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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이 담긴 병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33
최양숙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이제 막 2학년, 3학년이 된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이다.
새 학년,  새 출발을 위해서 정체성 찾기의 한 방법으로 자기의 이름은
누가 지어 주었으며, 한자와 영문으로는 어떻게 쓰는지,
이름에 담긴 뜻을 알아보기 위한 책읽기였다. 누구에게나 있는 이름.
내 것이지만 남이 더 많이 쓰는 것, 바로 이름이지 않은가.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아이들도 자기 이름에 담긴 뜻을 알게 됐다는 거다.

한자라는 뜻이 담긴 두 글자에 적절하게 제 각기 다른 뜻을 품은 이름들.
그 사실을 알게 됐고 서로 나눴다는 것이 보람있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은혜라는 여자 아이가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는 첫날, ‘은혜’라는 자기 이름을 제대로 발음을 못하는 미국 아이들
때문에 갈등을 겪으면서, 미국 이름을 새로 지어 쓸 것인가, 그대로 자신의
원래 한국 이름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내용에 호기심이 갔다.
‘은혜’라는 이름을 쓰기로 결정하는 내용이 읽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더구나 글쓴이의 경험이 담긴 듯한 내용이라 더 흥미있던 그림책이다.   

그러나 2학년 아이들과는 몇 가지 버거운 감이 느껴진 책읽기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구성에 있어 몇 가지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처음 사귄 조이
라는 친구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김씨 마켓’에 왔다가 은혜를 만나고, 은혜는
공교롭게도 자기 이름을 조이에게 알리고 말았다. 조이는 ‘은혜’라는 이름을
어렵게 발음해 보고 헤어지는데, 은혜는 조이가 왜 이 가게에 왔는지 미처
물어 보지도 못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2학년 아이들이 미리 책을 읽어 왔기에 조이가 무얼 하러 왔던 것인가에 대해
알아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감을 못 잡았다. 책 마지막에 조이가 한국
이름 ‘친구’라는 도장을 찍으며 즐거워한 모습이 있는데도 눈치를 못 챘단 말인가.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점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게 내겐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2학년이 읽기에 쉬울 것이라 짐작했는데, 아니였구나 싶은 느낌을 받게 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열 번을 넘게 소리 내어 아이들에게 읽어 주면서,
읽을 때마다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던 점이다. 물론 읽는 이의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낱말의 배열이 자연스럽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책가방을 풀고, 빨간 주머니는 할머니 사진 옆에 가만히 놓았습니다.>
라는 문장은 연이어 읽으면서 어색했던 부분이다. 이런 문장은 [책가방을 풀고,
할머니 사진 옆에 빨간 주머니를 놓았습니다.]라고 해야 읽기가 좋을 듯하다. 


또 <은혜와 조이는 은혜의 우산을 함께 쓰고 학교버스를 타러 갔습니다.> 같은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고쳐 보면 어떨까. [은혜는 조이와 함께 우산을 쓰고 학교버스를
타러 갔습니다.]로. 만약 은혜의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게 강조되어야 하는 문장이라면
[은혜는 조이에게 우산을 씌어 주고 함께 학교버스를 타러 갔습니다.]로.


그리고 <응, 사실은 내가 감췄었어. 네가 이 이름들 말고, 네 한국 이름을 고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네가 원래 이름을 선택해서 정말 기뻐!>다. 이 대화에서는 ‘너의’ 뜻을
갖고 있는 ‘네’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온다. 이 문장도 ‘네’를 불필요하게 몇 번씩 반복하여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응, 사실은 내가 감췄었어. 유리병에 담긴 이 이름들 말고,
은혜라는 한국 이름을 고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네가 그 이름을 선택해서 정말 기뻐!>
라고 하면 어떨까.


<가죽 주머니 속에서 도장을 꺼내더니, 은혜의 이름이 찍힌 옆에 꼭 눌러 찍었어요.>
라는 문장도 걸린다. <……, 은혜의 이름이 찍힌 그 옆에 도장을 꾹 눌러 찍었어요.>
라고 해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 그림책은 글의 소재나 글쓴이의 의도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장에도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번역이 매끄럽게 되지 않은 것인지,
글쓴이가 원래 그렇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아쉬움이 남는 책읽기였다.

