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에서 에필로그까지 한 권의 책에 담긴 글은 모두 읽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차마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이 있다. 너무 바쁜 시기에 또는 너무 띄엄띄엄 읽었기 때문에, 내용을 공감할 수 없어서, 지나치게 어려워서..등등 많은 이유와 핑계로 결국 끝내지 못한 책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채수동.고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29,800원 → 26,820원(10%할인) / 마일리지 1,490원(5% 적립)
2005년 10월 24일에 저장
구판절판
올해의 시작을 이 책으로 했었다. 매일매일 그 날의 일기를 쓰듯이 자기 전에 그 날의 내용을 읽고, 올해 마지막 날 뿌듯한 심정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직장에 나가게 되면서 하루 이틀 미루어진 것이 벌써 10월말이니.. 내년의 시작도 역시 이 책으로 하게 될 것 같다. 내년엔 꼭 다 읽어야지..
황금가지 1- 삼성세계사상 35
프레이저 / 삼성출판사 / 1990년 3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04년 01월 13일에 저장
절판

고등학교 때인가 신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던 어느 선생님의 추천으로 구입하게 된 책이다. 물론 사두고 읽게 되기 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고, 읽기 시작하고 포기하게 되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던 책이다.
황금가지 II- 삼성세계사상 36
프레이저 / 삼성출판사 / 1990년 3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2004년 01월 13일에 저장
절판

쉽지 않은 내용에 두 권 합쳐 10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최근 개정판도 나오고 그림자료가 곁들여진 책도 나왔다. 굳이 이 책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2003년 제3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4년 01월 13일에 저장
구판절판
이 책은 알라딘에서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책이다.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읽기 시작했는데, 에피소드 둘 정도를 읽고 나니 책이 손에 다시 잡히질 않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언젠가 다시 읽게 되면 리스트에서 삭제될 책.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
제이 그린버그 외 지음, 이재훈 옮김 / 현대정신분석연구소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대상관계이론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로 보며, 특히 초기 아동기의 관계 경험(대상관계 경험)이 성격 구조의 형성이나 정신적인 내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 책에서는 현재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대상관계이론이 프로이트의 이론으로부터 형성되어 나온 발달과정과 더불어, 프로이트의 정통 정신분석적 이론과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대표적인 대상관계이론가들 및 여러 이론가들의 핵심적인 이론 전제들의 설명을 통해 비교하고 분석한다.

  이 책은 대상관계이론에 대한 저서 중 가장 집약적이고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분야의 권위서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제대로 공들여 읽는다면 많은 정보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열매를 거두기 전에 넘어야 할 몇 개의 산들이 있다. 우선, 전문적인 분야의 전문적인 내용들을 압축해놓은 만큼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 없이는 읽기가 그리 쉽지 않다. 특히나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왜냐하면 이 책의 구성 자체가 프로이트의 욕동 이론(drive theory)으로부터 대상관계이론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이론적 전제들의 변화과정을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이트 이론의 개념들과 대상관계이론의 주요 개념들 간의 비교분석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책의 내용을 따라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둘째,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이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저자들이 책의 서문에서도 밝혀놓았듯이 이 책에서는 대상관계를 보는 다양한 이론들 간의 차이점들을 부각시킴으로써 현재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정신분석학파들 사이의 다양한 입장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따라서 대상관계이론 그 자체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책의 작업들이 버겁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그 과정 끝에는 얻을 것이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정신의학계나 심리학계 내에서도 용어의 통일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주요한 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의 선택은 번역자 개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번역 상의 용어 선택이나 어법에 있어서 읽는 사람과의 코드가 맞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책의 경우 내가 배워왔던 접근이나 용어들과 다른 면이 있어서 그 점을 감안하면서 읽어야 했다(drive를 욕동으로 하든 추동으로 하든 의미상의 차이는 없겠으나 익숙하게 사용해왔던 용어에 대한 선호는 어쩔 수 없다).

