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유혹에 무릎을 꿇어라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머릿속으로는 허구라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는데도, 내가 뭐에 씌였나, 홀렸나. 별로 길지도 않은(물론 짧은 것도 아니지만) 이 책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는 동안 완전히 딴세상에 다녀온 듯, 읽고 있던 동안 나는 없었던 듯, 반쯤 넋이 나가버렸다. 달콤 고소한 빵집 특유의 향기를 상상하지 마시라. 이 책은 내 생전 처음 먹어보는 빵 맛과 향과 모양을 가졌다. 또 미리 밝히는 바, 내 독서취향에서 SF나 환상물은 맨 꼴찌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내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이 빵의 치명적인 유혹에 깨끗이 무릎꿇었다는 사실.   

아빠의 재혼으로 만들어진 새 가족의 틀 안에서 겉도는 소년. 그곳에서 쫓기듯이 달아난 소년이 몸을 의탁한 곳은 몇 번 빵을 사먹었던 적이 있었던 동네 빵집. 책 전체로 보면 적은 분량을 차지하는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소년과 새엄마와의 갈등구조가 주를 이루는데, 여타 책에서 다루어지는 흔한 소재일 수도 있는 갈등상황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데에서 자못 충격적이다. 아둥바둥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 애쓰는 새엄마의 모습, 그것에 반항할 수 없을 때는 차라리 일관적인 무시로 자기 둥지 안에만 머무르고 있는 소년의 모습. 이 둘은,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난감하고 비극적이다.  

여기까지 살짝 독특한 빵에 구미가 당겼다면, 이제부턴 난생처음 맛보는 빵을 만나게 될테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함을 경고. [위저드 베이커리]만의 차별화된 막강 아이템부터 살펴볼까.  싫은 사람에게 먹이면 먹고 떨어지게 만드는 노땡큐샤브레쇼콜라, 싫은 사람에게 먹이면 자꾸 실수하게 만드는 악마의시나몬쿠키 같은 것은 차라리 애교. 부두인형이나 도플갱어피낭씨에 같은 등골 송연한 빵, 이 세상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바꿀지도 모를 타임리와인더라는 초강력에너지의 빵. 인간의 분노와 저주와 후회와 갈등을 교묘히 파고드는 이 빵들을 기가 막히게도 은밀히 주문하고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위저드 베이커리와 고객과의 거래는 인간의 치부를 담보로 하고 있지 않은가! 

순전히 우연처럼 보이는 소년과 위저드 베이커리와의 만남은, 소년이 갖고 있는 여러 갈등상황을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의 치밀한 계산일 것이 분명하다. 유혹적이지만 치명적인 빵의 효과를 믿고, 또는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느냐, 그런 사람들을 조롱하듯, 또는 달래주듯 대하는 마법사를 보며 소년은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 그것이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다.        

결말은 아리송하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독자의 선택적 의지에 맡겨둔 셈. 이렇게 아리송한 결말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딱 이거다 라고 결말짓지 않은 파격이라는 점에서 독자의 허를 찔렀다고도 본다. 어쨋거나 분명한 건 위저드 베이커리의 요상한 빵의 유혹에 무릎꿇은 뭇사람들처럼 나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치명적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 그리하여 이 책을 다 읽고도 머릿속에서 자꾸 자꾸 되새김질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