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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에서 온 편지 ㅣ 즐거운 동화 여행 5
박신식 지음, 정유광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여자이니 아버지와 아들간의 묵직한 사랑은 그저 짐작만 할 따름이다. 어머니나 딸의 포근하고 살랑살랑한 느낌과는 다른, 남자들끼리만 통하는 우직하고 끈끈한 어떤 것이 있으리라. 전문산악인인 아빠가 초등생인 외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끝내 눈시울을 젖게 만드는 [에베레스트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정말 그렇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쁜 말로 치장하거나 귀를 간지르는 속삭임은 없었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 속엔 에베레스트 산처럼 높고 높은, 눈처럼 희고 흰 순백의 사랑이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전문산악인.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만날 산에만 가고 밥도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고, 반 친구들에게 백수아버지니, 자가용도 컴퓨터도 없다느니 라며 놀림받는 것이 어찌 좋았으랴. 다른 건 몰라도 단 하나 뿐인 아들인 자신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것 같은 아버지 때문에 정말 속상했던 태산이.
하지만 아버지가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던 중에 썼던 마지막 편지를 손에 받아든 태산이는 아버지가 마음을 담아 썼던 글 한 줄 한 줄을 읽으며 그제서야 알았다.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것은 산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 늦은 깨달음..
등반 중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아니 아버지의 피켈을 찾기 위해 산을 타겠다고 결심한 태산이에게 산은 이제 산이 아니요, 아버지일 것이다. 산이 그 곳에 있어서 오른다는 유명 산악인의 말보다, 아버지의 피켈이 그 곳에 있으니 오르겠다고 하는 태산이의 결심이 더 가슴 깊이 사무친다.
태산이의 입장에서 씌여진 이야기가 담백하고 깔끔하다.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고 아버지가 밉다는 솔직한 아이의 심정이 사랑스럽고,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끝내 미안해요, 사랑해요, 라고 울며 외치는 슬픔이 격하지 않으면서도 가슴이 저리다.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들 속에서 비극의 결말을 갖는 다소 의외의 설정이 오히려 참신하고,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또 이야기 속에 섞인 산악인의 등반모습이나 상식, 책 마지막 부분의 산악용품 사진 등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공을 들여 만든 흔적이 엿보이는 구성.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 동화가 빛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