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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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강가에 앉으려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번개를 맞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을 하고

누군가는 버튼을 만들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그냥 엄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아쉽게도 영화 ‘벤자빈 버튼...’의 가장 멋진 대사 중 하나인 위와 같은 문장을 피츠제럴드의 단편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에서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쉽게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화와는 다른 내용들로 피츠제럴드는 재즈 시대를 담아내고 있으니까.

 

영화 덕분에 피츠제럴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항상 그렇듯이 그러한 관심은 짧은 기간일 뿐이다. 마치 재즈 시대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질 뿐이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은 항상 그렇듯이 봄과 여름을 느끼게 되고, 낭만적이면서도 때로는 날카로울 때가 있다. 술에 취한 듯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다가도 순간적인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물론 술기운에 들려주는 통찰력이라 사람에 따라서는 무시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갸우뚱 거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피츠제럴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순간도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그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작품이면서도 그의 기본적인 성향은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형적인 피츠제럴드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젤라빈’으로 시작해서 소동극처럼 재즈 시대의 젊은이들을 담아내고 있는 ‘낙타의 뒷부분’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인상적이라고 말하고 있고, 동의하게 만들고 있는 중편 ‘노동절’은 흔히들 말하는 영화적인 구성이면서도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피츠제럴드 특유의 비극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읽다보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정리하게 만드는 그의 능수능란한 솜씨는 감탄하게 만들고 ‘자기와 핑크’와 같은 작품은 항상 그렇듯이 그의 뛰어난 글재주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스타일과 이야기들 때문에 단편집이면서도 각각의 작품들이 완성도의 편차가 많이 커서 피츠제럴드 본인도 꽤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단편집을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그는 정돈하였다.

 

‘리치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는 느슨하고 몽환적이면서도 마치 마크 트웨인의 ‘아더왕과 양키’를 이상하게 변주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야기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르면서도 이상하게 유사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로 인해서 가장 알려지게 되었지만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보여준 낭만적이고 멜로드라마적 구성에서 벗어나 그의 우화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 다시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관계와 그로 인해서 벤자민 버튼이 삶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행복이 남은 자리’였는데,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여성과 그 여성을 바라보는 남편의 친구 그리고 그들의 애정과는 다른 말 그대로 서로 간에 갖게 되는 호의까지 피츠제럴드는 가끔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그를 나는 사랑할 수 있어요.

내가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나요?

 

.

.

.

 

이들 두 사람에게 삶은 빨리 와서 빨리 지나갔으며,

씁쓸함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연민을 남겼고,

환멸을 남가지 않았지만 오직 아픔을 남겼다.

 

 

재즈 시대를 즐기고 흥청망청 거리기만 했을 것 같은 사람이 가끔은 그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강렬한 여운으로 인해서 그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초기 작품들이 많이 담겨져 있어서 보다 구성이 허약한 부분도 있고 앞에서 말했듯이 작품의 완성도도 편차가 커서 사람들이 호감을 갖기에는 약간은 부족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멋진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긴 것으로 나는 만족하게 된다.

 

참고 : 초판본을 읽다보면 글씨체가 다른 부분들이 계속 눈에 뜨이는데, 일부러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들을 강조하기 위해서 피츠제럴드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오타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펭귄에서 그렇게 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단어도 아닌 듯 하고.. 뜬금없는 부분에서도 발견되는 단어들이 몇 개 있기 때문에 애매하게 생각된다.

출판사에 문의를 하려고 했는데, 이메일 문의도 회원을 가입하라고 하니... 문의를 하려다가 그냥 때려쳤다. 그딴 것도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면 알려줄 필요도 없는 출판사다.

 

페이지 번호는 아래와 같다.

 

40, 43, 45, 54, 67, 106, 121, 125, 131, 139, 140, 142, 144, 152, 155, 159, 168, 185, 192, 197, 202, 207, 213, 214, 227, 252, 253, 254, 256, 257, 258, 271, 274, 281, 292, 299, 303, 304, 315, 320, 322, 341, 345, 346, 364,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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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 양장본
앤서니 기든스 지음, 한상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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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제3의 길을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를 넘어서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최근 한국의 정치적 상황들 때문인 것 같다.

