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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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진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사진에 관하여를 읽게 된 것은 아니다. 사진에 대한 관심은 금방 시들해졌고 전문적인 관심 보다는 그저 눈길을 사로잡는 예쁜 사진에만 관심이 생길 뿐이었다.

 

예쁨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를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말이 길게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다.

 

저자인 수전 손택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의 예민한 감각과 뛰어난 글쓰기 솜씨를 통해서 여러 논쟁을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해보려고 했다. ‘사진...’은 사진과 관련해서 수전 손택만의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시각과 독특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펼쳐놓는 생각이 그리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지 영 어렵게만 읽혀졌다. 그래서인지 뭘 읽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사진

 

영상 시대이고 이미지 시대이기 때문에 사진에 관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얼핏 느끼기에는 시대착오적이고 뒤쳐진 과거의 글을 읽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흘러간 과거를 알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닌 바로 지금 현재를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림으로부터 시작해서 사진이라는 새로운 영역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과연 우리들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 새로운 고민해보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과거가 아닌 지금 시대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원형처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읽는다면 사진...’이 좀 더 새롭게 생각될 수 있을 것 같고 과거를 다루면서 현재를 이해해보려는 접근으로 생각되게 한다.

 

뉴욕타임스 서평에 발표한 여섯 글들을 다시 다듬어내고 사진에 관한 명언을 모은 글을 더해서 발표한 사진...’은 사진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어떻게 본다면 장황하고 감상적으로 풀어내고 있고 달리 본다면 에세이와 학문적인 글쓰기가 뒤섞여진 글로 생각되기도 하는 등 형식은 편하게 써낸 에세이의 형식이기는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읽혀지지는 않게 글로 채워져 있다. 저자 특유의 글쓰기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솔직히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고 난해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글쓰기는 읽는 사람이 어렵게 읽혀지면서도 그 글들에서 여러 생각들이 이어지거나 글을 통해서 다른 생각들을 해보게 만들기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산만하고 장황하다는 말로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예민한 감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끊어지지 않고 이어나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렵기는 하지만 읽고 싶어지는 의욕을 꺾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사진만이 갖고 있는 독자성이나 특징에 대한 설명을 해주다가 부정적인 부분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는 등 단순히 옹호하거나 매도하는 것이 아닌 좋고 나쁜 모든 부분들을 끄집어내서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사진...’은 그저 찍혀져서 현상된 사진이 아닌 찍는 과정 찍는 상황 현상된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이들의 감상과 반응까지 사진과 관련해서 사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살펴보려고 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이어지게 만들고 있고 사진에 대한 생각만이 아닌 사진을 실마리로 삼아 인간의 인식이나 이해의 영역까지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읽기가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사진을 찍고

사진을 보고

보여주고 본 것을 생각하고

 

그런 과정을 때로는 이념과 정치의 영역까지 넘나들면서 파고들려고 하고 있고, 미학적인 이해 속에서 생각해보다가도 사진을 너머에 있는 현실 그 자체를 쳐다보도록 제안하기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의 흐름 때문에 열정적이다가도 퉁명스럽기도 한 글 때문에 읽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어지러우면서도 흥미롭기도 했다.

 

사진...’을 읽었어도 사진에 대해서 뭘 알게 되었다고 말할 것은 하나도 없지만 사진...’은 사진에 관한 수전 손택의 생각을 뒤쫓으며 저자의 다양한 생각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사유를 경험해보게 됐다.

 

 

 

 

 

참고 : 페이스 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은 좀 더 다양하게 읽혀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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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의 아홉가지 갈래들 - 문화마당 6 (구) 문지 스펙트럼 6
신현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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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017년이 아닌 이 책이 출판된 1997년에 읽었다면, 시간을 조금 더 늦춰서 2000년대 초반에 읽었다면 어떤 기분으로 읽게 되었을까? 지금처럼 이런 것도 들었지 라는 생각으로 책에서 언급되는 밴드와 가수 그리고 음악들을 떠올리며 그때는 이런 것들에 무척 열중했을 때라며 이런저런 추억들을 더듬거리며 읽진 않았을 것 같다.

 

아주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읽으면서 뭐라도 잘못된 내용이 있는지 어째서 내가 좋아하는 밴드들은 언급하지 않는 것인지 혹은 왜 이런 정도로의 비중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따지면서 읽게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약간은 그런 식으로 읽었지만.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 같은 록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 저자의 논의를 따르면서 아직도 몰랐던 부분도 알아가고 이런 식으로 시작해서 지금과 같이 자리 잡았다는 내용을 읽으며 그렇구나하며 모르던 내용을 알게 되고 그 내용에 뭔가 상상을 더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저런 내용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었고 그걸로 그만인 식으로 퉁명스러워졌고 냉담해져버렸다. 변해버린 내 모습이 좀 슬퍼진다.

