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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이와 수일이 ㅣ 힘찬문고 26
김우경 지음, 권사우 그림 / 우리교육 / 2001년 10월
평점 :
♣
누가 나에게 '이거 해라.' 시키는 일은, 하고 싶다가도 안 하고 싶은 맘이 든다.
어릴 적에 가방 정리를 끝내고 숙제하려는데,
"뭐하니? 숙제하지 않고." 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할 맛이 뚝 떨어졌다.
시골에 살 던 나는 날마다 뿌옇게 먼지 쌓이는 마루를 청소하는 거,
찬샘배기 넘어 냇가로 가서 언니랑 빨래하는 거, 밥하는 일을 일찍부터 하게 됐다.
아마도 엄마가 시켜서도 하게 됐거니와 바쁜 엄마 일손을 돕기 위해서
자연스레 익힌 일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매운 고추를 따는 일이
가장 싫었던 것 같다.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고추를 따는 일은
지금생각해도 아찔하다. 고추벌레라도 볼라치면 징그러워서 호들갑을
떨며 줄행랑을 쳤다.
한편으로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쉼 없이 일하는 엄마가,
초겨울까지 벼 베기를 나가던 엄마가, 밤엔 아파서 앓던 엄마가
얼마나 안쓰러운지 대신 해주고 싶었던 마음도 들었었는데…….
이젠 다 옛날이야기가 됐다. 고생하던 엄마도 떠나셨다.
그래도 집안 일, 농사일을 돕고 나면, 충분히 놀 시간이 주어졌다.
동네 동생들과 솥 들고 쌀 들고 밥해 먹으러 산으로 나가기도 했고,
비오는 날에 장화 신고 오빠랑 족대 들고 개울로 고기 잡으러 갔고,
들판 길을 달려 오빠와 자전거 시합도 했고, 소꿉놀이도 하고,
저녁엔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다방구놀이도 하고 (이거 최고로 재미있었다),
겨울엔 새그물을 쳐놓고 참새를 잡아 구워 먹고, 꿩 사냥도 가고,
생각해 보면 정말 재미나게 놀았다.
이렇게 촌에서 자유롭게 자란 내가 어른이 되니
지금의 도시 아이들을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찾아들었다.
내 어릴 적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맘껏 놀던 놀이를 지금 아이들은
느낄 기회가 없을까봐서 그렇다. 그리고 난 그 때, 좀 가난하고 부족하긴
했지만 공부도 덜 하고, 소박한 것에 감사했는데 말이다.
겨울철 일이 없을 때 아버지가 아랫집 가게에서 '뻥' 화투를 치고 오는
밤에는 손바닥만한 갈색 빵에 흰 크림이 넣어졌던 '보름달'빵을 항상 갖고 오셨다.
그러면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깨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맛나게 먹던
재미도 있었는데….
♣
수일이는 방학동안 맘껏 놀고 싶은데, 엄마는 수일이 마음도 몰라주고
방학동안 다닐 학원을 몇 개나 더 신청해 놨다.
수일이는 하루 종일 학원만 왔다갔다하는 신세가 됐다. 정말 딱하게 됐다.
방학동안만 이라도 맘껏 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왜 들어주지 않을까.
이제 개학까지는 딱 6일이 남았다.
실컷 놀고 싶었던 수일이는 내가 하나 더 있어야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덕실이(개)이 말대로 옛이야기에서처럼 자기 손톱을 깎아서
쥐에게 먹게 했더니, 정말로 가짜 수일이가 생겼다.
수일이는 이제 맘껏 놀 수 있어서 좋겠다 싶었는데 어른들의 눈치도 보게 됐고,
생각처럼 즐겁지만은 않았다.
수일이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 아빠께 가짜 수일이가 생겼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믿는다. 겨우 혜주 누나만 믿어 주었다.
위층 할아버지 할머니도 겨우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 가짜 수일이와 헷갈리지
않게 덕실이와 "어른들은" 하면 "안 믿어."란 암호까지 만들었다. 기발하다.
수일이는 다만 맘껏 놀고 싶은 욕심에 가짜 수일이를 만들었을 뿐인데.
그 가짜 수일이가 진짜 수일이 보다 완벽하게 엄마가 좋아하는 수일이로 변했다.
그리고 진짜 수일이를 내쫓기까지 했다.
수일이는 가짜 수일이를 쥐로 돌아가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수일이는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 아직 모른다…….
할 수 있을 거란 믿음과 강력한 들고양이 '방울이'를 믿어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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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경 선생님의 『머피와 두칠이』나 『수일이와 수일이』작품을 보면
참 재밌고, 자아가 뚜렷한 개성있는 인물들이 꼭 등장한다.
그것도 사람이 아니라 동물인 개나, 고양이로 말이다. 쥐로도.
동물들의 세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들 세계를 넘나들게 하는 재미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한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엔
어떤 인물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펼칠지 기대하게 해준다.
『머피와 두칠이』에서는 멋지고 아름다운 묘사문장이 어찌나 많은지
밑줄을 많이 그었다. 『수일이와 수일이』에서는 진짜 수일이와 덕실이가
쥐로 바뀌는 장면이랄지, 실수 없이 가짜 수일이가 진짜 수일이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좀 설득력이 부족하다 싶었다.
하지만 수일이가 진짜 원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노는' 거야.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야.
이는 모든 아이들의 바람임을 느끼게 해 주는 이야기였다.
두 작품 모두,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재미나게 엮은
김우경 선생님의 글 솜씨와 상상력과 예리한 시선이, 부럽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