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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
제이 그린버그 외 지음, 이재훈 옮김 / 현대정신분석연구소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대상관계이론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로 보며, 특히 초기 아동기의 관계 경험(대상관계 경험)이 성격 구조의 형성이나 정신적인 내용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 책에서는 현재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대상관계이론이 프로이트의 이론으로부터 형성되어 나온 발달과정과 더불어, 프로이트의 정통 정신분석적 이론과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대표적인 대상관계이론가들 및 여러 이론가들의 핵심적인 이론 전제들의 설명을 통해 비교하고 분석한다.
이 책은 대상관계이론에 대한 저서 중 가장 집약적이고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분야의 권위서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제대로 공들여 읽는다면 많은 정보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열매를 거두기 전에 넘어야 할 몇 개의 산들이 있다. 우선, 전문적인 분야의 전문적인 내용들을 압축해놓은 만큼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 없이는 읽기가 그리 쉽지 않다. 특히나 프로이트의 고전적인 정신분석 이론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왜냐하면 이 책의 구성 자체가 프로이트의 욕동 이론(drive theory)으로부터 대상관계이론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이론적 전제들의 변화과정을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프로이트 이론의 개념들과 대상관계이론의 주요 개념들 간의 비교분석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책의 내용을 따라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둘째,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이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저자들이 책의 서문에서도 밝혀놓았듯이 이 책에서는 대상관계를 보는 다양한 이론들 간의 차이점들을 부각시킴으로써 현재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정신분석학파들 사이의 다양한 입장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따라서 대상관계이론 그 자체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책의 작업들이 버겁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그 과정 끝에는 얻을 것이 있겠지만).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정신의학계나 심리학계 내에서도 용어의 통일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주요한 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의 선택은 번역자 개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번역 상의 용어 선택이나 어법에 있어서 읽는 사람과의 코드가 맞지 않을 수 있는데 이 책의 경우 내가 배워왔던 접근이나 용어들과 다른 면이 있어서 그 점을 감안하면서 읽어야 했다(drive를 욕동으로 하든 추동으로 하든 의미상의 차이는 없겠으나 익숙하게 사용해왔던 용어에 대한 선호는 어쩔 수 없다).
분명 권위서로 인정받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일 것이다. 이 책도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 이론가들의 공통적인 주장과 서로 다른 주장들을 알게 되고, 비교하게 되고, 생각하게 되면서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라는 개념이 뜻하는 바에 조금씩 더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그것들을 얻기까지 여정이 결코 만만치는 않다. 솔직히 끝까지 읽는 일이 '어려웠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멜라니 클라인, 페어베언, 위니컷, 컨트립, 말러 등 다양한 대상관계이론가들의 핵심적인 이론적 전제와 그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의 해당 부분만을 찾아보는 것도 꽤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담고 있는 내용은 알찬 책이다. 언제고 다시 한 번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끝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