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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평점 :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묘한 감동을 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잠시 와 계시던 외할머니에게서 처음 6.25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약간은 복잡하고 심란했던 그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저 나에게는 너무 먼 옛날 이야기였고, 책이나 TV,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사건이었는데 어느 날 밤 옆에 누워 뒤척이시던 외할머니에게는 너무도 생생한 젊은 날의 고통스런 기억이었던 것이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고작해야 몇 십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전쟁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겪어낸 사람들이 생존해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내가 겪지 않았기 때문에 어쩐지 그 큰 사건은 나와는 영영 무관하게만 느껴졌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저, 외할머니가 그 전쟁을 실제로 겪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러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 엄마가 갓난아이였던 시절에 대해 상상해보게 되었고 외할머니의 한숨섞인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마치 내가 누워있는 곳이 마을 뒷산 커다란 나무 둥치 아래이고 아랫마을로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에 그 날 밤 내내 잠을 설쳤었다. 그 날 밤 일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고 덕분에 나는 어른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전혀 따분하거나 지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 분들이 살아낸 시대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외할머니가 무관하지 않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일일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이야기보다 외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내게 더 깊이 각인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당시에 나는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먼저 읽은 후였는데, 우연히(아니면 선생님의 권유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12권이나 되는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고 나니 누구인지도 모르는 '김 산' 이라는 사람에 대해 '님 웨일즈'라는 외국인(그 때나 지금이나 묘하게도 내게는 요정이름처럼 느껴진다)이 쓴 한 권짜리 책에 대해 흥미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 읽기를 10년 가까이 미뤄왔는데, 막상 손에 잡고 나서는 이틀만에 읽어버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외할머니의 전쟁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그 날 밤이 생각난다. 나와 상관없게만 느껴지던 이야기들, 사람들, 그들의 삶들. 하지만 나와 전혀 무관하지 않았음을.
김산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태어났다. 잔혹한 시대가 시작되던 해의 운명을 타고났던 것일까, 그의 생애는 조국의 신음소리 만큼이나 깊고 위태로웠던 것 같다. 반항다운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죽음과 고통을 신의 뜻으로,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의 무력함에 실망과 좌절을 느끼고 행동하는 혁명가의 길로 뛰어든 어린 소년은 무정부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를 거쳐 항일전사로서의 마지막 길을 정비하던 중 억울한 처형으로 33년의 인생을 마감한다. 중국혁명과 공산주의, 중국공산당의 역사에 대한 많은 지식 없이도 '김산'이라는 또 하나의 가명으로 풀어낸 이 사람의 인생이야기에 빠져드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사람의 삶이 곧 그 거대한 역사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활동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활동을 알 수 있고, 소비에트가 어떻게 성립된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며, 그의 사상이 변화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통해 그 시대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고,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바는 혁명과 자유와 독립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해준다. 거친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지 않는 그의 변함없는 모습은 어찌 보면 순진하리만큼 고집스럽다.
영웅적인 자화자찬이 아니어서 더욱 이 책에 마음이 끌리고 이 책의 주인공에게 정이 가는 것일 게다. 김 산은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 자신이 이루어낸 혁명의 성과들을 이야기하지만 그 톤은 결코 거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과 역사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자신의 고민들을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자신도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고민하고 부대끼는 한 명의 젊은이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한다. 그 고백이 너무나 꾸밈없어서 과연 이 순진한 젊은이가 혁명의 선봉장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겪어내고, 그 숱한 위험을 무릅쓰며 수많은 지하조직을 이끈 혁명가가 맞는가 싶을 때도 있다. 분명 그에겐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있었다. 전쟁과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잔인함과 배신의 행태들을 접하면서도 끝까지 신념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얼마간은 그의 이러한 면모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 하는 가볍지 않은 주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표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과 중국의 현재, 그리고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실상을 접하고 있는 나로서는 만일 그가 1938년에 죽지 않고 광복을 맞았더라면 그의 정치사상과 신념은 과연 그로 하여금 어떤 길을 택하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아니면,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지 5년만에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는 원수가 되어버린 조국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에겐 죽음보다 더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삶의 다양한 위치에서 크고 작은 나름의 투쟁을 벌이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하지만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고,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나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가 살았던 33년. 이제 나는 그 나이가 멀지 않았다. 혁명가에게는 감옥에 있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1년 동안 몇 년의 일을 해내야 한다던 자신의 말처럼, 김산의 33년은 다른 사람들이 66년을 살아도 해내지 못했을 일들로 가득차 있다. 물론, 한 사람의 인생이 그의 생전의 성과로만, 그가 이룬 일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얼마나 소중하고 후회없이 보내는지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던져야 할 피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과 장소의 안락함,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선택의 권리들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나의 부모님, 그들의 부모님, 또 그들의 부모님과 그들의 부모님. 김산의 말대로 그들 모두가 역사이다. 물론 이 순간의 나도.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