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들 이런 말들을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이기 이전에, 휴머니스트일 뿐이라고..' 나 역시 성차별의 부당함이나 억압된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 여자로서의 여성의 권리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권리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페미니스트이면서 인종차별주의자이거나 페미니스트이면서 엘리트주의자인 사람들의 목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성차별을 용인하지 않겠다면, 모든 차별을 용인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일이다...

첫 머리를 두서없이 시작하게 되었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느낀 것도 이런 점이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좀 더 인간적으로 대하고, 각자가 불완전한 개체일지언정 인간 그 존재로서의 소중함을 우선으로 여긴다면 이 세상의 남녀관계는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많은 상처를 지닌 채 남성과의 관계 속에 서 있다. 그러나 이해받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한 그녀들의 상처는 돌보아지지 못한 채 점점 커져만가는 것이다. 성(性)적인 관계에서 여자들이 얼마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있는지, 평범한 일상가정생활 속에서의 여성들은 자신을 얼마나 더 희생해야 하는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나 자신도 모르게 잊혀져왔던, 여자가 아닌 그저 '나로서의 내 모습'에 애뜻함마저 느껴진다.

수 십년 전 유럽 여성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은 21세기를 훌쩍 넘어선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와 많이 다르지 않다. 그 점이 나를 당황스럽게도, 또 슬프게도 하지만 분명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란 저자가 제목에서까지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아주 작은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낸 그 수많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성이나 남성이나 동등한 '인간다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실, 깊숙이 스며든 많은 생활상과 습관들 속에서 스스로도 그 권리와 이해를 잃고 혹은 잊고 살 때가 많지만 말이다. 이런 류의 책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책을 읽는 여성이라면 남자친구나 주위의 남성들에게 한 번쯤 읽기를 권유해볼 일이다. 나의 남자친구 또한 이 책을 읽고 적잖은 바를 느꼈다고 얘기한 바 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서로에 대한 이해만큼 중요한 것은 없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책을 읽을 때 책의 목차와 서문, 지은이의 말, 추천사 등 본문 이전에 나오는 모든 글들을 빠짐없이 읽는 편이다. 그 책에 대한 기본적인 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본문을 읽을 때도 상당한 차이를 낳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도 '이야기를 시작하며'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베르베르의 책 소개를 꼼꼼이 읽었고, 내 옆에 앉아 가만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베르베르의 목소리로 이야기들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단편모음집이다. 그것도 베르베르가 오전 내내 두꺼운 장편소설을 쓰는 데서 오는 긴장감을 풀고 자신의 빠른 글쓰기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저녁 한 시간씩 썼다는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작가가 어떤 심정으로 이 글들을 썼는지를 알게 되면 독자로서도 큰 부담없이 이 이야기들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나무'에 실린 각 이야기들은 [개미]나 [아버지들의 아버지]같은 그의 장편소설처럼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끌어들여서 책 속에 빠져들게 하는 흡인력은 부족한 것 같다(내 생각엔 말이다). 그렇지만 '나무'에 실린 단편들을 읽어가다 보면 과연 '베르베르다움'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경험을 하고 비슷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상상력과 구상으로 이야기의 소재를 찾아내고 그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그의 능력은 과연 존경스럽다.

'나무'에 실린 각 이야기들의 전개방식도 그렇고, 그 안에 듬뿍 담겨있는 베르베르의 날개돋힌 상상력도 부럽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마음이 갔던 부분은 작가로서의 베르베르였다. 자신이 겪는 어려운 문제들을 무대에 올려 이야기로 탄생시키면 마음이 평온해졌다는 그는 자신의 마음을 달랬던 방법으로 이제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가라는 직업과 어느 한 작가가 이렇게 부러워보긴 처음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권장도서나 추천도서를 주로 읽던 학생시절과는 달리 학교라는 곳과 인연이 멀어진 지금,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라는 고민은 내게 적지 않은 부담을 줄 때가 있다. 부지런히 신문이나 잡지의 서평을 뒤적이고 다양한 인터넷 서점 싸이트를 돌아다녀도 보고 시간이 나면 거대해져버린 서점에 파묻혀 두 시간씩 발품을 팔아도 좋은 책을 선택해서 읽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무심코 우연히 읽게 된 책에서 내가 원하던 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인터넷 서점에서 무수한 클릭들을 하는 중간에 장바구니에 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의도적이지 않았던 그 선택이 이번 한 주간 나를 참 행복하게 해 주었다.

