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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를 사랑한 인어 공주 ㅣ 작은도서관 7
임정진 지음, 유기훈 그림 / 푸른책들 / 2004년 4월
평점 :
옛이야기를 다시 고쳐 쓰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읽는 입장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를 건다. 어느 정도까지만 이야기가 바뀔까? 무엇에 중점을 두고 고칠까?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는 더 그랬다. 여러 편의 패러디 동화가 묶여졌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봤다.
# 1.
요즘 동화책은 너무도 친절해서 학년구분이 다 되어있다. 고학년이 읽어도 좋을 책에 저학년 표시가 있으니 왠지 고학년에게 읽으라고 추천해 주기가 민망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굳이 학년을 구분하지 않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라고 정해져 있으니 좋았다.
# 2.
저학년 아이들이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입장에서 책을 읽어내려 갔다. 물거품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 인어공주를 사랑을 이룬 행복한 공주로, 한 나라의 임금님을 속인 간 큰 사기꾼이 옹카통카 임금님에게는 통하지 않아 자신들이 벌거벗게 되고, 아기돼지 세 자매를 한 단계 뛰어넘어 늑대들과 당당하게 살아가는 멧돼지 세 자매들, 토끼 간을 찾으러 간 용왕님에게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되는 걸 알려준 지혜로운 의원의 활약, 여전히 게으르기만 한 흥부가 제비의 박씨 덕보다는 아내의 덕으로 부자가 되었고,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되지 못한 호랑이가 펼치는 논리적인 변론이 담긴 이야기다. 이렇게 모두 여섯 편의 이야기로 모여 있는데, 한 편씩 읽어가면서 작가의 재치 있는 상상력과 입담에 폭 빠지고 말았다. 아이들도 어렵지 않아서 부담없게, 현실과 맞물린 옛이야기의 재해석으로 재미있게 읽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어른독자인 나도 재미나게 읽었다.
# 3.
나름으로 여섯 편의 패러디 동화를 특색은 무얼까? 생각을 잠깐 해 봤다.
'상어를 사랑한 인어공주'에서는 나와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하기가 아니었을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의 모습, 사랑의 눈높이. 마법사가 사람 다리를 가진 인어공주에게 오리발을 선물해준 멋진 마무리.
'부자가 된 게으름뱅이 흥부'는 정말 게으른 흥부가 보기 좋게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덕분이랄 수밖에. 박씨를 꼭 타서(쪼개서) 금은보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 박 그 자체를 상품화 시켜서 돈을 벌은 부인의 성공 이야기가 재미나다.
'벌거벗은 사기꾼'이 결국 어리숙해 보이는 웅카통카의 임금님에게 사기를 치지 못하고 자신들이 벌거벗게 된 것은 순전히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사기 때문이었으리라. 사기를 치는 인간이야말로 정말 끝없는 연구와 치밀함이 필요하니 머리 좋은 사람만이 사기도 치겠지. 그렇다고 머리 좋은 아이들아, 사기 치는 나쁜 사람은 되지 말자.
'늑대와 멧돼지 세 자매'의 멧돼지들은 자신들의 외모와는 전혀 다른 귀여운 분홍돼지의 광고 때문에 늑대들의 호기심을 한 손에 잡았고, 새로운 음식 콩소세지 개발로 늑대들이 사는 곳에서 성공도 하고 이웃으로 잘 살아가는구나. 우리들도 광고에 눈멀지 말고, 광고의 겉과 속을 잘 따져야겠지. 강한 자의 약한 면을 공략하자.
'토끼 간을 찾으러 간 용왕님'은 뭐니뭐니해도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챙기는 거라는 재치 있는 의원을 활약이 돋보인다. 토끼와 별주부가 주인공이 아닌 용왕과 의원이 주인공이다.
'억울한 호랑이를 위한 재판'에서 호랑이는 자신이 사람이 되지 못한 억울한 이유를 명쾌하게 늘어놓았다. 원고 호랑이, 피고 환웅이라는 설정도 재미있고, 동굴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 앞에 박수를 쳐야 했다. 참 논리적이고 똑똑한 호랑이. 말 잘하고 말싸움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이렇게 호랑이처럼 논리적으로 생각하야겠지.
# 4.
옛이야기 속의 주인공을 바꿔주고, 주인공 때문에 억울했던 인물들에게 변론할 기회, 만회할 기회를 주고, 그 옛날이 아닌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끝 이야기가 바뀌었을 이야기를 작가의 재치 있는 상상과 설정으로 재미난 책읽기로 만들어 주었다.
가끔 요즘 같은 상황에 맞게 설정해 놓은 장치들 때문에 재미있기도 했지만 조금씩 거슬렸던 점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옛이야기를 있는 그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생각해 볼 기회와 더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갈 기회를 얻은 것 같아 행복한 책읽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