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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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3648398

 

 

퉁명스러운

엄격하고

냉정한

창백하면서도

객관적이며

나른함과 몽롱함을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들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아낼 수 있다면, 그런 시도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보르헤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러 분위기의 글들을 하나의 작품에 채워 넣고 있고, 우리는 단순히 여러 분위기만이 아닌 그가 생각하고 바라보았던 기묘하고 생소한... 지금은 좀 더 명료하게 이해되고 있는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순간을 만들고 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글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런 글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여전히 놀랍기만 하다.

 

이처럼 호들갑스럽게 말하게 되는, 보르헤스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가장 먼저 손에 꼽게 만드는(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을 먼저 꼽게 되지만) ‘픽션들은 보르헤스가 어떤 생각-시각으로 글을 써냈는지를, 그가 빠져든 꿈-미로에 어떻게 함께 빠져들 수 있는지를(빠져들게 되는지를) 오직! 보르헤스의 글을 통해서 체험하게 되고, 그의 글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 같다.

 

몇 번을 읽어낸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감탄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제야 간신히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하지 못하며 픽션들을 혹은 수많은 글들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글을 통해서 무언가를 알게 되기보다는 알 듯 말 듯 손에 잡히지 않는 생각들의 떠다님을 보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어리석기만 하다.

 

보르헤스의 글쓰기의 특징이라면, 그걸 과연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일종의 이론-논리 혹은 입장을 하나의 소설-이야기-작품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관한 논문을 쓰거나 새로운 글쓰기에 관한 이론적 접근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걸 하나의 이야기-소설-작품으로 완성해서 내놓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한 파급력과 충격을 그리고 논란과 혼란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생각을 무표정한 느낌으로 능청스럽게 농담하듯이 완성된 작품으로 던져놓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감탄하게 되면서도 과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라는 깊은 의문에 잠기기도 하는 것 같다.

 

픽션들에서는 이처럼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을 접하게 되면서도 과연 이 결과물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 속에서 겹겹이 쌓여진 보르헤스의 꿈-미로를 헤매게 되는 것 같다.

 

그는 새로운 것을 창조했지만 반대로 무언가를 새롭게 조합시키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했을 뿐이고, 어떤 타당함과 근거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다 그가 창조한 무언가일 뿐이다.

 

그가 만들어낸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았고 그저 신기루를 보여주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탄스럽다고 말하게 된다.

 

신비로움 속에 빠져들게 되면서도 그것들은 한낱 짧은 꿈일 뿐이고 모든 것을 허무로 향하게 만들기도 하고 있다.

 

다양한 관점들로 가득하고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쉽게 정리되지 않고 있지만 조금은 어떤 틀을 만들어내고 있고,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돌연변이이고 정체불명이기는 하지만 어떤 윤곽을 잃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겨우겨우 희미하기만 한 형체를, 희끄무레하지만 무언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어째서 보르헤스의 글을 반복해서 읽어내는 것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저 그의 글이 어떤 수수께끼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고, 그것에 여전히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나 도스토예프스키를 더 높게 칭송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보르헤스를 더 많이 읽었다는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보르헤스의 작품들은 그런 묘한 매력으로 가득하고, 다양한 관점들을 그동안의 관점들을 완전히 뒤집는 시선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읽고 싶고 이해해보고 싶어지는 것 같다.

 

이건 어쩌면 뒤틀린 감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맞지 않은 책읽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르헤스를 반복하면서 무언가를 알아채고 싶어지고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무엇을 읽었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못하는 허탈한 책읽기를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보르헤스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순식간에 뒤바뀌는 설정들과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 속에서 느껴지는 헷갈림과 감탄을 다시금 경험하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지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튼 독특하고,

하여튼 대단하다.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 뿐이지...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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