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이등 시민과 선량한 게이 시민 사이의 함정들

 

이등 시민, 음란과 싸우다

2001년 당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인터넷이 지나치게 개방되어 있는 것을 걱정하여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실시하려 했다. 표면적으로는 불건전한 외국 사이트의 접속 차단 리스트일 뿐 국내 사이트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알 권리를 단속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이 법의 등급선정기준표에 의하면 동성애는 ‘퇴폐 2등급’의 자리를 배정받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음(DAUM)과 세이클럽의 동성애자 친목 모임 중 몇 곳이 음란성, 풍기문란 등을 이유로 1차의 경고도 없이 폐쇄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보통신검열반대 공동행동’이 꾸려져 대응책을 찾던 와중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터넷 사이트인 ‘엑스존(EXZONE)’이 ‘청소년유해사이트’ 목록에 올라 있었으며, 1년이 지나도록 사이트의 운영자는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그 결정의 근거를 묻자,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 기준을 정해놓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제7조의 ‘수간을 묘사하거나 혼음, 근친상간, 동성애, 가학·피학성 음란증 등 변태성 행위, 매춘 행위, 기타 사회 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한 성관계를 조장하는 것’이란 조항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이 조항에 의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심의당한 것은 1998년에 창간된 한국 최초의 동성애 전문지 <버디>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자들로부터는 너무 건전하고 학술적인 것 아니냐는 말을 들어야 할 정도였지만, <버디>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청소년보호법 10조 1항 1호의 ‘청소년에게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선정적인 것이거나 음란한 것’에 저촉되니 잡지를 전량 수거하라는 통지문을 매달 받고 있었다.

1997년에 제정된 청소년보호법 내에 포함된 심의 기준은 아마도 그보다 더 이전에 만들어진 갖가지 공공 매체물에 관한 심의 기준을 참조했던 것 같다. 1997년에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란 영화가 동성애가 주제라는 이유로 공연윤리위원회에 의해 수입 상영이 불허된 적이 있다. 이는 영화진흥법시행규칙 제6조 ‘근친상간, 윤간, 동성연애, 수간, 집단적 성행위, 기타 변태적 생행위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은 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규정에 근거한 조치였다. 이것은 단지 청소년을 보호하는 취지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한국잡지자율윤리위원회의 성인·대중잡지 매체 심의 기준 1조 3항에 나와 있는 음란퇴폐물의 기준을 보면 ‘혼음, 수간, 동성연애, 가학·피가학성 등 변태적 성행위를 음탕하게 묘사하여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10년 정도가 흐른 지금은 어떨까. 우선 그때의 엑스존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결정에 항의하여 사이트를 자진 폐쇄하고, 동성애자 인권을 침해하는 청소년보호법의 부당함을 알리는 캠페인과 함께 ‘청소년유해매체물 지정 고시 철회 청구’ 행정 소송을 냈었다. 항소심까지 끈질기게 항의를 했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하지만 졌다고만 하기엔 얻은 것이 훨씬 많은 싸움이기도 했다. 2003년 12월 22일, 서울고등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이미 2003년 4월에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다음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개정 때 ‘동성애’라는 항목을 빼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고, 2004년 4월 30일자로 동성애 항목은 유해 심의 기준에서 제외되었다. 특히 이 엑스존 소송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보여준 분명한 태도 때문이다. ‘단지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헌법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인 행복추구권, 평등권, 인격권, 성적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라며 청소년보호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성애자의 시민권을 법적으로 긍정하고 명시한 첫 번째 사례다.

두 번째 사례는 2009년에 김조광수 감독이 만든 20분짜리 단편영화 <친구 사이?>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사건에서 비롯된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영상의 표현에 있어 성적 행위 등의 묘사가 노골적이며 자극적인 부분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그 사유를 밝혔다. 이에 제작사 청년필름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분류 취소 청구 소송을 냈고 2010년 9월 9일 마침내 승소하였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영화를 관람하는 청소년들에게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성적 자기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교육적인 효과도 제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라고 밝히면서 “동성애를 유해한 것으로 취급하여 그에 관한 정보의 생산과 유포를 규제하는 경우,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 속하는 성적 자기결정권 및 알 권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 및 헌법상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라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이등 시민, 음란의 길을 묻다

영화 <친구 사이?>의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취소하라는 판결의 내용은 7년 전의 엑스존이 청소년유해매체사이트 고시를 무효로 해달라고 낸 소송의 판결과 아주 흡사하다. 비록 엑스존은 패소했지만 <친구 사이?>의 승소는 엑스존이 남긴 유산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전 공연윤리위원회)의 주장 역시 7년 전 정보통신윤리위원회(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했던 말들과 똑같다는 점이다. 또한 앞으로도 음란과 청소년 유해성을 연결하는 그 논리는 동성애를 다루는 드라마나 영화, 잡지 등의 모든 매체들을 계속 공격할 것이라는 점이다.

법원이 동성애자의 시민권을 헌법에 명시된 대로 짚어주는 것은 꽤 중요한 상징적 성과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동성애자의 성적시민권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엑스존이 음란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재판부에 엑스존 홈페이지의 게시물들을 증거 자료로 제시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 자료를 나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솔직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스크랩한 게시물의 내용이 너무 음란하지 않아서였다. 고작해야 “어제 어떤 분과 섹스를 했는데, 에이즈에 걸릴까요?”라든지 “저와 사귈 의향이 있는 형을 찾습니다” 정도였고, 인터넷의 수많은 이성애를 다룬 사이트들에 올라온 글이나 사진들과 비교한다면 감히 ‘음란’을 다툴 정도도 되지 못했다. 이런 어이없음은 영화 <친구 사이?>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김조광수 감독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결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심의를 받았으나 무사히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불꽃처럼 나비처럼>과 <마린보이> 등을 보여주며, 심의 기준의 편파성을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일련의 흐름들을 지켜보며 내심 불안해진다. 그들이 너무나도 허술한 증거들로 음란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음란의 증거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두 개의 점을 찍고 줄을 그어 잇기만 하면 될 뿐이지 않았나.

만약 우리 스스로 동성애자가 음란하지 않다고 주장하려면 기존의 음란이 법적으로 어떻게 정의되는지, 일반적으로 어떤 기준이 적용되는지를 따지면 된다. 차별이 없으려면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에게 그 음란의 정의와 기준이 동일하게 적용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권리의 새로운 의미화이고 재해석이며 근본적인 저항일까. 그 누구도 감히 훼손시킬 수 없는 동성애자의 행복추구권, 평등권, 인격권 등이 주르륵 열거되어도 그와 같은 이유로 동성 간의 결혼이 인정되거나 동성애자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니 또 다시 의심하며 따져볼 수밖에. 뭔가 한걸음 더 나아간 듯하지만, 어떻게 다시 동성애자는 타자가 되고, 이성애주의는 강화되고, 소외와 배제는 은밀하게 작동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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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정민·한채윤, “은밀하게, 조금씩... 그런 차별이 더 무섭다.” 2002년 봄호(통권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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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바이스 2010-10-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고 있었는데, 승소했군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한채윤 2010-10-2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에델바이스님.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11-05-2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혼한 여자가 사회생활하면서 차별 받는 것에서 아직도 못 벗어났습니다. 약자로서 사회의 냉대에서 벗어나려면 전문직, 고소득직으로의 사회진출과 정직하고 성실한 생활태도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