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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 야만과 지상낙원이라는 편견에 갇힌 열대의 진짜 모습을 만나다, 2024 세종도서
이영민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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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의 진짜 모습을 만나고 싶다면,

일단 '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책부터


열대 지역에 대한 책을 이토록 재미있게 읽을 줄은 몰랐다. 그럴 수 있던 이유는 열대 지역은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땅이라서 열대 세계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 때문에, 저자의 풍부한 지리학적 지식에다 몸소 경험한 여행 이야기가 잘 버무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함께 두루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랄까. 그래서 막연하게 여겨졌던 열대 지역 여행에 도전장을 내밀 동기부여가 되었다.



생소한 열대 지역의 풍토와 문화를 알려주는 사진 자료가 많아서 읽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열대 지역의 여러 나라 위치를 하나하나 짚어주어 지리 감각도 키울 수 있었다. (세계지도를 펼쳐 두고 읽으면 좋다.)

소개한 나라의 여행지 곳곳의 풍경 사진을 통해 그곳을 미리 맛보는 즐거움도 컸다. 열대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도록 고심한 노력이 보였다.








이 책은 3부로 나뉜다.

1부는 열대에 대한 '미개의 땅, 지상낙원'의 잘못된 이미지를 바로잡아 준다. 같은 열대라 해도 조금씩 다른 기후의 다양성과 대륙 간의 열대 지역을 자세히 알려 준다.

2부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열대 지역을 알려준다. 보르네오섬, 아마존, 빅토리아호,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열대 고산지대, 열대의 바다 휴양지를 소개한다.

3부는 인류 탄생의 기원지 아프리카에 대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다양하게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유럽 대항해 시대 이후로 식민지 제국주의가 열대에 비극을 몰고 온 점들. 그로 인한 열대 지역의 문화(종교) 섞임 현상이 일어난 점. 본래 있던 문화와 타국가의 문화를 흡수하며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 속의 열대 이야기도 나온다. '하늘 아래 최초'의 세계여행자인 홍어 중계상 문순득. 그는 2백여 년 전 예상치 못한 풍랑을 만나 열대를 경험하고 왔다. 그의 특별한 경험은 여전히 열대를 특별한 경험의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저절로 집중하여 읽은 부분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열대 지역을 소개한 2부다. 예를 들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열대 우림은 보르네오섬이다. 보트를 타고 열대 우림 속 맹그로브 숲을 둘러보고 밤엔 허공을 수놓는 반딧불이를 경관을 볼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신비한 풍경이 그려진다. 또한 그 섬에서 '숲의 사람'인 오랑우탄과 마주할 시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아마존, 빅토리아호,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열대 고산지대 이야기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미덕은 열대의 삶을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점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 살기 척박한 땅 열대 우림의 독특한 자연환경에서는 정착 지향적 생계농업이 발달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도 뿌리내리기 어려웠던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것.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까닭이 있다고 해서 열대 지역 사람들이 '암흑'의 시기를 견디며 불행한 삶을 살아온 것일까? 저자가 던진 이 질문 앞에 나 또한 여러 생각이 고였다. 비록 문명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집단의 규모를 적절하게 제한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그들의 삶을 얕잡아 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들은 자연환경과의 조화, 공동체 생존을 추구하는 평등의 정신 등이 그 바탕에 깔려 있으며, 오늘날 아프리카에도 이어져 '우분투'라고 하는 공동체 지향적 정신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는 대목에 공감했다. 저자가 바라본 '우분투'는 공동체 정신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지표로 이야기할 때 선진국보다 풍요로운 곳일 수 있다는 믿음. 지금의 기후 환경 위기, 열대 우림의 환경 파괴 측면에서도 접근해야 할 덕목으로 다가왔다.



열대에 속한 나라들이 식민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오랜 세월 식민지가 되어 (지금까지도) 종족 간 분쟁과 극빈층의 비율이 높은 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저자는 열대 지역에 처해 있는 정치, 경제적 후진성의 이유가 '열대'라는 기후 조건 때문이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식민제국주의 역사와 그 잔재에 의한 현대 정치세력들의 부패와 갈등에 있는 것이지 결코 '열대' 그 자연적 조건이나 현지인의 인간 본연의 특성이 때문이 아니라고.