 

토니 블레어로 대표되는 제3의 길과 중도좌파 혹은 중도라는 정치적 입장은 결과적으로는 말장난에 불과하고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 이념이고, 그것을 지향한 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을 지지하던 지지자들이 전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정책을 펼쳤고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존의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정책들을 일관적으로 혹은 더 무모하게 밀어붙이는 성향도 보이는 등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도 못했다.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을 추구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적이기만 했고 이상은 말로만 했을 뿐이었다. 혹은 머리 속에서만 남겨져 있었거나.

그런 제3의 길 혹은 중도좌파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그들의 문제의식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짧은 분량이면서도 제3의 길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주 말하고 있는 문제점과 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든스의 문제의식은 분명 적절하고 날카로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론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여성과 가족, 환경문제와 세계화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세밀한 면이 부족한 것 같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최대한 간략하게 논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점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는 제3의 길이라는 이념이 보여주는 해답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에 실망스러운 기분도 든다.

 

그리고 제3세계의 빈곤문제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는 수준이지 직접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토대로 하게 된다면 기든스의 제3의 길은 결국 유럽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든스가 유럽중심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글에서는 특별히 세계화에 대해서 보다 풍부한 시각을 엿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그는 과거의 케인즈와 비슷한 일종의 개량주의 혹은 수정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데, 케인즈와는 다르게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처방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입장에서는 그의 논의는 학술적이고 이론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고 직접적이지도 않은 논의일 뿐이며,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원하는 정치인들에게나 즉각적인 영감을 안겨주고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여지만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든스는 말미에서 토니 블레어 정권에 대해 말뿐인 공허함 보다는 보다 알찬 결실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건 블레어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필요한 말이었다. 어쨌든 그의 지적대로 제3의 길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새롭게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수사적인 새로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제3의 길을 써먹고 실패했다고 제3의 길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부분적으로 기든스의 논의 중에서 분명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도 있고, 그의 분석을 지속적으로 언급할 부분도 있기 때문에 쉽게 묻어버리기도 아까운 구석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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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으로 향하다 - 리암 니슨 주연 영화 [툼스톤]의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9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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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소설 장르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있는 장르는 하드보일드인데 과거에는 이런 장르의 소설을 읽고 싶어도 번역된 소설이 별로 없어서 읽지 못했었다. 최근 들어서야 이쪽 장르의 많은 소설들의 출간 / 번역되고 있어서 몇몇 작품들을 만족스럽게 읽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기껏해야 레이먼드 챈들러의 몇몇 소설들과 제임스 엘로이의 몇몇 소설들을 읽었을 뿐이지만.

 

하드보일드의 거장으로 불리는 로렌스 블록의 소설도 우연한 기회로 처음 읽게 되었고,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구입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제목이 멋져서 읽게 되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연쇄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뉴욕의 길거리와 밤거리 그리고 어두운 이면의 세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뉴욕을 실컷 돌아다닌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작품의 주인공인 매튜 스커더의 개인적 매력과 함께 이야기의 흐름도 아주 기가 막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긴장감 있게 진행하다가 다시금 사건의 진행을 막히게 만들어서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들고 다시금 긴장을 조성하는 구성은 전형적이라고 말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아주 부족함 없이 이끌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게다가 매튜 스커더의 개인적인 고민과 생각들이 더해지면서 작품은 보다 감상적으로 읽힐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다양한 캐릭터들과 간간히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사회의 이면의 모습과 문제점 그리고 냉소적인 발언들을 통해 보다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성폭행과 연쇄살인으로 인한 이야기를 통해서 자극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지만 매튜 스커더의 개인적인 사연들이 더해지고 그의 고민들이 작품을 보다 선정적인 소설이 아닌 사회적인 소설이 되도록 만들고 있다.

 

멋지고 매력적이다.

뉴욕을 오랜만에 뉴욕답게 써내려간 글을 읽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런 하드보일드 소설들이 더 많이 출판되기를 바랄 뿐이다.