 

록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고 힙합이 대세가 되고 주류 음악처럼 대접받는 지금 시점에서 과연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과 같은 책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록 음악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나마 있어서인지 뒤늦게라도 읽어보기는 했지만 지금은 이런 책이 나오기는 무척 어려울 것 같다.

 

힙합의 여러 갈래들과 같은 책은 나올지도 모르지만...

 

무언가 영역이 넓어지면 그걸 그대로 두기 보다는 이리저리 구분하고 분류하거나 나눠놓기 마련이고 록 음악도 처음 시작은 미비하고 얼마 없었겠지만 지금처럼 커지고 방대해지니 이처럼 여러 갈래로 나누고 되고 각각의 특징과 개성을 알아보게 된다.

 

저자는 시작하는 글을 통해서 록 음악 중 장르, 스타일을 중심에 놓고 논의를 펼쳐낸 이유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주고 있고 이런 식의 논의가 갖고 있는 장단점도 알려준 이후 결국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록 음악의 아홉 가지 갈래들과 두 가지의 추가적인 논의를 해주고 있다.

 

록 음악이라고 말해도 과연 어디까지 록 음악인가? 라는 물음이 당장 나오고 이건 왜 제외되었나? 혹은 왜 포함시켰나? 라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어차피 장르라는 것은 혹은 구분이라는 것은 결국 자의적인 기준이 있을 수밖에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당시의 평가와는 달라지는 경우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 따지듯이 읽기 보다는 그저 저자는 어떤 이유로 이런 구분을 했는지 생각해보며 아홉 갈래들을 알아보면 될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록 음악을 아홉 갈래로 나눠놓는 것이 너무 잘게 잘라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너무 굵게 묶어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겹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는 등 록 음악의 아홉 갈래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고 서로 전혀 다르고 어울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쉽게 뒤섞이고 새로운 변종을 내놓기도 해서 정밀한 구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충분하고 적당한 구분 속에서 그 장르 혹은 스타일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서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이어지다 성장하고 쇠락하게 되었는지를 간결하게 다루면서 록 음악의 여러 모습들을 되도록 폭넓게 살펴보고 있다.

 

20년이 지난 내용이지만 아주 구닥다리 내용처럼 생각되지 않는 것은 1990년대 말 이후 록 음악이 점점 쇠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저자의 분류가 그럭저럭 알맞은 방식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최대한의 정보보다 최소한의 정보로 소개시켜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너무 깊게 살펴보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고 너무 간단하게만 다루면 정보의 나열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알맞은 수준으로 록 음악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록 음악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 기분은 당연히 들 것 같다. 여러 가지로 더 깊이 있게 다뤄줬으면 하는 내용들도 있고 이런 내용들은 어째서 빠졌을까? 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쓴 내용이고 그렇기 때문에 방대한 영역의 록 음악을 이런 정도로 잘 설명해주는 책도 없었고 이만한 책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에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약간은 학술적인 접근도 해주는 이런 방식의 책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애정으로 가득해서 분노하듯 읽을 필요 없이 이런 저런 영역들을 이런 식으로 나눠놓고 짧게 풀어낼 수 있구나 하는 기분으로 읽게 됐다. 저자의 다른 글들에 비해서 글쓴이만의 개성 있는 글 솜씨를 보여주진 않지만 간간히 느낄 수 있어 읽는 재미도 괜찮았다.

 

한때는 한참을 반복해서 들으며 마음을 뺏겼던 음악과 밴드와 가수들이 하나씩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두근거리며 그때의 순간들을 생각하며 책을 읽게 되었다.

 

그때는 그랬지... 라는 생각도 들고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에 많이 좋아했고 많이 들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괜한 추억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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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우리의 자화상
임석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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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건축과 임석재 교수의 책은 그동안 중고서점을 통해서 몇 권 접한 적이 있었고 꽤 흥미롭게 읽었었다. 건축과 관련해서 꽤 많은 책들을 발표했으며 이론적으로 무척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었고 방대한 영역을 다뤄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저자가 1961년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저자가 책을 통해서 발표한 연구들은 무척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욕심이 지나치지 않나? 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건축에 관해서 다양하고 드넓은 영역을 다뤄내고 있고 내용에 있어서도 허술하거나 소홀하게 살펴보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특별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건축에 관해서는 에세이나 감상평 혹은 일종의 자서전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글들을 위주로 접해왔기 때문인지 이런 이론적인 접근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읽혀지기도 하지만 깐깐하게 학문적인 접근을 한다면 건축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저자의 책들을 좋아하고 되도록 그런 방식으로 건축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기도 한다.