은혜가 유리병에서 이름을 꺼내 하나씩 읽어 나가는 장면에서도, 속표지에서처럼
이름이 적힌 종이를 그대로 실어 놓고 돋보이는 글자로 처리해서, 행을 나눠 대화를
시작하면 보기에도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림책은 그림이 이야기를 따라  배열이 잘 되고 그림도 좋아야 하겠지만,
읽을  때 리듬감이 있어야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리듬감까지는 아니여도 읽을 때
걸리는 느낌은 없어야 할 것 같기에 아쉬움이 남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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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뒹굴며 읽는 책 2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이상경 옮김 / 다산기획 / 199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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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다산기획(2000)

친구야! 넌 엄마 아빠가 미워서 집을 나가고 싶은 적이 있니.
바퀴 달린 신발이 갖고 싶은데 위험하다면서 안 사줘서.
아님 만날 학원 가는 게 싫어서?

그런데 말야. 꼬마 당나귀 실베스터는 엄마 아빠가 하나도 밉지 않은데도
집을 나가게 됐어. 바로 타는 듯한 빨간 조약돌 때문이야.
만약 실베스터가 이상한 모양과 색을 가진 조약돌 모으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실수였어. 끔찍한 실수!

실베스터가 비 오는 날에 시냇가에서 혼자 놀다가 빨간 조약돌을 하나 주었어.
그것은 바로 요술 조약돌이었던 거야. 무지 기뻐서 자기가 원하는 것,
엄마 아빠, 친척, 친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 줘야지, 생각하며
집으로 가다가 굶주린 사자와 딱 마주친 거야. 너무 놀란 실베스터는 그만
"내가 바위로 변했으면 좋겠네." 했더니, 진짜 바위로 변했어.

실베스터가 바위로 변하자 사자는 어리둥절했어. 어디 그 뿐인가.
실베스터는 '다시 당나귀가 되고 싶어.'라고 마음 속으로 아무리 외쳐도
소용없었어. 요술 조약돌을 쥔 채, 말해야 하는데 잡을 수가 없잖아.

엄마 아빠는 실베스터가 돌아오지 않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무척 걱정했어. "실베스터가 돌아오기만 하면, 아무리 개구쟁이 짓을 해도
절대로 혼내지 않겠어요."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지.
그렇다고 해서 우리 친구들도 집에 안 들어가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지.
왜냐하면 그건 엄마 아빠를 무지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거든.

잘 들어 봐. 엄마 아빠는 이웃에 사는 동물들에게, 동네 꼬마들에게
물어봐도 소식을 듣지 못했어. 결국 경찰서에 신고를 했지만 헛수고였어.
한 달 동안 찾아도 실베스터 냄새를 맡을 수 없었던 거야.
엄마 아빠는 도무지 살맛이 안 났어.

실베스터는 밤낮 깊은 잠에 빠져들고, 가을이 지나 겨울, 겨울이 지나
봄이 되었어.

그러던 5월 어느 날, 아빠가 엄마가 위로하기 위해서 소풍을 나왔어.
어디냐 하면 실베스터가 바위로 변했던 딸기 언덕으로 말야. 엄마가
바위에 걸터앉았어. 엄마의 따스함에 실베스터는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났어.
실베스터는 너무 반가워서 "엄마, 아빠, 저예요. 저 여기 있어요!" 외쳤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지.

엄마가 바위 위에 음식을 늘어놓는 동안 아빠는 바위 주변에서
요술 조약돌을 발견했어. 세상에나! 이제 잘 될 것 같다. 그지?
"참 멋진 조약돌인데! 실베스터가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아빠는 실베스터 생각을 하며 조약돌을 바위 위에 올려놓았어.
"이런 좋은 날, 실베스터가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엄마 아빠는 슬픈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어.

그 틈에 실베스터가 '나는 정말정말 다시 당나귀가 되고 싶어!' 하고
주문을 외웠어. 그 순간, 실베스터가 당나귀로 변했어. 대단한 일이지.
샌드위치랑 샐러드를 등에 지고 있는 실베스터의 모습. 그런데 아, 웃겨라.
그런데 눈물을 흘리며 껴안는 엄마와 실베스터. 너무 기뻐하는
아빠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여.

그 요술 조약돌은 어찌됐을까 궁금하지. 또 실베스터가 실수로 바위로
변하는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쇠로 만든 금고 속에 넣어 버렸어.
지금은 갖고 싶은 걸 갖게 됐으니까 필요가 없는 거야.
3인용 빨간 소파 위에 엄마 아빠 사이로 실베스터가 앉아서 눈을 감고
아주 행복하게 껴안고 있어. 이게 마지막 장면이야.

