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마음이 아파요 - 뚜벅이 문고 01
노경실 지음, 이형진 그림 / 청년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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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심었던 토마토 화분에서 세 알의 열매가 열렸다. 처음 모종을
사왔을 때는 작은 키에 이파리 모양으로만 토마토인 걸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꽃이 피고, 꽃이 핀 그 자리에 열매가 열렸다.
열매가 열리자 그제야 이파리에서 진한 냄새가 진하게 났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토마토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여전히 작은 키의 토마토지만 열매를 맺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향기를 진하게 내뿜은 것이다. 그리고 잘 익은 세 알의 열매를 땄다.
누런 빛깔로 앙상하게 남은 이파리의 냄새는 흐려졌다.

이제야 알았다. 살아있는 식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면서 원래
갖고 있던 독특한 향기를 뿜는 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장하면서 나만의 독특한 향기를 품게 될 것이다. 성호도 지금 꽃을 피우기
위해 향기를 모으는 중일 거다. 지금 꽃봉오리를 맺기 위해 자라는 시기 같다.
나를 알아 가는 시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 생길 때니까.

성호는 토마토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성장의 과정을 걷고 있다.
성호가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내가 행복한 이유 한 가지도
금방 떠올릴 수 없는 이유도 자신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을 바꿔서
불행한 이유를 행복한 이유로 바꿀 수 있는 것도 나를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 그렇다.
친구 석주를 위해서 친 엄마 생각이 안 나게 도와주려고 했던 성호.
이다음에 커서 결혼하고 싶은 연실이의 아픈 마음을 위로할 방법을 생각하는 성호.

성장의 과정에는 꼭 아픔이란 게 있는가 보다.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시련이란 것이.
성호도 지금 그런 아픔을 겪는 시련이 닥쳤다. 성호는 아빠가 알려준 의리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걸 보면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이 의리란 걸 잘 알고 있기에, 엄마 때문에 아파하는 두 친구인 석주와
연실이가 마음 아프지 않게 도와주고 싶은 거다. 그래서 성호도 지금 마음이 아픈 거다.

내 토마토는 화분 그릇이 작아서 많이 크지를 못했다. 열매도 딱 세 알만 열렸고.
하지만 성호는 큰그릇에서, 많이 크고, 잘 자랄 거다.
의리를 지킬 줄 아는 고운 마음이 있으니까.

성호는 지금 자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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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뭐예유?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8
김기정 지음, 남은미 그림 / 시공주니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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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믿어도 좋아. 그냥 내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일 뿐이야.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들어 봐.

바나나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어. 뭐야, 말이 되는 소리냐고? 진짜래. 지오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 전에 알았대. 지오마을에서는 수박과 참외가 가장 맛있는지 알았어. 그런데 서울로 돈 벌러간 청년이 그러는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게 바나나래. 모두 꼴깍꼴깍 침 삼키기 바빴지. 청년은 이런 노래까지 부르잖아.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믄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믄 기차, 기차는 빨러, 빨르믄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믄 백두산.'

그 옛날에 지오마을에선 쿵쿵 데굴데굴 쿵쿵쿵!! 산에서는 집채만한 수박이 굴러가고, 강가에서는 노란 개똥참외 속으로 머리를 박고 몸뚱이가 다 들어갈 때까지 아이들이 먹고도 남았대. 그 마을에 고속도로가 뚫리자 더이상 수박과 참외는 크게 자라지 않았지. 그리고 바나나를 실은 커다란 트럭에 사고가 나면서 지오마을에서 바나나 소동이 일어난 거야.

가장 먼저 달콤한 바나나를 발견한 친구는 떡보야. 냄새란 냄새는 단 한번에 다 알아채는 도사였지. 떡보가 사고 난 트럭에서 바나나를 처음 발견하게 됐던 거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바나나를 가만 두었겠어. 너도나도 바나나를 이고 지고 갔지. 그런데 말야. 덜 익은 시퍼런 바나나를 어떻게 먹을지 몰라서 끙끙댔어.

