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생명수를 드세요!」 Now, please drinking water of life! 요7:37-44
지난 한 주간은 부대 훈련으로 매우 분주하게 보낸 줄 압니다. 2/1에는 부산에서 제7기동전단이 창설되어 해군의 전략적 위상과 전술적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 전역의 안보위해 수고하는 우리 육해공군 및 해병대와 각 특수부대의 역할과 사명감 불타는 임무수행이 우리 겨레를 더욱 든든히 지켜주는 초석이 되기 바랍니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국방력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굳게 의지하는 믿음의 겨레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함께 있으나 함께 하지 않는 공동체 함께 있지 않으나 함께 하는 공동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함께 있다고는 하지만 각자의 생각과 욕심과 추구하는 바를 따라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다면(딤전6:5), 이는 함께 있으나 함께 하지 않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없더라도, 제한적이고 유한적인 시공간의 제약상 함께 있지는 못할 지라도, 마음이 하나 되고 뜻이 하나 되고, 정성이 하나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그 공동 목표와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수고한다면, 분명히 이는 ‘함께 있지 않으나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함께 있을 때 함께 하는 공동체” “함께 있지 않으나 함께 하는 공동체” “늘 함께 하는 공동체”이겠지요.
훈련 기간 중 박 목사는 여러분과 같은 공간에는 없었으나 여러분 모두는 아니지만, 한 분 한 분을 위해 그리고 우리 부대 장병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 되기 위해 수고 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침 부대에서 차량을 배차해 주셔서 우리 성도들의 마음 담긴 위문품 전달도 잘 했습니다(최성균 복지담당관님께도 감사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성도들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바라시고 원하시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신이 처한 곳에서 먼저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경주함으로써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떡 곧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적 사명을 다하는 일은 바로 이 생명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도록 인도해 주신 주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뜻이기도 할 뿐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서 행하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입을 크게 열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담대하게 전하시는 믿음의 역사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은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민속의 날입니다. 설 명절인데도 가족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은 여러분 모두에게 있을 줄로 압니다. 혹여 전화나 편지로라도 부모 형제와 지인들께 연락 드린다면, 비록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모두의 가슴속에 함께하는 경험을 서로가 할 수 있을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예수님께서도 명절(초막절7:2)을 지키시기 위해 갈릴리에서 (7:9)예루살렘을 향해 올라 가셨습니다(10절). 그런데 이 명절은 우리 민족들이 단순히 조상의 은덕과 가족의 안녕을 기리고 염원 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애굽 에서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해 주셨음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는 절기였습니다. 일명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유월절, 칠칠절(오순절)과 더불어 유대인의 3대 절기중 하나입니다. 바로 이 절기에 주님은 또 하나의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7:12절에 의하면, 유대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 한다”고 하면서 수군거림이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수군거림은 공개적으로, 드러내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진행되었다고 요한은 기록했습니다. 아마도 6장에서 얘기된 ‘생명의 떡’과 살을 먹는다는 의미의 해석에 따른 유대인들의 혼란을 반증해 주는 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어수선한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명절의 중간기에 성전에 올라 가셔서 가르치셨고, 그가 특별히 공교육을 배우지 않았는데 어찌 글을 아느냐는 수군거림까지 새로 생겼습니다. 한마디로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시대,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 개발하기보다 남의 대소사에 참견하여 간접적인 자기도취에 빠져 대리 만족하는, 시대적 암울함까지 엿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기, 이러한 지역,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주님은 할례에 대해(22), 율법의 판단(24)에 대해 담대히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오신 근원에 대해 외치심으로써(28) 급기야는 무리들에게 잡히실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그렇게 위기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지 않은 것은 아직 ‘그의 때(하나님의 시간)’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30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맥락과는 무관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잠시 바울 사도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한 마음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때’에 대해 상고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고후6:1-2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였는데, 오늘 2월의 첫 주일, 훈련 후 피곤한 육신에도 불구하고 주님 전에 나아온 여러분은 구원에 합당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호흡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자기 주도적 의식 활동을 통해 선택적 삶을 살 수 있는 지금이 곧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구원의 적기임을 기억하시고, 날마다 날마다 보혈의 피로 씻어 죄악과 상관없이 聖潔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이 어수선한 명절의 끝 날에 예수님께서 외쳐 이르신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7:37-38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한은 이 주님의 말씀을 바로 다음 구절인 39절에서 해석해 놓았습니다. 즉 생수의 강의 내용은 ‘성령’을 가리킴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성령 충만함’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비로소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의미와, 그분이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의미 그리고 이 “먹고 마심이 있어야 영생의 과정이 유지됨”에 대해 비로소 긍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십니까?
당신은 그 분이 말씀하신대로 나를 기념하라 하신 성찬에 참예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아직 이것을 믿지 못하거나 믿는다 하여도 내면에 거리끼는 죄 되는 것이 생각 난다면, 지금! 바로 이 시각 회개함으로써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용서해 주심과 새롭게 해 주심의 은총을 덧입으기 바랍니다.
주님 2月의 첫 주일을 주님께 드립니다.
立春을 보내며 봄의 문턱에 이른 우리의 삶을 주님꼐 드립니다.
이 거룩한 날 우리의 마음 정성과 시간과 물질 그리고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 말씀하신 聖餐의 예를 거행코자 합니다.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거룩케 하시사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서 온전해 짐을 행하시옵소서.
이곳에 모인 지체들 가운데,
아직 이 거룩한 믿음의 현장에 ‘하나 됨의 확신’이 없는 자에게는
큰 믿음 주시고 ‘결단’하는 역사로 새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