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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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생물학자이지만, 심리학을 전공한 내게도 낯선 이름은 아니었다. 책을 고를 때 책의 제목과 저자에 대한 편견에 많이 치우치는 나는 '굴드'라는 사람이 쓴 <인간에 대한 오해>라는 책을 발견하고 별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선택을 확실히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일종의 전문서적에서 이러한 가슴차오르는 느낌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굴드는 자신만의 신념과 글쓰기 방식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탄생시켰다(이 책의 초판은 1981년에 씌어졌다).

이 책에서 굴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명확하며 시종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능이란 유전적이고 선천적이며 단일한 하나의 실체로서 단선적인 척도 위에 서열화가 가능하다'는 유전적 결정론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인종차별의 효과적인 도구로서 IQ라는 숫자로 간편하게 표현되는 지능이라는 것이 사실상 하나의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며, 객관성을 외쳤던 과학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자신의 사회적 편견과 선입관에 의해 실험결과를 왜곡시키고 대중들을 잘못된 오해로 이끌었는지 굴드는 열정적인 어조로 논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저자의 목소리는 때로는 과학자라기 보다는 사회운동가의 외침에 가깝다. 굴드 또한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다. '자신에게 내재한 객관성에 대한 믿음만큼 고약한 자만심은 없다...객관성의 최선의 형태는 선호를 숨김없이 확인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자신의 선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할 수 있고 그 영향을 제거할 수 있다.(38p)' 과학은 사회적으로 배태된 활동이기 때문에 사회적 맥락 내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사회와 무관한 고유의 객관성이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보는 굴드는 어쩌면 모든 과학자들이 인정하기를 꺼려하는 사실을 가장 솔직하게 밝힌 것인지도 모른다. 이민제한법과 인종차별주의의 기반을 이루게 될 인종간 지능차에 대한 연구결과를 장대하게 발표하면서도 이것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활동이지 결코 '사회적 영향'을 지닌 결과물이 아니라고 자처하는 과학자들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확인하고 그 신념 속에서 과학을 수행하는 굴드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지성의 모습은 아닌가.

<인간에 대한 오해>는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특히 요인분석에 관한 날카로운 분석력이 돋보이는 6장같은 경우에는 읽기에 난해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문지식이 필요한 부분을 굳이 다 이해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부분이 매우 흥미롭고 어렵지 않게 씌여졌기 때문에 이 책 읽기를 미리 포기할 필요는 절대 없다. 6백쪽의 방대한 분량에 눌릴 필요도 없다. 굴드의 글은(그리고 안정된 번역은)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굴드는 대중적인 과학서를 쓰기 위해 노력한 몇 안 되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신실한 노력 덕에 나는 역사상 가장 치열한 이론적 투쟁의 주제 중 하나였던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지능의 유전적 결정론'에 대해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굴드의 신념이 가득차 넘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신념으로 가득차 내 귓가를 울리는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좋다. ...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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