이장님은 장롱 깊숙이 넣어 두고, 구구장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에 올려놓고, 기땡이와 때보는 대나무 숲에 감춰두고, 떡보는 익지 않은 걸 먹어서 탈이 나고, 때보 할머니는 두엄 밭에 재 속에 묻어두고 기다렸지. 도랑집 아주머니만 가마솥에 쪄먹었고. 바나나 때문에 끙끙대는 지오마을 사람들 참 웃기지.

모두들 바나나 먹을 생각만 가득 차던 어느 날, 지오마을에 지프차를 타고 경찰관이 왔지 뭐야. 그런데 지오 사람들은 모두 바나나를 못 봤다고 시치미를 뗐어. 산에 사는 너구리와 오소리가 먹을 거래나. 시치미 떼기 선수들 같아. 겁먹은 지오마을 사람들은 경찰서에서 돌아오자마자 한 일이 뭔줄 알아. 두엄밭 속, 땅 속, 옷장 속, 대나무 숲속, 곳곳에 숨긴 바나나를 아궁이에 넣고는 태웠대. 집집마다 향긋하고 누런 연기가 굴뚝에서 사흘 동안이나 나더래. 바나나 소동으로 지오마을 어른들은 바나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바나나 노래를 하지 않았대. 지금까지도. 다만, 지오마을 뻐꾸기들만 '뻐내너! 뻐내너!'하고 울뿐이래.

정말 바나나가 귀했던 그 시절. 시골 장터에서도 보기 힘든 노란 바나나. 서울 작은 엄마 댁에나 가야 한 입 먹어볼까 말까 했던 달콤한 바나나. 사실은 나도 시골에 있을 때는 바나나가 뭔지 몰랐더랬어. 말도 안 된다고? 아니 정말이야. 바나나를 실컷 먹어봤으면 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고. 때보처럼. 할아버지를 따라 지금은 없어진 서울 마장동터미널에 딱 도착하자마자 물었던 것 같아. "할아버지, 저 노란 게 뭐예유?"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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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의 스케치북 산하어린이 103
김혜리 지음 / 산하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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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가 살던 곳은 시설이 좋은 고아원이에요.  진희는 아무도 못 말리는 싸움대장이었어요. 그래서 늘 외톨이죠. 툭하면 물어뜯고 싸움질하는 앨 누가 좋아하겠어요. 진희의 싸움은 빼앗기고 지는 걸 무척 싫어해서 일어나요. 하지만 싸우는 진짜 이유는 진희가 외롭기 때문이에요.

외로워서 싸운다는 게 바보 같지만 진희는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사랑을 나눌 줄도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미운 일곱 살에 맨 날 싸움 박질을 하느라고 얼굴 성한 날이 없어요. 부모에게 버려진 진희의 마음에 상처가 너무 커서 남을 이해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담아두기는 아주 어렵잖아요. 안 그래요?

하지만 진희에게도 남에게 잘 들키지 않고 외로움을 달래는 곳이 있어요. 바로 고아원 뒤에 있는 꿈동산이에요. 진희는 혼자서 꿈동산엘 올라요. 진희를 예뻐하는 꼬부랑 아저씨가 나무로 만든 새집을 걸어 놓았거든요. 거기서 비죽새를 기다려요. '쓰삐 쯔쯔삐이 쓰삐 쯔쯔삐이.' 비죽새가 정말 왔어요. 진희는 비죽새가 엄마처럼 느껴졌어요. 그저 느낌으로요. 하지만 비죽새는 진희 곁을 떠났어요. 진희는 울었어요.

또 진희에게는 자기의 마음을 담아주는 스케치북이 있어요. 진희는 스케치북에 자기가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들을 그려요. 그 때부터 진희는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요. 고아원 후원자인 안경 낀 아줌마를 만나고, 아줌마에게 관심을 받게 되면서 부터요. 그 스케치북을 갖게 된 건, 그림을 그리게 된 건, 아줌마때문이에요.

