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마을 이야기 이산의 책 25
황수민 지음, 양영균 옮김 / 이산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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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어서 가깝고도 먼 나라는 일본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앞으로 한국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중국 또한 가깝지만 무척이나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일 것이고, 중국의 대한 논의 대부분은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수사적인 차원에서만 다뤄지고 있을 뿐인 것 같다.

 

정작 우리는 중국이라는 곳에 대해서 그다지 알지 못하고 있고, 안다고 해도 삼국지와 같은 고전 소설이나 수많은 무협지로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위안화와 관련된 지루한 경제 관련이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과 같은 정치적 지도자들을 떠올리거나 문화혁명, 천안문사태, 경제개방과 같은 역사적 사실 혹은 일련의 중국 근대화의 흐름에 있어서의 중요한 지점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상식이나 지식을 쌓는 것에 도움이 되거나 낱말 퀴즈를 풀고 도전 골든벨을 울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중국인들의 의식구조나 삶에 대해서 알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고, 실제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것에는 별다른 도움을 얻지는 못할 것 같다. 중국판 전원일기와 같은 느낌의 제목을 갖고 있는 황수민의 ‘린마을 이야기’가 촌스러운 제목에 비해서는 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효과적일 것 같다.

 

이와 같이 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보는 글들을 통해서 보다 그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이해하기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저자인 황수민은 미국으로 이민을 간 다음 인류학자로서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근현대라는 혼란의 시기를 살아간 공산당 간부 예원더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중국의 근현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도시와는 구별되는 중국의 농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예원덕의 구술을 통해서 중국의 그리고 중국 농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린마을 이야기’는 좀 더 직접적으로 중국인들의 의식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인류학 보고서일 것이고, 일반인의 시각에서 그들이 겪었던 격렬한 변화들에 대한 고백일 것이다.

 

‘린마을 이야기’는 대부분의 내용이 공산당 간부 예원더와의 구술 내용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고, 예원더의 시각을 통해서 린마을을 그리고 중국의 근현대사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각은 확고하기 보다는 유연하고, 때로는 비판적이거나 성찰적인데, 애매하게 말하기 보다는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설득력을 갖게 만들고 있다.

 

단순히 린마을에 대한 내용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예원더 본인이 직접 겪었던 해방과 중국 공산당의 지배 그리고 대약진운동, 사청운동, 문화혁명, 경제개방 등 중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굵직한 사건들을 어떻게 겪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알려주고 있고, 그 혼란의 과정 속에서 린마을 사람들이 어떤 입장과 행동 그리고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들려주며 극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의 중국인들의 모습과 생각 그리고 농촌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사건의 흐름으로서의 역사가 아닌 그 사건을 겪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어떤 생각과 반응을 보였는지 알게 됨으로써 좀 더 직접적으로 역사적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실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대부분의 내용이 이뤄져 있기 때문에 도시에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떤 입장이었는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린마을 이야기’에서 그 부분을 다룰 수는 없었을 것이다.

 

린마을이라는 농촌을 중심으로 중국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중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지만 중국에서 삶을 살아가는 실제 삶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단순히 역사적 부침이 심했던 시기를 살아온 공산당 하급 간부의 회고가 아닌 비판적 성찰과 개인적 소견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고, 솔직하게 자신의 소감을 얘기해주고 있어서 보다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단순히 과거에서 현재까지가 아닌 1990년 이후(직접적으로 말한다면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의 린마을로 대표되는 농촌의 변화와 그 급격한 변화로 인해서 발생되는 또다른 문제들(경제적 불평등, 이주민 문제, 계급화, 새로운 범죄 등등)에 대한 언급과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로 인해서 조금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앞으로의 전망까지 제시하면서 내용은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진 중국의 근현대사가 아닌 삶으로서의 중국인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내용인 것 같다.

 

약간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예원더의 구술에 너무 몰두했는지 저자 황수민의 시각은 특별히 찾아볼 수 없었고, 일반적인 역사적 해석과 구술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과 어떠한 차이를 찾아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차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 보다 파고들어야 할 부분들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지 않고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감 넘치는 예원더의 구술을 놓치지 않고 글로 옮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던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시각을 통해서 알게 되어서 좋았고, 기회가 된다면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알아가야 할 것 같다.

 

 

참고 : 많은 역사학자들은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수없이 언급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사청운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는데, 예원더는 반대로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있고, 사청운동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별 것 아닌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알고만 있는 이와 실제로 겪었던 이가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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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미야 하루히의 분열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9, NT Novel
타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덕주 옮김, 이토 노이지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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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든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은 스즈미야 하루히 세계관의 하나의 완성이었고, 완결이었다. ‘소실’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가장 탁월한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통해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와 세계관은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소실’ 이후의 장편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음모’는 그러한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일종의 분기점 혹은 새로운 시작으로서 다뤄져야 할 것이다.

