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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그네쥐 이야기 ㅣ 8세에서 88세까지 읽는 철학 동화 시리즈 3
데이비드 허친스 지음, 박영욱 옮김, 바비 곰버트 그림 / 바다어린이 / 2007년 9월
평점 :
'레밍' 쥐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북유럽 어딘가에 사는 나그네쥐, 일명 레밍이라고 불리는 그 쥐들은 어느 때가 되면 무리를 이루어 바다로 뛰어들어 죽는다는. 참 별 일이네, 했었는데,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간 동화 [어느 나그네쥐 이야기]를 읽고보니 이것 참 의미심장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일단 책을 주루륵 넘겨보면 글의 양이 적음에 놀란다. 간단한 그림만 있는 페이지도 있고, 단 한 줄, 두 줄짜리 페이지도 많다. 가장 글이 많은 곳도 페이지가 헐거울 정도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헐거우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책의 모티브는 과학적으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나그네쥐들의 풍덩 습성. 모두들 풍덩 축제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한 녀석이 '왜 우리는 빠져야만 하는가'를 고민한다. 이 때 등장하는 '점결연(점프를 결사 반대하는 나그네쥐 연대)'! 그리고 그 다음은 읽어보시길.
철학 동화라고 이름이 붙었다. 언제부터인가 논술을 빌미로 사고력을 키우는 책, 생각하는 책, 철학을 이해하는 책 등이라고 이름붙인 아동도서가 제법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획이나 내용면에서 크게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들에 더이상 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 [어느 나그네쥐 이야기]는.. 정말 '철학 동화'가 맞는 것 같다. 만일 고민하는 쥐의 단독 행보였더라면 단순한 우화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등장하는 쥐들의 면면을 살펴보시라. 고민하는 쥐, 점결연의 쥐, 그리고 보통의 많은 쥐들.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어떤 상황이 어떤 생각을 가져오는지, 그 상황과 생각은 어떻게 '깨트림'을 당하는지.. 책 뒷부분에 실린 철학박사의 도움말도 이 책을 철학적으로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컨텐츠.
짧지만 길게 읽히는 책이다. 천천히, 많이, 곰곰히 생각할 이야기다. 글의 분량과 상관없이 초등 고학년, 중학생까지 독자가 되겠다. 이 정도는 되어야 철학 동화로 이름붙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