진희는 안경 낀 아줌마네로 입양됐어요. 해외로 입양되지 않고 국내 가정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 거예요. 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요. 양부모에게 버려진 적도 있고요. 그 집에서 가장 먼저 밥 먹는 예절도 배우고, 집안 일을 거두는 고모랑 고모의 딸 동희랑 티격태격 싸우고 어쩔 때는 당하기도 해요. 하지만 진희는 참아야 해요. 배워야 해요. 함께 사는 게 어떤 것이란 걸 알아야 해요. 사람들에게 '고아원에서 온 아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참아야 했어요.

하지만 진희의 편이 없는 건 아니에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수홍이 오빠도 있잖아요. 진희는 참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게 됐어요. 왜 싸웠는지, 갖고 싶은 게 뭔지, 먹고 싶은 게 뭔지. 말했어요. 일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이제 한 가족이 된 듯 했어요. 사람들도 이제 진희에 대해 다 알아서 이제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어요. 고모랑도 친해졌어요. 진희가 아플 때 뚱보로만 보였던 뚱이 고모가 간호해 준 거예요. 그래서 진희는 알았어요.

진희는 엄마가 하는 일, 엄마가 돕는 할머니와 손녀의 일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엄마의 슬픔, 할머니의 슬픔, 해외로 입양된 할머니의 손녀의 슬픔도, 아직은 몰라요. 그렇지만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것을 잊지 말란 말이다."는 말에 눈물을 뚝뚝 떨궈요. 진희는 엄마의 진짜 딸이 됐어요. 고모도 "진희야!"하고 불러요. 동희랑도 서로 번갈아 가며 아프고 나니 친해졌어요.

동희랑 뭐가 되고 싶은 지도 얘기해요. 동희는 "난 교수가 될 거야!" 했어요. 진희도 "내 꿈은 고아원 원장이야."라고요. 이제 진희는 스케치북에 박사모를 쓴 동희를 그렸어요. 마지막 장엔 아름다운 성이 그려진 그림을 그렸어요. 이제 진희는 더 이상 스케치북이 필요 없게 됐어요. 마음으로 꿈을 담고 가족과 함께 얘기하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오랫동안 친엄마의 그림자로 여겼던 비죽새를 떠나보냈어요. 진희는 이제 외롭지 않아요. 외로워도 견딜 수 있어요. 외롭다고 싸우지도 않아요. 진희의 가슴에서 사랑이라는 싹이 돋았어요. 싸움대장 진희가 잘 지내게 돼서 기뻐요. 진짜 가족을 만났으니까. 하지만 일곱 살 짜리 꼬마가 겪은 아픔은 너무 커서일까요. 그 아픔을 통해 어른처럼 마음을 쓰고 어른처럼 생각한 게 싫었어요. 글을 쓴 선생님이 진희를 아이답게 마음쓰고 생각하지 못하게 해서 화나요.

고아원에서 지내던 진희의 모습을 닮은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정말 없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더욱 안타깝지만 진희를 닮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를 원망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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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이와 수일이 힘찬문고 26
김우경 지음, 권사우 그림 / 우리교육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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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이거 해라.' 시키는 일은, 하고 싶다가도 안 하고 싶은 맘이 든다.

어릴 적에 가방 정리를 끝내고 숙제하려는데,
"뭐하니? 숙제하지 않고." 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할 맛이 뚝 떨어졌다.
시골에 살 던 나는 날마다 뿌옇게 먼지 쌓이는 마루를 청소하는 거,
찬샘배기 넘어 냇가로 가서 언니랑 빨래하는 거, 밥하는 일을 일찍부터 하게 됐다.
아마도 엄마가 시켜서도 하게 됐거니와 바쁜 엄마 일손을 돕기 위해서
자연스레 익힌 일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매운 고추를 따는 일이
가장 싫었던 것 같다.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고추를 따는 일은
지금생각해도 아찔하다. 고추벌레라도 볼라치면 징그러워서 호들갑을
떨며 줄행랑을 쳤다.

