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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린 헌트 지음, 조한욱 옮김 / 새물결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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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하나의 ‘분석’이 아닌 프랑스 혁명이라는 ‘신화에 대한 일종의 해석’으로서 그동안의 정치적 혹은 사회 / 계급적 관계와 의미에 중점을 둔 분석들과는 달리 조금은 다른 방식과 각도에서 프랑스 혁명을 들여다보고 있다.
본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저자인 린 헌트는 굉장히 적극적인 방식으로 프랑스 혁명을 해석하고 있고, 린 헌트의 해석 방식에 대해서 입장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나타낼 수 있기는 하겠지만 분명 이전의 다른 방식들에 비해서는 흥미로운(물론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특별히 새로울 것 없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어차피 해석이라는 것은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는 얼마나 설득력 있고 독창적인지가 관건이기 때문에 린 헌트의 해석은 그동안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다른 해석들에 비해서는 충분히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그중에서도 집단무의식과 아버지의 죽음, 종교 및 상징적 권위의 등장과 그 기원에 집중하고 있는 ‘토템과 타부’)을 토대로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하나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고, 그 해석의 핵심은 ‘가족 로망스 / 가족 이데올로기’이다.
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실질적 / 상징적 권위의 대상인 아버지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에 대한 반감과 애정으로 인해서 ‘아버지 살해’라는 실제 / 신화적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서 종교, 법 등이 생겨나게 되며,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근친상간 금지’라는 사회의 핵심 원칙이 생기게 된다는 논의인데, 이와 같은 논의를 프랑스 혁명에 대입해서 린 헌트는 논의하고 있고, 혁명 당시의 프랑스 민중과 혁명을 이끈 이들의 무의식과 정신구조에 대해서 분석을 하고 있으며 국왕을 죽임으로써 생겨나는 당혹스러움과 이전과는 다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혁명이 제시하(려고 하)는 하나의 신화를 프로이트의 논의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국왕과 왕비라는 상징적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상징적 의미에서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권위와 가부장적 틀이 붕괴되어 나타나게 되는 정신적 사회적 혼란으로서의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고, 새로운 권위와 가부장적 틀을 만들어내고 가족 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즉,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냄으로써 정치 체제에서만의 혁명이 아닌 정신구조에서도 혁명이 완성되었다는 방식으로 (기존의 신화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신화를 제시한다는 방식으로) 프랑스 혁명을 이해하고 있다. 결국 존재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새로운 아버지를 등장시키는 과정으로 혁명을 해석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다.
국왕 루이 16세가 갖고 있는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상징성과 함께 그가 보인 정치적 잘못들로 인해서 어떻게 민중들이 실망하게 되고 그의 권위가 그리고 상징적 아버지로서의 권위가 추락하게 되는지를 분석하며, 결국 국왕을 사형시키는 것이 단순히 정치적 사건만이 아니라 정신구조에 있어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논의를 위해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논의에서의 상징적 아버지가 갖고 있는 중요성 그리고 사람들이 국왕을 어떤 아버지로서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당시에 발표된 소설과 그림들을 토대로 자신의 해석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상징적 아버지로서의 국왕이 어떻게 그 상징성을 박탈당하게 되는지 그리고 국왕이 사형 당함으로써 발생되는 (상징적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공백을 민중들이 그리고 국왕을 사형시킨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당시의 신문과 소설 그리고 그림과 정치적 영향력이 있던 사람들의 연설과 언급을 통해서 확인시켜주고 있고, 이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논의를 토대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가부장적 질서(아버지)를 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상징적 아버지를 내세우기 위해서 혁명을 주도한 이들이 어떤 무의식적 반응과 그 무의식적 반응을 실제 정치적 혹은 사회적 행동에 옮기게 되는지를 앞서 말했던 소설, 그림, 정치적 발언과 연설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남성적 혹은 가부장 적인 질서를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여성 /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 / 국왕을 죽임으로써 갖게 된 혼란은 국왕의 아내였던 왕비 / 어머니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반감과 함께 국왕을 죽였다는 죄의식이 겹쳐짐으로써 왕비 /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은 보다 깊어지고 이와 함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 또한 이전 사회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더 강화되어가게 된다. 이러한 (여성을 배제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다루면서 어떻게 남성적 질서가 재구성 되는지 분석하면서 그 배제의 과정과 죄의식의 형태가 매우 ‘성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남성성을 강조하고 여성성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으며, 성적인 방종과 혼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당시의 혼란스러움을 날카롭게 잡아내고 있다고 저자인 린 헌트가 주장하고 있는 사드의 소설 ‘규방 철학’에 대해서 논의하며 사드가 얼마나 프랑스 혁명이 갖고 있는 성적인 의미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냉소적인 논평을 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는데, 전복적이며 노골적인 방식으로 제시하는 사드를 통해서 혁명이 갖고 있는 성적인 혼란을 다루고 있으며, 그 혼란을 정리하고 안정을 찾기 위해서 어떠한 정치 / 사회적인 모델이 제시되는지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게 하고 있다.
새롭게 제시되는 가부장적 그리고 남성적 질서는 이전 사회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을지 몰라도 그러한 질서가 제시되는 방식과 질서가 안겨주는 안락함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제시되는 질서가 갖고 있는 안락하고 가정적인 형태에 대해서 분석하며 자신의 논의를 마무리 짓고 있는데, 상징적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나타난 혼란과 당혹스러움이 성적인 혼란과 여성에 대한 배제로서 나타나고 새롭게 제시되는 질서를 통해서 남성성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신화를 완성시킨다는 린 헌트의 해석은 흥미로우면서도 배제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는 달리 별도의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린 헌트는 프로이트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녀의 해석이 결국 프로이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프로이트의 논의를 옹호하게 되고 있고, 이로 인해서 린 헌트의 입장은 매우 모순적이라는 생각도 갖게 된다.
린 헌트는 혁명 이전의 질서와 이후의 질서 모두 남성성을 강조하고 있고, 여성이 배제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프로이트의 논의가 갖고 있는 가부장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의심스러운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비판과 의심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만 있다. 그저 불만스러움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고 어떻게 그런 분석과 해석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혹은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안도 하지 못함으로써 그 신화와 해석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린 헌트 본인으로서는 함정에 빠지게 되어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