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린 마을 이야기 ㅣ 이산의 책 25
황수민 지음, 양영균 옮김 / 이산 / 2003년 7월
평점 :
한국에 있어서 가깝고도 먼 나라는 일본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앞으로 한국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중국 또한 가깝지만 무척이나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일 것이고, 중국의 대한 논의 대부분은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수사적인 차원에서만 다뤄지고 있을 뿐인 것 같다.
정작 우리는 중국이라는 곳에 대해서 그다지 알지 못하고 있고, 안다고 해도 삼국지와 같은 고전 소설이나 수많은 무협지로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위안화와 관련된 지루한 경제 관련이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과 같은 정치적 지도자들을 떠올리거나 문화혁명, 천안문사태, 경제개방과 같은 역사적 사실 혹은 일련의 중국 근대화의 흐름에 있어서의 중요한 지점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상식이나 지식을 쌓는 것에 도움이 되거나 낱말 퀴즈를 풀고 도전 골든벨을 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중국인들의 의식구조나 삶에 대해서 알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고, 실제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것에는 별다른 도움을 얻지는 못할 것 같다. 중국판 전원일기와 같은 느낌의 제목을 갖고 있는 황수민의 ‘린마을 이야기’가 촌스러운 제목에 비해서는 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효과적일 것 같다.
이와 같이 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보는 글들을 통해서 보다 그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이해하기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저자인 황수민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다음 인류학자로서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근현대라는 혼란의 시기를 살아간 공산당 간부 예원더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중국의 근현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도시와는 구별되는 중국의 농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예원덕의 구술을 통해서 중국의 그리고 중국 농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린마을 이야기’는 좀 더 직접적으로 중국인들의 의식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인류학 보고서일 것이고, 일반인의 시각에서 그들이 겪었던 격렬한 변화들에 대한 고백일 것이다.
‘린마을 이야기’는 대부분의 내용이 공산당 간부 예원더와의 구술 내용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고, 예원더의 시각을 통해서 린마을을 그리고 중국의 근현대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각은 확고하기 보다는 유연하고, 때로는 비판적이거나 성찰적인데, 애매하게 말하기 보다는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설득력을 갖게 만들고 있다.
단순히 린마을에 대한 내용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예원더 본인이 직접 겪었던 해방과 중국 공산당의 지배 그리고 대약진운동, 사청운동, 문화혁명, 경제개방 등 중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굵직한 사건들을 어떻게 겪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알려주고 있고, 그 혼란의 과정 속에서 린마을 사람들이 어떤 입장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들려주며 극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의 중국인들의 모습과 생각 그리고 농촌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사건의 흐름으로서의 역사가 아닌 그 사건을 겪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어떤 생각과 반응을 보였는지 알게 됨으로써 좀 더 직접적으로 역사적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실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대부분의 내용이 이뤄져 있기 때문에 도시에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떤 입장이었는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린마을 이야기’에서 그 부분을 다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린마을이라는 농촌을 중심으로 중국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중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중국에서 삶을 살아가는 실제 삶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단순히 역사적 부침이 심했던 시기를 살아온 공산당 하급 간부의 회고가 아닌 비판적 성찰과 개인적 소견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고, 솔직하게 자신의 소감을 얘기해주고 있어서 보다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단순히 과거에서 현재까지가 아닌 1990년 이후(직접적으로 말한다면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의 린마을로 대표되는 농촌의 변화와 그 급격한 변화로 인해서 발생되는 또다른 문제들(경제적 불평등, 이주민 문제, 계급화, 새로운 범죄 등등)에 대한 언급과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로 인해서 조금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앞으로의 전망까지 제시하면서 내용은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진 중국의 근현대사가 아닌 삶으로서의 중국인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내용인 것 같다.
약간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예원더의 구술에 너무 몰두했는지 저자 황수민의 시각은 특별히 찾아볼 수 없었고, 일반적인 역사적 해석과 구술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과 어떠한 차이를 찾아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차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 보다 파고들어야 할 부분들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지 않고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감 넘치는 예원더의 구술을 놓치지 않고 글로 옮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던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시각을 통해서 알게 되어서 좋았고, 기회가 된다면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알아가야 할 것 같다.
참고 : 많은 역사학자들은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수없이 언급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사청운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는데, 예원더는 반대로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있고, 사청운동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별 것 아닌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알고만 있는 이와 실제로 겪었던 이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