 

‘음모’를 통해서 새로운 진행방향을 보여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분열’은 그동안 항상 내용을 완결을 짓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음 편으로 예고된 ‘스즈미야 하루히의 경악’으로 내용이 이어지도록 이야기가 진행 과정 중에서 끝나고 있고, 말 그대로 두 개의 이야기로 분열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동안 ‘폭주’와 ‘동요’ 그리고 ‘분개’와 같이 별다른 의미를 느낄 수 없는 단편들로 인해서 기대감이 낮아지게 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였지만 ‘음모’와 ‘분열’을 통해서 좀 더 이야기가 거대해지고 확장되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음모’와 마찬가지로 길고 긴 프롤로그를 통해서 이야기는 궁금증을 높이고 있고, 진행되는 듯 마는 듯 이어지던 이야기는 쿈의 중학교 동창 사사키와 사사키를 중심으로 모이는 스즈미야 하루히와는 대립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등장,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립된 구도를 통해서 이야기의 규모는 커지게 되고 스즈미야 하루히(와 친구들) / 사사키(와 주변인들)의 생겨나게 되는 대립을 통해서 쿈의 내면적 갈등 혹은 혼란스러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약간의 흥미가 생길 무렵에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경악’으로 이어질 것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궁금증만 만들어내고 있을 뿐 싱겁게 끝내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데, 확장되고 복잡하게 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관심을 갖게 된다.

과연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항상 뒤엉켜진 이야기를 순식간에 말끔히 정리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이 반복되어가면서 이전과 같은 놀라움이 적어지게 되어가고 있어서인지 우려되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진행 중에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판단을 보류하게 되고, ‘경악’을 기대하게 되기는 하지만 ‘소실’을 통해서 완결된 이야기에 대한 길고 긴 사족처럼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기분도 들게 된다. 게다가 필요 이상으로 꼬이고 있는 설정들로 인해서 늘어지고 있다는 인상도 갖게 된다. 이런 불만들을 ‘경악’이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지난 몇 년 동안 발표가 미뤄지고 있었던 ‘경악’이 곧 출판(2011년 05월 25일 전세계 동시 출판이라고 거창하게 홍보하고 있다)이 될 예정이라 어떤 방식으로든 이번 모험이 일단락이 될 것이고 스즈미야 하루히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평가도 좀 더 제대로 이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저 아쉬움을 느끼지 않게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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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린 헌트 지음, 조한욱 옮김 / 새물결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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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하나의 ‘분석’이 아닌 프랑스 혁명이라는 ‘신화에 대한 일종의 해석’으로서 그동안의 정치적 혹은 사회 / 계급적 관계와 의미에 중점을 둔 분석들과는 달리 조금은 다른 방식과 각도에서 프랑스 혁명을 들여다보고 있다.

 

본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저자인 린 헌트는 굉장히 적극적인 방식으로 프랑스 혁명을 해석하고 있고, 린 헌트의 해석 방식에 대해서 입장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나타낼 수 있기는 하겠지만 분명 이전의 다른 방식들에 비해서는 흥미로운(물론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어차피 해석이라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얼마나 설득력 있고 독창적인지가 관건이기 때문에 린 헌트의 해석은 그동안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다른 해석들에 비해서는 충분히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그중에서도 집단무의식과 아버지의 죽음, 종교 및 상징적 권위의 등장과 그 기원에 집중하고 있는 ‘토템과 타부’)을 토대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하나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고, 그 해석의 핵심은 ‘가족 로망스 / 가족 이데올로기’이다.

 