지리학자가 들려주는 열대 지역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모르게 잠재된 지상낙원의 이미지, 그들은 뭔가 야만스럽다는 편견을 걷어낼 기회가 생겼다. 적어도 나에게 열대 지역 여행을 꿈꿔 보게 했고, 점점 파괴되고 있는 열대 지역의 현실도 돌아보게 했다. 인문여행 책답게 세상을 좀 더 깊고 넓게 볼 안목을 살피어 준 책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 도서를 제공받아 쓴 글입니다.


#열대이야기 #지리학자의열대인문여행 #이영민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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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 - 심리학으로 풀어낸 개성 넘치는 캐릭터 창작법 예비 작가를 전업 작가로 만드는 작법서 시리즈 2
키라앤 펠리컨 지음, 정미화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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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

- 심리학으로 풀어낸 개성 넘치는 캐릭터 창작법






특별한 사건이 없다 해도 생생하고 개성 넘치는 그러니까 확실한 캐릭터를 장착한 인물은 힘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에 반해 흥미로운 사건이 담겨 있다 해도 인물이 밋밋하면 이야기는 이야기로써 독자에게 가닿지 못한다. 외면당하고 만다. 그만큼 서사에 있어 매력적인 인물 설정은 매우 중요하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에는 현실에 있을 법한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 만들기에 필요한 방법을 심리학적 요인으로 상세히 접근하고 있어 흥미롭다. 책 구성과 인상적인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자면. 


‘빅 파이브’ 모형은 입체적인 인물의 성격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이다. 인물을 만들 때는 성격의 빅 파이브 요인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사람의 경우 빅 파이브 요인이 고르게 나타난다. 적당히 외향적이고, 적당히 우호적이고,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예민하고, 적당히 개방적이다. 그에 반해 적어도 한두 가지 요인에서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은 더 쉽게 눈에 띈다. 그런 사람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유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때로 그런 차이점에 매혹되고, 극단적인 성향의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한다는 것이다. 즉, 비전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기억한다는 것. 놓치지 말아야 기본 설정인 셈이다.


인물의 성격은 말하는 내용에 그대로 드러나며, 언제 누구와 어떻게 말하는지에서도 드러난다. 이 책에는 짤막한 극의 대본이 소개되어 있어 인물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인물과 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매력적인 인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알고 있는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 부분에서는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인물이 동력을 얻어 이야기를 이끌고 가려면 ‘동기’가 필요하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뉘는데 생존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가장 쉽게 끌고 가장 많은 독자나 관객의 마음에 들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외부적인 요인에서 내재적인 욕구로 인물의 동기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 내적 욕구는 영화 후반부 내내 주인공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 제이크 설리를 생각해 보면 된다. (제이크는 나비족의 공주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고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약탈하고 나비족의 삶을 파괴하는 대신 미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


개인적으로는 제5부 감정 편이 흥미롭게 읽혔다. 독자가 인물에 몰입하게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독자는 착한 인물에게 더 잘 감정 이입을 한다는 점, 감정을 통해 정서적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독자와 관객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요소들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어서 글을 쓸 때 유용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의 결말이 다양한데 본인이 쓰려는 이야기에 적합한 결말을 가늠해 보는 과정을 상상해 보니 재미있게 다가왔다. (삶의 목적을 고민하게 하는 비극적 결말은 어떨까. 행복과 비극이 혼재된 결말은 인생에 대한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이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의 주제와 등장인물에 알맞은 결말을 정하기.) 


이 책은 6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가 끝날 때 Key Point로 요약되었고, 나만의 캐릭터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해 볼 수 있다. 일단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만드는 법>을 읽고 나면, 주변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것 같다. 내 행동의 요인까지도.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한다면 일독하기 괜찮은 책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작가 키라앤 펠리컨은 말한다. “멋진 인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삶에서 관찰한 모습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야기 속 인물은 우리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삶을 자세히 살펴봐야만 우리는 최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그저 우리의 눈과 마음과 정신을 열기만 하면 된다."라고. 

* 출판사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썼습니다.


그러므로 조언하건대, 기억에 남는 인물을 만들고 싶다면 인물의 말투가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고, 놀랍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의 기대치를 비틀어보자. - P130

하지만 멋진 인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삶에서 관찰한 모습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야기 속 인물은 우리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삶을 자세히 살펴봐야만 우리는 최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그저 우리의 눈과 마음과 정신을 열기만 하면 된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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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진
이동은.정이용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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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만화책이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만화들은 대체로 어딘가 쓸쓸하고 낮고 서늘하다. 그럼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닿는 마음들이 이어져 따스한 빛을 발하는 힘이 있다. '진, 진'은 어떨까?