 

 

 

참고 : 작가의 서문이나 역자의 글이 전혀 없이 본 내용만 있는 소설책은 정말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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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현대의 지성 94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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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으로 인해서 단번에 집어 들어서 읽게 되었는데, 호기심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풍부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역자의 설명과 로버트 단턴 본인도 ‘고양이 대학살’은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갖는 내용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여러 논문들을 모아놓은 것이고, 단편적이고 부분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즉 체계적인 이론으로 무장한 책이 아니라 논의를 진행하는 도중에 자신의 의도를 조금씩 밝히고 있는 책이라 체계적이고 일관된 이론을 토대로 논의를 진행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다보면 정작 논의할 것은 논의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날 학파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고, 사건의 역사나 정치적인 변화와 관련된 역사가 아니라 요즘 역사학과 인문학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밑으로 부터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는 동안 그동안 갖고 있었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고 역사를 공부할 때 부족함을 느꼈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는 ‘문화사’라고 말하는 것이 편할 것 같은 ‘고양이 대학살’은 별것 아닌 것 같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민담과 책 주문서, 경찰의 보고서, 루소의 소설 등을 통해서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온 직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그리고 생각으로 삶을 살아갔는지 풀어내고 있다. 일반 민중들의 삶과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는지,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계급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또한 지식인이 등장하기 시작할 무렵 공권력은 그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고, 계몽주의가 어떻게 기존의 것들과 선을 긋기 시작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로버트 단턴은 그동안 역사가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었던 자료들을 토대로 당시의 사회를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논의를 읽다 보면은 그동안 누구도 쉽게 다루지 않았던 것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자극을 느낄 수 있기도 하겠지만, 자료의 애매한 부분으로 인해서 논의를 쉽게 동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부족한 자료로 인해서 특수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도 하고 그의 적극적인 해석이 말 그대로 지나치게 적극적이기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느껴지게 되는 애매함일 것이다.

 

하지만 여러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당시의 시대를 분석하고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쉽게 간과할 수 없기도 할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로버트 단턴의 논의를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각자의 판단으로 남겨져야 할 것 같지만 분명 그의 방식은 기존의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에 비해서 보다 현실감이 있다는 것과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방식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고 몇몇 연구자들을 통해서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이런 작업 방식은 자료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연구자 개개인의 상상력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연구자들로서는(연구자라는 직업 자체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하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이런 방식의 연구를 하고 싶어도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연구가 기존의 방식에 비해서 보다 새로운 시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방식의 역사서 혹은 문화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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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신호등 - 원칙과 소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성찰의 거울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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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홍세화의 글을 읽었지만 그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시절이나 한겨레를 통해서 프랑스에 머물며 써낸 글들과 영구 귀국 후 써냈던 글들을 모은 ‘빨간 신호등’에서나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더 많은 생각과 행동(혹은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글들은 때로는 몰랐던 것들을 알려주고, 그동안 잊었던 것들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글들은 (좋은 의미로) 불편하다. 항상 그렇듯이 잊고 있고 모르고 있었던 것을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인 것 같다.

 

1999년 5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즉, 김대중 정권 시기부터 노무현 정권 초반까지의 기간을 시대적 배경으로 써낸 글들이기 때문에 지금 읽는다면 조금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겠지만 읽다보면 그의 글들에서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 글들이 보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면 이번 ‘빨간 신호등’에서는 한국에 영구 귀국 후의 글들이 있기 때문인지 보다 가까이서 바라본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거리상으로도 가까워 졌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가 더 많은 직접적인 경험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며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며 글을 써냈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그의 글들은 전반적으로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특히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일간지에 대한 비판을 주된 화두로 삼고 있고, 그 외에 노동과 교육문제 그리고 (천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문제까지 다양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적으로 그가 (당연히) 좌파로 분류될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정의’를 우선시 한다는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있는데, 이건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니 직접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겨레 신문을 통해서 발표되었던 칼럼들을 모은 책이라 그 당시의 홍세화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던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그가 지적했던 문제들이 2000년대 말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더더욱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불편하게 읽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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