 

실제 현실이나 현장에서의 판단과 조금은 다른 의견일 수 있으나 이런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이해를 통해서 좀 더 폭넓게 생각해볼 수 있고 분석적인 이해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건축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을 접할 수 있고 아울러 건축에 대해서 아는 것이 부족한 사람들도 (되도록) 쉽게 읽어낼 수 있도록 잘 설명해주어 저자가 발표한 책들 중 읽어보지 못한 책을 만나게 될 때면 곧장 구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번 건축, 우리의 자화상은 신문을 통해서 발표한 글들을 모았기 때문인지 다른 책들에 비해서 무척 술술 읽히는 글이었다.

 

저자의 글들을 자주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건축...’에서의 저자의 글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다른 책을 통해서 발표된 저자의 글은 되도록 중립적이고 학술적 학문적 접근이기 때문에 비판을 해도 여러 가지를 따져본 다음 내리는 결론이라 깐깐하게 살펴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면 건축...’은 무척 신랄하고 날카롭게 비판을 해준다는 느낌이었다. 분노가 느껴졌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써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참고 참다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꾸짖고 조금이라도 봐줄 생각 없이 몰아세우고 있다.

 

어쩌면 그만큼 쌓였던 것들이 많았다는 뜻인지도 모르고 또는 그만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한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건축들에 분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들의 자주 접하고 방문하게 되는 건축들을 통해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저자가 살펴보는 건축들은 우리가 쉽게 접하게 되는 전철역, 교회, 관공서, 영화관, 백화점, 모텔, 모델하우스, 아파트와 같은 상징적이고 대표하는 건물이 아닌 쉽게 접근하고 접하고 있는 건물들이며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말해주려고 하고 있다.

 

저자의 시선은 지극히 비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한국 사회를 욕심으로 가득하고 탐욕과 대립으로 가득 차 있다고 단정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너무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별로 틀린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2005년에 발표한 책이라 약간은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될 때도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분석과 의견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단순히 그 건축-공간이 갖고 있는 문제점만이 아니라 건축-공간이 어떤 이유로 그런 식이 되었는지까지 찾아내며 아주 집요하게 살펴보고 있고 건축-공간에 머물고 생활하고 경험하는 우리들은 또한 어떤 식으로 건축-공간을 받아들이며 변하는지를 함께 다루면서 단순히 건축과 공간만을 알아보는 것이 아닌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해보려고 하고 있다.

 

잘못된 점들을 막힘없이 말하고 있으며 뒷부분에 가서는 지금처럼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한다면 좋아질 수 있을지 괴롭고 허탈한 심정으로 약간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저자 개인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고 저자의 진단과 대안에 관한 제안이 모두 다 옳은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자가 찾아낸 문제점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의견을 하나씩 검토해가며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쉽게 눈에 들어오고 쉽게 접하게 되는 건축-공간을 다루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읽혀지고 있는 건축...’은 그동안 읽어왔던 저자의 글쓰기와 많이 다른 모양새라 낯선 기분도 들지만 이런 식으로 저자의 가슴 깊은 곳에서 쏟아내는 분노를 접해보니 저자에게서 조금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 기분도 들었다.

 

아주 작심하고 말하고 있으며 어중간하게 말하기 보다는 확실하게 잘못들을 지적하려고 하고 있다.

 

저자는 희망 없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좌절하고 분노하면서도 희망 자체를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대안을 제시하려고 하고 있다. 그 울분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절박한 모색은 저자의 다른 글들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이번 건축...’은 한국 사회와 건축-공간에 대해서 무척 색다른 입장과 이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참고 : 여러 글들 중 특히나 기억에 남는 내용은 대치동에서 신림동에 대한 글이었고 그 글과 함께 조선시대부터 이어지는 돈과 땅을 통한 지배에 대한 생각은 좀 더 길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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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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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은 2010년 전후로 국내에 소개되면서 많이 알려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접할 기회가 없었다. 뭐라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생각으로만 머물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탈리아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서 어렵게 읽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펼쳤지만 생각처럼 쉽게 읽혀지진 않았다.

 

좀처럼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책을 읽기도 했지만 이탈리아 신문 독자들은 이런 글들도 막힘없이 읽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로 꽤 어렵게 읽혀졌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문제의식은 많이 알려져 있듯이 이전의 근대는 견고하고 단단했다면 지금의 근대는 유동하는 근대라고 진단하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런 입장에서 44개의 글-편지로 이탈리아 신문 독자들에게 최근 주목되었던 현상 혹은 사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현재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식의 문제들을 짊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하고 있는 고독...’은 온라인 세상이 점점 넓어지기만 하고 있고, SNS를 통한 소통이 자연스러워진 새로운 세상에서 새롭게 나타난 개인적 사회적 문제들은 무엇이 있는지 함께 고민해보려고 하고 있다.