표지 그림은 두 남성인 듯 보이지만 20대와 40대의 두 여성, 진과 진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20대 진아는 무연고자인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사망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다. 죽은 아버지를 사망자로 올릴 수 없어 답답하다. 여동생을 특별 전형으로 대학에 보내려면 아버지의 사망신고서가 필요한데 말이다. 그리고 동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40대 수진은 남편과 사별하여 홀로 아들을 키웠다. 언니와 함께 식당을 꾸려간다. 식당에 오는 단골손님과 사귀는 중에 임신을 한다. 아들의 애인도 임신을 하여 서둘러 아들의 결혼식을 치른다. 정작 본인은 병원에 찾아가 수술을 받는다.

두 여성의 삶은 다른 듯 보이지만 닮아 있다. 둘뿐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자신보다는 동생을 아들을 우선으로 여긴다는 점. 그래서 젊은 진과 중년의 진은 열심히 일하지만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현실 앞에 있다.

젊은 진은 고시원 식구들을 챙기며 관계를 돈독히 이어간다. 옆방 아주머니의 죽음을 막아주었으나 결국 죽고 말아서 대신 사망 신고를 하러 갔다. 그러다 우연히 아버지의 사망 신고까지 하게 되었다.


중년의 진은 이번 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선다. 처음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찾은 그녀가 붓으로 쓴 글자는 '다할 (진)' '나아갈 (진)' '진진'이다. 비둘기가 차나 사람을 안 피하는 모습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시야가 좁아서 잘 못 본다는 사실. 그래서 한 치 앞을 못 보니 겁 없이 막 산다는 언니의 말에 진은 비둘기에게 안쓰러움을 느낀다. 자신이 비둘기 모습과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누워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녀의 독백에 독자의 마음도 뭉근해졌으리라.


진아, 수진 두 여성의 이야기가 어찌 그녀들만의 이야기일까. 쓸쓸하고 서늘하고 아픈 이야기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촛불처럼 두 여성의 삶에서 꺼지지 않는 잔잔한 빛이 느껴졌다. 만화의 톤과 인물의 표정이 생생하게 이야기와 어우러져 진, 진과 함께 한 시기를 머무른 느낌이다.

두 사람 진, 진이 내게 말한다. 살아만 있다면 살고자 한다면, 삶은 노래처럼 흘러갈 것이라고.

*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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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장폴 뒤부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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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폴 한센이 지내는 교도소 풍경으로 시작한다. 

 

 

캐나다 몬트리올 교도소에서 폴은 한 사람 반만 한 몸집의 패트릭 호턴과 방을 쓰고 있다. 교도소가 주된 배경이라서 폴은 어떤 죄를 짓게 된 걸까, 내내 궁금했다. 그의 고뇌와 깊은 슬픔에 동화될 즈음 이야기는 끝을 맺었고, 자신의 행동(죄)에 대해 상대에게 사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독자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교회 목사로서 설교 중에 생을 마감한 폴의 아버지.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책 제목이기도 한,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는다'는 것. 주님이 여러분을 보았을 때 축복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은, 결국 자신 또한 축복받고 싶은 인정욕구를 내비친 것은 아니었을까.

 

 

 

폴은 은퇴한 노인들이 거주하는 렉셀시오르 아파트 관리인으로 오랫동안 일했다. 그들을 보살폈던 시간이 자신에게 각별했으며, 그들을 사랑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사건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위노나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폴. 그러나 위노나가 경비행기 운전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폴의 삶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자신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의 늪으로.

 

 

그럼에도 주어진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던 폴. 그를 견딜 수 없게 한 어떤 사람의 태도. 결국 폴의 삶은 어긋나고 말았다.

 

 

 

태어남과 동시에 다르게 주어진 세상,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꾸리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교도소에 있던 폴이 '눈을 감는다. 잠이 든다. 잠은 여기서, 쥐들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 사랑한 세 망자(아버지, 아내 위노나, 개 누크)를 떠올리며 몹시 추운 밤을 견디는 것처럼, 누군가가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이런 말을 건넬 수도 있겠다.

 

"인생은 원래 형편없는 말과 같은 거래, 그 인생이라는 말이 우리를 떨어뜨리거든 입 다물고 얼른 다시 올라타라던데."라고.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방법은 책에 나온 누군가의 대사(문장) 하나를 건네는 몸짓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똑같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아!" 나에게도 위로를 건넨 장폴 뒤부아의 소설.

