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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어쩌면 자부심 속에서
혹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속에서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
소설가가 작가가 저런 말을 했을 때, 그냥 그렇겠거니 생각하게 되기도 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게 된다면 저런 허세와 객기 혹은 어쩔 수 없는 다짐과 같은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다가도 책을 읽다보면 충분히 이해되어버리게 된다.
소설가 김영하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그의 발표작을 확인하게 되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퀴즈쇼’와 같은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특별히 기억하려고 하거나 관심이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많이 알려진 작가인 것 같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유명한 사람이겠지.
단지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
붉은 색이 인상적인 표지가 눈길을 끌어서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은 더욱 쉽게 손에서 책이 머물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가벼운 기분과 마음속에서 읽게 되었고
생각보다 쉽게-빨리-순식간에 읽게 되어서 재미있게 읽혀진다는 말을 꺼내게 되지만 소설과 함께 수록된 평론가의 해설에서 언급되는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이 괜히 켕기게 되어서인지 뭔가 제대로 읽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돌이켜보게 되기도 한다.
평론가의 평가처럼 웃을 수 없는 농담일지도 모르고 마치 금강경을 읽고 악몽을 꾸는 듯이 써내려간 내용일지도 모르겠다는 해석에 공감하게 되기도 하지만 어쩐지 그보다는 이야기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니체의 글들에 좀 더 마음이 가게 되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작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혹은 작품 속 주인공 (연쇄)살인자 김병수의 방식으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써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병수는 이렇게 말-생각했다’라는 제목도 유치하지만 아주 틀리다고는 말할 수 없진 않을까?
일종의 잠언들로 채워진 글(들)인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면 독백들과 메모-짧은 글들로 채워진 모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살인자...’는 짧은 글들로 이뤄졌지만 무척 단단하고 빈틈이 없는 글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견고한 느낌을 갖게 되는 글들이었고, 주인공 김병수의 고집과 세상과 사람들과의 깊은 거리감과 고독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지 단절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지 헷갈려지는, 폐쇄감과 갑갑함을 무척 건조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고
강한 흡인력을 보여주고 있다.
인상적인 반전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결말을 내놓고 있고
그 이야기의 과정 속에서 잠시 읽기를 멈추고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읽는 과정 속에서 주인공 김병수의 감정과 뒤틀려져 있고 뒤죽박죽으로 된 내면을
어둡고 음침하며 건조하면서도 고독한 그 내면에 빠져들게 되고 빠져나오게 된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짧은 이야기의 끝에서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가 도대체 무엇을 읽었던 것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읽게 되는 책이면서도 경험하게 되는 책이기도 한 것 같다.
길지 않은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끝 다음 곧이어 이어지는 평론가의 해설 때문에
딱히 뭔가를 더해서 말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래도 뭔가를 말하게 된다면 재미있게 읽히고 흥미로우면서도 뭔가 강하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게 되는 얼얼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게 되고 한번 읽어보라는 말을 해보게 된다.
내가 느꼈던 그 경험과 기분과 어떻게 다를지 혹은 어떻게 비슷할지를 물어보고 싶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꽤 오랜만에 흥미진진하게 무언가를 읽어보게 된 것 같다.
누군가의 내면을 어디까지 써낼 수 있고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걸 읽으면서 얼마나 다가갈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영향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치밀하고 정교하게 담아낸 것인지
그것이 아니면 대략적이지만 무척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인지
무언가 여운을 그리고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들고 있다.
뭔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고
어쩐지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고 : 여전히 좋은 책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늘어가고 있을 뿐이지만 항상 그렇듯 읽기보다는 읽으려고 마음만 먹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