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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 양장본
앤서니 기든스 지음, 한상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야 제3의 길을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를 넘어서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최근 한국의 정치적 상황들 때문인 것 같다.
토니 블레어로 대표되는 제3의 길과 중도좌파 혹은 중도라는 정치적 입장은 결과적으로는 말장난에 불과하고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 이념이고, 그것을 지향한 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을 지지하던 지지자들이 전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정책을 펼쳤고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존의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정책들을 일관적으로 혹은 더 무모하게 밀어붙이는 성향도 보이는 등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도 못했다.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을 추구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적이기만 했고 이상은 말로만 했을 뿐이었다. 혹은 머리 속에서만 남겨져 있었거나.
그런 제3의 길 혹은 중도좌파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그들의 문제의식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짧은 분량이면서도 제3의 길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주 말하고 있는 문제점과 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든스의 문제의식은 분명 적절하고 날카로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론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여성과 가족, 환경문제와 세계화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세밀한 면이 부족한 것 같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최대한 간략하게 논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점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는 제3의 길이라는 이념이 보여주는 해답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에 실망스러운 기분도 든다.
그리고 제3세계의 빈곤문제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는 수준이지 직접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토대로 하게 된다면 기든스의 제3의 길은 결국 유럽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든스가 유럽중심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글에서는 특별히 세계화에 대해서 보다 풍부한 시각을 엿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그는 과거의 케인즈와 비슷한 일종의 개량주의 혹은 수정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데, 케인즈와는 다르게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처방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입장에서는 그의 논의는 학술적이고 이론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고 직접적이지도 않은 논의일 뿐이며,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원하는 정치인들에게나 즉각적인 영감을 안겨주고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여지만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든스는 말미에서 토니 블레어 정권에 대해 말뿐인 공허함 보다는 보다 알찬 결실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건 블레어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필요한 말이었다. 어쨌든 그의 지적대로 제3의 길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새롭게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수사적인 새로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제3의 길을 써먹고 실패했다고 제3의 길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부분적으로 기든스의 논의 중에서 분명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도 있고, 그의 분석을 지속적으로 언급할 부분도 있기 때문에 쉽게 묻어버리기도 아까운 구석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