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실질적 / 상징적 권위의 대상인 아버지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반감과 애정으로 인해서 ‘아버지 살해’라는 실제 / 신화적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서 종교, 법 등이 생겨나게 되며,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근친상간 금지’라는 사회의 핵심 원칙이 생기게 된다는 논의인데, 이와 같은 논의를 프랑스 혁명에 대입해서 린 헌트는 논의하고 있고, 혁명 당시의 프랑스 민중과 혁명을 이끈 이들의 무의식과 정신구조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있으며 국왕을 죽임으로써 생겨나는 당혹스러움과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혁명이 제시하(려고 하)는 하나의 신화를 프로이트의 논의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국왕과 왕비라는 상징적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상징적 의미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권위와 가부장적 틀이 붕괴되어 나타나게 되는 정신적 사회적 혼란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고, 새로운 권위와 가부장적 틀을 만들어내고 가족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즉,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정치 체제에서만의 혁명이 아닌 정신구조에서도 혁명이 완성되었다는 방식으로 (기존의 신화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신화를 제시한다는 방식으로)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고 있다. 결국 존재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아버지를 등장시키는 과정으로 혁명을 해석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국왕 루이 16세가 갖고 있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상징성과 함께 그가 보인 정치적 잘못들로 인해서 어떻게 민중들이 실망하게 되고 그의 권위가 그리고 상징적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추락하게 되는지를 분석하며, 결국 국왕을 사형시키는 것이 단순히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라 정신구조에 있어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논의를 위해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논의에서의 상징적 아버지가 갖고 있는 중요성 그리고 사람들이 국왕을 어떤 아버지로서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당시에 발표된 소설과 그림들을 토대로 자신의 해석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상징적 아버지로서의 국왕이 어떻게 그 상징성을 박탈당하게 되는지 그리고 국왕이 사형 당함으로써 발생되는 (상징적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공백을 민중들이 그리고 국왕을 사형시킨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당시의 신문과 소설 그리고 그림과 정치적 영향력이 있던 사람들의 연설과 언급을 통해서 확인시켜주고 있고, 이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논의를 토대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아버지)를 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상징적 아버지를 내세우기 위해서 혁명을 주도한 이들이 어떤 무의식적 반응과 그 무의식적 반응을 실제 정치적 혹은 사회적 행동에 옮기게 되는지를 앞서 말했던 소설, 그림, 정치적 발언과 연설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남성적 혹은 가부장 적인 질서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여성 /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 / 국왕을 죽임으로써 갖게 된 혼란은 국왕의 아내였던 왕비 / 어머니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반감과 함께 국왕을 죽였다는 죄의식이 겹쳐짐으로써 왕비 /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은 보다 깊어지고 이와 함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 또한 이전 사회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더 강화되어가게 된다. 이러한 (여성을 배제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면서 어떻게 남성적 질서가 재구성 되는지 분석하면서 그 배제의 과정과 죄의식의 형태가 매우 ‘성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남성성을 강조하고 여성성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으며, 성적인 방종과 혼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당시의 혼란스러움을 날카롭게 잡아내고 있다고 저자인 린 헌트가 주장하고 있는 사드의 소설 ‘규방 철학’에 대해서 논의하며 사드가 얼마나 프랑스 혁명이 갖고 있는 성적인 의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냉소적인 논평을 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는데, 전복적이며 노골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사드를 통해서 혁명이 갖고 있는 성적인 혼란을 다루고 있으며, 그 혼란을 정리하고 안정을 찾기 위해서 어떠한 정치 / 사회적인 모델이 제시되는지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게 하고 있다.

 

새롭게 제시되는 가부장적 그리고 남성적 질서는 이전 사회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을지 몰라도 그러한 질서가 제시되는 방식과 질서가 안겨주는 안락함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제시되는 질서가 갖고 있는 안락하고 가정적인 형태에 대해서 분석하며 자신의 논의를 마무리 짓고 있는데, 상징적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나타난 혼란과 당혹스러움이 성적인 혼란과 여성에 대한 배제로서 나타나고 새롭게 제시되는 질서를 통해서 남성성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신화를 완성시킨다는 린 헌트의 해석은 흥미로우면서도 배제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는 달리 별도의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린 헌트는 프로이트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녀의 해석이 결국 프로이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프로이트의 논의를 옹호하게 되고 있고, 이로 인해서 린 헌트의 입장은 매우 모순적이라는 생각도 갖게 된다.

 

린 헌트는 혁명 이전의 질서와 이후의 질서 모두 남성성을 강조하고 있고, 여성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프로이트의 논의가 갖고 있는 가부장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의심스러운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비판과 의심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만 있다. 그저 불만스러움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어떻게 그런 분석과 해석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혹은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안도 하지 못함으로써 그 신화와 해석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린 헌트 본인으로서는 함정에 빠지게 되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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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1871
노명식 / 까치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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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던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는 중 몇 년 전 읽어보았던 노명식 교수의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 - 1871’를 다시금 읽어보게 되었다.

노명식 교수가 발표한 대부분의 저작이 절판이 되었기 때문에 구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연구물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평소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고, ‘프랑스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 1789 - 1871’은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입문서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읽어보며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을 이해하려고 했다.

다른 정치 / 사회적 혁명들에 비해서 프랑스 혁명은 그 혁명의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혼란과 변화와 반복(혁명과 반혁명의 반복)을 보여줬는데, 이로 인해서 현대 정치 체제와 사회 체제에서 다룰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논의들이 실제로 반영되었거나 적용되었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인상적이면서도 전체적인 과정이 쉽게 이해되지가 않기도 한데,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고 정치적 혼란 속에서 등장한 논의들과 선택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다.

