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하 진 지음, 김연수 옮김 / 시공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최근 쑤퉁과 위화의 작품을 읽으며 하진이라는 중국 작가(정확히는 중국계 미국인)의 [기다림]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선 두 작가의 작품에서 중국문학에 큰 호감을 갖게 되었기에 그 호감의 연장선상에서, 또 세간의 평이 좋더라는 막연한 기대심리에 주저없이 선택했던 [기다림]. 결론부터 얘기하면 [기다림]은 쑤퉁이나 위화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졌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역자후기에 따르면, 작가 하진은 중국 태생의 중국인으로 대학 졸업 후 도미했고, 그 이후 글쓰기를 시작해 영어로 작품을 쓰고 있는 미국인이라고 합니다. 그제서야 그의 [기다림]이 중국인 작품과는 다르게 느껴진 이유를 알겠더군요.  

여하튼. 480여페이지로 긴 편인 소설 [기다림]은 주인공 린, 그의 부인인 수위, 그리고 그의 애인인 만나의 삼각관계가 주된 줄거리입니다. 사실 겉모양은 삼각관계가 맞지만, 수위는 고향인 시골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소박한 여인이고, 린과 만나는 도시의 같은 군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세련된 간호사이니, 그들 사이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삼각관계의 긴장감이나 아귀다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여름휴가 때마다 린이 고향에 내려가서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 법정에 서지만 번번히 법정의 허락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17년이나 지내오고 있는 중이지요. 그 지리한 17년을 읽는 동안은 솔직히 좀 지루한 편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마오쩌둥이 권력을 잡고 있는 막바지, 연애와 결혼에 대한 군병원의 규정이 그 세 사람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상황의 전개가 흥미롭고, 수위 또는 만나와의 인연을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맺고 끊지 못하는 유유부단한 린이라는 인물도 나름 색다릅니다만, 아무래도 근 20년이나 되는 세월동안 똑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지루합니다.          

책의 중반을 넘어선 후 결국 린과 만나의 새로운 생활이 펼쳐지면서부터야 재미가 붙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세 등장인물 중 가장 미미한 존재였던 수위가 수면 위로 박차고 오른다는 것이죠. 이 때부터는 수위가 차지하는 분량이 전보다 조금 늘어나지만, 여전히 린과 만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그리고 끝내는 '기다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헷갈리는, 아니 사실은 '기다림'의 진짜 주인공이 밝혀지는 이 소설의 마지막을 만나고야 맙니다. 이것 참, 소설의 재미는 절대 섣부르게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기다림]의 이 뒷부분에는 별점수를 아낌없이 줄 수 있겠습니다.  

하나만 더 덧붙인다면... 미국문학계에서는 작가 하진이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하는데, 제가 [기다림]에서 느낀 작가 하진은 솔직히 그렇게까지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하진의 다른 작품을 만날 기회가 또 있다면 그의 대단함을 알아챌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선택에는 더 심사숙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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