그림에 관한 책은 많고, 우리 옛 그림에 관한 책도 꽤나 많다. 보통 그림에 관한 책은 그림을 보는 법에 대해서 알려줄 뿐이다. 그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래서 이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왜 이렇게 보아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은이의 말처럼 그림을 '읽는' 즐거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아니 이 책 속의 그림들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말한 대로 한 장의 그림이 아닌 훌륭한 우리 조상을 만나뵙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흘긋 보았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사연들과 인품들과 그 생활들이 책을 다 읽을 무렵에는 그림 속에 풍성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제 어디선가 세한도를 만난다면 어려울 때 스승의 버팀목이 되어준 든든한 제자와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은 스승의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고, 인왕제색도를 보게 되면 그 정갈한 기왓집과 물안개 속 인왕산을 닮은 벗을 향한 겸재 정선의 우정에 가슴이 저며올 것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 작품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그러므로 이성으로 접근해서 지식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감상자 개개인의 체험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저자의 도움으로 열 한 폭의 소중한 그림들이 나의 체험이 되었음을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생물학자이지만, 심리학을 전공한 내게도 낯선 이름은 아니었다. 책을 고를 때 책의 제목과 저자에 대한 편견에 많이 치우치는 나는 '굴드'라는 사람이 쓴 <인간에 대한 오해>라는 책을 발견하고 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선택을 확실히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일종의 전문서적에서 이러한 가슴차오르는 느낌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굴드는 자신만의 신념과 글쓰기 방식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탄생시켰다(이 책의 초판은 1981년에 씌어졌다).

이 책에서 굴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명확하며 시종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능이란 유전적이고 선천적이며 단일한 하나의 실체로서 단선적인 척도 위에 서열화가 가능하다'는 유전적 결정론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인종차별의 효과적인 도구로서 IQ라는 숫자로 간편하게 표현되는 지능이라는 것이 사실상 하나의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며, 객관성을 외쳤던 과학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자신의 사회적 편견과 선입관에 의해 실험결과를 왜곡시키고 대중들을 잘못된 오해로 이끌었는지 굴드는 열정적인 어조로 논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저자의 목소리는 때로는 과학자라기 보다는 사회운동가의 외침에 가깝다. 굴드 또한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 '자신에게 내재한 객관성에 대한 믿음만큼 고약한 자만심은 없다...객관성의 최선의 형태는 선호를 숨김없이 확인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자신의 선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할 수 있고 그 영향을 제거할 수 있다.(38p)' 과학은 사회적으로 배태된 활동이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 내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사회와 무관한 고유의 객관성이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보는 굴드는 어쩌면 모든 과학자들이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밝힌 것인지도 모른다. 이민제한법과 인종차별주의의 기반을 이루게 될 인종간 지능차에 대한 연구결과를 장대하게 발표하면서도 이것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활동이지 결코 '사회적 영향'을 지닌 결과물이 아니라고 자처하는 과학자들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고 그 신념 속에서 과학을 수행하는 굴드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지성의 모습은 아닌가.

<인간에 대한 오해>는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특히 요인분석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력이 돋보이는 6장같은 경우에는 읽기에 난해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문지식이 필요한 부분을 굳이 다 이해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부분이 매우 흥미롭고 어렵지 않게 씌여졌기 때문에 이 책 읽기를 미리 포기할 필요는 절대 없다. 6백쪽의 방대한 분량에 눌릴 필요도 없다. 굴드의 글은(그리고 안정된 번역은)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굴드는 대중적인 과학서를 쓰기 위해 노력한 몇 안 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신실한 노력 덕에 나는 역사상 가장 치열한 이론적 투쟁의 주제 중 하나였던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지능의 유전적 결정론'에 대해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굴드의 신념이 가득차 넘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신념으로 가득차 내 귓가를 울리는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좋다. ...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물의 샤콘느
장영주 (Sarah Chang) 연주 / 이엠아이(EMI)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세상에서 가장 슬픈 멜로디'라는 애칭에 걸맞게 샤콘느를 듣는 동안은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애절한 멜로디의 흐느낌에 이어지는 장대한 오케스트라와의 격정적인 어울림까지 장영주의 샤콘느는 내가 가장 아끼는 앨범이 되었다. 동일한 곡에 대한 해석이 각 연주자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샤콘느'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샤콘느는 분명 같은 곡인데도 내게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하이페츠의 절절한 애절함보다는 장영주의 격정적인 슬픔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샤콘느 외에도 이 앨범에 실려있는 다른 곡들 모두 아름답게 연주되었다. 충분히 곁에 둘 만한 가치가 있는 앨범이다. 클래식에 전혀 조예가 깊지 않은 나도 '눈물의 샤콘느'를 듣고 싶은 날이 생겼으니, 클래식과의 친밀도는 그리 중요치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일단 들어보시길..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arkis1111 2007-05-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앨범 이라 선물 하려고 또 구매 햇습니다.

parkis1111 2007-05-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앨범 이라 선물 하려고 또 구매 햇습니다.

frost79 2007-06-0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또 구매해야 할 것 같아요. 이사다닐 때마다 챙겼는데 이번에 잃어버렸답니다..^^;
선물 받으시는 분 좋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