노명식 교수는 이런 프랑스 혁명이 갖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간결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있으며, 간간히 역사적 흐름과 중요한 분기점을 지적하면서 그 상황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와 함께 그 상황 속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혹은 어떠한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이들이 어떤 선택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간략한 언급을 하면서 그저 언급만이 아닌 작품이 발표된 당시(1980 - 1990년대)의 한국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지적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저자가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80여년의 긴 시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중요한 지점들을 놓치지 않고 있고, 어떠한 한 지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잘 조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알베르 소부울의 경우는 나폴레옹의 집권과 함께 혁명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 짓고 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진행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궁금증이 많이 해소될 수 있었고, 최근에도 많이 논의되고 있는 파리 코뮌의 성격에 대해서 실제 파리 코뮌의 성격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 없이 그저 해석으로서만 논의되고 있는 최근의 논의와는 달리 역사적인 사실에 맞춰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적절한 이해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짧은 분량이면서도 프랑스 혁명이 갖고 있는 온갖 혼란스러움을 잘 정리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지점들과 사건들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핵심 요약과 같은 느낌이 드는데, 단순히 정리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리 속에서 저자가 바라보고 있는 혁명의 성격과 그 성격이 갖고 있는 의미 그리고 의미에 대한 언급들은 프랑스 혁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시대적인 통찰력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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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만 가지 죽는 방법 밀리언셀러 클럽 13
로렌스 블록 지음, 김미옥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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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소설이기 보다는 마치 실존주의 소설과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음울함과 삶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로렌스 블록의 ‘800만가지 죽는 방법’은 어둡고 살벌한 느낌의 제목과는 달리 음울함과 고독 그리고 삶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범죄 / 하드보일드 소설이다.

로렌스 블록의 작품은 우연히 접한 ‘무덤으로 향하다’를 통해서 알게 된 작가이고, 그의 작품은 하드보일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 속에서는 범죄 사건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보다는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주인공 매튜 스커더의 개인적인 고뇌와 수많은 독백 그리고 그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느끼게 만드는 현대인의 여러 모습들이 더 강조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범죄 소설이기 보다는 사회 소설일 것이고, 사회 소설이기 보다는 심리 소설일 것이다.

이와 같이 기본적으로는 하드보일드이지만 일종의 심리소설 / 실존주의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로렌스 블록의 작품은 범죄에 대한 묘사 보다는 그 범죄를 통해서 생겨나게 되는 심리적 변화와 갈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고민으로 가득한데, 등장인물들 대부분의 심리적 상태는 공허와 허무이고 그 공허와 허무로 인해 좌절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로 인해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는 이들도 있다.

‘800만 가지 죽는 방법’은 시기적으로 ‘무덤으로 향하다’보다는 이전 시기로 생각되는데, 여전히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 매튜 스커더의 모습과 그의 괴로움 / 갈등들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와 함께 우연하게 살인 사건에 개입되어가며 점점 더 개인적인 갈등과 의문으로 가득한 살인 사건이 하나로 겹쳐지면서 매튜 스커더의 개인적 고민과 갈등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허무와 의지가 깊이 있게 다뤄지고 있다.

일반적인 범죄 사건과 도시의 어둠으로 채워진 하드보일드를 기대했던 팬들이라면 그 어둠이 감돌면서도 개인의 실존적인 고민으로 가득한 로렌스 블록의 소설에서 재미 보다는 지루함을 먼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건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해결 과정도 그다지 긴박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고, 사건에 대한 해결 과정 대부분이 대화와 묵상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리고 사건의 해결 자체도 큰 반전이나 예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이고 있지도 않아서 자극적인 범죄 / 하드보일드 소설을 찾는 독자라면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하드보일드가 담아낼 수 있는 건조함과 도시의 어둠 그리고 그 어둠에 젖어 있으면서도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끝없이 몸부림치는 허무와 절박함 그리고 일말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서 읽어나가게 된다면 이보다 더 매력적인 작품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느릿하고

조금은 더딘 느낌은 들지만

날렵함은 부족해도 뚝심 있고 묵직함이 담겨져 있는 멋진 작품이다.

노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참고 : 작품 속에서는 지속적으로 신문과 미디어를 통해서 도시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죽음들을 거론하고 있다. 로렌스 블록은 그런 죽음들이 익숙하면서도 무척이나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이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언급되는 다양한 죽음들을 통해서 끝없이 삶을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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