한편으로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쉼 없이 일하는 엄마가,
초겨울까지 벼 베기를 나가던 엄마가, 밤엔 아파서 앓던 엄마가
얼마나 안쓰러운지 대신 해주고 싶었던 마음도 들었었는데…….
이젠 다 옛날이야기가 됐다. 고생하던 엄마도 떠나셨다.

그래도 집안 일, 농사일을 돕고 나면, 충분히 놀 시간이 주어졌다.
동네 동생들과 솥 들고 쌀 들고 밥해 먹으러 산으로 나가기도 했고,
비오는 날에 장화 신고 오빠랑 족대 들고 개울로 고기 잡으러 갔고,
들판 길을 달려 오빠와 자전거 시합도 했고, 소꿉놀이도 하고,
저녁엔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다방구놀이도 하고 (이거 최고로 재미있었다),
겨울엔 새그물을 쳐놓고 참새를 잡아 구워 먹고, 꿩 사냥도 가고,
생각해 보면 정말 재미나게 놀았다.

이렇게 촌에서 자유롭게 자란 내가 어른이 되니
지금의 도시 아이들을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찾아들었다.

내 어릴 적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맘껏 놀던 놀이를 지금 아이들은
느낄 기회가 없을까봐서 그렇다. 그리고 난 그 때, 좀 가난하고 부족하긴
했지만 공부도 덜 하고, 소박한 것에 감사했는데 말이다.
겨울철 일이 없을 때 아버지가 아랫집 가게에서 '뻥' 화투를 치고 오는
밤에는 손바닥만한 갈색 빵에 흰 크림이 넣어졌던 '보름달'빵을 항상 갖고 오셨다.
그러면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깨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맛나게 먹던
재미도 있었는데….



수일이는 방학동안 맘껏 놀고 싶은데, 엄마는 수일이 마음도 몰라주고
방학동안 다닐 학원을 몇 개나 더 신청해 놨다.
수일이는 하루 종일 학원만 왔다갔다하는 신세가 됐다. 정말 딱하게 됐다.
방학동안만 이라도 맘껏 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왜 들어주지 않을까.

이제 개학까지는 딱 6일이 남았다.
실컷 놀고 싶었던 수일이는 내가 하나 더 있어야 되겠다고 했다.
그래서 덕실이(개)이 말대로 옛이야기에서처럼 자기 손톱을 깎아서
쥐에게 먹게 했더니, 정말로 가짜 수일이가 생겼다.
수일이는 이제 맘껏 놀 수 있어서 좋겠다 싶었는데 어른들의 눈치도 보게 됐고,
생각처럼 즐겁지만은 않았다.

수일이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 아빠께 가짜 수일이가 생겼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믿는다. 겨우 혜주 누나만 믿어 주었다.
위층 할아버지 할머니도 겨우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 가짜 수일이와 헷갈리지
않게 덕실이와 "어른들은" 하면 "안 믿어."란 암호까지 만들었다. 기발하다.

수일이는 다만 맘껏 놀고 싶은 욕심에 가짜 수일이를 만들었을 뿐인데.
그 가짜 수일이가 진짜 수일이 보다 완벽하게 엄마가 좋아하는 수일이로 변했다.
그리고 진짜 수일이를 내쫓기까지 했다.
수일이는 가짜 수일이를 쥐로 돌아가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수일이는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 아직 모른다…….
할 수 있을 거란 믿음과 강력한 들고양이 '방울이'를 믿어볼 수밖에.



김우경 선생님의 『머피와 두칠이』나 『수일이와 수일이』작품을 보면
참 재밌고, 자아가 뚜렷한 개성있는 인물들이 꼭 등장한다.
그것도 사람이 아니라 동물인 개나, 고양이로 말이다. 쥐로도.

동물들의 세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들 세계를 넘나들게 하는 재미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한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엔
어떤 인물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펼칠지 기대하게 해준다.