어때?
미나리 아줌마는 이 책만 보고 있으면 행복해 지더라.
당나귀 실베스터 가족 그림이 얼마나 귀엽고 예쁜데. 그리고 가끔은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이 책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
너희도 가끔 엄마 아빠가 미울 때나 집을 나가고 싶을 때,
이 책을 보면 마음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실베스터 이 책, 보고 싶니.

만약 요술 조약돌을 줍거들랑 너흰 무슨 소원을 빌 거니?
난 말야. 우리 엄마를 닮은 실베스터 엄마네 진짜로 놀러가고 싶어.
우리 같이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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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귀 문원 세계 청소년 화제작 3
쎄르쥬 뻬레즈 지음, 박은영 옮김, 문병성 그림 / 도서출판 문원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당나귀 귀/ 쎄르쥬 뻬레즈 글/ 문병성 그림/ 박은영 옮김/ 문원(2000)
난 죽지 않을 테야/ 문병성 그림/ 김주경 옮김/ 문원(2002)
이별처럼/ 문병성 그림/ 김주경 옮김/  문원(2002)

- 쎄르쥬 뻬레즈의 연작을 읽고서

레이몽, 네가 당나귀 귀로 불렸던 건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실수도 아니지. 
진짜 선생이라면 계산 못하는 너를 그렇게 돌려보내지 말았어야지. 알게 해 줘야지.
진짜 선생이라면 너를 저능아로 취급해서 유급을 막는 대가로 네 아버지에게서
돼지 한 마리를 받지 않았겠지. 마치 거래하듯 교장 몫까지 챙기느라 돼지 한 마리를
원했지. 아버지는 비겁한 속물 덩어리 선생에 대한 화풀이를 너에게 했어. 젖은 솜에서
물이 함빡 빠지게 두들기듯 너를 때렸다. 며칠동안 방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로 매서운
폭력을 휘둘렀어. 너무하다 싶었는지 엄마가 말렸지만, 평소 네 잘못을 보듬어주기는 커녕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엄마도 아버지한테 맞았어. 너는 어디서나 외톨이였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를 집단으로 때리고 조롱했다. 여동생도 네가 혼날 기회만 더 주었다.
여동생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도 다 레이몽 네 탓으로 돌린 부모였어. 말이 돼야 말이지.

네가 문제아가 되는 건 당연하다. 문제아가 되지 않았다면 미쳐버렸을 테지.
폭력적인 부모, 속물 덩어리 선생, 따 시키는 친구들,  하루라도 매를 피해갈 수 없는  현실에서
과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어야 말이지. 레이몽 네가 드디어 집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너를 응원했다. 그래, 박차고 나가라고. 하필 상처가 조금씩 아물 무렵 아버지는 빵집
아저씨까지 꼬드겨서 너를 망보게 했고 돼지를 훔치러 갔다. 너는 그 두려움 앞에 무릎 꿇고
말았어. 도저히 아버지 삶에서 너를 탈출시킬 수 없었다. 

너는 병들었다. 그러자 지긋지긋한 울타리에서 벗어났다.
모래바람이 센 바닷가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됐다. 저마다 하나씩 아픔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었기에 너는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몸에 난 상처가 아물고 마음에 새겨진
고통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레이몽 너는 친구를 사귀게 됐고 처음 입맞춤을 나눈 여자
친구 안느도 생겼다. 네 삶은 새롭게 펼쳐졌다. 최소한의 예의만 있으면 뭐든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폭력이 사라진 공간, 너는 그곳에서 행복을 알았고, 죽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부모님과의 거리두기도 성공했고, 냉담할 수 있게 됐어.

안느를 사랑하면서 온전한 한 인격체가 되었다. 살아야 할 이유도 생겼다.
안느는 입꼬리만 살짝 올려서 웃지. 크게 웃거나 말하는 법도 없지. 바느질만 했다.
너는 안느를 받아 들이기엔 아직 어렸다.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했다. 안느가 웃거나
말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혀 때문이란 걸 어찌 상상이나 했겠니. 혀가 잘렸기 때문이라니.
너는 결국 소리치고 말았어. 토해내고 말았어. 네 소란에 요양원은 난리가 났고 집으로
쫓겨났어.  

