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포함해 지금까지 내가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엔 모두 '명랑한 갱' 또는 아류가 등장한다. 그의 작품 중 내가 아직 읽지 않은 것이 훨씬 많으니 이 소재가 그의 작품세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느냐를 분석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그의 작품은 명랑한 갱의 등장으로 매우 명랑하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각자 독특한 장기를 갖고 있는 4명의 은행털이범 일당이 잘 털고나온 돈을 갈취당한 후 벌이는 복수극. 뭐, 굳이 복수극이라고까지 말할 것은 없지만 아무튼 복수가 맞긴 맞다. 돈을 갈취당하는 사건,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건 모두 뭔가 트릭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작가가 야금야금 던져주는 실마리로는 그 전체를 파악하지 못해 안달이 나고, 막판으로 갈수록 뒤집히고 또 뒤집히는 상황이 재미있다. 그 와중에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던지는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는 어느 타이밍에서 어떤 말이 모든 상황을 명랑함으로 종료시키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듯 기막힌 달변이다. 그렇다면 명랑한 갱은 명랑한 이사카 코타로의 분신?

요는, 모든 상황의 명랑함, 다시 말해 심플하고 깔끔한 뒷처리가 이 소설의 재미다. 책 뒷부분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들여다보니 '작가는 등장인물을 통해 사회적 이슈와 인간의 약점 및 오점에 대해 쏟아내고 있다'며 몇가지를 짚어주었는데, 물론 충분히 공감가는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말보다는 책 속에서 오가는 수많은 대화들, 의미없는 것 같은 말장난이 솔직히 더 명랑하다. 의미를 찾으려하기보다 의미를 두지 않아 나름의 의미로 해설할 수 있는 여백의 미라고나 할까.  

뒤쳐지는 이야기야 말할 것도 없고, 반 걸음 앞서가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라 재미없고, 너무 많이 앞서가면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라 재미없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는 딱 한두 걸음 정도,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같은 간격으로 앞서가는 이야기이고, 막 다 따라잡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순간이 이야기의 끝이다. 작가와 내가 "로망은 어디인가"라고 합창하며 은행문에 들어선 그 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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