  분명 권위서로 인정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이 책도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 이론가들의 공통적인 주장과 서로 다른 주장들을 알게 되고, 비교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면서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라는 개념이 뜻하는 바에 조금씩 더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들을 얻기까지 여정이 결코 만만치는 않다. 솔직히 끝까지 읽는 일이 '어려웠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멜라니 클라인, 페어베언, 위니컷, 컨트립, 말러 등 다양한 대상관계이론가들의 핵심적인 이론적 전제와 그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의 해당 부분만을 찾아보는 것도 꽤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담고 있는 내용은 알찬 책이다. 언제고 다시 한 번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끝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김혜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10년 혹은 15년후 내 모습은' 이라는 주제로 꽤나 여러 번 글짓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그런 걸 하는지...) 그 시절, 내가 그렸던 미래의 내 모습 중 빠지지 않았던 것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행복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철부지 소녀의 감성을 그렇게도 강하고 은밀히 자극했던 '사랑'이라는 두 단어. 하지만 그 단어는 왠지 좀 더 철이 들고, 좀 더 세상을 당당하게 바라보는 먼 미래의 나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고귀한 단어였다. 이제, 그 때로부터 10년, 15년이 다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얼마나 세상에 당당하고, 얼마나 사랑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때로는 좀 더 행복하고 충만해지고 싶어서, 때로는 이 힘든 마음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어서 사랑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정답을 찾으려 할수록,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얻으려 할수록, 내게 남는 것은 그 때마다 다른 느낌뿐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머리 속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싶기도 하다가 또 다른 순간에는 결국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좌절로 끝나기도 하면서 말이다. 김혜남선생님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채워지지 않았던 공간이 조금은 채워지는 듯 하다. 마음을 차분히 토닥여주는 듯한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비록 내게 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적잖은 위로와 지지가 되어 주었다. 특히나 암이라는 병을 만나 생을 가만히 뒤돌아보며 그 속에서 얻었던 자신만의 경험을 뒤에 오는, 아직 삶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어 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면서 그토록 하나가 되기를 열망하지만, 대개는 그와 나는 결국 둘일 수 밖에 없다는 가슴시린 깨달음으로 그 사랑을 마감하곤 한다. 성숙한 사랑이란,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랑이란, 진정 하나가 되어 당신이 내가 되고 내가 당신이 되는 사랑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임을 알고 받아들이고 내가 나임을 알고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능한 것 같다.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억도 누가, 언제 그 기억을 되살려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사건이 되어버리는'이나 상대방을 끊임없이 우리의 기준에서 이상화했다 평가절하했다 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부드럽지만 단단하다.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할 능력을 키워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20년 내지 30년 이상을 자라온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결국 각자의 역량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에게도 더 큰 안식과 안정된 사랑의 느낌이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 사이에는 아직도 얼마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지.... 아무리 머리속으로 되뇌이고 감정을 이성으로 달래보려 해도, 결국 다른 상대에게 똑같은 방식의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나의 일관된 모습은 때로는 상대방과 나 모두에게 좌절만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 사이에도 그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안다는 것이 곧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지만, 자신의 행동의 의미와 상대방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최소한 알고 있는 사람은, 뒤늦게라도 한 번은 더 생각하게 되고 결국 조금이라도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참으로 흔하고 흔한 말이며, 누구나 다 하고는 있지만, 정말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자꾸만 되묻게 되는 이 사랑이라는 것이 내게 언제나 자신감을 심어줄런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시 10년 뒤에는 조금 더 많이 달라질 수 있을까? 'Am I ready to 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자살은 식민지 민중이 선택할 수 있는 불과 몇 안 되는 존엄한 인간의 권리입니다."

2. "내가 체험한 인생살이의 큰 윤곽을 그려볼 때, 거기에 보이는 것은 다만 뼈를 깍는 아픔 속에서 얻어낸 패배의 연속일 뿐이며, 앞길에는 험준한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 소리에 맞춰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뿐이다.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그 밖의 것은 모두 내 세계에서는 하나도 의미가 없다. 바로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다"

3. "안창호는 우리들에게 일찍 결혼하지 말고 현대적인 남녀공학과 같은 방식으로 아가씨들과 건전하고 자연스러운 우정을 나누라고 가르쳤다.......중략......남자들은 여자들의 평등한 지위를 보호하고 지켜주며, 여자들이 남자들과 협력하여 모든 활동에 참여하도록 격려해줌으로써 여성해방을 도와주어야만 한다. 결혼이란 남녀 모두 현명하게, 또한 각자 개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이해심을 가지고 선택할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었을 때 맺는 동반자적 관계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안창호의 의견에 찬성하였다."

4. "1933년 베이징의 그 감방 안에서 나는 언제나 내 자신에게 진실하고 타인의 거짓말이나 변절을 절대로 마음에 두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변절을 가지고 변절과 싸우지는 않겠다. 나 자신의 방식으로 하다가 이기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게 그 실패는 명예이고 승리인 것이다."

