가장 정점에 올라선 순간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만을 생각하다보면 오히려 글을 읽는 본연의 즐거움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매력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르헤스의 글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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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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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3648398

 

 

퉁명스러운

엄격하고

냉정한

창백하면서도

객관적이며

나른함과 몽롱함을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아낼 수 있다면, 그런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보르헤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러 분위기의 글들을 하나의 작품에 채워 넣고 있고, 우리는 단순히 여러 분위기만이 아닌 그가 생각하고 바라보았던 기묘하고 생소한... 지금은 좀 더 명료하게 이해되고 있는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순간을 만들고 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글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런 글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이처럼 호들갑스럽게 말하게 되는, 보르헤스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가장 먼저 손에 꼽게 만드는(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을 먼저 꼽게 되지만) ‘픽션들은 보르헤스가 어떤 생각-시각으로 글을 써냈는지를, 그가 빠져든 꿈-미로에 어떻게 함께 빠져들 수 있는지를(빠져들게 되는지를) 오직! 보르헤스의 글을 통해서 체험하게 되고, 그의 글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 같다.

 

몇 번을 읽어낸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감탄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제야 간신히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하지 못하며 픽션들을 혹은 수많은 글들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글을 통해서 무언가를 알게 되기보다는 알 듯 말 듯 손에 잡히지 않는 생각들의 떠다님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어리석기만 하다.

 

보르헤스의 글쓰기의 특징이라면, 그걸 과연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일종의 이론-논리 혹은 입장을 하나의 소설-이야기-작품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관한 논문을 쓰거나 새로운 글쓰기에 관한 이론적 접근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걸 하나의 이야기-소설-작품으로 완성해서 내놓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한 파급력과 충격을 그리고 논란과 혼란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생각을 무표정한 느낌으로 능청스럽게 농담하듯이 완성된 작품으로 던져놓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감탄하게 되면서도 과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라는 깊은 의문에 잠기기도 하는 것 같다.

 

픽션들에서는 이처럼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을 접하게 되면서도 과연 이 결과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 속에서 겹겹이 쌓여진 보르헤스의 꿈-미로를 헤매게 되는 것 같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했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새롭게 조합시키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했을 뿐이고, 어떤 타당함과 근거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다 그가 창조한 무언가일 뿐이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았고 그저 신기루를 보여주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탄스럽다고 말하게 된다.

 

신비로움 속에 빠져들게 되면서도 그것들은 한낱 짧은 꿈일 뿐이고 모든 것을 허무로 향하게 만들기도 하고 있다.

 

다양한 관점들로 가득하고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쉽게 정리되지 않고 있지만 조금은 어떤 틀을 만들어내고 있고,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돌연변이이고 정체불명이기는 하지만 어떤 윤곽을 잃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겨우겨우 희미하기만 한 형체를, 희끄무레하지만 무언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어째서 보르헤스의 글을 반복해서 읽어내는 것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저 그의 글이 어떤 수수께끼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고, 그것에 여전히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더 높게 칭송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보르헤스를 더 많이 읽었다는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보르헤스의 작품들은 그런 묘한 매력으로 가득하고, 다양한 관점들을 그동안의 관점들을 완전히 뒤집는 시선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읽고 싶고 이해해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

 

이건 어쩌면 뒤틀린 감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맞지 않은 책읽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르헤스를 반복하면서 무언가를 알아채고 싶어지고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무엇을 읽었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못하는 허탈한 책읽기를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보르헤스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순식간에 뒤바뀌는 설정들과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 속에서 느껴지는 헷갈림과 감탄을 다시금 경험하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튼 독특하고,

하여튼 대단하다.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 뿐이지...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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