악몽은 현실이 되었고, 너는 계속 꿈꾸었다.
다시 몹시 아팠다. 현실과 꿈을 오가듯 높은 열에 시달렸다. 너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너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고, 너를 최대한 배려해 주는 인정있는 아버지와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골고루 해 주는 포근한 엄마와 밝은 여동생과 살았다. 두 편에 걸친
네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는 울먹해지는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만, 고열에 시달리며 꿈꾸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울고 말았다. 그래 맞아, 너는 원래 꿈에서 이룬 가족처럼 살아야
하는데 어쩌다 짓밟히는 어린 삶이고 말았니? 현실은 매정했다. 부모님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네가 맛본 요양소에서의 짧은 행복이 네 삶을 지탱해 주지도 못했다. 

레이몽 너는 선택했다. 죽음을! 
오로지 너를 편안하게 대해 주었던 빵집 아저씨를 따라갔다. 얼마나 야박한지 술에 빠져
지내는 빵집 아저씨가 네게 편안한 존재가 되었구나. 그 빵집 아저씨마저 네 곁에 없었다면
너는 숨 쉬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할 수도 없이 질식해 죽어버렸을 거다. 

레이몽,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한다.
죽음을 선택하는 건, 자살이라는 건, 종교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옳지 않은 모습이니까.
그러나 네가 너무 아파하고 악몽같은 현실을 되풀이 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한 그 자체만
생각하면, 난 얼마든 네 선택을 존중한다.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를 길가의 돌멩이만큼도
값지지 않게 만든 네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기 힘들었겠지. 네 가족을 용서할 수 없었겠지.
용서할 힘이 뭐야, 네 차디찬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힘에 겨웠으니. 인정한다.

레이몽 너는!
똑똑한 아이다. 주변사람들의 옳지 못한 행동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강인한 아이다. 강한 아이기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네가 그렇게 똑똑하고 강인한 아이였음에도 현실에 맞서 싸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네가 처절하게 맞았을 때 떠나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 벗어났다면 넌 세상과 이별하지
않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든다. 너를 너무 힘든 상황으로 몰아 세운 건 아닌지, 작가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기도 한다. 네 영리함과 강인함이 현실에 굴복되고 만 것이 엉터리 같다. 내가 아는
너는 결코 그렇게 떠날 것 같지 않거든. 왜 그런 믿음이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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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내 인생 반올림 2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글/ 정지현 옮김/ 낭기열라(2006) 
뚱보, 내 인생/ 미카엘 올리비에 글/ 조현실 옮김/ 바람의아이들(2004)

두 권의 책표지는 아래와 같다. 표지가 인상적이다. 

   

표지 그림 배치가 비슷하기도 하고 에바는 아예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벵자멩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 떨어뜨릴 것만 같다.
소재와 표지 구도까지 비슷해서 그런지 재미있게 느껴졌다.

'씁쓸한 초콜릿' 에바와 '뚱보, 내 인생' 벵자멩은 둘다 뚱보다.
뚱보, 뚱보, 이 낱말에는 약간의 비웃음이 섞여있다.
둔함, 자신감 없음, 뭔가를 마구 먹는 느낌마저 자리하고 있다.
그랬다. 에바와 벵자멩은 그저 그런 뚱뚱한 아이들과 달라 보일 게 없었다.

에바와 벵자멩에게는 먹는 것으로 자신을 학대했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냥'이란 게 없다.
이유없이 살이 빠지거나 이유없이 살이 찌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에바와 벵자멩도 그랬다. 나는 에바와 벵자멩이 살이 찔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에바는 권위적이고 어릴 적 수시로 따귀를 때리는 아빠에게 불만이 있다.
아빠에게 따귀를 맞거나 혼났을 때 엄마는 안쓰러운 딸을 위해 먹을 것으로
에바의 불안한 마음을 채워 주었다. 에바는 그러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고
먹는 걸 좋아했다. 살이 쪘다. 엄마의 최대 서비스 초콜릿! 그래서 책제목이
씁쓸한 초콜릿이였구나, 싶었다.

벵자멩은 이혼한 엄마와 둘이 산다. 돈 많은 젊은 여자에게 가버린 아버지
때문에 서럽게 우는 엄마와 산다. 엄마는 일을 해야 했고 벵자멩은 먹을
음식을 책임졌다. 물론 벵자멩이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다. 남은 음식으로
맛좋고 멋진 음식을 할 줄 안다. 

