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보랏빛 구두 조약돌 문고 5
홍종의 지음, 이현주 그림 / 섬아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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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생략과 은유. [소나무와 보랏빛 구두]는 저학년 대상의 동화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 전개방식이 눈에 띈다. 

소나무가 아파하고 청솔모가 까불대는 첫 장면은 비교적 평이한 동화의 시작이지만, 다리를 다친 상아와 미국에서 급히 귀국해온 엄마, 그리고 심한 부상으로 안정을 취해야하는 아빠, 이 세 명의 이야기는 매우 심오하다. 

상아가 잃어버린 보랏빛 구두 한 짝을 그렇게 애타게 찾으려 했던 이유에 마음 아픈 한편, 무진 애를 쓰며 성공을 향해 가는 도중 갑작스러운 귀국으로 일과 가족 중 한가지만 선택해야하는 엄마의 운명 또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상아와 엄마의 가교 역할을 하는 아빠는 앞의 두 등장인물보다 묘사가 상대적으로 덜 구체적인데, 이 동화를 깔끔하게 마무리짓는 역할로는 손색없다.  

그러나! 엄마를 그리워하는 상아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 한 켠 개운하지 못한 이유 두 가지. 

애초에 엄마가 미국으로 가기로 한 것이 어려운 결정이었음에 틀림없을 터. 그렇다면 상아와 아빠는 아쉽고 속상하지만 엄마를 보내주고 마음으로 힘껏 응원해줄 수는 없었을까? 또 상아와 아빠를 돌보기 위해 귀국하여 자신의 성공을 미루어야 할(혹은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한 마디 정도는 해주어야 했지 않았을까? 

또한 이 동화가 의식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엄마와 아빠와 아이가 모두 한 곳에서 함께 있어야만 가장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아빠가 엄마에게 건네는 한 마디, "당신과 나는 상아의 구두야. 두 짝이 다 있어야 상아가 걸을 수 있지."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매우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다. 편부, 편모, 또는 조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한 다소 위태로운 발언이 아닐까? 

이야기의 구도와 소재는 괜찮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닥 개운하지 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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