5.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나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나에게는 환상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6. "내 청년시절의 친구나 동지들은 거의 모두가 죽었다. 민족주의자, 기독교 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등등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들이 지금도 살아있다. 그들의 무덤을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 따위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전장에서, 사형장에서, 도시와 마을의 거리거리에서, 그들의 뜨거운 혁명적 선혈은 조선, 만주, 시베리아, 일본, 중국의 대지 속으로 자랑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승리자로 만든다.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불사성이며, 그의 영광 또는 그의 수치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르 빼앗을 수 없다. 그 무엇도 사람을 빠져나가게 할 수 없다. 유일한 그의 개인적 결정이라고는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나약해질 것인가 하는 것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앞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묘한 감동을 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잠시 와 계시던 외할머니에게서 처음 6.25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약간은 복잡하고 심란했던 그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저 나에게는 너무 먼 옛날 이야기였고, 책이나 TV,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사건이었는데 어느 날 밤 옆에 누워 뒤척이시던 외할머니에게는 너무도 생생한 젊은 날의 고통스런 기억이었던 것이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고작해야 몇 십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전쟁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겪어낸 사람들이 생존해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내가 겪지 않았기 때문에 어쩐지 그 큰 사건은 나와는 영영 무관하게만 느껴졌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그저, 외할머니가 그 전쟁을 실제로 겪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그러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외할머니의 젊은 시절, 엄마가 갓난아이였던 시절에 대해 상상해보게 되었고 외할머니의 한숨섞인 생생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마치 내가 누워있는 곳이 마을 뒷산 커다란 나무 둥치 아래이고 아랫마을로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에 그 날 밤 내내 잠을 설쳤었다. 그 날 밤 일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고 덕분에 나는 어른들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는 일이 전혀 따분하거나 지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다. 그 분들이 살아낸 시대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외할머니가 무관하지 않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일일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이야기보다 외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내게 더 깊이 각인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이다. 당시에 나는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먼저 읽은 후였는데, 우연히(아니면 선생님의 권유로) 이 책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12권이나 되는 조정래의 아리랑을 읽고 나니 누구인지도 모르는 '김 산' 이라는 사람에 대해 '님 웨일즈'라는 외국인(그 때나 지금이나 묘하게도 내게는 요정이름처럼 느껴진다)이 쓴 한 권짜리 책에 대해 흥미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 읽기를 10년 가까이 미뤄왔는데, 막상 손에 잡고 나서는 이틀만에 읽어버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외할머니의 전쟁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그 날 밤이 생각난다. 나와 상관없게만 느껴지던 이야기들, 사람들, 그들의 삶들. 하지만 나와 전혀 무관하지 않았음을. 

  김산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태어났다. 잔혹한 시대가 시작되던 해의 운명을 타고났던 것일까, 그의 생애는 조국의 신음소리 만큼이나 깊고 위태로웠던 것 같다. 반항다운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죽음과 고통을 신의 뜻으로,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의 무력함에 실망과 좌절을 느끼고 행동하는 혁명가의 길로 뛰어든 어린 소년은 무정부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를 거쳐 항일전사로서의 마지막 길을 정비하던 중 억울한 처형으로 33년의 인생을 마감한다. 중국혁명과 공산주의, 중국공산당의 역사에 대한 많은 지식 없이도 '김산'이라는 또 하나의 가명으로 풀어낸 이 사람의 인생이야기에 빠져드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사람의 삶이 곧 그 거대한 역사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활동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활동을 알 수 있고, 소비에트가 어떻게 성립된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며, 그의 사상이 변화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통해 그 시대의 정신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고,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바는 혁명과 자유와 독립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말해준다. 거친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지 않는 그의 변함없는 모습은 어찌 보면 순진하리만큼 고집스럽다.

  영웅적인 자화자찬이 아니어서 더욱 이 책에 마음이 끌리고 이 책의 주인공에게 정이 가는 것일 게다. 김 산은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 자신이 이루어낸 혁명의 성과들을 이야기하지만 그 톤은 결코 거만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과 역사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자신의 고민들을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자신도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고민하고 부대끼는 한 명의 젊은이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한다. 그 고백이 너무나 꾸밈없어서 과연 이 순진한 젊은이가 혁명의 선봉장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겪어내고, 그 숱한 위험을 무릅쓰며 수많은 지하조직을 이끈 혁명가가 맞는가 싶을 때도 있다. 분명 그에겐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있었다. 전쟁과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잔인함과 배신의 행태들을 접하면서도 끝까지 신념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얼마간은 그의 이러한 면모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 하는 가볍지 않은 주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표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과 중국의 현재, 그리고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의 실상을 접하고 있는 나로서는 만일 그가 1938년에 죽지 않고 광복을 맞았더라면 그의 정치사상과 신념은 과연 그로 하여금 어떤 길을 택하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아니면,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지 5년만에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는 원수가 되어버린 조국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에겐 죽음보다 더 힘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삶의 다양한 위치에서 크고 작은 나름의 투쟁을 벌이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하지만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고,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나는 얼마나 치열하게 나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가 살았던 33년. 이제 나는 그 나이가 멀지 않았다. 혁명가에게는 감옥에 있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1년 동안 몇 년의 일을 해내야 한다던 자신의 말처럼, 김산의 33년은 다른 사람들이 66년을 살아도 해내지 못했을 일들로 가득차 있다. 물론, 한 사람의 인생이 그의 생전의 성과로만, 그가 이룬 일로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얼마나 소중하고 후회없이 보내는지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던져야 할 피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시간과 장소의 안락함,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선택의 권리들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나의 부모님, 그들의 부모님, 또 그들의 부모님과 그들의 부모님. 김산의 말대로 그들 모두가 역사이다. 물론 이 순간의 나도.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