벵자멩은 어릴 적에 남과 다르다는 것이 무조건 좋아서 남보다 자신이
뚱뚱하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여자 애들 때문이었다.
벵자멩도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끊임없이 먹게 돼서
살은 계속 찌고 있다. 

그러던 그들에게 이성 친구가 찾아 온다. 에바, 미첼. 벵자멩, 클레르.
미첼은 뚱뚱하지만 뭔가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는 에바를 좋아하고,
클레르는 뚱뚱하지만 순진한 벵자멩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성 친구가 생기면서 에바와 벵자멩은 자기 모습을 직시하게 됐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내 부족한 점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그 첫 단계로. 
에바와 벵자멩은 뚱뚱한 자기 몸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길을 선택을 했다. 

미첼과 사귀는 것을 순수하게 보지 않는 아빠 때문에 더욱 먹게 되는 에바,
클레르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받아주지 않아서 가학적으로 먹는 벵자멩.
학교 생활까지 엉망이 되어 가는 벵자멩. 즐거움이 없는 채움, 욕구불만 때문에 
채워 넣는 그들이 안쓰러웠다. 아프게 느껴졌다.

그러다 그들이 인정을 하게 됐다. 뚱뚱하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는 것이다.
그리고 살을 빼야 한다는 절망에 빠진 의무감 100%가 아니라, 
자기에게 찾아온 사랑 혹은 우정을 잘 가꾸기 위해서 살을 빼는 게 좋겠다는
자기 긍정이 생겼다.

에바는 가난하지만 가족애가 넘치는 미첼을 보면서 소원했던 아빠와 가까워지려
마음을 열었고, 벵자멩은 알콜중독자 같던 자신을 버리고 클레르와 다시 친구가
되어 생활에 활기를 찾는다. 그들에게 느껴졌던 안타까움이 벗겨지던 순간이다.

이제 에바와 벵자멩은 그저 그런 뚱뚱한 아이들과 다르다.
약간의 비웃음이 담긴 그저 그런 뚱보가 아니다.
그들은 부정덩어리였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열어 세상에 내 놓았다.
그 문으로 사랑이 우정이 희망이 들어찰 것이다. 그래서 예쁘다. 

누군가 그저 몸이 뚱뚱하다고 해서 막연히 그에 대한 둔하고 자신 없어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짓는 편견은 지울 때가 되었다. 어쩌면 뚱뚱한 그들과 마른 사람들의 공통점은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거다. 그 이유를 존중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에바 이야기 보다 벵자멩 이야기가 더 시원하게 읽힌 것은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 주었기 때문이고, 속 마음을 터 놓고 얘기하고 멋진 음식점을 운영하는
요리사라는 꿈이 뚜렷해서 일까. 그리고 에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 깊이 젖어드는
내 상념들을 들추기에도 좋은 책읽기였다. 그리고 에바와 벵자멩에게 찾아온 설레는
사랑의 느낌들이 내게도 전해졌다. 풋풋해지고 설레여지는 떨림으로.

뚱뚱함과 말랐음을 떠나 자아 존중에 대해 생각해 볼 즐거운 책읽기였다. 
그리고 지금 뭔가 문제가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나를 괴롭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음표를 던져 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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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독후감입니다! 2010-06-2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독후감이 예쁘네요^^ 책을 정말 잘 이해하시고 느낌도 정말 예쁩니다^^ 두 책 비교하는 게 힘든데, 정말 딱 맞는 책 두 권을 비교해 주셔서..^^

미나리 2010-06-27 16: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두 권 비교해서 읽어보니 더욱 재미있더라고요.
 
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두 권의 책표지는 아래와 같다. 표지가 인상적이다. 

   

표지 그림 배치가 비슷하기도 하고 에바는 아예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벵자멩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 떨어뜨릴 것만 같다.
소재와 표지 구도까지 비슷해서 그런지 재미있게 느껴졌다.

'씁쓸한 초콜릿' 에바와 '뚱보, 내 인생' 벵자멩은 둘다 뚱보다.
뚱보, 뚱보, 이 낱말에는 약간의 비웃음이 섞여있다.
둔함, 자신감 없음, 뭔가를 마구 먹는 느낌마저 자리하고 있다.
그랬다. 에바와 벵자멩은 그저 그런 뚱뚱한 아이들과 달라 보일 게 없었다.

