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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궁쥐였어요! ㅣ 동화는 내 친구 57
필립 풀먼 글, 피터 베일리 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08년 8월
평점 :
자신이 시궁쥐였다고 말하는 제복을 입은 소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로저'라는 이름을 지어준 밥 아저씨와 조앤 아주머니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무슨 충격이나 상처 때문에 자신이 시궁쥐였다고 믿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했지만, 로저는 진짜 시궁쥐였다. 실제 먹는 음식도 행동도 쥐와 같았고 자신이 쥐였다는 사실 말고는 다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밥 아저씨와 조앤 아주머니는 로저의 과거를 찾아주려고 시청과 경찰서에 가 보았지만 형식적인 태도와 무관심으로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사실 그런 정보는 세상에 없었지만.) 로저는 밥 아저씨와 조앤 아주머니의 보살핌으로 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엄격한 규율과 회초리에 로저는 공포에 질려 학교를 탈출하고 말았다.
그 뒤 왕립 철학자가 로저에 대해 연구하고, 돈밖에 모르는 탭스크루 씨(스크루지를 연상시키는 인물)에게 잡혀 구역질 나는 쥐소년으로 지냈으며, 빌리라는 소년에게 구출되었지만 결국은 함께 도둑질(로저는 그게 도둑질이라는 걸 모른 채)을 하다 경찰에게 쫓기고 갈 곳을 잃은 로저는 원래 자신이 살던 하수구로 돌아갔다.
회초리일보의 편집장은 기자들에게 기괴하고 선정적이고 무섭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쓰라는 지시가 전달 되었다. 회초리일보의 야심만만한 젊은 기자는 로저에 관한 취재 끝에 하수도에 괴물이 산다는 기사를 썼다. 이렇게 조작된 기사로 인해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고 하수구에 있던 로저는 잡혔다. 방역부 최고 과학자가 로저를 괴물로 단정지었고 재판이 열렸다. 로저는 처형될 처지에 놓였다.
조앤 아주머니와 밥 아저씨는 자신이 만든 진홍빛 구두를 들고 왕자비를 만나러 궁전으로 갔다. 왕자비가 '메리 제인'이었다는 사실을 로저에게 들었던 기억 하나만으로 찾아 갔는데, 왕자비는 큰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다며 로저를 돕겠다고 했다.
왕자비는 로저를 만나 둘의 비밀을 얘기했다. '난 조그마한 아기 쥐였고 우리는 시장의 치즈 가판대 근처에 살았어. 너희 집 바로 뒤에서 말이야. 너는 부엌에서 일했잖아. 그리고 가끔 나한테 음식을 주며서 나를 간질이고 쥐돌이라고 불렀잖아. 지금은 기억난다. 전에는 까먹고 있었는데. 어느 날 네가 날 들어 올려 구두 상자에 넣어서 부엌으로 데려갔어. 그러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난 갑자기 소년이 되었어. 이렇게 서 있었지." 부엌대기였던 '메리 제인'은 왕자비가 되었고, 시궁쥐는 시종이 되었던 것이다.
왕자비는 로저를 소년으로 인정했고 이 일로 회초리일보는 하수구 괴물 이야기대신 오릴리아 왕자비의 동화 속 공주 기사가 도배 되었다. 그리고 로저는 밥 아저씨와 같이 구두장이로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로저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시궁쥐라고 말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은 것처럼, 이제 소년이 되어 자기는 사람이라고 말하자 이번에는 로저를 괴물이라고 몰아붙였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세상의 일면과 시궁쥐가 아무런 이유나 절실함도 없이 소년으로 변했다는 것과 밥 아저씨와 조앤 아주머니의 아이로 자리잡기까지 로저가 겪은 일이 만만치 않았다.
과연 아이들은 시궁쥐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보고 느끼게 될까? 비록 동화 속 세상 이야기지만 밥 아저씨와 조앤 아주머니, 그리고 왕자비의 오릴리아가 없었다면 구원의 가능성이 없던 로지,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으로 극과 극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얽혀 이야기를 읽는 속도감도 있었지만 말이다.
작가는 '어린 독자들도 복잡하고 미묘한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으며, 암울하고도 현실 비판적인 이야기 또한 충분히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런 이야기를 썼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사랑받는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고 한다.
학교와 관공서, 로저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 그들은 로저를 제대로 봐 주지 않았고 자기들 편한 잇속대로 판단했다. 아이들이 이러한 구성의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로저를 가둔 현실을 통해 비판적이고 냉철한 사고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신데렐라 이야기의 모티브로 시작된 '회초리일보' 와 세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궁쥐 소년을 성실한 구두장이라는 사회의 소시민 일원으로 붙박아 놓았는데 과연 보통 아이가 된 시궁쥐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거리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동화로서 얼마큼의 미덕을 갖고 있는가는, 어른 독자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에 대한 답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시궁쥐를 어떤 이유나 절실함도 없이 소년이 되게 해 놓고 인간체제에 맞게 생활하도록 만든 이야기의 결말이 바람직했는지는 의문이다. - [서평단도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