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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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이라부=유쾌통쾌상쾌'라는 공식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일갈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오쿠다 히데오가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식된 것은 위의 공식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 [인더풀]과 [공중그네]에서 신선한 충격과도 같았던 그의 인물과 문장에 매료되었고, 그 신선함은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화시켜주었다. 

하지만 그 신선함에도 유효기간이 있었던 것인지, 차츰 이라부의 독특함에 익숙해져 최초의 신선함이 시들어갈 무렵 [한밤중에 행진]이 나와주었다. 마치 이라부에게 질린 독자에게 크게 한 방 터뜨려주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처럼.

한밤중에 행진하는 그들은 25살 동갑내기 3인조 도둑. 정말 안어울리기 짝이 없는 멤버다. 그럭저럭 논다 소리 들으며 약간의 돈과 여자로 인생을 써버리고 있는 백수. 천재이기도 하고 바보이기도 한 대기업 사원. 개점휴업상태인 쭈쭈빵빵 모델. 하긴, 돈 10억엔이 뉘집 강아지 이름이더냐. 10억엔을 향한 집념으로 똘똘 뭉친 이들의 치열한 잔머리 굴리기,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작은 단 몇 사람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요인물들은 개성있는 캐릭터로 잘 그려졌고, 그 캐릭터들이 만나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무리없이 잘 굴러간다.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며 잰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 이야기에 속도가 붙어 정신없이 따라갈 수 있다. 그리고 어느새 다달은 이야기의 끝. 특히 이 끝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같다. 가벼운 갱영화의 마지막에서, 갱들이 큼직한 돈가방을 등으로 넘겨 쥐고 담배를 입에 문 채 흐뭇한 웃음을 날리는. 쓰고 보니 정말 딱 이 장면이다. 어쩌면 어느 영화 포스터에서도 봤음직한 장면.     

370여 페이지의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재미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첫 부분 재벌가의 귀공자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말 안해도 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고,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불쑥 나타난 중국인의 정체 또한 그렇다. 3인조가 쫒기다가 위기를 벗어나는 때는 다소 억지스러운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부분적으로 살짝 늘어지는 전개는 팽팽히 당겨지는 순간순간들의 위력에 묻혀 크게 책잡힐 만큼은 아니다.

[한밤중에 행진]는 줄거리, 에피소드, 등장인물, 모두 그럭저럭 평균 이상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오쿠다 히데오의 발랄한 글솜씨는 여전히 일품이라는 걸 인정하게 만든다.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와 장면의 묘사는 뒤통수를 치는 급소 공략이요, 럭비공 쫓는 황당함이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인간과 파는 인간, 그리고 훔치는 인간." - 나는 이런 식의 문장에 넘어간다. 궁시렁대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지 않은가? 가벼워도 가벼워서 좋을 때가 있다. 그래서 [한밤중에 행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하나. '폭소 스릴러'라는 신조어를 내세워 선전하고 있지만 스릴러는 아니라는 사실. 왜 굳이 스릴러 장르에 기대려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재미있다고만 해도 읽을 사람은 다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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