* (창비 사전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작성하였습니다.)

 

가끔 셀리그먼 씨 생각이 났다. 골프나 테니스를 잘 치게 해주는 유대교회당처럼 홀아비 생활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유대교회당도 이 도시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회당이 있다면 그곳의 랍비는 내 친구 호턴의 기본 철학과 다르지 않은 말을 해줄 것 같다. "인생은 형편없는 말馬 같은 거야, 이 사람아. 그 말이 자네를 떨어뜨리거든 입 다물고 얼른 다시 올라타야지."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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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야합니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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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_ 김현아 교수가 알려주는 웰다잉,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현실을 반기지 않는 1인으로서,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공부가 되는 내용이라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2014년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으로나 아픔이 컸던 해였다. 여름 즈음 언니가 몹시 아팠는데 원인을 찾는 중에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연이어 불행하게도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미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황이지만 환자가 된 언니는 희망을 놓을 수 없어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음 해 여름을 넘기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큰수술을 받았지만 별다른 호전이 없어 일반병실과 중환자실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만 3년 동안 병상에만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 머물 때 맞는 면회시간 30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앙상한 아버지의 몸 여기저기에 꽂아 놓은 수많은 연결선과 묶어 놓은 손, 기계음, 다급하게 움직이는 간호사와 의사들, 사경을 헤매는 가족을 보는 일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김현아 교수의 말처럼 중환자실은 임종을 맞기 위한 대기 장소로 느껴졌다. 아버지는 이미 고통 속에서 헤어날 길이 없고, 우리 형제들은 "이제 그만할래요"라는 말을 의사에게도 아버지에게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죽음 직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그 의미 없는) 자식 된 도리는 죽음을 제대로 맞이할 수 없는 제자리걸음과도 같았다.  

 

 

 

 

어릴 적에 경험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임종 모습과 몇 년 전 연이어 겪은 언니와 아버지의 임종은 분명 달랐다. 병원에 머물게 되면 죽음이 질병으로 취급된다는 사실, 현대의학의 '죽음 비즈니스'에 속지 않도록 죽음의 순간을 가까이에 붙여 두고 계획해야 함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혈압을 높히고 심장에 피가 돌도록 약물을 쓰며 끝까지 괴롭힘을 당했다. 반면에 언니는 퇴원하여 집에서 최대한 머물며 통증을 약물로 조절했다. 막바지에 다다르자 통증의 강도가 무지막지해서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갔고, 이틀을 보낸 뒤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런 면에서 언니는 죽음을 받아들였고 죽음 앞에서 당당했으나, 아버지는 죽음의 바다를 정처 없이 떠돌며 고통을 더 받으신 것 같다.

 

 

김현아 교수는 말한다. 현대의학의 '죽음 비즈니스'에 속지 말기를. 그러기 위해서 미리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두라고 했다. 충분히 설명을 듣고 충분히 가족과도 이야기 나누라고. 그리고 세세하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준비해야 한다고. 어느 때에 연명의료가 의미 없게 되면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를 받는 내용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해 두고 싶었던 내용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휴지조각이 되지 않으려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더이상 병원에 가면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본인도 가족도 쉽지 않은 선택이고 견디기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죽음을 맞는 순간을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을까..., 두렵고 두려운 일이지만 누구나 잘 해내고 싶은 일임에 틀림없다.

 

 

책 마지막 <나의 엔딩노트>에는 저자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다. 책장을 덮는데 마음이 뭉클해졌다. 눈물이 고였다.

 

 

 

 

 

죽음이 있기에 삶도 있는 것이고

죽음은 삶과 결국 같은 것이란다.

_ 김현아, '나의 엔딩노트'에서, <죽음을 배우는 시간>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그렇다. 이 책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죽음을 받아 들여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시간이었다. 가족을 잘 보내주기 위한 지침서이자 나를 위한 죽음 안내서이기도 했다. 준비한 마음대로 잘 해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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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준비해야합니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
    from 경의선, 강매역 2020-08-23 19:14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납니다 _ 김현아 교수가 알려주는 웰다잉, <죽음을 배우는 시간>에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현실을 반기지 않는 1인으로서,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공부가 되는 내용이라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2014년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으로나 아픔이 컸던 해였다. 여름 즈음 언니가 몹시 아팠는데 원인을 찾는 중에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연이어 불행하게도 아버지는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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