 

저자가 지적하려고 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그런 것들을 다루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지도 않고 무척 적절하고 의미 있는 논의라고 생각은 하지만 고민을 풀어내고 있는 글은 생각처럼 쉽게 읽혀지진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읽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이해력이 부족한가? 라는 좌절감만 들게 되었는데, 지그문트 바우만의 주된 문제의식이 유동하는 근대이고 그 입장 속에서 세상의 여러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 저자의 논의를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전히 내 읽기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좀 더 저자의 글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커졌다.

 

근심과 고민의 깊이는 알 수 있었지만 저자의 생각을 풀어내는 내용을 쉽게 따라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고민 끝에 내리는 결론을 읽으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아리송하게만 느껴져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더 잘 읽어보고 싶고

더 잘 이해해보고 싶다.

 

내 부족함만 더 잘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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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층 나무 집 456 Book 클럽
앤디 그리피스 지음, 테리 덴톤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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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생각 없이 읽게 됐지만 생각보다 재미나게 읽었던 ‘13층 나무 집의 후속편인 ‘26층 나무 집‘13...’과 마찬가지로 매일 매일 즐거운 일상을 보내던 앤디와 테리에게 갑작스럽게 큰 위기와 모험을 겪게 된다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13...’처럼 마감시한에 쫓겨서 급작스럽게 책을 써야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은 동일하지만 ‘26...’은 곧장 그들에게 어떤 위기나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우선은 앤디와 테리가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고 어쩌다가 13층 나무 집에서 둘이서 생활하게 되었는지를, 딱히 궁금하진 않았던 하지만 듣다보니 무척 흥미롭게 들려지는 그들의 과거를 알려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앤디의 과거 그리고 테리의 과거를 살펴본 다음 그들의 이웃집 친구인 소녀 질의 과거까지 설명해준 이후 어떤 식으로 그들이 만나게 되었는지, 그들이 13층 나무 집에서 지내게 될 때까지 함께 겪었던 모험들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를 알려주고 그들이 함께하게 되도록 만들었던 그리고 ‘26...’에서 가장 큰 위협의 대상인 나무머리 선장과의 대결로 ‘26...’의 나머지 이야기는 채워져 있다.

 

아이들이 본다면 좀 더 재미나고 흥미진진하겠지만 아이들 눈높이에서 보지는 못하기 때문인지 이야기의 진행이 뭔가 어수선하다는 생각도 들고 옛 동화들을 조금은 기괴한 방식으로 되풀이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시리즈만의 황당한 설정들이 더 늘어나기도 했고 그런 부분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즐겁게 만들지는 알 수 없지만 추측만 해본다면 아마도 나 또한 어린 시절에 읽었다면 지금처럼 투덜거리면서 읽기 보다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이야기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도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정신없이 진행된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아이였다면 그런 것 또한 즐거움이고 재미로 느낄지도 모른다.

 

‘26...’에서도 긴박한 상황들이 펼쳐지지만 그 위기들이 공포로 느껴지진 않고 있는데, 아마도 아이들을 위한 책이고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아이들이 죽으리라 생각하진 않아 (최악은 겪어도 끝을 겪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서) 어떤 식으로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앤디, 테리, 질이 겪는 위기가 그저 모험으로서만 생각되는 것 같다.

 

만약 이걸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면? 공포도 이런 공포가 따로 없다는 말을 당장 했을 것 같다. 잔혹한 공포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았을 구성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상황을 진행시킨다는 점인데, 각 단계별로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놓이지만 그 상황에 놓인 이후에서 일어나는 진행은 반대로 예상가능하고 전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양새로 꾸며져 있어서 유별나기는 하지만 아주 이상할 정도는 아니라는 독특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지만 결국에는 충분히 예상가능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알 수 있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고 특이하면서도 아주 이상하지 않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 아닐까?

 

이어지는 ‘39층 나무 집또한 그리 크게 달라진 구성을 보여주리라 생각하진 않게 된다.

 

 

 

 

 

참고 : 목이 떨어지거나 잘려나가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지는 내용도 있어서 다소 잔혹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걸 읽는 아이들도 마냥 천사도 아니고 이런 내용에 충격을 받을 것 같지는 않게 느껴진다. 이런 내용들에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거부감을 느낄까? 그게 아니면 즐겁게 박수를 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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