『머피와 두칠이』에서는 멋지고 아름다운 묘사문장이 어찌나 많은지
밑줄을 많이 그었다. 『수일이와 수일이』에서는 진짜 수일이와 덕실이가
쥐로 바뀌는 장면이랄지, 실수 없이 가짜 수일이가 진짜 수일이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좀 설득력이 부족하다 싶었다.

하지만 수일이가 진짜 원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노는' 거야.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야.
이는 모든 아이들의 바람임을 느끼게 해 주는 이야기였다.

두 작품 모두,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재미나게 엮은
김우경 선생님의 글 솜씨와 상상력과 예리한 시선이, 부럽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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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 2단계 문지아이들 8
수지 모건스턴 지음, 김예령 옮김, 미레유 달랑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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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글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참 좋은 동화가 많다.
조커가 그렇다. 한 가닥의 여유를 선물 받은 느낌이다.
그림을 볼 때 자기가 아는 만큼 볼 수 있고, 상상도 자기가 아는 만큼 펼칠 수 있고,
시험지의 정답도 자기가 아는 만큼 쓸 수 있는 것처럼, 인생이란 것도 자기가 여유를
만드는 만큼 지니게 되겠지. 문득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나는 얼마만큼의 인생의 깊이와 여유를 안고 살까?
아이들은 얼마만큼의 즐거움과 행복을 안고 살까?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시작하는 날에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흰머리가
사방으로 뻗치고, 조그만 안경을 걸치고, 배는 동그랗게 나온 늙은 선생님. 아이들은
실망이다. 그러나 첫 수업부터 선생님에게 받은 조커 선물로 아이들은 들떠있다.
조커란, 카드놀이에서 궁지에 빠졌을 때 쓰는 거다. 궁지에 빠져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커를 쓸 수 있다면, 정말 행운이겠지. 씨익 웃음이 절로 난다.
노엘 선생님은 "인생에는 조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라고 아이들을
격려한다. 한 권의 책을 주고 첫 부분만 읽고 나서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숙제를 내 준다. 물론 선생님은 그걸 숙제가 아닌 선물이라고 말했다. "이 책이
법적으로 너희 수유는 아니지. 그렇지만 너희가 그 책을 길들이는 순간부터, 다시
말해서 그것을 읽는 순간부터 책은 너희 것이 된단다."라고 하면서.
1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데, 그런 수업을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살아가는 데는 이처럼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거." 라는 걸,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노엘 선생님은 늙었지만 젊은 선생님보다 더 활기차다. 비록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조커'로 아이들이 단체로 학교에 오지 않아서, '수업 시간에 춤추고 싶을 때 쓰는 조커'로
공부시간에 음악을 틀고 춤을 추다가 교장 선생님과의 문제가 있어서 결국 학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기는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그 어느 학년, 어느 때의 선생님
보다 기억에 남을 멋진 선생님의 모습으로 남은 채 말이다.
난 교실 밖 수업으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자기가 갖고 싶은 조커를 만들어 봤다. 책만큼의
자유로운 조커를 만들지는 못했다. 만들어도 쓰지 못할 조커가 되니까 이왕이면 진짜
가족이 함께 쓸 수 있는 조커를 만들자고 했다. 각양각색의 가족과 자신에게 필요한
조커를 만들었다. 그것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조커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집에서 쓸 수
있게 교실 밖 선생님의 권한으로 숙제를 내 주었다. 한 주가 흘러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자 쓸 수 없어서 짜증이 더 났다는 아이도 있었고, 엄마 아빠랑 자기랑 필요할 때
재미있게 썼다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외면 당해서 속상했던 아이들이
더 많았다. 괜히 쓰지도 못할 조커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상처를 하나 넘겨준 건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노엘 선생님 말처럼 "인생에는 궁지에 빠졌을 때 쓰는
조커를 누구나 갖고 있다"는 희망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즐거운 책읽기였으리라
생각된다.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얻은 많은 조커를 쓰면서 인생을 즐길줄 알아라는 말이 참 따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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