에바와 벵자멩에게는 먹는 것으로 자신을 학대했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냥'이란 게 없다.
이유없이 살이 빠지거나 이유없이 살이 찌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에바와 벵자멩도 그랬다. 나는 에바와 벵자멩이 살이 찔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에바는 권위적이고 어릴 적 수시로 따귀를 때리는 아빠에게 불만이 있다.
아빠에게 따귀를 맞거나 혼났을 때 엄마는 안쓰러운 딸을 위해 먹을 것으로
에바의 불안한 마음을 채워 주었다. 에바는 그러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고
먹는 걸 좋아했다. 살이 쪘다. 엄마의 최대 서비스 초콜릿! 그래서 책제목이
씁쓸한 초콜릿이였구나, 싶었다.

벵자멩은 이혼한 엄마와 둘이 산다. 돈 많은 젊은 여자에게 가버린 아버지
때문에 서럽게 우는 엄마와 산다. 엄마는 일을 해야 했고 벵자멩은 먹을
음식을 책임졌다. 물론 벵자멩이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다. 남은 음식으로
맛좋고 멋진 음식을 할 줄 안다.

벵자멩은 어릴 적에 남과 다르다는 것이 무조건 좋아서 남보다 자신이
뚱뚱하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여자 애들 때문이었다.
벵자멩도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끊임없이 먹게 돼서
살은 계속 찌고 있다. 

그러던 그들에게 이성 친구가 찾아 온다. 에바, 미첼. 벵자멩, 클레르.
미첼은 뚱뚱하지만 뭔가 특별한 매력을 갖고 있는 에바를 좋아하고,
클레르는 뚱뚱하지만 순진한 벵자멩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성 친구가 생기면서 에바와 벵자멩은 자기 모습을 직시하게 됐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내 부족한 점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그 첫 단계로. 
에바와 벵자멩은 뚱뚱한 자기 몸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길을 선택을 했다. 

미첼과 사귀는 것을 순수하게 보지 않는 아빠 때문에 더욱 먹게 되는 에바,
클레르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나 받아주지 않아서 가학적으로 먹는 벵자멩.
학교 생활까지 엉망이 되어 가는 벵자멩. 즐거움이 없는 채움, 욕구불만 때문에 
채워 넣는 그들이 안쓰러웠다. 아프게 느껴졌다.
 
그러다 그들이 인정을 하게 됐다. 뚱뚱하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됐는 것이다.
그리고 살을 빼야 한다는 절망에 빠진 의무감 100%가 아니라, 
자기에게 찾아온 사랑 혹은 우정을 잘 가꾸기 위해서 살을 빼는 게 좋겠다는
자기 긍정이 생겼다.

에바는 가난하지만 가족애가 넘치는 미첼을 보면서 소원했던 아빠와 가까워지려
마음을 열었고, 벵자멩은 알콜중독자 같던 자신을 버리고 클레르와 다시 친구가
되어 생활에 활기를 찾는다. 그들에게 느껴졌던 안타까움이 벗겨지던 순간이다.

이제 에바와 벵자멩은 그저 그런 뚱뚱한 아이들과 다르다.
약간의 비웃음이 담긴 그저 그런 뚱보가 아니다.
그들은 부정덩어리였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열어 세상에 내 놓았다.
그 문으로 사랑이 우정이 희망이 들어찰 것이다. 그래서 예쁘다. 

누군가 그저 몸이 뚱뚱하다고 해서 막연히 그에 대한 둔하고 자신 없어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짓는 편견은 지울 때가 되었다. 어쩌면 뚱뚱한 그들과 마른 사람들의 공통점은
뭔가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거다. 그 이유를 존중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

에바 이야기 보다 벵자멩 이야기가 더 시원하게 읽힌 것은 1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 주었기 때문이고, 속 마음을 터 놓고 얘기하고 멋진 음식점을 운영하는
요리사라는 꿈이 뚜렷해서 일까. 그리고 에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 깊이 젖어드는
내 상념들을 들추기에도 좋은 책읽기였다. 그리고 에바와 벵자멩에게 찾아온 설레는
사랑의 느낌들이 내게도 전해졌다. 풋풋해지고 설레여지는 떨림으로.

뚱뚱함과 말랐음을 떠나 자아 존중에 대해 생각해 볼 즐거운 책읽기였다. 
그리고 지금 뭔가 문제가 있다면, 어린 시절부터 나를 괴롭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음표를 던져 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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